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299)
러스트 [RUST]-299
시간이 지날수록 화상회의에 빠지는 기관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저번에는 미국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Council of Economic Advisers, CEA)가 빠지더니, 이번에는 미국 국가경제위원회(National Economic council, NEC)가 빠졌다.
“하버린 로센 CEA 위원장은?”
“연락을 받지 않습니다.”
“브라이언 도스 NEC 위원장은?”
“마찬가지입니다.”
가지가지 하네. 어차피 경제는 죽었으니 경제인들은 회의를 빠지겠다는 건가? 심지어 한 번 빠진 사람들은 화상회의에 참여하지 않기 시작했다. 연락해도 전화를 받지도 않았고.
“무슨 문제가 있는 건가? 아니면 잠적을 한 거야? 왜들 연락이 안 되는지 아는 사람 없나?”
“······.”
“······.”
“폐쇄된 공간에 오래 갇혀 생긴 우울증 때문이 아닐까요?”
그래 말 잘했다. 갇혀 있으니까 우울증이 생기는 거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불분명하니까 불안해하는 거고?
갇혀 있다는 이미지에서 벗어나려면, 여기저기 자유롭게 이동하는 게 도움이 됐다.
그런데.
“빌어먹을 전략사령부에서는 왜 계속 지하통로를 봉쇄하고 있는 건데?”
“기다려 달라고 합니다.”
“대체 언제까지 기다리라는 건가? 벌써 3개월이 지났어. 3개월이!”
“이제 곧 연다고 합니다.”
덴 브라운은 분노했다.
전략사령부는 뭘 하고 있으며, 버지니아는 뭘 하고 있는가?
미 합중국을 대표하는 기관이라고 고개를 뻣뻣하게 들고 다녀 놓고서, 무슨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면 어쩌자는 건가?
세계 1위 군사력을 가졌으면서, 천문학적인 비용을 군비확충에 사용하는 이유가 뭐냐고? 그게 다- 말로 해서는 들어먹지 않는 것들이 넘치는 세계라서 그랬다.
훔쳐 놓고, ‘나는 절대 개인이오.’, 약을 팔아먹고 ‘오해다. 원료만 팔았다.’, 길이란 길은 모조리 막아 놓고 ‘저기 통행료는?’ 이런 놈들이 넘치는 지구촌인지라, 합중국은 군사력을 키울 수밖에 없었다.
이것저것 도둑질하고서 오리발 내밀면 두들겨 패야 하지 않겠나? 장난질하는 손모가지를 날려 버릴 수 있으려면, 그만큼 힘이 있어야 했다. 그래서 미국은 군사력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 강력한 미합중국의 군사력이 순간적으로 약해진 상황이 되자, 꼬리를 말고 구석에서 자제하던 미친 것들이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럼 그걸 그냥 둬야 하나? 이빨 드러낸 것들 우선 정리하고, 본색 드러낸 것들 목줄 잡아챌 비책을 만들어야 할 곳이 버지니아 아니던가?
암살, 선동, 반간, 이간, 쿠데타 등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합중국의 적을 치워버리는 게 자기들 업무 아니던가?
전략사령부는 또 어떻고, 당장 육군이 통째로 날아갔다고 가정하자, 그럼 합중국의 군사력이 약한가? 아니었다. 근데 어째서 이렇게 무기력하단 말인가?
이건 모두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 놈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대로 계속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다. 방사능 대응 가능한 방호복과 엑소슈트를 사용해 외부 상황을 확인한다.”
“알겠습니다.”
전략사령부에서 지하통로를 폐쇄한 이유가 뭘까? 그것도 이유를 알려주지 않고, 무언가 문제가 있으니까 그럴 테지. 그렇다면 어떤 문제?
“지하통로 앞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기관총과 부비트랩 설치해. 그리고 출입문이 열리더라도 출입 통제하고, 누가 오든 무조건 대기시켜.”
“···예?”
“전략사령부에서 정보를 의도적으로 은폐하고 있다. 그것도 제법 오래. 예상보다 큰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현재 시간부로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움직인다.”
“네.”
으적으적 위장약을 씹어 삼킨 덴 브라운이 낮은 목소리로 명령을 계속했다.
“현재 상황 확인 후 최우선 할 것은 탈출로 확보. 탈출로 확보에 성공하면, 즉시 뉴욕으로 이동한다.”
“알겠습니다.”
“연방수사국과 마약수사국에 공동 작전 의향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고 하면 같이 움직이자고 해.”
“대통령 자문위원회를 비롯한 각 부서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연락이 끊긴 곳은 무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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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거의 무상으로 공급되던 치료제가 끊겼고, 잔여 분량에 대한 최우선 공급 대상은 군대가 됐다.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찌르고 때릴 때는 타격감이 좋았는데, 이거 누가 책임지지? 책임소재는 일단 뒤로 미루고 당장 부글부글 끓기 시작한 여론부터 달래야 했다. 어떻게? 당연히 치료제로.
“오진그룹에는 재고가 있을 겁니다.”
“이제까지 수입한 양이 얼마인데 원료가 없다는 게 말이 됩니까?”
“당장 압수수색 하세요.”
오진그룹은 검찰이고 경찰이고 가볍게 무시했다.
게다가 건물에 무슨 짓을 했는지, 본사 정문을 뚫고 들어갈 방법이 없었다.
“오진그룹의 보안을 월드그룹 산하 PMC가 하고 있었죠?”
“그렇습니다.”
“월드 PMC를 이용합시다.”
“모양이 조금 지저분하겠지만, 그렇게 하죠.”
정부는 월드그룹을 이용해서 오진그룹을 장악하려 했지만 될 리 없었다.
마루가 한국을 떠나면서 월드 쪽 사람을 여러 차례 썰어버려 우수한 인적자원이 갈린 데다, 유 이사와 함께 일본으로 갔던 전력은 전부 불귀의 객이 됐고, 유 이사를 담그려고 보낸 보충인력까지 전멸해버린 상황.
월드 PMC는 말 그대로 초짜들로 땜질하고 있었다. 그런 초보들로 오진그룹을 장악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이야기.
회장의 꿈을 꾸던 조만덕 사장은 경질됐고, 군부 출신 민 사장이 그 자리를 이었다. 민 사장은 즉시, 퇴역 군인들과 현역 특수부대를 동원해 침투작전을 벌였지만 거하게 실패하고 말았다.
“지랄 맞습니다. 위치 자체가 번화가에 있어요.”
“벙커버스터 같은 미사일이 아니면 사실상 난공불락입니다.”
나 회장이 뭐에 꽂혔는지, 오진그룹 본사를 완전히 요새로 만들어 버린 것.
“빌딩에 균열이 간 것을 고치면서, 전면적으로 리모델링을 했다는데, 사실상 외벽은 복합방탄소재라고 보시면 됩니다.”
“외벽만 문제가 아닙니다. 방사능, 화생방 대응까지 완벽하고, 자체적으로 발전설비와 상하수도 처리 시스템까지 갖추고 있어, 전기와 상하수도를 끊는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벙커버스터로 날려버렸다가, 나주연 회장이 죽거나 치료제가 날아가 버리면 지금 사태를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결국, 남은 건 협상. 모든 혐의에 대해 특별 사면해줄 테니 일단 나와서 대화로 해결하자는 이야기를 전했지만, 오진그룹과 나 회장은 침묵했다.
무대응과 침묵이 길어지는 가운데, 한국에서도 서서히 감염자들과 식인병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오진그룹 본사를 포위하고 있던 군경도 포위를 풀 수밖에 없었다.
오진그룹 임직원들은 나 회장을 찬양했다.
공명의 화신이라는 것은 바로 그녀를 의미하는 말이었다. 강남에 있는 본사와 신도시에 있는 연구소, 공장 전부를 완벽하게 요새화한 덕분에 임직원들과 그들의 가족 모두 안전하게 살 수 있었다.
“서초 방 의원은 뭐라고 하던가요?”
“알아서 처리할 테니, 회장님께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합니다.”
“흐음.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 참모총장과 수도방위사령관에게도 적당히 인사드리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겉으로는 침묵하지만, 뒤로는 주요 인물들에게 치료제를 소량 넘기면서 분열을 유도하고 있었다. 그래서 차라리 공멸하자는 주장은 힘을 잃고 있었다.
자신과 가족, 친인척들이 먹을 치료제가 나오고 있었다. 근데 거기에 미사일을 박아 깡그리 태워버리고 같이 죽자는 주장에 찬성할 수 있겠는가?
시간은 그녀의 편이었다.
보고서를 읽으며 나주연은 조그맣게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직접적인 공격은 할 수 없을 겁니다. 남은 것들은 계획대로 진행하죠.”
회의를 마친 나주연이 회장실로 들어서자, 씁쓸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기순이 있었다.
“오래 기다리셨나요?”
“···아니.”
비늘처럼 돋아났던 따개비의 흔적이 사라진 얼굴. 제멋대로 흩날리던 촉수 머리가 그나마 머리카락 비슷한 느낌으로 얌전히 묶여있었다.
“예상보다 효과가 괜찮네요. 약이 잘 받는군요.”
“······.”
기순은 오진그룹 본사 빌딩을 보고 알 수 있었다. 마루의 빌딩, 미국 디트로이트에 요새처럼 개조한 빌딩과 똑 닮았다는 것을.
“혈액검사와 조직검사, DNA 검사 결과. 안타깝게도 따개비 인자를 완전히 분리하긴 어려워 보이네요.”
“······.”
“완치는 어렵겠지만, 관리는 가능하니까 너무 상심하지 마시고요. 요즘 암 같은 질병도 난치병이나 불치병이 아닌, 관리하면 관리 가능한 질병으로 보잖아요. 그렇게 생각하시면 되니까요.”
나주연의 이야기를 듣던 기순이 작게 실소했다. 어찌 우습지 않으랴, 따개비는 약을 먹고 관리를 하면 된다. 그러니까 관리할 수 있다. 약만 먹으면.
다시 말하면 이런 뜻. 따개비 범벅이 되고 싶지 않거든 얌전히 던져주는 약을 먹고 인생을 관리받으라는 소리.
‘아- 이게 인생을 저당 잡힌 느낌이로군.’ 기순의 조소가 킥킥거리는 웃음으로 변했다. 그런 기순의 웃음을 소리 없는 미소로 이어받던 나주연이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래서요. 해주셨으면 하는 일이 있는데요.”
“말씀하시지요.”
“샬롯 심은영 회장과 안면이 있다고 들었어요.”
실실 웃던 기순의 얼굴이 잠시 흔들렸다.
“지금 상황이 이래서, 제가 밖으로 나가 협상하긴 힘들거든요. 마찬가지로 샬롯 심 회장도 함부로 돌아다니기 어려운 상황이고요. 그러니 기순 씨가 샬롯 심 회장과 협상 대행을 좀 해주셨으면 하는데요.”
“이 보세요. 나 회장님. 회장님이야 그 나이에 박사학위 딴 천재라지만, 난 대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사람이거든요. 그런 사람한테 대기업 간 협상을 하라니. 너무 허들이 높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그렇다면 그건 제 안목이 잘못된 거겠죠. 정 부담스럽다면 전령이나 심부름꾼이라고 생각하셔도 되고요.”
“그래 그게 차라리 낫겠네. 심부름꾼. 그래서 무얼 전해드릴까요. 고객님.”
“간단해요. 샬롯이 가진 연구자료. 전부 원본을 넘겨달라고 하세요.”
“예?”
‘일단 내놔라? 이딴 게 협상? 저딴 소리를 가서 하라고?’ 기순의 어이없는 되물음에 나주연이 미소를 지우지 않고 답했다.
“그러면···. 살려는 드린다고.”
‘미치셨어요? 고객님?’ 드립을 육성으로 내뱉으려던 기순이 입을 꾹 다물었다. 이년 눈깔을 보니 농담이 아닌 진심이었다.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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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는 바닥에 쌓인 잡동사니를 칼을 휘둘러 날려 버린 뒤, 흔적을 자세히 살폈다.
사방으로 흩어진 생존자들과 그들을 뒤쫓는 식인병자들의 발자국이 뚜렷했다. 생존자들이 추격자들에게 집중하는 찰나, 외곽에 매복하고 있던 놈들이 생존자들을 덮치는 모습이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것 같았다.
‘탄피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도망치는 쪽과 쫓는 쪽 그리고 매복한 놈들까지 전부 총을 쏴댔다는 이야기. 식인병자들이 총을 제대로 다룰 줄 안다는 소리였다.
툭- 툭-
칼끝으로 탄피를 쳐내자, 하나둘씩 보이는 뭉개진 탄두. 식인병자들은 9mm 탄으로 잡긴 힘들었다.
확실히 잡으려면 12.7mm 탄을 써야 할 판이었지만, 붉은 얼룩만 남긴 생존자들에게는 그런 총이 없었던 것 같았다.
‘디아나의 분석이 제법 정확하네.’
생존자들은 넷이 쫓겼고, 식인병자들은 추적 셋에 매복이 다섯. 이곳에서 생존자들을 순식간에 정리한 놈들이 다음 몰이 장소로 옮겼다.
“그쪽으로 놈들이 가는 것 같다. 그 근방에서 몰이하는 것 같으니까. 주의해라.”
[알겠음.]“이쪽 흔적을 보면 총화기를 사용하는 건 분명하고, 매복에 몰이까지 하니까 방심하지 말고.”
[걱정마삼. 근데 거기 괜찮았음? 감염자들이 몰리지 않았음?]교전이 벌어졌는데 감염자들이 몰리지 않았느냐는 김 양의 이야기를 배경음 삼아, 조금씩 크게 울리는 발걸음 소리. 2.2m는 훌쩍 넘어가는 덩어리들이 코너를 돌아 모습을 드러냈다.
“감염자는 안 보이는데, 변종들이 왔네.”
태연하게 칼을 치켜세운 마루를 향해, 살의가 담긴 외침이 터졌다.
크아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