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31)
러스트 [RUST]-31
마루의 말대로 고분고분 숙소를 바꿔 들어간 무인텔.
깜박 잠들었던 김 양이 눈을 떴다.
역시 총이 적은 곳에서 잠자면 불편했다. 총과 탄약, 수류탄과 C4가 가득했던 안식처가 그리웠다.
끄응-
작게 스트레칭한 김 양이 권총부터 꺼내 들었다.
발터 P22, 22구경에 가볍고 퉁퉁한 소음기 끼면 귀여우면서도 쓸만하다.
저지력이 약하지만 두 발씩 쏘면 되니까. 반동이 작아서 지금 같이 왼손으로 쏴야 할 상황에서는 딱이었다.
휙- 휙-
왼손이니까 감각 좀 맞추고.
좌우는 미묘하지만 일단 OK.
상하는 좀···.
확실히 위아래를 움직이는 게 좀 불편했다. 담이 결리는 것 같기도 하고.
어제 속사하느라 무리해서일까? 잠을 푹 못 자서 그러나? 약은 챙겨 먹었는데.
예전에는 중국산 짝퉁 토카레프 54식만 쥐고 있어도 푹 잤었는데, 배가 부르기는 불렀나 보다. 김 양은 대포폰을 확인했다. 오전 7시 반인데 마루에게서 연락이 없었다.
‘배고파.’
어제 한우 투쁠만 12인분 먹었는데 상쾌한 모닝 한 번 하니까 의미 없었다. 본디 인생이란 그런 것. 비우고 나면 다 똑같아지는 법이었다.
경건하게 총기 분해하고 솔질하고 닦고 기름치고 조이고,
익숙한 행동인데도 오른팔에 깁스해서 그런지 발터랑 드라구노프 정비하는 데 30분이나 걸렸다. 어제 꼴랑 탄창 하나, 20발 썼는데. 탄약 가방이 홀쭉해진 느낌이었다.
‘배 타고 가면 짐이 좀 무거워도 괜찮을 텐데.’
절반 정도는 본래 계획대로 분산시켜 둬도, 절반 정도는 배가 수배되면 배에 싣고 가는 게 어떨까 싶었다.
일본은 치안이 무너져서 헬 게이트 열린 상황, 돈이나 귀금속을 챙긴다고 생각하면 피 튀는 건 예약이었다.
‘근데 왜 이렇게 연락이 늦나.’
김 양은 연락이 오기 전, 뭘 좀 먹기로 했다.
‘가볍게 먹기로는 버거퀸이 괜찮겠지.’
근처에 24시간 영업점이 있었나?
일단 밥부터 먹고, 여러 군데 분산시킨 총기랑 총알, 폭발물과 신관을 조금씩 챙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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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샬롯 호텔.
객실 벽에 걸린 시계가 7시 3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쾅!
가죽 터지는 소리. 로우킥 한 방에 소파 옆구리가 터졌다.
“개 씨발년이 날 가지고 놀아!”
빡!
20인치 캐리어가 벽에 처박혔다. 터지듯 깨진 캐리어가 울컥, 뽁뽁이로 감싼 깁스 조각을 토해냈다.
김수현 실장의 눈이 번들거렸다.
“야! 이 좆같은 새끼들이! 너희들은 뭐 하는 새끼들인데 멍청하게 서 있어! 엉? 씨발! 내가 혼자 지랄하고 있는 거냐? 나 혼자만 지랄해? 내가 낚였으면 그 옆에서 조언하고 대책 세우고 그게 너희들 할 일 아니냐?”
어두운 양복을 입은 덩치들이 입을 합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개씨발- 이기영 씹새끼가 이 꼴을 보면, 날 뭐로 보겠느냐고?”
“······.”
“대답 안 해? 아직도 감이 안 잡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
“하나하나 다 집어줘야 해? 인천공항까지 퀵서비스든 택배든 배달한 새끼가 있을 거고, 배송 접수한 새끼가 있을 거고. 그럼 어디서 접수를 했는지 장소가 나올 거고, 누구한테 물건을 받았는지 역추적도 못 해?”
“······.”
“서울에 남긴 애들은 다 뭘 하고 있는데? 제주도까지 첫 비행기로 날아와서 뺑이칠 때까지 대체 뭔 지랄을 하고 있길래 제대로 된 정보 하나도 못 물어 오는 건데?
“······.”
정보 담당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김 실장은 고개를 끄덕여 말하라고 했다.
“김 양이 사용한 카드 내역, 위치가 확인됐습니다.”
“어디야?”
“저녁 8시~9시 사이에 강북, 한국관 숯불한우 본점에서 190만 원어치 소고기를 먹었고···.”
빡-
500mL 생수병이 정보 담당자의 머리통을 때리고 튕겨 올랐다. 휘청이던 정보 담당자가 균형을 잡고 똑바로 섰다.
빡-
다시 날아간 생수병이 정보 담당의 안경을 부러뜨리고 코피를 터트렸다.
“지금 씨발련이 먹방 찍은 것도 정보라고 하는 거냐? 내 앞에서 지금 장난치냐? 똑바로 안 해?”
김 실장이 애들을 조지고 있는데, 호텔 복도에 가운을 입은 남자들 여럿이 등장했다.
걸친 가운 사이로 삐져나온 문신들.
팔뚝을 시작으로 가슴팍까지 보이는 짙고 어두운 녹색, 붉은색, 검은색의 향연.
가운 입은 남자 가운데 하나가 일본어로 말했다.
[여기 전세 냈냐?] [왜 이렇게 시끄러워? 돼지를 잡을 거면 밖에서 잡아.] [아침부터 공공장소에서 돼지를 잡는 소리가 뭐냐? 민폐도 모르는 건가?] [잠 좀 자자. 아니면, 돼지 새끼들 대신 잡아 줄까?]김 실장이 안경을 벗고 코피를 닦는 정보 담당에게 물었다.
“저 씹새들이 뭐라고 하는 거냐?”
“전세 냈냐고, 아침부터 돼지 잡는 소리를 내서 시끄럽다고, 밖에서 잡든지, 자기들이 대신 잡아주겠다고 하는데요.”
벌어진 가운 틈으로 보이는 것이 야쿠자 문신 같은데, 야쿠자 새끼들이 한국에 들어왔으면 조용히 있을 것이지···. 김 실장의 낮아진 발화점에 불이 붙을락 말락 했다.
“야 기분도 더럽고 비행기 시간도 남는데 살풀이 좀 할까?”
“참으십쇼. 여기 샬롯 호텔입니다.”
김 실장이 작업할 때 쓰는, 팔뚝까지 올라오는 특수장갑을 끼는 것을 본 정보 담당자가 말했다.
“샬롯이고 쌌롯이고. 야쿠자 새끼들이 호텔 복도를 활보하면서 지랄하게 뒀으면 대책이 있겠지.”
“샬롯 그룹. 일본계 기업입니다.”
일본계 기업과 야쿠자의 조합이라, 일본은 대지진으로 초토화 상태. 근데 야쿠자들을 직영 호텔로 들여왔다? 김 실장이 피식 웃었다.
“그럼 이 새끼들 멀티 뜨겠다고 온 거 같은데? 모르면 그냥 뒀겠지만, 분위기 보니까 딱 멀티인데 여기서 수그리고 참으라고?”
“참으십쇼. 최소한 유 이사님께 보고라도 하고 하십쇼. 샬롯이면 크리스털 애들하고 엮여있습니다.”
김 실장의 미소가 불길하게 짙어졌다.
“너 씨발 이제 말발 좀 세우는구나? 짱구도 좀 돌리고, 나 말리는 게 아니라, 나 엿 먹어 보라고 부추기는 거지? 니가 그러면 내가 쫄아서 참겠냐? 내 성격 알면서? 너 이 새끼 많이 컸구나.”
“······.”
김 실장이 정보 담당의 얼굴을 살살 찰싹찰싹 때리며 웃었다.
“인상 풀어 인상. 칭찬한 거니까. 그 돌아가는 짱구로 나 물 먹일 생각만 하지 말고, 일이 되게 생각 좀 해라.”
“······.”
싸대기를 때리던 팔이 자연스럽게 정보 담당의 어깨로 올라가 어깨동무가 됐다.
“이 새끼들 센터에 힘주고 있는 걸 보아하니, 얘들도 시끄럽다는 핑계로 살풀이하고 싶어서 나온 거 같은데, 어쩔까? 내가 수그리고 우리 애들이 무릎 꿇고 머리 박는다고 조용히 넘어갈 분위기는 아닌 것 같은데,”
“최소한 유 이사님께 지금 상황을 보고 해야 합니다. 샬롯 측에도 일 커지기 전에 연락해야 하고요.”
김 실장은 어깨동무한 팔을 풀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넌 그렇게 하고. 일단 저쪽은···. 내 말 통역해.”
“예.”
김 실장이 작업용 장갑 벨트를 단단하게 조이며 말했다.
“존나 씹새끼들아, 주둥이만 털지 말고 1:1 한 판 뜨자. 지는 새끼는 시원하게 무릎 꿇고 개병신 되는 걸로. 쫄리면 나가 뒈지고. 쪼다 새끼들.”
“······.”
정보 담당이 ‘이걸 어떻게 번역하라고?’ 하는 아련한 표정으로 김 실장을 쳐다봤다.
“그냥 대충 해. 대충. 꼴 받게.”
손을 휘휘 내저으며 스트레칭을 하는 김 실장이었다.
‘저쪽도 대놓고 한국에서 살인 터뜨리지는 않을 테니까···.’
이쪽도 거기 맞춰서 딱 젓가락질만 하게,
김 실장이 허리를 돌리면서 견적을 잡는 찰나.
정보 담당이 잘 통역했는지 맨 앞에 있던 야쿠자가 달려들었다.
“고노레!”(이 새끼가!)
음란하게 허리를 돌리며 도발하는 김 실장을 향한 통렬한 야쿠자 킥!
허리를 돌리던 반동을 이용.
왼발을 살짝 뒤로 빼면서 야쿠자 킥을 옆구리에 낀 김 실장이 그대로 옆으로 엎어졌다.
상대방이 어? 하기도 전에 바닥으로 끌고 내려간 김 실장이 마치 물이 흐르듯 야쿠자의 다리를 얽어맸다.
순식간에 완성된 주짓수 힐 훅.
당황한 야쿠자가 팔을 뻗기도 전, 김 실장이 야쿠자의 무릎을 뒤틀어버렸다.
와그작
끄아아아아악!
뿌드득
무릎을 뒤틀어 부수고 바로 발목 인대까지 박살 낸 김 실장이 고무줄 튕기듯 일어났다,
앤드 스탬핑!
탱글탱글한 게 톡 터지는 느낌이 깔창 너머로 올라왔다.
‘그래 이 맛이야.’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느낌에 김 실장이 기분을 냈다. 에라 기분이다.
앤드 사커킥!
콰직!
기분 좋은 촉감이 사라지기 전 사커킥을 날렸는데. 뭔가 잘못 부러진 느낌이 들었다.
비명을 지르던 야쿠자가 뚝- 조용해졌다.
“!”
“!”
무릎과 발목 인대가 박살 나고 불알까지 터져버려, 듣는 사람 끔찍한 비명을 지르던 야쿠자가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어- 야- 이 새끼 골다공증이라도 있던 거야? 목이 왜 이리 메가리가 없어?”
“너 봤지? 너희들도 다 봤지? 그냥 살살 소녀 슛으로 찬 거? 진짜 내가 이게 아니었다니까.”
김 실장이 회사 직원들을 돌아보며 동의를 구했다.
뭔 놈의 야쿠자가 근성이 없어. 목이 부러졌어도 벌떡 일어나야 하는 새끼들 아닌가?
정보 담당이 유 이사와 통화하던 중이었는지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저. 유 이사님. 방금 상황이 코드 레드가 됐습니다. 뒤처리반도 함께 보내주셔야 하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김 실장이, 좆됐다는 얼굴로 직원들에게 말했다.
“야- 다 정리해. 씨발 꼬였네.”
직원들이 테이저건과 가스총, 삼단봉을 꺼내 들고 야쿠자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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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양은 먼저 고시텔에 들렀다.
좁은 방, 위장용 까나리 액젓 냄새와 쉰 김치 냄새가 빠지지 않아서 독했다.
자기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린 김 양이 다시 마스크를 썼다.
그렇게 포장한 박스를 열자, 비닐봉지와 뽁뽁이에 잘 포장된 글록이 김 양을 보고 웃고 있었다.
얼른 꺼내고 싶지만, 글록과 김 양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쉰 김칫국물로 범벅된 비닐. 그리고 그걸 둘둘 말고 있는 까나리 액젓.
“아-”
내가 왜 이랬었지? 고시텔 총무, 관리인이 열어보지 못하게 한다고 이랬었지.
김 양은 쉰 김치와 까나리 액젓이라는 세계관 최강자들의 경합에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일단 봉지째 어떻게 해야겠어.’
방에 붙어있는 화장실 겸 샤워부스에 글록과 탄약이 담긴 봉지를 던져 놓고, 바디클랜져를 듬뿍 뿌려 거품을 냈다. 냄새가 조금 가시려나 싶었을 때, 인터폰이 울렸다.
삑-삑-삑-
[1102호, 김희영씨. 김희영씨 계신가요?]관리인이 김 양의 가명을 불렀다.
김 양의 고개가 갸웃 기울었다.
시계를 보니 오전 8시 반, 총무가 이 시간에 날 부를 일이 있나?
“네. 지금 뭘 하고 있어서요. 무슨 일이시죠?”
관리인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밖에 김희영씨를 찾는 분들이 계셔서요.]찾는 사람이라는 말에 김 양의 몸이 반응했다.
대충 헹궈낸 봉지를 북-뜯어 글록과 탄창, 총알을 챙겨 가방에 쑤셔 넣었다. 매트 아래 감춰둔, C4를 조금 떼어 신관을 박아 넣고 오른쪽 벽에 붙였다. 계약할 때, 오른쪽 옆은 빈방이라고 했었다.
두 번 뜯었다 봉합한 오른팔에 통증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진통소염제를 하나 까먹으면서 김 양이 관리인에게 말했다.
“저 찾아올 사람 없는데요?”
[형사라면서 좀 묻고 싶은 게 있다고···.]“형사요?”
김희영이라는 가명으로 어제 계약했는데, 하루 만에 형사라는 새끼들이 찾아왔다고?
그럴 리가.
진통소염제 하나 더 먹어야겠네.
김 양의 순둥순둥 큼지막한 눈이 가늘게 좁아졌다.
계의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