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315)
러스트 [RUST]-315
까마귀들이 나선으로 회전하며 쥐떼를 낚아채는 것을 힐끗 쳐다본 김 양이, 다시 스코프로 눈을 돌렸다.
‘조금 더. 조금만 더 오라우.’
하는 대로 하다가 여의치 않으면 시간을 끌라고 했지만, 그래서 앓는 소리를 내기도 했어도 조금 욕심부려보기로 한 김 양이었다.
놈들이 가까이 접근했을 때, 한꺼번에 전부 쏟아버리면 가능성 있었다. 혹여 잡지 못하면 바로 도망치면 될 것 아닌가? 개조한 엑소슈트의 성능은 충분히 만족스러웠으니까 해볼 만했다.
‘그럼 다섯 마리 전부 내가 잡은 기야.’
김 양의 입꼬리가 살짝 실룩였다. 탄만 제대로 된 게 넉넉하게 있으면 혼자서도 잘 잡는다고! 특수탄 만들어 내든 찾아내든 하라고 해야지. 성과가 있잖음. 성과가.
개기름이 흐르는 것처럼 번들거리는 검은색 피부, 앞뒤로 두꺼운 근육질 몸통. 아무리 봐도 2.8m는 넘어 보이는 덩치들이 성큼성큼 오다가 서서히 멈췄다.
‘어? 왜 거기서 멈추니. 더 오라.’
눈에 힘을 주고 오라고 고사를 지냈는데도 우두커니 상황을 지켜보는 놈들이었다.
‘저것들 뭐야. 달려들지 않고 지켜보고만 있어?’
그냥 쏠까?
아니다. 백정이 시간 끌라고 했잖아.
잡고 싶기는 한데, 멀리 있는 놈들 건드릴 건 아니었다. 어차피 저것들 달려들지 않으면 시간은 흘렀다. 그러니까 기다리는 게 맞아.
응.
김 양은 조급해지려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저격수에게 기다림은 발가락에 달린 굳은살 같은 거였으니까.
교회에 달라붙은 쥐 떼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까마귀들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덩치가 제법 큰 까마귀였지만, 팔뚝만 한 쥐 떼가 수십 달려들면 견디지 못했다. 추락은 죽음.
까마귀들의 비행 속도가 조금씩 빨라졌다. 빠른 속도로 급강하해서 낚아채, 쥐의 머리통을 쪼고 칼날 같은 발톱으로 내장을 헤집고 던져버리기를 반복하는 까마귀들과 쥐 떼의 싸움은 끊이지 않았다.
하늘에서 죽은 쥐들이 우박처럼 떨어져 내리고, 바닥에 떨어진 까마귀들이 깃털만 남기기를 얼마나 했을까. 구경하고 있던 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교회에 신경 쓰고 있었다고 한들 목표를 잊지 않은 김 양이었기에, 놈들의 움직임에 즉각 반응할 수 있었다. 앞서 두 마리를 잡았던 감촉이 아직 손가락에 남아있었다.
약한 부분은 목과 눈 그리고 중심. 한 방으로 잡을 수 있다면 저격으로 잡겠는데, 놈들의 내구성과 재생력이 좋아 때려 붓는 방식으로 잡았었다.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었기도 했고.
2km 밖에서도 쏴댄 김 양인데 지금은 고작 500m 안쪽. 이 거리라면 눈알도 꿰뚫을 수 있었다. 끼릭- 개조한 12.7mm 기관총이 맨 오른쪽 변종의 눈알을 노렸다.
뚜까까가가각-
둔탁한 소리와 함께 쏟아진 작열 소이 철갑탄이 변종의 면상에 틀어박혔다. 파박- 안구가 터지며 피어오르는 불꽃. 양쪽 눈알과 연약한 코를 뭉개고 틀어간 특수탄이 속에서 불꽃을 피워올렸다.
크어어어어-
벌어진 입으로 빨려 들어간 특수탄이 목구멍을 태워버렸다.
!!!
눈, 코, 입에서 붉을 화염을 뿜어내던 놈이 허공을 향해 버둥거리다 마침내 거목처럼 쓰러졌다.
삽시간에 10여 발을 당긴 김 양이 바로 옆으로 사선을 옮기자, 두 놈이 보이지 않았다. 사라졌다. 주변을 살펴도 흔적이 없었다.
고작 몇 초인데? 없어져?
김 양은 냉큼 자리를 이탈해 건물 밖으로 뛰어내렸다.
큥!
은신 장비를 가동한 그녀는 사전에 찍어둔 3층 건물을 향해 내달렸다. 끼융끼융- 공간이 일렁이며 작은 기동음이 뒤따랐다.
‘어디로 갔지?’
콰아아아앙!
2층에 설치해 놓은 부비트랩이 폭발하는 소리, 놈들이 찾아왔다는 소리였다. 커다란 폭발음에 치열하게 싸우던 까마귀와 쥐 떼가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김 양은 3층에 올라가 바로 자리를 잡고 부비트랩이 터진 곳을 확인했다. 한쪽 팔을 들어 안면을 반쯤 가린 변종 두 마리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스코프에 들어왔다.
‘좋아.’
혹시나 몰라 부비트랩을 박아 놓은 게 효과가 있었다. 부비트랩이 터지면서 조그맣게 남은 흔적이 모조리 날아가 버렸으니 찾을 수 있을 리가.
어쨌든 다시 기회.
‘여기서 한 놈만 더 잡으면···.’
마지막 한 놈은 잔탄을 모조리 때려 박아도 잡을 수 있었다. 팔뚝으로 안면을 반쯤 가리고 두리번대는 두 놈을 노려보던 김 양의 손가락이 방아쇠를 당겼다.
투다다다다닥!
왼쪽 눈알. 눈알. 오른 팔뚝. 팔뚝. 손바닥.
눈알에 두 방이 틀어박히자 반사적으로 팔뚝으로 가렸지만, 이미 늦었다.
‘나중에 마무리하고.’
김 양은 침착하게 발버둥 치는 놈은 버려두고 옆에 있는 두 번째 목표를 향해 총구를 돌렸다. 순간, 새 목표가 총에 맞아 사지를 허우적거리는 변종의 뒤로 몸을 숨기는 것이 포착됐다.
동료를 방패로 삼아?
그래도 늦었어. 이제 끝.
다섯 마리 전부 혼자 잡았음. 응.
뒤에 숨은 놈의 얼굴에 총알을 박기 위해 스코프 화면에 다시 집중하자, 점차 발버둥을 멈추고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하는 모습과 그 뒤에서 이쪽을 노리는 놈이 보였다.
응? 막대기는?
놈들 몽둥이 같은 거 들고 있지 않았나?
그건 본능이었다.
그간 백정에게 단련된 본능.
이상하다 싶은 순간, 김 양은 바로 몸을 던졌다.
데굴데굴.
낙법이고 자시고 따지기 전에 몸을 뒤로 날린 공간으로 회백색 금속몽둥이가 미사일처럼 날아들었다.
뻐어엉!
쌩 벽을 뚫고 들어온 금속 뭉치.
어찌나 강한 충격인지 파편이 사방으로 튀고 먼지가 피어올랐다.
팅- 탱-
데굴데굴 구른 채로 최루탄과 연막탄을 하나씩 깐 김 양.
푸쉬쉬
쉬쉬쉭
매케한 최루가스와 짙은 연막이 뒤섞여 시야를 차단했다. 은신 장비까지 쓰고 있으니 육안으로는 찾을 수 없을 터. 이 틈에 자리를 잡고 오는 놈을 조지면. 끝.
김 양은 고양이처럼 슬그머니 몸을 뺐다.
끼융끼융
···
···
아-
벽이 폭발하듯 뚫리며, 검은 그림자가 김 양의 엑소슈트를 덮쳤다.
투다다다닥-
얼굴에 총구를 겨눌 틈이 없는지라, 아래에서 올라간 총구가 노린 곳은 센터였다.
‘어?’
순간—- 0.2~0.3초의 시간이 일그러졌다.
————–미친 듯이 늘어나는 시간.
김 양은 검은 그림자의 움직임을 느끼고 있었다. 센터에 총알이 박히면, 수컷들은 반사적으로 손을 내리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아니라고?
검은 그림자 왼쪽 눈어림에 불타오르는 불꽃이 일그러진 느낌.
이놈은···. 뒤진 놈?
크릭!
마을에서 쥐새끼들을 잡았을 때 썼던 장치. 엑소슈트 장갑에서 네이팜을 분사해 불을 붙여 주변을 태우는 비상장치를 작동한 김 양.
푸화아아아악
엑소슈트에서 폭발하듯 화염이 치솟았다.
최류탄의 연기, 연막탄의 연기, 부서져 튄 파편과 먼지, 그리고 화염이 뒤섞여 작은 집 3층이 삽시간에 폐허로 변했다.
‘자리를 피해야.’
불꽃 분사를 써서 은신 장비가 녹아내려 버렸으니 무조건 거리를 벌려야 했다.
주변이 불바다에 연막까지 뒤섞여 열영상도 동작 감지장치도 먹통이 됐다. 입을 앙다문 김 양이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다.
큥!
착지와 동시
뻐겅-
강력한 충격이 김 양을 덮쳤다. 엑소슈트 등에 메고 있던 장비함이 부서지며 축구공 날아가듯 날아간 엑소슈트가 벽에 처박혔다.
강력한 충격에 숨이 턱 막힘에도 그녀는 정신을 잃지 않았다. 벽에 충돌한 충격을 반발력 삼은 김 양이 총구를 겨눴다.
아무것도 없이 휑한 길바닥만 눈에 들어왔다.
어째서인지 마루의 움직임.
동물적이고 반사적으로 움직였던 백정의 모습이 김 양의 뇌리에 떠올랐다. 일본 요트에서 제트 스키를 타고 싸웠던 모습. 갱단과 싸웠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공격 후 이탈.
어디로?
12.7mm 기관총이 하늘로 향했다.
허공의 검은 그림자를 노리기라도 한 것처럼 불을 뿜는 총구.
투다다다닥
파바바바박
점프하자마자 공중에서 두들겨 맞은 변종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꿈틀꿈틀 고통에 몸부림치는 모습.
크아아아아–
힘없이 외치는 변종의 아가리에, 총구가 틀어박혔다.
투캉! 투두두둑-
눈, 코, 입에서 불꽃이 피어오르며 축 늘어지는 변종의 모습.
김 양은 알아버렸다. 느껴버렸다. 그래.
하?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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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규환이 펼쳐졌다.
문짝과 틀어막은 창문을 갉아먹는 소리, 그런 쥐들을 낚아채며 까마귀가 내는 소리. 공포에 질린 사람들이 HOLY를 부르짖는 소리가 뒤섞였다.
교회 밖에서 들리는 절규
증오, 살의가 넘치는 지옥의 한복판에 홀로 고립된 것 같았다.
다들 들리지 않는 거야?
저 소리가. 저 비명이.
까아아악
찌이이익
까마귀들이 외치는 소리와 쥐 떼가 내지르는 비명이 오노 나나에의 영혼을 쥐어짜는 것 같았다. 마지막에 이르는 단말마들이 그녀의 가슴을 난도질하는 것 같았다.
간호사는 교회 구석에서 쪼그려 앉아, 무릎을 두 팔로 감쌌다.
그만해.
싫어.
듣기 싫어.
그만해.
왜 저렇게 싸우는 거지? 괴롭잖아.
고통스럽잖아. 어째서 죽이고 죽는 거지?
사람들을 공격하는 이유는 뭐지?
왜?
어째서?
무엇 때문에.
부르르 떠는 간호사를 본 PD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히에엣!!!- 아? 괜찮아요.]자지러지게 놀라는 간호사를 본 PD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그분의 곁에서 모시는 자가 이렇게 믿음이 연약하다니. 어찌 이리 유약하단 말인가?
아크 타워 이전부터 그분과 함께 보내면서 얼마나 많은 기적을 경험했을까? 그런데도 이렇게 작은 시련을 견디지 못하다니.
‘그래서 다른 분이 그렇게 교육해야 한다고 말했던 것이군.’
김 양이 간호사를 태운 이유를 미루어 짐작하는 PD였다. 어쨌든 그분의 수족인 간호사가 이렇게 두려워 떨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쁜 영향을 끼쳤다.
인간들의 믿음이란 고작 그런 것. 굶주린 배를 채워주면 배고팠던 시간을 잊는 존재. 두려움에 떨던 것을 구해주면 두려웠던 시기를 망각하는 존재.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이 중요했다. 영혼에서 골수까지 바꿔버려 그분에 대한 진실함으로 가득 채울 기회는 지금이었다.
자신이 죽음의 끝에서 변치 않는 믿음을 찾은 것처럼. 이곳에 있는 자들도 죽음의 끝에서, 자신의 바닥을 전부 내보이고 비운 다음. 오롯이 믿음으로 채워 넣어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PD는 무릎을 끌어안고 아무것도 보지 않겠다는 듯, 듣지 않겠다는 듯 앉아있는 간호사의 머리에 가만히 손을 올렸다.
괜찮다는 듯 살포시 쓰다듬는 손길이 어쩐지 너무 상냥해 간호사는 울고 말았다. 살짝 들썩이기 시작하는 어깨.
그 괴로움을 다 안다는 듯, 위로하는 듯 조심스러운 손길과 함께 PD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간호사의 귓가에 스며들었다.
[저는 정말로 두 분이 부럽습니다.] [······.]PD의 말은 진심이었다. 김 양과 간호사가 너무나 부러웠다. 그분의 곁에서 그분의 보살핌을 받으며 사는 두 사람이었다. 매 순간이 기적이지 않던가?
[아시다시피, 전 죽을 목숨이었습니다.]어이없게. 덧없게.
그렇게 사그라들 촛불이었다. 훅 불면 꺼지는.
[하지만 그분이 절 살려주셨지요.]살려만 주신 것이 아니라, 끔찍한 화상도 낫게 해줬다. 복수도 해주셨다. 그리고 삶의 의미까지 찾아주셨다.
그것이 사실이기에, PD의 목소리는 한없이 진솔했다. 그 목소리에 오노 나나에는 마루와 만났던 시간이 문득 떠올랐다.
잊고 싶은 기억. 지옥으로 변한 일본에서 겪었던 일들. 누군가에게는 조금 느리다는 이유로, 어떤 이에게는 예쁘장하게 생겼다는 질투로, 이건 전부 네 가슴이 큰 탓이라며 괴롭힘당했던 기억.
그 끔찍한 곳에서 구원받았다. 그래 구원받은 것이다. 굳이 자신이 아니었더라도, 다른 누구였어도 상관없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녀는 선택받은 것이었다.
[아—]오노 나나에는 눈물을 흘렸다. PD의 말이 맞았다. 그녀를 그냥 일본에 버려두고 왔을 수도 있었다. 급속 치료제가 생긴 뒤에는 사실 쓸모가 없었으니까.
난민 수용소에 넘길 수도 있었다. 미국에 도착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버릴 수 있었고, 방치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녀를 버리지 않았고, 인정해줬고. 지켜줬었다.
의사 공부를 할 수 있게 해줬고, 인질이 됐을 때도 구하러 왔다. 사실 그녀와는 아무 사이도 아니지 않던가?
그녀의 고백에 PD의 목소리에 열기가 섞였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항상 당신을 지켜보신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언제나 당신을 지켜주신 겁니다. 바로 그분께서 당신을 구하신 겁니다.]그랬다. 그게 사실이었다. 그걸 왜 몰랐을까?
[제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모든 것은 그분의 뜻대로. 그분을 섬기시면 됩니다.]그분이 살려준 생명 아니던가? 미물도 그분의 뜻에 따르는 데, 구함을 받은 자가 어찌 은혜를 갚지 않을 손가?
[그분의 뜻대로···.]간호사는 느껴버렸다. 알아버렸다.
머릿속을 가득 채운 절규가 이젠 무섭지 않다는 것을. 가슴을 후벼 파던 고통이 사라진 것을.
아?
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