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308)
러스트 [RUST]-308
마루는 잠깐 자기가 채널을 착각했나 다시 확인했다.
치이이익-
확실하게 왓츠업 라디오 방송국 채널이 맞았다.
[-HOLY-♫ -HOLY-♬] [···오늘의 말씀. 깨어 경계하라. 종말의 때에 영혼과 육신을 지키는 여러분이 되시길···] [기억하십시오. 종말에서 여러분의 영혼과 육신을 지킬 수 있는 곳은 그분께서 기거하시는 아크 타워임을···] [-HOLY-♫ -HOLY-♬]“······.”
진지하게. 이게 방송이 된다고?
아니 씨발. 이 방송이 왓츠업 라디오 방송이라는 거잖아. 다른 방송국들은 다 죽었냐?
아···
그러고 보니 EMP 때문에 거의 다 죽었다.
이제 어쩌라는 거지? 이걸 듣는 사람들을 모으자고?
샤워를 마친 김 양이 촉촉한 단발머리를 자랑하듯 살랑이다, 눈빛이 죽은 마루와 시선이 마주쳤다.
왜 이럼?
눈깔이 맛이 갔는데?
설마 날 보고?
그런 눈빛은 아닌데.
갸웃.
“눈깔이 왜 그럼?”
아 육성으로 나왔다. 김 양이 말을 해놓고서는 아차 싶었는지 입을 다물었다.
씨발-
흐흐흐. 헛웃음 짓던 마루가 상황을 설명했다.
실수를 만회하겠다는 일념으로 진지하게 마루의 하소연을 듣던 김 양의 머리 위에 물음표가 살포시 떠올랐다. 어디선가 많이 경험했던 기시감이 든다고 할까?
“그러니까 HOLY 광고를 보고 모인 사람들이 HOLY 방송까지 들으면서 근처에 있다는 이야기 맞음?”
“그렇다니까. 대체 내가 사이비 교주도 아니고.”
사이비 교주라기보다는 오히려 다른 거 아닐까?
솔직히 까놓고 너 새끼 반쯤은 인간이 아닌 건 맞잖음. 나뭇잎 타고 두만강은 건너지 못해도 단숨에 10~20m씩 축지법 쓰면서 앓는 소리 말라.
···
응? 그러니까 이거.
갸웃-
그분 아닌가?
말할 수 없는 분.
···
될 거 같은데?
흐으응.
김 양의 머리 위에 동동 떠올랐던 물음표가 느낌표로 변했다.
‘하늘을 보라! 그분의 손짓에 하늘을 검게 물들인 까마귀떼가 경배하며, 그분이 칼을 번뜩이면 빌딩이 갈라지고···. 수천의 악귀들을 베어버리사 도시를 정화하셨도다.’
근데 사실이잖아.
“저기···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찾기 힘드니까. 믿고 있는 사람으로 인력 충원하는 거 좋을 것 같음.”
PD의 의견에 본인은 찬성일세! 자고로 누가 믿으라고 한 것도 아니고, 자발적으로 믿고 있는 사람처럼 배신 가능성 적은 사람은 없지 않은가!
누구랑 비교한 건지 감을 잡은 마루가 흐흐흐 실소했다. 그런 마루의 허탈함을 가볍게 무시한 김 양이 의욕적으로 참전했다.
“타워에 입주한 사람들 가운데 작곡가 있음?”
“갑자기 작곡가는 왜?”
당혹스러워하는 마루를 본 김 양이 ‘이건 전부 다 너를 위해서 하는 것이란다.’ 눈빛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장군님 노래도 있는데, 실존하는 HOLY- 찬양가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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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이이이이익-
피떡 자국을 주렁주렁 매단 요원이 강력한 압력으로 분사되는 소독약을 맞고 신음을 흘렸다. 소독약과 정제수로 여러 차례 방역처리가 끝난 뒤에야, 개별 격리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끄으응-
저절로 새어 나오는 신음을 삼키며, 요원은 침대에 누웠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검역에서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알파 팀원들 모두 현장 임무에서 배제될 게 분명했다. 아마 잘해야 보급이나 담당하게 되겠지.
이대로 세상이 망하기라도 한다면 보조요원으로 일생을 마감하게 될 게 분명했다. 보급이나 잡무나 담당하면서 하루하루 낡아갈 미래가 확정적이었다. 고작 20대 후반인데 말이다.
‘빌어먹을.’
식인병에 대해 설명을 들었지만, 오히려 반감이 들었다. 생존에 민감한 갱단들이 자발적으로 식인병에 감염되려고 했다는 건, 그만큼 식인병이 쓸모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었다.
어째서 부정적인 면만 본단 말인가? 블라디마루가 지배자기 때문에 자신의 지배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식인병을 부정적으로 본 게 분명했다.
모든 사람이 식인병에 걸려 생존능력이 향상된다면 어떻게 될까? 굳이 아크 타워에 갇혀 블라디마루의 명령에 따를 이유가 사라질 테니까.
게다가 블라디마루의 일처리 방식을 떠올려 볼수록 그랬다. 여자들도 그렇고 아시아 식자재 창고에 있던 사람들도 그랬다.
10대 후반 20대 초반 여자들이 6개월 넘도록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식인병이 아니었다면 생존할 수 있었을까?
어린아이들은 마찬가지였다. 식인병에 걸렸기 때문에 오히려 생존할 수 있었다. 변종이나 감염자처럼 대화가 안 통하지도 않았다. 옆에서 울고,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식인을 제외한다면 사람이나 마찬가지 아니었던가?
‘분명 죽이지 않을 수 있었어.’
‘확실히 죽이지 않을 수 있었다고.’
그런데도 죽였다. 그 인간 같지 않은 능력이라면 충분히 죽이지 않고 제압할 수 있었으면서. 어째서?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신의 권력을 위해 그냥 죽여버렸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 요원이 침대에서 누운 채, 옆의 벽을 주먹으로 두들겼다.
퍽-
퍽-
식인병 치료제가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사람들을 모아 큰 도시로, 식인병 치료제가 보급되고 있는 곳으로 원정대를 보내, 치료제를 확보하자는 판단을 하지 않은 이유는 뭐란 말인가?
야니아 킴의 흉흉한 눈빛. 명령 불복종이라며 두들겨 패던 눈빛에는 죽이지 못해 아쉽다는 감정이 가득했었다. 블라디마루 칼린이 막지 않았다면, 죽었겠지.
그 얼마나 허무한 죽음이란 말인가? 한 사람의 생각과 판단에 결정되는 생명이라니···. 법치는 어디로 갔고, 자유는 어떻게 될 것이며, 민주주의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빌어먹을!”
퍽-
퍽-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아크 타워의 생존을 명분으로 반대하는 사람들을 죽일 수도 있겠지, 명령에 따르지 않는 사람은 전부 배제하거나 제거할지도 몰랐다.
배부른 가축과 배고픈 자유인. 식인병은 과연 저주스러운 질병일 뿐일까?
다른 동료는 어떻게 생각할까? 7일간의 격리는 알파 팀원들의 생각을 복잡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지이잉- 그 모습을 천장에 붙은 작은 CCTV가 가만히 관찰했다.
맨 주먹으로 벽을 때리는 요원의 영상을 일시 정지한 연구원들이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설문지와 상담 자료를 분석한 파일들이 앞에 놓여 있었다.
“흐음- 그러니까 식인병자들과 대화를 한 알파 팀원들은 식인병자에 대해 호의적이라는 말이군요.”
“설문 검사에서도 그렇게 나왔고 면담을 했을 때도 유의미하게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식인병자들에게 호의적이라고? 연구원들 대부분 HOLY 면접을 뚫고 입주한 사람들인지라 알파 팀원들의 생각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분이 계시지 않았다면, 식인병자들에게 잡아먹혔을 텐데. 우호적이라니 이해하기 힘들군요.”
“확실히 적령기 여성에 대한 호감도 때문이라고 보기에는 과한 부분이 있습니다.”
블라디 아크 연구실에는 다양한 연구분과가 융합되어있었다. 생물학, 생명공학, 분자생물학, 생화학, 유전공학, 바이러스?세균학, 임상병리, 약학과 같은 분과들이 뒤섞여 들끓었다.
그러다 보니, 좋든 싫든 다른 연구원들과 엮이기 마련이었고 학제간 토론이 일상이 됐다. 지금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 자유롭게 생각을 주고받는 사람들이었다.
“식인병자 샘플 확인하신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위험하지요.”
“동감입니다.”
제일 악질적인 부분은 기억과 이성이 남아있다는 점이었다.
“강해진 육체 능력도 문제지만, 자기들 스스로 정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게 제일 위험해 보입니다.”
“맞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소리.
기억도 멀쩡하고 이성적인 식인병자가 있다고 가정하자. 근데 옆에 일반인이 있으면 어떻게 될까? 사람을 잡아먹고 한다는 소리가 ‘나는 멀쩡하다.’ 이런다는 이야기. 이게 정상인가?
“상대방을 감염시킨 뒤, 무리를 짓기도 한다는 부분은 정말···.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근데. 식인병자들끼리는 잡아먹지 않는 겁니까?”
“그분께서 식자재 마트에서 확인한 흔적을 보면, 극악한 상황에서는 자기들끼리도 잡아먹고 그러는 것으로 보입니다.”
“북극곰이 동족을 사냥하거나, 새끼를 잡아먹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되겠군요.”
“사실 관점을 달리하면 호들갑 떨 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
식인은 인류 역사에서 흔한 일이었다. 따지고 보면 평화로운 시기에서도 태아와 태반으로 화장품을 만들어 바르고, 인육으로 단백질 캡슐을 만들어서 먹어대기도 한 판국에 식인이라고 딱히 호들갑 떨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
“세상이 망했으니, 기존의 도덕이나 가치관을 따를 필요가 있을까요?”
“도덕이나 가치관의 문제가 아닙니다.
세상이 망한 지금 같은 상황에서 식인이 어쩌고 따질 게 뭐가 있냐는 관점도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다만 사실상 일반인들을 가축으로 보면서도 아무런 죄책감이나 갈등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뭐라고 해야 할까? 심지어 이성과 기억이 있으면서도 그런다는 것은?
“······.”
“······.”
식인병자들이 지배종이 된 사회를 생각해 보라. 한 연구원이 나지막하게 욕설을 내뱉었다.
“지금 다들 배가 부른 겁니까? 이야기를 다른 곳으로 돌리지 말고, 식인병부터 다시 갑시다. 그래서 다른 특징은 뭐가 있습니까?”
수석 연구원의 일갈에 토의가 계속됐다.
“강력한 질병 저항성이나, 해독능력 거기에 상식에서 벗어난 소화능력이 특징적입니다.”
“생존력은 비할 바가 없습니다. 사실상, 새로운 지배종에 가깝다고 보입니다.”
연구원들은 모두 네안데르탈인의 멸종을 떠올렸다.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에게는 그다지 치명적이지 않은 바이러스가 네안데르탈인에게는 치명적이어서, 성인 개체의 급감이 시작됐다. 네안데르탈인의 세력이 약해진 틈을 타, 호모 사피엔스가 번성하기 시작했고 이어 자원경쟁이 시작됐다.
숫자가 줄어들고 출산율이 낮아지고 숫자가 줄어 식량 확보가 어려워져, 다시 출산율이 낮아지고, 숫자가 줄어든 결과 또 영역 싸움에서 밀려나고, 점점 더 척박한 곳으로 밀려나고, 영양 상태는 조금씩 더 나빠졌으며 그 결과 멸종에 이르렀다는 최신 연구 논문의 이야기.
“우리는 인류학자나 고고학자가 아닙니다. 그런 고민은 나중에 해야 하고요.”
수석 연구원이 다시 중심을 잡았다.
“변이 바이러스부터 시작합니다. 코로나가 변이를 일으켰을 때 기억하십니까?”
AIDS 환자가 코로나에 걸린 결과, AIDS 환자의 몸속에서 변이를 일으켰다. 마치 AIDS처럼 인간의 면역체계를 혼란에 빠뜨리는 쪽으로, 면역을 회피하면서 감염을 일으키는 변이가 일어났다.
“분노조절 장애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어떻습니까?”
인간의 뇌에 작용해 인체의 리미트를 해제라도 한 것처럼 육체 능력을 키우기도 했고 겨울잠을 자는 것처럼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변이 바이러스를 이용해 전투 자극제라든지 그런 약물의 원료를 추출할 수 있었다.
“변종은 또 어떻습니까?”
지능이 떨어진 것을 회복하기 위해, 마치 결핍된 것을 채우려고 심장과 뇌를 파먹지 않았던가? 그러면서 감염자에서 변종으로 변했다. 덩치가 커지고 더 강해져, 더 많은 사냥을 할 수 있게 변했다.
그래. 크게 본다면 경향성이 있었다. 중국에서 시작한 초기 바이러스는 악의적일 정도로 변이가 일어나기 쉬운 형태였고, 변이가 일어날 때마다 경향성을 보이고 있었다.
처음 변이는 인체의 면역을 파괴, 회피해 강력한 전염성을 갖는 방향
중국, 일본발 분노조절 장애 변이 바이러스는 사회 시스템을 붕괴시켜, 인간을 배양소로 삼기 편한 방향
변종은 결핍된 이성을 회복하기 위해 뇌와 심장을 파먹기 편한 방향
그렇다면
식인병은 무엇을 위해 식인을 하고, 어떤 방향으로 가는 것일까?
“변종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식자재 마트와 여자들이 기거한 공간을 보면 다양한 것을 먹은 흔적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여러 종류의 유기물을 섭취할 수 있다는 소립니다.”
뱀파이어처럼 혈액만 주로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소리. 그런데 왜 식인을 할까?
“식인해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변종이 이성을 유지하기 위해 뇌와 심장을 탐하는 것처럼. 식인병자들은 무엇인가를 섭취하기 위해 사람을 잡아먹어야만 한다?”
연구원들의 토론이 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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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간의 격리가 끝나고 마루는 알파 팀을 모았다.
“알파 팀은 현시간 부로 해체한다.”
“······.”
“······.”
“아이디 카드를 반납하고 무기도 반납한다.”
“숙소는 일반 거주구역으로 옮기고, 차후 확장 공사가 끝나면 다시 지정하겠다.”
“내일부터 공사현장으로 출근하도록. 불복하는 자들은 언제든 아크 타워에서 나갈 수 있다. 이상.”
“······.”
“······.”
군 경험과 국토안보국 요원 훈련을 수료했으니, 보조업무라든지 백업에 쓰지 않겠느냐는 예상과는 달리, 마루는 알파 팀원 전부를 공사장으로 보냈다. 명령 불복종도 불복종이거니와 심리 상담사가 보낸 자료를 보고 난 뒤 결정이었다.
“흥- 식인병이 어쩌고 어째? 종간나 새끼들.”
김 양이 터덜터덜 해산하는 알파 팀의 뒷모습을 보고 코웃음 쳤다. 광산이 있었으면 처넣어 버렸어야 하는 건데 말이야.
“PD가 말한 사람들 만나보러 가야 하니까. 무장 챙겨서 나와라.”
“PD도 같이 감?”
“그래야겠지. 간호사도 같이 가려고 하니까. 좀 챙기고.”
마루의 말에 김 양의 눈매가 가늘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