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298)
러스트 [RUST]-298
치료제는 한국을 유지하는 핵심 품목이었다.
사실상 반도체보다 더 파급력이 큰 품목. 반도체는 없다고 당장 죽지 않지만, 치료제는 없으면 감염자가 되든, 식인병에 걸리든 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런 치료제 레시피가 공개됐다. 그와 동시에 반강제적으로 유통되고 있던 다양한 원자재들이 뚝 끊겼다.
세계 경제가 사실상 엉망진창이 됐고, 중국의 전술핵이 2발이나 떨어졌음에도 한국이 일상을 유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인 치료제 독점이 사라진 것.
평택에 떨어진 핵폭탄으로 인근 반도체 관련 공장들이 전부 가동 중지된 상황에서 독점적으로 생산하던 치료제까지 날아가 버렸으니, 경제를 유지할 방법이 없었다.
‘반도체 공장을 재가동하려면 6개월 이상 걸립니다.’
‘미국에 새로 건설한 공장은 어떻게 됐습니까?’
‘텍사스 정부에서 관리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연방정부도 아니고 텍사스 정부란 말입니까?’
‘텍사스 주가 연방탈퇴를 선언하면서, 반도체 공장이 엮였습니다.’
텍사스 정부는 반도체 공장을 주의 핵심 전략업체로 지정, 사실상 한국 기업의 경영권을 제한했다. 이러면 반도체를 팔아서 필요한 물품을 가져오는 것이 곤란해졌다.
국민들의 분노를 돌릴 곳이 필요했다. 당연히 ‘네 탓이오.’가 시작됐고, 그들은 곧 합의에 이르렀다. 오진그룹을 밟자는 것.
‘치료제라고 하면 질병이 나아야 하는데, 증상을 완화하고 억제만 하는 약에 치료제라는 말을 붙인 것은 과대광고이자 사기입니다.’
‘독점적으로 막대한 수익을 내는 동안 세금은 제대로 냈답니까? 세무조사가 필요합니다.’
‘약을 만들면서 불법실험이 자행되지 않았는지. 따져봐야 합니다.’
‘절차도 문제였습니다. 임상 3상이 그렇게 빨리 통과됐다는 건 이해할 수 없습니다.’
‘뒷거래가 있었는지 따져봐야 합니다.’
오진그룹은 안팎의 공격에도 침묵을 유지했다.
나주연 회장을 검찰에 소환한다는 뉴스부터, 이제까지 손해 본 것을 배상하라는 소송에 들어갔다는 이야기까지 끝없이 오르던 오진그룹의 주가는 연일 제한폭까지 떨어졌다.
오진그룹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미합중국의 분열이 알려지면서, 중국 전쟁의 향방이 불투명해졌다. 한국이 보급을 담당한다고 해, 전쟁 특수를 노리고 상승했던 종목들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어이없네. 아직도 주식? 전쟁 중인데도?”
[우크라이나 사태 당시에도 러시아 주식시장은 돌아갔습니다.]“테러와 식인병으로 난리라면서 유럽에도 주식시장이 열렸어?”
[그렇습니다.]영국과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대륙에 있는 국가들 주식시장이 열려있었다.
‘진짜 미쳤네.’
다른 나라는 그렇다고 치지만, 한국 주식시장이 돌아가고 있다는 게 황당했다. 원자재 수입이 막히기 시작했는데 무슨 주식? 반도체를 비롯한 주요 상품 수출이 막혀 망하게 생겼는데 아직도 주식? 제정신이 아니었다.
차라리 본격적으로 사방에 전략핵이 떨어져 눈에 보이게 멸망이 닥쳤다면 이러지 않았을 것이다. 조금씩 야금야금 온도가 올라가는 솥 안의 개구리처럼, 사람들은 기존 질서의 붕괴를 앞에 두고도 주식과 부동산을 걱정하고 있었다.
“정말 모르겠다.”
“그래서 망해도 쌈.”
김 양은 어쩐지 고소했다. 백정 따라오길 잘했다니까. 한국이나 일본에 남았다고 생각하면 정말 끔찍하지 않았을까? 응.
“그러니까. 깝치다가 이렇게 된 거 아님?”
마루는 ‘갑자기 뭔 소리?’ 하는 표정으로 김 양을 봤다.
“솔직히 그렇지 않음? 애들이 최소한 염치가 있겠지, 그렇게 대응하다가 병신 된 거 아니었음? 공존이니, 상호이익이니 개소리하다 병신 된 거 아님?”
그래그래. 어유- 오늘도 쑴뿡쑴뿡 튼실하네. 장하다. 마루는 김 양의 이야기에 고개를 설렁설렁 끄덕였다.
‘틀린 말은 아니지.’
공존공영? 홍익인간? 상호호혜? 전부 최소한 염치가 남아있는 세상에서나 통용되는 이야기 아니던가.
염치없는 애들이 평화를 생각하겠나? 공존이나 공영을 생각할까? 역지사지를 공감능력으로 착각한 결과를 실시간으로 경험하게 된 한국이었다.
만약 한국에 계속 있었다면? 그래서 월드의 손아귀에 있었다면 지금쯤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한 마루였다.
[위성 사진을 분석한 결과, 한미연합군이 중국에서 퇴각 준비를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난리 났네.”
전격적으로 퇴각을 결정했다고? 따서 갚아야 할 중국 전장에서 이렇게 퇴각하고 나면 답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한미연합군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수백만 단위로 몰려드는 피난민들, 감염자들과 식인병자들의 창궐, 끝없는 게릴라전과 시가전까지 한미연합군이 버티고 있기엔 너무 가혹한 상황이 계속됐다.
제일 큰 문제는 보급.
몇백만이 훌쩍 넘는 피난민들이 먹어대는 식량을 감당하는 건 불가능했는데, 한국의 수출입이 끝장나 버리면서 보급도 같이 끝장났다고 봐야 했다.
[미국 곡물 생산지에 든 가뭄이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캐나다와 호주에서도 가뭄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상기후의 원인으로는···] [중국 남부지역과 중부지역 폭우로, 농산물 생산량이 감소할 것으로 보입니다.]그렇게 중국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6월 내내 내렸던 폭우가 7월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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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했는가? 망하지 않았는가? 무엇으로 판단할까?
핵에 맞았으니 망했다? 미국과 한국을 보라, 핵을 맞고도 망하지 않았다. 망하기는커녕 7개로 늘어난 중국도 있었다.
망했다는 기준을 무엇으로 잡아야 할까?
과거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던 러시아도 진짜 망한 건 아니었다.
[이탈리아의 증권시장이 폐쇄됐습니다.]디아나의 보고에 마루가 한마디 했다.
“···망했나?”
수출입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는 한국도 주식시장은 열리는데, 수출입 문제가 없던 이탈리아 주식시장이 문을 닫았다는 건 다른 원인이 있다는 소리였다.
“어쩌다가 그렇게 된 거야?”
[식인병을 원인으로 보고 있습니다.]“식인병? 식인병 때문에 주식시장을 닫았다고?”
[프랑스와 독일에 돌고 있는 정보로는 식인병 때문이라고 합니다.]식인병 때문이라. 마루가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주식시장을 폐쇄할 정도라니, 한 번 쓸어주는 게 좋아 보였다.
[32구역 가스 트랩 설치완료.]“그래? 빨리했네. 간호사는 어때? 요즘 상태가 나빠 보이던데.”
까마귀와 의사소통이 되는 것처럼 쥐와도 소통되는지 물었지만, 대답이 없이 자기 방으로 들어간 간호사였다.
[가끔 멍해서 그렇지 괜찮음.]“식인병자들은?”
[좀비처럼 된 감염자들은 있지만, 식인병자들은 보이지 않았음.]“식인병자들 이상하니까 어지간하면 엮이지 않도록 하고, 엮이면 반드시 죽이도록 해. 나도 지금 나왔다. 일단 근처에 있는 것들부터 싹 정리하려고.”
김 양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끝낸 마루가 계속 수색을 이어갔다. 며칠 전만 해도 간혹 보이던 식인병자들이 눈에 띄지 않고 있었다.
“디아나 CCTV는 어때? 걸리는 거 없어?”
[10번대 구역에서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날 잡고 정리하려고 했더니, 이것들이 전부 어디로 갔는지 코빼기도 안 보였다. 그렇게 건물을 수색하던 마루가 이상한 흔적을 발견했다.
“생존자들이 모여 살았던 것 같은데···.”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사방팔방으로 도망치던 흔적이 갑자기 뚝 끊겨버린 이상한 모양. 디아나가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사람들이 흩어져 도망치도록 유도한 뒤, 각개격파와 몰이 사냥을 한 것 같습니다.]각개격파는 그렇다고 치고, 몰이 사냥을 했다는 건 식인병자들끼리 모이기 시작했다는 소리?
“김 양과 간호사에게 전달해. 생존자들로 보이는 사람들과 만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만약 생존자들과 마주쳤다면 절대 엮이지 말라고 해.”
[전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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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마루 칼린은? 아직도 응답이 없나?”
“반응이 없습니다.”
“메시지를 읽기는 했고?”
“알 수 없습니다.”
핵이 떨어진 이후부터, 블라디마루와는 연락이 끊겼다. 지금이야말로 그의 활약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인데 말이다.
덴 브라운 부장은 갑갑한 마음에 물을 벌컥 마셨다. 이젠 아껴서 마셔야 했지만, 물이라도 시원하게 마시지 못하면 정말 미쳐 버릴 것 같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편두통이 많이 가셨다는 점. 대신 위장이 난리 났지만.
“방사능 수치는? 아직 내려가지 않았나?”
“위험 수치입니다.”
“빌어먹을 중국 새끼들 핵에 무슨 짓을 한 거야?”
중국의 핵 공격이 집중된 곳이 버지니아 주와 워싱턴 D.C인지라, 상황이 좋지 않았다. 다른 지역에 떨어진 핵이 소형 전술핵이었다면, 버지니아에는 전략핵이 떨어졌다. 그것도 방사성 물질이 많이 배출되는 형식으로 개조된 핵폭탄이.
방사능 오염이 심각했기 때문에, 지하로 대피한 국토안보국 사람들은 2달이 넘도록 지상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지하 통로는 언제까지 차단하고 있겠다고 하는데?”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며, 기다리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지하에는 각 기관을 연결하는 통로가 있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연결 통로를 완전히 차단한 전략사령부였다. 덴 브라운 부장은 가슴이 답답해졌다.
“큰일 났습니다. 오진그룹이 공개한 레시피를 받아 생산한 치료제에서 문제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오진그룹에서 가짜 레시피를 공개한 건가?”
“아닙니다.”
“그럼 무슨 문제?”
“레시피대로 만들면 약효는 있는데, 약효의 지속시간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얼마나 차이 난다고 큰일이야.”
“오진제약에서 만든 오리지널 치료제가 최소 7일간 약효를 지속하는데, 레시피로 만든 복제약은 8~9시간 남짓 효과가 간다고 합니다.”
큰일 맞았다. 일주일에 한 번 먹을 걸, 하루에 3번 먹어야 한다면 지속시간이 최소 20배 차이 난다는 소리였다.
같은 효과를 보는데 20배 이상의 원료를 소모한다는 소리? 맙소사 제한된 원료를 20배 빠르게 소모한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
맙소사.
덴 브라운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일단 현재 생산하고 있는 치료제의 양이 얼마나 될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카피약 생산하고 있는 제약회사들과 연결해.”
원료가 20배나 들고 있는데 그대로 생산하고 있지는 않겠지? 그런 기대는 무참히 무너졌다.
[당장 치료제가 없으면 그나마 있는 군대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치료제 공급이 중단되면 어떡하란 말입니까? 8시간에 한 번 복약해야 하는데 생산을 풀로 돌려도 아슬아슬합니다.]미친. 그래서 원료를 20배씩 태우고 있다고?
그나마 미국은 다행이었다.
레시피 대로 만들 수 있는 첨단 제약시설을 갖추고 있었으니까. 이에 반해 레시피를 공개하라고 원자재로 압박했던 다른 동남아 국가들은 난리가 났다.
복제에 성공해도 20배의 원료가 들었고, 공정에 미세한 실수만 있어도 약효를 볼 수 없었다. 원료를 그냥 날려 버리는 꼴.
순식간에 비축한 재료가 떨어졌고, 배급되던 치료제가 떨어지는 순간, 약으로 억누르고 있었던 분노조절 장애와 식인병이 폭증했다. 하루에도 수십만 단위로 감염자들이 폭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