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297)
러스트 [RUST]-297
VX 가스로 가득 채운 안쪽, 작은 짐승들이 발버둥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정신을 쏙 빼놓는 주문이라도 되는 것처럼 멍- 하니 서 있는 간호사에게 김 양이 툭 말했다.
[1호기 빨리 안 옴? 거기 서서 뭐함?] [에? ···아니요.] [앞장서고 싶어?] [아니요. 아뇨.]깜짝 놀란 것처럼 고개를 흔드는 간호사였다.
확실히 반응이 있었다. 백정이 예측한 것처럼 쥐도 느낌적인 느낌을 할 수 있는 건가? 신기하네. 김 양은 간호사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찌이이익-
VX 가스에 죽어가는 쥐새끼들의 소리가 들릴 때마다 움찔움찔 가늘게 떠는 모습. 김 양은 냉큼 마루에게 연락했다.
[1호기가 느낌적인 느낌 맞는 것 같음.] [오- 그래?]마루가 반색했다. 까마귀와 쥐가 그렇다면, 다른 것들도 소통 가능할지 몰랐다. 코요테나 늑대, 곰 같은 괴수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게 된다면? 써먹을 방법은 무궁무진했다.
그렇지 않아도 마을을 덮친 쥐새끼들 잡을 때, 간질간질하니 쥐들이 지르는 비명의 뜻을 느낄 수 있었는데, 단순한 착각이 아니었다.
[다그치지 말고 은근슬쩍 쥐어짜 봐. 어디까지 가는지. 할 수 있겠어?] [당연-가능!]김 양은 자신 있었다.
김 양이 간호사를 태워대며 VX 개미지옥을 만드는 동안, 마루는 디아나와 함께 조금 더 넓은 지역까지 안전지대를 확장했다.
“전에 만들다가 만 외곽지역 확장 마무리 짓자.”
[공사했던 사람들에게 전달했습니다.]갱단이 몰려들어 멈췄던 외벽확장 공사, 지금이 적기였다. 빽빽하게 블라디 아크 타워를 포위했던 감염자들과 식인병자들은 칼날 까마귀들의 단백질 공급원이 됐기에 공사하는 데 안전 문제는 없었다.
“이왕 넓히는 것 제대로 넓히자. 이쪽에서 꺽지 말고 직선으로 쭉 디트로이트 강까지 내려가면 큰 무리 없이 면적을 넓힐 수 있을 것 같은데?”
[대형 빌딩과 주변 건물들까지 포함하실 생각입니까?]“그래. 지금이야 몇 개월 지나지 않았으니까 사람들이 버텨도, 시간이 지나면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나올 것 같단다.”
마루야 작은 원룸이면 뭐가 어때서? 그렇게 생각했지만, 미국인들 감성으로는 갇힌 느낌이 든다고.
‘감옥이나 닭장에 갇힌 것 같다고요?’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좁은 곳에서 장기간 통제된 삶을 사는 경우, 우울증을 비롯해 다양한 정신질환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의료진들이 경고했다.
다양한 게임을 할 수 있는 휴게소도 있고, 수영장에 사우나, 헬스시설까지 완비했는데 우울증에 정신질환이라니.
[방어해야 하는 면적이 넓어지면 화력이 약해집니다.]“칼날 까마귀들이 있으니까. 어느 정도는 괜찮을 거다.”
계획대로 공사가 끝나면 공원을 포함해 제법 넓은 지역이 통제 아래 들어오게 됐다.
[14구역 지하대피소와 같은 곳이 5구역에도 확인됐습니다.]“핵 방공호가?”
이번에 확장한 지역에 포함된 장소였다.
[네 오래된 핵 방공호로 보입니다. 비상 서버에서 확인한 자료에는 냉전 시대 핵전쟁을 대비한 군 시설로 기록되어 있습니다.]“흠- 군 시설이라···.”
5구역이면 아직 CCTV를 살리지 못한 구역인지라 상황을 알 수 없었다. 어쨌든 군 시설이라면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안에 뭔가 있어서 이놈 저놈 들어올 빌미가 된다거나 그럴 기미가 보인다면, 미리미리 치워버리는 게 좋았으니까. 여의치 않다면, 공사 범위를 줄여야 했고.
“무장 요원들에게 엑소슈트 지급해서 확장 구역 안에 있는 건물들 전부 확인하라고 해.”
[알겠습니다.]리퍼 슈트를 입은 마루가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비교적 낮은 상가건물들이 밀집한 5구역.
60~70년대풍이 언뜻언뜻 보이는 철근 콘크리트 건물과 석조건물들이 뒤섞인 거리. 낮고 낡은 상가들 옆으로 마천루가 보이는 풍경은 종로나 광화문 인근이 떠오르게 했다.
‘엉망이군.’
상가 1층은 깨지고 터진 흔적이 가득했다. 셔터를 내렸든 말든 전면 유리창이 남은 곳이 거의 없었다. 바닥에 눌어붙은 검붉은 흔적만이 당시의 상황을 말해주고 있었다.
햇빛을 거부하는 듯 어둑한 상가 안쪽엔 식인병자들이 숨어있었다. 이성이 남아있는지라, 바깥에서 공사하고 있는 사람들을 공격하지 못하고 하늘을 살피는 식인병자들.
하늘에 빼곡하게 떠 있는 칼날 까마귀를 봤으면서도, 저 앞에 아른거리는 인육에 대한 본능을 참지 못하겠는지 침을 뚝뚝 흘리는 모습.
흐흐흐-
주르르륵- 흐르는 투명한 타액이 순간 끈적한 붉은색으로 변했다. 상/하로 분리된 식인병자의 팔이 덧없이 몸부림치기도 전, 목이 잘렸다.
‘이 새끼. 총을 잡으려고 했어?’
총도 총이지만, 칼이 들어가기 직전 분명히 반응했다. 리퍼 슈트의 은신이 제대로 먹히지 않는다는 소리.
“디아나. 상가건물에 식인병자들이 남아있다. 사람들에게 주의하라고 해.”
[전달했습니다.]마루는 절단된 식인병자들을 확인했다. 총으로 무장한 모습도 그렇고 행색을 보면 단순한 생존자, 피난민과 구분하기 힘들었다.
“생존자를 발견한다고 절대 안으로 들이지 마. 쓸데없는 소리 하는 사람 나오면 즉시 추방하고.”
[알겠습니다.]마루는 김 양과 간호사에게도 식인병자들이 남아있다는 것을 알렸다.
[보지 못했는데?]“놈들이 몸을 숨기고 있었을 테니까. 그리고 은신 장비 너무 믿지 마라.”
근거리에서라면 은신을 알아챌 수 있는 게 분명했다. 마치 때려죽이려 손을 치켜들면 어떻게 알아챘는지 순식간에 도망치는 바퀴벌레 같다고 할까?
[은신 장비 썼는데 놈들이 어떻게 알고.]“저번에도 말했지만, 이것들 감이 좋아. 가까이 접근하면 본능적으로 알아채는 것 같다. 거기에 칼날 까마귀들을 피해서 움직이는 게 확실해. 심지어 총으로 무장한 걸 보면 지능이 멀쩡하다고 생각해라.”
그러니까 분노조절 장애가 치매로 진행되면서 좀비처럼 움직이는 감염자들이나, 뇌와 심장을 먹고 변이를 일으킨 변종은 겉으로 보기에 확연히 구분할 수 있었다.
특히 변종들은 거의 2.5m에서 3m에 육박하게 커졌기 때문에 더욱 구분하기 쉬웠다. 그에 반해 식인병자들은 겉으로 보기엔 일반인들과 구분하기 힘들었다.
[알겠음. 1호기 상태가 좋지 않아서 오늘은 그만하려고 함.]“그래 간호사는 보내고, 넌 조금만 고생 더 해라.”
귀찮음이 넘치는 김 양을 살살 달랜 마루가 이야기를 계속했다.
“식인병자들은 일반인과 비슷하니까 속지 말고.”
[걱정하지 마삼.]“7.62mm 안 통할 수 있으니까. 처음부터 12.7mm를 써.”
[일반인이랑 비슷하다며?]“겉으로 보기에만 그렇지 속은 아니야. 이 새끼들 썰어보니까 확실히 저항감이 있더라.”
[진짜?]쇳덩이나, 철근 콘크리트를 자를 때와는 확실히 미묘하게 다른 저항감. 처음 타워 외곽지역에서 썰었을 때보다 확실히 저항감이 더 커졌다.
“그래. 간 보지 말고 제일 센 거로 날려.”
[알겠음.]촤륵-
칼날에 붙은 피와 지방을 털어낸 마루가 식인병자들의 잔해를 내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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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의 걱정은 현실이 됐다.
식인병에 대해, 처음에는 이상 식욕이 촉발되는 질병이라고 생각했다. 분노조절 장애를 일으킨 감염자들처럼 변이 바이러스가 또 변이를 일으켜 식인종을 만드는 게 아닌가 하는 의견.
차이나타운 중국 식료품점을 중심으로 퍼졌다는 정보를 바탕으로 특정 식품과의 연관성에 주목하는 주장도 있었지만, 검사 결과 분노조절 장애 바이러스와 유사한 바이러스가 검출되면서, 변이의 변이설이 다수설이 됐다.
하지만 둘은 달랐다. 치매처럼 기억을 잃고 좀비처럼 움직이는 감염자와 이성이 있음에도 인육을 탐하는 식인병이 어찌 같을 수 있을까.
작은 상처에 스며든 독이 결국 사람을 죽이는 것처럼, 피난민들 속에 스며든 식인병자들은 모든 것을 붕괴시키기 시작했다.
“전부 쏴버려.”
“미쳤습니까? 비무장한 민간인입니다. 피난민들이라고요.”
“병신아. 그냥 쏴!”
“저 속에 식인귀가 있으면 어떻게 하려고?”
“중국군 새끼들이 밀어내는 걸 보면 모르겠어?”
일반인과 구분할 수 없는 식인병자들은 한미연합군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내장이 파먹힌 시체가 발견되고, 피난민들은 공포에 질려 난장판을 만들고, 상황을 통제하기 위해 병력을 차출하면 그 틈을 타 중국군이 반격했다.
그나마 한미연합군이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치료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치료제이자 예방제 마치 말라리아 예방약처럼, 오진제약에서 제공하는 치료제는 변이 바이러스로 인한 분노조절 장애와 식인병에 대해 효과가 있었다.
일주일 간격으로 먹어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있었지만, 그 약 덕분에 장병들은 감염에 대한 스트레스를 덜 수 있었다.
식인병에 걸린 자들, 변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자들도 일주일 간격으로 먹기만 하면, 증세가 악화되지 않았다. 최소한 정상적 생활이 가능했다. 그렇게 치료제 수요는 끝없이 폭증했다.
‘세계적인 고난에 이익만 탐하는 한국.’
‘한국의 거대 제약기업. 인명보다 이익을 추구하는가?’
‘필수 의약품으로 목줄을 채우는 한국.’
동남아에서 시작된 레시피 공유에 대한 요구가 유럽을 거쳐 북미와 남미, 호주와 중동, 아프리카까지 닿았다. 세계가 한국을 성토했다.
‘한국인에 대한 테러가 있었습니다.’
‘이기적인 한국인이라는 이미지가 생기면서···.’
‘한국인 선호도가 51% 감소한 가운데···.’
전방위적인 압박이 거세졌다.
‘국회에서는 필수 의약품 생산, 유통에 대한 법안을 상정하고.’
그 압박에, 생산 중지로 대응한 오진그룹이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건드리면 확 공장 폭파해 버리고 망명 떠난다고 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오진그룹 회장. 뛰어난 과학자인가? 사회성이 결여된 소시오패스인가?’
‘갑자기 회장이 된 나주연의 인성. 초등학교 동창이 말하는 나주연. 공감능력 없어.’
한 번 물어뜯기 시작하자, 과거까지 파헤치기 시작했다.
‘한미연합군 사령관, 치료제 레시피를 공유해 대량 생산 보급해야.’
‘유럽은 치료제 부족으로 도시가 봉쇄. 수많은 인명피해에 관한 책임은···’
‘세계 각국, 오진그룹 관련자 망명을 거절하기로 합의.’
미국을 비롯한 우방 국가에서도 망명이고 나발이고 우선 치료제 레시피를 공개하라는 압력이 거세졌다.
“아가씨···. 회장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혹시라도 신변에 위협이 생기면 데이터 센터가 날아가도록 해 안전을 확보하려고 했지만, 세계적인 광기에는 한 줌의 이성도 남아있지 않았다.
광기를 이성으로, 인류애로 포장하는 그 멍청함이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를 리 없으리라 판단한 건 패착이었다.
“후후훗- 결국. 이렇게 되는군요.”
어떻게 예상에서 벗어나는 게 없는지. 그녀의 예상에서 벗어난 사람은 오직 ‘그’ 한 사람뿐이었다. 나주연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한국인들도 레시피를 공개해야 한다고 하던가요?”
“여론이 그렇습니다.”
나주연을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로 이야기하는 자들, 이익에 눈이 먼 사람으로 몰아가는 사람, 사람부터 살려야지 무슨 짓이냐는 훈계, 오진제약 때문에 한국인 이미지가 이기적이 됐다며 그에 대한 책임론까지. 오진그룹과 나주연 회장 관련 기사에는 별의별 댓글이 다 달렸다.
“다들 그렇게 생각한다면 레시피를 공개해야죠.”
“준비하겠습니다.”
레시피 공개와 동시에, 오진제약에서는 치료제를 생산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분노조절 장애 치료제를 공급할 수 없다고요?”
“이유가 뭡니까? 장병들을 전부 죽일 셈입니까?”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오진그룹의 전격적인 발표에 한국은 난리가 났다.
“정부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요청으로 치료제의 레시피를 공개하게 되었습니다.”
“그게 치료제 생산 중지와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레시피를 공개하라고 했다고 장병들을 죽게 만들겠다는 소립니까?”
“억지로 레시피를 공개하게 됐다고 이러는 겁니까!”
기자들의 감정적인 질문에 오진그룹 대변인이 쓴웃음을 지었다.
“레시피를 공개했으니, 다른 제약회사에서 생산하면 되는 일입니다.”
“야- 이 새끼야.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사람이 죽는데 지금 밥그릇 다툼하게 생겼냐고!”
사람들이 아우성쳤다. 오진그룹 대변인은 소란이 잠잠해질 때까지 입을 다물고 기다렸다.
“요청한 대로 레시피를 공개한 결과. 필수적인 원료 성분을 구할 수 없게 됐습니다.”
“뭐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당연한 이야기.
원하는 대로, 인류의 번영과 안전을 위해 레시피를 공개하는 순간, 치료제 원료들이 품절 됐다.
심지어 원료를 추출하는 데 사용하는 원물들까지 수입, 수출이 전부 막혀 버렸다. 핵심 원료를 수입에 의존하던 한국은 치료제를 생산할 수 없게 됐다. 그뿐이었다.
“원료를 확보할 수 없게 되어, 오진제약에서는 치료제를 생산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원한대로 레시피 공개한 결과다. 달게 받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