RUST RAW novel - Chapter (293)
러스트 [RUST]-293
잠시 회포를 푼 기순이 목소리를 깔았다.
[사실은 말이지···.]“됐으니까 목소리 깔지 말고 말해.”
[씨발. 나 심각하다.]“요즘 심각하지 않은 사람도 있냐?”
죽은 사람 말고는 다 심각하지. 그렇게 기순의 심각함을 사뿐하게 지르밟은 마루가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그대로 입으로 뱉었다.
“근데, 군대는 어떻게 됐냐? 동원령 떨어졌을 텐데. 위성전화면 군대에서 건 거냐? 너 설마 지금 군대는 아니겠지?”
[무슨 군대?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그렇지 않아도 존나 심란한데.]“애들이 불쌍하니 어쩌니 그러면서 뭔가 살포시 군대적인 군대 같은 킹리적인 갓심이 드는 이유는 뭘까? 김기순.”
[아니라고! 내 상황이 그럴 상황이 아니라니까! 내 꼴이 그게 아니라고!]6월 중순, 이상기후로 더워 죽겠는데 후드 눌러쓰고 다니느라 늦은 밤과 새벽에 활동하고 코로나 사태가 아니었다면 이상하다고 여러 차례 신고 먹었을 차림새였다.
패션만 문제인가? 지금 기순은 누가 봐도 이상하다 싶게 생겨버린 모습이었다. 군대? 그걸 어떻게 가나? 바로 포장, 어쩌고 연구소 행이겠지.
속이 쓰라린 기순의 마음을 알 턱 없는 마루가 계속해서 뒤를 캤다. 세상이 돌아갔을 때 잠적했던 녀석이, 핵전쟁 터져 통신 끊기고 나서야 위성전화기로 연락한다는 건 조금 이상했으니까.
“그럼 위성전화기는? 해외 쇼핑몰에서 직구로 샀냐?”
[지금 쓰고 있는 위성전화기. 오진그룹 나주연이 준 거다.]“야! 내가 걔랑 엮이지 않으려고··· 너 설마- 걔한테 잡혔냐?”
[그게 아니라. 내 상황이 좀 그렇게 됐다.]“뭔 상황인데? 알아듣게 말해야지!”
마루의 일갈에 기순이 담담하게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따개비와 공생하게 됐고, 특이 케이스라고 한다고. 중국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는데, 완화하려면 나주연이 준 약을 써야 할 것 같다는 이야기.
“따개비랑 공생? 아까 말한 꼴이 그 꼴이었냐?”
[지랄···.]“그거 전화기 화상통화 되는 거지? 후드 까봐.”
[···꼭 봐야겠냐?]“그냥 무턱대고 보자고 하는 게 아니야. 이쪽에 인공지능이 셋이나 있고, 전문가들도 제법 많다. 거기에 연구실, 기자재 전부 빵빵하다. 대충 어떤 상태인지 알아야 조언이라도 구할 수 있지, 운이 좋으면 뭔가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후- 그래.]어차피 한 번은 까려고 했었으니까. 기순이 마스크를 벗고 깊게 눌러쓴 후드를 뒤로 걷었다. 부르르륵- 자유를 찾은 것처럼 꿈틀거리는 촉수가 하늘을 향해 너풀너풀 흔들리기 시작했다.
“야··· 따개비라며. 근데 왜 씨발 말미잘인데···”
[······.]그간 험한 일을 겪은 마루인지라, 생각이 그대로 입으로 나왔다.
“미안. 군대 이야기도 미안.”
[닥쳐!]하아- 기순아. 마루는 나름 속이 상했다.
대가리가 저 지경이니 몸은 어떻게 됐겠는가? 몸뚱이도 정상은 아닐 것이다. 미국으로 데려와서 싹 뜯어내고 급속 치료제를 써보면 어떨까? 저 상태로 다시 회복되면 그게 더 지랄 같아지는 거 아닐까?
기순의 모습을 슬쩍 훔쳐본 김 양이 호기심 강한 눈빛을 보냈다.
‘그거 따개비 촉수. 그것이라고 하지 않았음?’
‘아니 지금 거기 이야기가 왜 나와.’
‘그렇지만 촉수가 많은걸. 그것도 머리에.’
‘저리 가. 저리 가라고!’
마루는 눈빛으로 김 양을 쫓아낸 뒤, 기순을 바라봤다. 확실히 욕이 나올 법한 모습이었다. 특히 말미잘 같은 머리 부분이.
기순은 마스크와 고글을 끼고, 후드를 덮어썼다. 불룩불룩 답답하다는 듯 꿈틀거리던 것들이 서서히 잠잠해졌다.
“나주연이 약 줬다면서? 효과를 본 게 그 모양이냐?”
[아니. 조금 있다가 나중에 쓰게.]“미쳤어? 묵혔다가 쓰려고? 빨리 써보고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알아야지, 그걸 묵혔다가 어쩌려고.”
[그게 아니라. 우리 일본에 갔을 때 있잖아. 카타마란 타고 일본에 갔었을 때.]갑자기 왜 그쪽으로 이야기가 가는지 모르겠지만, 마루는 잠자코 들었다. 제일 미칠 지경인 사람은 기순이 본인일 터.
[거기 비밀실험실에 무슨 제단 같은 게 있었다고 했었지?]“그래. 근데 그건 왜?”
그러니까, 거기서 나온 것과 바이러스를 섞여서 이 지랄이 났을 거라고. 바이러스 조작한 것도 병신 짓인데, 재단을 이용해서 가져온 것과 바이러스가 섞었으니 터질 수밖에.
그것도 모자라 방사능까지 가세했으니 변이 추이를 예측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재난까지 겹쳐버린 걸 무슨 수로 통제하겠는가?
변이 바이러스나 변이 괴수들이 창궐하는 상황은 중국과 일본의 삽질에 대재난이 겹쳐 만들어진 결과라는 것. 문제는 이 상황이 점차 더 나빠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었다.
[제단이 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이계와 연관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하네. 그래서 그걸 없애지 않으면 거기서 생기는 뭔가가 바이러스와 결합해서 지금보다 더 이상한 것들이 나올지 모른다고 하더라.]잠자코 듣고 있던 마루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 상황은 알겠는데. 그게 네가 약을 안 먹고 있는 거랑 무슨 상관이냐?”
[···이게 보이기엔 이래 보여도, 날 여러 번 위기에서 구했거든.]위기에서 널 구한 게 아니고, 네가 위기가 됐겠지. 그건 그렇다고 치고 그 모양이 돼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너 정말 참.
“야. 김기순. 너 그게 무슨 개소리냐? 그러니까 약은 나중에 먹고. 일본에 있는 재단인가 뭔가를 처리하러 가겠다고? 너 돌았냐? 나주연이 그렇게 하라고 하디?”
[그게 아니라. 하- 마루야. 난 사람이다.]“그걸 말이라고 해? 사람이지 사람이 아니면 뭐냐?”
[난 사람이라고, 사람이 사람을 위해서 행동하는 게 잘못된 일이냐?]“개- 그게 여기서 왜 나오는데?”
[야- 나 사실 이렇게 되고 생각 많이 해봤다. 도망쳐서 뭐하나 싶은 생각도 들었고, 실험체가 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고 그랬다. 근데, 총에 맞고 칼에 찔리면서도 안 죽더라.]사시미에 찔려도, 권총에 난사 당해도 다치지 않았다. 힘도 세지고, 잠도 조금만 자도 됐고, 여러모로 변했다.
[무슨 생각이 든 줄 아냐? 아, 이젠 마루랑 김 양한테 업혀가지 않아도 되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 점점 몸이 변해가고, 혹시 따개비가 전염되지는 않을까 그런 걱정이 될 때는, 그냥 혼자 살아야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고.]“······.”
[나도 알아. 나주연이 내 성격 알아서 그런 소리한 거. 내가 이야기하면 너 새끼도 엮일지 모른다는 걸 노리고 그랬을 수도 있다는 거. 그러니까 넌 진짜 오지 마라.]“야···.”
마루가 뭔가 말하려고 하자, 그걸 끊는 기순.
[그냥 잠깐 들어. 내가 일본에 가는 이유는··· 그래. 이 지경이 됐어도 나는 나라는 걸, 나 자신에게 떳떳해지고 싶어서다.] [이 모양이 됐으니까 할 수 있는 일이 생겼다고 생각한다. 세상은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었지? 내가 이렇게 된 이유가 있다면, 지금 같은 상황에서 이런 결정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 아닐까?] [세상이 이 지경이 됐지만, 이런 세상이 됐기에, 나는 아직 사람이라는 걸. 나는 온 힘을 다했다는 걸. 증명하고 싶을 뿐이야.]“하- 미치겠네.”
험준한 산을 목숨 걸고 오르는 사람에게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산에 오르는 순간 자기 존재를 확인할 수 있어서라도 대답한 사람이 있다더니···.
“후- 좋아. 좋다고. 그런데 네가 간다고 될 일이 아니다. 내가 전에 말했잖아. 거기 비밀연구실에 자폭장치, 소거장치 같은 걸 작동시켰다고.”
[······.]“그랬는데도 제단이니 뭔지가 남아있어서, 계속 지랄을 뽑아내고 있는 거라면 너 혼자 가서 될 일이냐? 혼자 등짐으로 폭탄 들고 들어가서 될 일이 아니라고.”
[그럼 어떻게 하자고. 여기 한국이다. 일본 옆이라고. 그렇지 않아도 후지산, 아소산 화산 폭발한 여파가 계속 쌓이고 있는데, 제단이니 하는 것까지 난리 치면 순식간에 휩쓸린다고.]“넌 하- 그래 알았다. 알았으니까. 넌 약이나 먹고 몸조리하고 있어. 그리고 무슨- 됐다. 이걸로 연락할 테니까. 전화하면 바로 받고.”
[그래. 미안하다.]“됐으니까. 약이나 빨리 먹어.”
마루는 전화를 끊고 심호흡했다. 하- 진짜- 하- 씨발- 몇 차례 중얼거린 마루가 디아나를 찾았다.
“디아나, 기순이 사진 출력해서 관련 연구원들에게 보여줘. 그리고 비상 서버에 넣은 자료들 가운데 변종 따개비 연구했던 자료도 첨부해서. 해결할 방법 있는지, 비슷한 연구 사례는 있는지 찾고. 치료 방법을 찾아보라고 해.”
[알겠습니다.]저쪽 구석에 있던 김 양이 슬금슬금 다가왔다.
“그러니까 기순이 혼자 일본에 가서 비밀실험실 제단을 어떻게 하겠다는 소리였음?”
대체 왜? 인생이 불만이라서 그런다는 것임? 김 양이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게나 말이다.”
근데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선로에 떨어진 취객을 살리겠다고 자기 목숨을 거는 사람. 침몰하는 배에서 다른 사람을 먼저 대피하게 하는 사람. 집안이 망해 왕따 당하는 친구의 손을 끝까지 놓지 않는 사람.
나주연이 제단 이야기를 꺼낸 것을 보면, 단순한 오컬트가 아닐 가능성이 있었다. 무엇보다 정신파를 쏘는 괴물을 직접 경험하기도 했었고.
‘그놈이 이계에서 온 뭔가라는 소린데.’
하긴 회장 대역도 이상하긴 했다. 목을 잘랐는데 머리가 실시간으로 솟아나고, 촉수가 돋아나고 재생되고 그런 건 확실히 일반적인 상식을 벗어난 무엇이었다.
‘마냥 헛소리는 아닐 것 같단 말이지.’
지금껏 겪은 일을 생각해 보면, 마냥 헛소린 아닌 것 같았다. 게다가 감이 그랬다. 이계든, 이계가 아니든 그냥 느낌이 더러웠다.
제단과 관련된 생각만 하면 찝찝함이 가시지 않는 걸 봤을 때, 그냥 넘겨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가려고?”
김 양의 눈이 가늘어졌다. ‘약속하지 않았음?’하는 눈빛.
아? 그러고 보니 아무 데도 안 간다고 약속했던 게 떠올랐다. 약속을 떠나서, 일본으로 가는 건 하수였다.
“미쳤냐? 당분간 안 간다고 했잖아.”
“기순이는?”
‘그거 미친 척하고 일본 갈 것처럼 보이던데?’ 김 양이 다시 눈매를 좁혔다. 마루가 고개를 저었다.
“당장 혼자 간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았으니까 바로 가지는 않을 거다.”
“어떻게 하려고? 제단인지 그거 슥삭-할 수 있기는 하잖음?”
김 양이 턱짓으로 칼을 가리켰다. 폭탄으로 부수려면 어렵겠지만, 철근 콘크리트도 자를 수 있는 이클립스로 조각을 내는 건 오히려 가능성 있었다.
그러니까 어쩌라는 건데?
가라는 건지, 가지 말라는 건지. 마루는 어이없어 고개를 흔들었다.
“디아나. 기순이가 따로 보낸 건 없고?”
[음성 녹음 파일을 비롯한 정보 파일이 있습니다.]“일단 음성 녹음부터 켜고. 정보 파일을 열어서 모니터로 올려줘.”
녹음된 내용은 나주연과 통화했던 내용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흘려듣던 마루가 중국의 749국을 언급하는 부분에서 재생을 멈췄다.
“중국의 749국과 관련된 정보 있으면 찾아서 모니터에 올려.”
[정보 검색 완료. 관련 내용 모니터에 출력했습니다.]749국은 중국 국방과학 기술 공업 연구회라 불린 특수 기관이었다.
초능력이나 초상능력에 관한 연구, 유전자 변이에 따른 능력 발현에 관한 연구를 주로 했지만, 일반적인 과학으로는 해석할 수 없는 빙의나 주술, 이계, 인외, 괴물, 신화와 관련된 분야까지 연구하는 기관이었다.
‘이거 잘하면.’
국토안보국을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았다. 핵전쟁 여파로 빈사 상태에, 사실상 분열된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미국은 미국이니까 잘만 하면 해결될 가능성이 있었다.
이런저런 양념을 듬뿍 친 자료를 만든 마루가 말했다.
“이거 국토안보국으로 보내.”
[보냈습니다.]======
======
“부장님. 블라디마루 칼린이 자료를 보내왔습니다.”
“연락은? 통신이 되는 건가? 당장 연결해.”
“연결되지 않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자료는 보냈는데 연락을 받지 않는다고?”
이건 또 무슨 경우? 덴 브라운 부장의 이마에 핏줄이 툭 붉어졌다.
“일단 받은 자료 올려봐.”
“예.”
자료를 읽던 덴 브라운이 헛웃음 지었다.
“놀랍군. 오진그룹과 중국 749국이 거래를 했다는 소린가? 버지니아 녀석들은 뭘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어.”
“문제는 그게 아닙니다.”
“그래. 이 자료가 사실이라면 심각한 상황이야.”
진화의 비밀이 숨겨진 일본 관동지역을 미합중국이 확보했다고 생각했건만, 그게 아닐 수 있었다. 7개로 분열한 중국과의 전쟁은 계속되고 있었고 본국에서 추가로 병력을 보낼 여력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의 갑작스러운 홋카이도 침략이 진화의 비밀을 노린 것이라면? 그렇지 않아도 중국이 7개로 늘어나서 골치 아픈 판에 러시아까지 끼면 답이 없었다.
“제단이라.”
“어쩌면 코드 네임이나, 일종의 암호일지 모릅니다.”
“어쨌든 일본 도쿄 지하에 뭔가 있는 건 확실합니다.”
중국의 특수 기관 749국이 언급된 이상, 일반적인 뭔가는 아닐 가능성이 컸다. 거기에 일본에서 확보한 자료 가운데 해석 불가능한 것들이 많은 것을 생각해 보면. 그냥 넘길 일은 아니었다.
“자료 정리해서 각 기관에 돌리고, 화상회의 잡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