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309)
러스트 [RUST]-309
간호사 챙기라는 말에 김 양이 가느다랗게 뜬 눈으로 마루를 쳐다봤다.
“후드랑 박사는?”
“조용하게 있지 않을까?”
사만다도 그렇고 트리아도 수준이 높으니까. 지금 돌아가고 있는 상황 분석을 나름대로 했을 거다. 판단을 잘못한다면 안타까울 따름이고.
정보전과 보안을 주로 담당했던 후드는 인터넷 끊기고, 위성 통신망까지 끊긴 뒤로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였다.
그래서 연산자원이 남아도는 사만다는 연구실 연구 보조에 투입됐고 박사는 트리아와 함께 여러 연구 분야에서 갈리고 있었으니, 별일 없어야 했다. 별일이 생긴다면 뭐···.
김 양은 턱 끝을 살짝 움직여 상황을 이해했음을 알렸다.
“다른 사람들은?”
“······.”
대답을 아끼는 마루. 식인병에 대한 이야기는 블라디 아크 타워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는 걸 디아나가 알려줬다.
HOLY 광고를 통해 입주를 한 자들은 부정적으로, 기존에 있던 사람들과 요원들의 가족들은 중립이거나 긍정적인 경향이 있다는 동향.
식인병이 번진다는데 불안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가 뭘까?
감염자 웨이브와 이상한 놈들이 공격했던 것을 제외하면 블라디 아크 타워에는 이렇다 할 위기가 없었기 때문.
중간중간 상당히 위험한 일도 있었지만 그건 마루와 김 양의 경험이었을 뿐, 입주민들은 직접적인 위기를 겪지 않았기에 풀어진 현실이었다.
“솎아내게? 아니면 털어버리려고?”
안전이 거의 완벽하게 보장된 아크 타워라서 생긴 일. 바로 잡으려면 이번에 새로 확장한 곳으로 내보낼 사람을 솎아내든, 확장 지역 밖으로 털어내든 그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김 양에게 마루가 담담하게 말했다.
“순리대로 되겠지.”
평화롭게, 순리대로 하는 게 좋았다. 연구원들 대부분이 HOLY 광고를 보고 모인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길게 가려면 마구 죽이고 내쫓는 건 피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마루였다.
“귀찮지 않겠음?”
“어쩌겠냐. 나중에 더 좋아지겠지.”
조금 귀찮아도, 체계가 잡히기 시작하면 훨씬 좋아지리라. 마루는 그렇게 생각했다.
“후딱 간호사랑 챙겨. 바로 출발하게.”
“알겠음. 아- 기간은 며칠 생각하고 준비함?”
“2~3일 기준으로.”
고개를 끄덕인 김 양이 순식간에 간호사를 보쌈해 왔다. 그래도 VX 트랩 만들면서 파워 로더형 엑소슈트를 써봐서 그런지, 제법 능숙한 태를 내는 간호사였다. 어째서 자기를 데려가는지 궁금한 얼굴.
“6개월이나 독립적으로 버티고 있는 사람들이라 혹시라도 의료지원이 필요한 상황이 있을지 몰라서 같이 가는 거니까. 필요한 약들 넉넉하게 챙겨.”
“아? 옛-”
마이클 PD는 살짝 감격했다. 품에 들이지 않은 자들을 보러 감에도 어찌 이리 자비로우신지. 자신의 화상을 치료해주셨던 것처럼 단숨에 치료할 능력이 있음에도 이렇게 하시는 것을 보곤 여러 가지 생각을 하는 PD였다.
“차량을 끌고 가면 편하겠지만 도로 상황도 좋지 않고 쓸데없는 관심을 끌 수 있으니, 도보로 이동합니다.”
전원이 엑소슈트를 장비한지라 한 시간에 7~8km 행군은 거뜬했다.
마루가 일행을 이끌고 디트로이트 북부지역으로 길을 떠나자, 블라디 아크 타워의 분위기가 미묘해지기 시작했다.
최근 블라디마루 칼린 또는 야니아 킴, 둘 가운데 한 명은 항상 타워에 붙어있었다. 자리를 비운다고 하더라도 언제든 연락하면 금방 돌아올 수 있는 거리에 한 해 움직였으니까.
그런데 지금 자리를 비운 것은 달랐다. 자동차로 움직인다면 2시간 안팎이면 충분히 왕복할 거리지만, 도보로 움직인다면 하루 꼬박 걸릴 거리였다.
그런데도 차량을 사용하지 않고 도보로 갔으니, 최소 이삼일은 타워를 비우는 게 확실하다는 소리였다.
위이이잉-
24시간 3교대로 공사를 진행했기 때문인지, 외벽 공사 구간이 거의 마무리되고 있었다. 엑소슈트와 중소형 중장비를 동원한 공사현장에 잠시 휴식시간이 돌아왔다. 식사를 마치고 삼삼오오 모며 이야기를 하던 인부들이 스물 넘게 공터로 모였다.
“이렇게 모여 다니지 말라고 했잖나?”
“아크 타워도 아니고 여긴 밖이라 인공지능의 감시도 없지 않습니까?”
이곳은 공사현장이었다. 인공지능의 눈과 귀가 될 CCTV나 센서가 없는.
“팀장님 계속 감시당하면서 이런 취급을 받고 사실 겁니까?”
“우리가 잘못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구하는 게 그렇게 잘못된 일입니까?”
“식인병이든 분노조절 감염자든 치료제만 있으면 일상생활이 가능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
팀장은 침묵했다. 그 침묵이 암묵적인 동의라고 생각했는지 요원들의 감정이 점차 격해졌다.
“공산주의도 아니고 배급에 독재에···.”
“최소한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비전을 보여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우리가 가축입니까? 우리는 인간이지 가축이 아닙니다!”
“······.”
“다른 건 다 참을 수 있어도, 치료제 정보를 함구하고 치료제를 구해 식인병자들이나 바이러스 감염자를 치료할 생각도 계획도 없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은 아니지 않습니까?”
사람 목숨이 벌레 목숨은 아니었다. 그렇게 쉽게 죽이고 쉽게 버려야 할 건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들은 애국심이 있었다. 군에서도 그랬고 국토안보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 그들은 미합중국을 지키기 위해 헌신하려는 사람들이었다.
안전해서 잔류를 선택했고 이곳을 기점으로 구조활동이 더 활발해지리라 생각했지만, 역설적이게도 안전을 위해서 구조를 하지 않겠다는 듯 보이는 블라디마루 칼린과 야니아 킴이었다.
이 정도 물자가 있으면서 어째서 더 많은 생존자를 구하지 않는 걸까?
능력이 있으면서 어째서 연방정부가 무너지는 것을 지켜만 보고 있는 걸까?
치료제를 적극적으로 확보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능력이 있으면서 왜 사람 목숨을 가볍게 생각하는 거지?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됩니다.”
“수만 명을 구할 수 있는 곳을 고작 500명으로 놀리고 있다는 게 말이 됩니까?”
“인공지능만 차단하면 충분히 승산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없다고 해도, 통제실 컴퓨터로 방어 시스템을 운용하는 건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러니까 슈퍼컴퓨터를 물리적으로 격리해 인공지능을 차단하고 일반 컴퓨터를 이용해 타워를 장악하자는 의견.
다양한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만든 보조 시스템이 있기에 가능한 틈. 보안 요원이었기에 알고 있는 다양한 정보들이 언급됐고 계획이 점차 구체적으로 변함에도 어째서인지 팀장은 침묵을 지켰다.
“······.”
“팀장님!”
“결단을!”
결단을 촉구하던 감정적 격앙이 긴장으로, 긴장감이 팀장에 대한 배신감으로, 배신감이 침묵으로 변할 즈음. 굳게 닫혔던 팀장의 입이 열렸다.
“헛짓거리, 헛소리 그만해라.”
“팀장님!”
“진심이십니까?”
“그래. 머리가 있으면 생각을 좀 해라. 생각을.”
팀장이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명령 불복종으로 처분하니 마니 했던 게 며칠이나 지났나?”
“너희 입으로 말했으면서 이상하지 않디? 사람 목숨 알기를 파리처럼 아는 자들이 너희를 왜 살려줬을 거 같냐?”
“심심해서 살려줬을까? 응? 생각을 좀 하자. 생각을. 다들 왜 이렇게 흥분해서 그러는데?”
순식간에 가라앉은 분위기.
“블라디마루 칼린, 야니아 킴, 둘 가운데 한 명도 남아있지 않고 자리를 비운다고? 이 시점에서? 이상하다고 생각되지 않나?”
“······.”
“······.”
“자리를 비운 게 함정이라는 말씀이십니까?”
“함정이든 아니든 당장 급하게 감정대로 세운 계획대로 하는 건 아니라는 거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 ‘이건 아니다.’라는 팀장의 말에 요원들 몇은 억지로 고개를 끄덕였고, 몇은 납득하지 못하겠는지 거칠게 자리를 피했다.
동료들이 떠나는 자들을 만류하려고 했지만, 팀장이 막았다. 선택에 관한 책임은 스스로 져야 했다. 억누른다고 될 일도 아니었고.
“그냥 가게 둬.”
“괜찮겠습니까?”
“각자의 선택이지.”
까아악-
그렇다는 듯, 울어댄 까마귀 소리에 팀장이 미간을 찌푸렸다.
쯧- 재수 없게.
까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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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잉-
“생각보다 괜찮네.”
엑소슈트를 사용한 마루의 평가였다. 일단 7~8km로 2시간 넘게 움직여도 체력소모가 거의 없었다. 리퍼 슈트를 장비한 상태에서도 사용할 수 있고, 긴급한 상황에서는 순간적으로 탈착할 수 있게 개조한 엑소슈트.
프레임이 노출된 파워 로더형도 이렇게 괜찮은데, 김 양 전용 엑소슈트는 얼마나 좋을까? 마루의 눈빛에 서린 뭔가를 느껴졌는지 김 양이 바로 반응했다.
[?]“많이 좋냐?”
끼융- 고개를 돌려버리는 김 양의 행동에 머쓱해진 마루가 말했다.
“그냥 많이 좋은가 해서.”
[갑자기 왜 그러는데?]엑소슈트 입으면 칼질하면서 휙휙 이동하는 거 불가능해, 안 쓴다고 했으면서 갑자기 웬 욕심이래.
“써보니까 체력도 보존되고 은근히 괜찮아서 그렇지.”
[파워 로더형이니까 탈착 빠르지, 내 건 오래 걸림.]한소리 한 김 양이 화제를 돌렸다.
[근데 쟤들은 따라오라고 했음?]커다란 원을 그리며 따라오는 까마귀들을 향해 멀리서 한 마리가 날아왔다. 이윽고 원형이 조금 부산스러워지나 싶더니, 한 무리가 떨어져 나가 블라디 아크 타워 방향으로 향했다.
“따로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았는데 말이지, 디아나. 타워에 무슨 일 생겼나?”
[감지된 문제는 없습니다.]문제가 없는데 잘 따라오던 애들이 저런다고? 흠-
“잠깐 쉬었다가 가자.”
일행이 자리를 잡고 쉴 자세를 보이자, 까마귀들도 주변에 내려앉아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총총히 다가온 까마귀 한 마리고 간호사의 어깨 위로 폴짝 올라서더니 부리로 간호사의 헬멧을 노크하듯 콕콕 두들겼다.
[아- 까마귀 씨 헬멧 벗지 않아도 잘 들리니까 괜찮아요,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요?]까아악 까악. 까아아깍.
[에에? 그래요? 그래서요?]까악 깍
[에엣? 그건 잠시만요. 마루 님에게 먼저 이야기해야죠.]까-아-악
[아니에요. 안 무서우시다니까요.]“무슨 일인데?”
마루가 간호사를 바라보자, 눈이 마주친 까마귀가 바로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
PD는 속으로 흥분했다. 하늘에서 까마귀들이 그분의 앞길을 예비하더니 보라! 그분 앞에 조아리는 까마귀의 모습을!
[에-또. 둥지··· 아니. 외곽 확장 공사하는 사람들이 발톱을 숨기고 있다는데요?] [그게 무슨 개소리임?]알아먹게 설명하라는 김 양의 말에 간호사가 말을 골랐다.
[그러니까. 에- 확장 공사하는 사람들 가운데 둥지를 노리는 자들이 생긴 것 같다고···.] [그럴 줄 알았음. 아주 이번에는 끝장을 보갔어!]“앉아봐. 일단 앉아.”
벌떡 일어선 김 양을 다시 앉힌 마루가 블라디 아크 타워 방향으로 턱짓했다.
“그래서 까마귀들은 어쩌겠다고?”
[둥지-, 어- 탑을 건드리면 처분하려고 갔다는데요. 그래서 일단 마루 님에게 먼저 말씀드려야 한다고 했어요.]오- 감탄사를 한 김 양이 초롱초롱하게 까마귀를 바라봤다. 뭘 꼬나보냐는 듯 김 양의 시선을 노골적으로 피한 까마귀가 부리로 깃털을 골랐다.
“디아나. 들었지?”
[확인했습니다. 보안등급 최고 등급으로 변경합니다.]디아나와 통신을 주고받은 마루가 앉아서 쉬고 있는 까마귀 무리를 바라봤다. 사람들 대화를 알아들었다는 건데. 것 참.
“까마귀들이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옥상 출입문과 비상구 문을 열어 둬.”
[옥상 외부 출입문 엽니다. 각층 비상출입구 열었습니다.]까마귀들이 먼저 알아서 나섰으니, 어떻게 해결하는지 마무리 짓게 두는 것도 지켜봐야 할 것 같았다. 마루가 간호사의 어깨에 앉아 고개를 조아리는 까마귀에게 말했다.
“무고한 사람들은 건드리지 마라. 할 수 있겠냐?”
까악-
“좋아. 해봐라.”
푸드덕- 날아오른 까마귀가 블라디 아크 타워 방향으로 조용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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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이이잉-
쿠웅- 위이이잉-
공사현장은 부산스러웠다.
엑소슈트와 중장비가 내는 소음에 묻힌 울분에 찬 소리.
“팀장님이 변했어. 나중이라니 언제? 한 달? 두 달? 일 년?”
“씨발. 언제는 애국을 강조하더니. 지금은 때가 아니다? 애국에도 때가 있나?”
죽어 나가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고? 생존자들 다 죽어나간 뒤에 무슨 명분으로?
“그냥 하자.”
“뭐?”
“일단 우리가 시작하면 팀장님도 그렇고 다들 호응하지 않겠냐?”
“호응하지 않으면?”
“우릴 버린다고?”
“아까 하는 거 보니까. 싸하던데?”
까아악
“아오. 깜짝이야. 뭔 재수 없게 까마귀가 갑자기 지···. 야-”
“왜?”
설렁설렁 대답하며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풍경.
“What the Hel···.”
공사현장을 따라 빼곡하게 앉은 까마귀들이 두 사람을 노려보고 있었다. 본능적, 반사적으로 총을 찾았지만, 무기는 이미 모두 반납한 상황.
낮게 욕설을 내뱉은 두 사람이 주변을 돌아봤다.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보이는 건 전부 검은색 물결. 어느 순간 갑자기 나타난 수천 마리의 까마귀들에 둘은 기가 질렸다.
‘언제부터 이런 거지?’
‘조금 전에도 없었잖아?’
귀신에라도 홀린 것 같았다. 분명히 날갯짓 소리도 없었고 다른 징후도 없었다.
“이 새끼들 갑자기 왜 이래?”
“조용히 해. 자극하지 말고.”
푸드덕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올라 안전모 위에 내려앉았다.
“이 새끼 이거 왜 이래?”
“네가 좋은가 보지.”
“닥치고 이거 좀 치워봐.”
“야- 자극하지 말라고.”
노란색 안전모 위에서 갸웃-갸웃- 천진난만하게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까마귀가 콕- 안전모를 두들겼다.
‘뭐하는 짓거리야.’
톡- 톡톡- 두들기며 안전모 앞쪽 끝으로 내려가는 까마귀.
이윽고 안전모 앞에 매달린 까마귀가 까꿍-하듯 고개를 내밀자, 서로 눈이 마주쳤다.
“졸라- 재수 없게- 뭘 봐. 씨발.”
까마귀의 까만 눈동자, 관찰하듯 갸웃거리는 조류 특유의 머리 움직임에 불쾌감이 든 남자가 욕설을 입에 올리는 순간.
콕-
부리가 사내의 눈알을 쪼았다.
끄아아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