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318)
러스트 [RUST]-318
순식간에 굵어진 빗방울이 바닥에 말라붙은 핏자국을 붉게 되살렸다.
물비린내와 녹슨 철 냄새가 뒤섞인 현장에 모인 자들이 서로 바라봤다. 모두가 원하는 것은 집단 살인마를 잡는 것.
‘이 새끼들이···.’
샬롯의 안동구든 자료에 오진 소속으로 분류된 김기순이든 형사가 있음에도 신경 쓰지 않는 듯한 태도. 지금도 이런데 살인범들을 찾으면 어떻게 될까?
그 잠시의 머뭇거림이 흔적을 따라갈 시간을 놓쳐버렸다.
후두두둑-
촤아아아-
한 형사는 허망하게 사라지는 핏자국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이라도 흔적이 남아있을 때, 움직였어야 했는데.
샬롯도 그렇고 오진도 최근 좋은 소문이 없었으니까, 달고 움직이기 껄끄러운 게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살인범을 놓치는 것보다는 나았을 것을···.
번쩍-
번갯불에 비친 광경. 한 형사는 자기도 모르게 눈을 비볐다. 레게머리가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렸었다.
비를 맞아 기뻐하는 것처럼 흔들리는 머리카락? 바람이겠지?
한 형사는 곁에 있는 안동구 과장을 쳐다봤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 이상한 걸 봐서인지 아니면, 생각지도 못한 사람을 봐서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표정.
‘스트레스를 너무 받았어.’
한 형사는 쭈그러진 파트너를 찾았다.
“한 형사님.”
“조용히 해.”
수분이 쭉 빠졌던 이문식 형사가 쫄딱 비에 젖어 부활한 느낌이었다. 한 형사는 이문식을 데리고 자리를 피하면서 힐끗 고개를 돌렸다. 자리를 피하는데도 안동구와 김기순이 서로를 노려보고 있는 모습 그대로.
‘오진과 샬롯 사이가 험악해졌다고 하더니.’
태풍이 불면 피하는 게 인지상정. 한 형사는 초보 파트너를 끌고 골목 안으로 사라졌다. 그것을 기다렸다는 듯 안동구의 입이 열렸다.
“김기순 씨. 회장님께서 많이 서운해하십니다.”
“서운한 건 이쪽이죠.”
일본에서 시간을 뺏기지 않았다면 따개비와 엮이기 전에 미국에 도착할 수 있었을지 몰랐다. 누가 뭐라고 해도 대역까지 써가며 편할 대로 한 건 그쪽 아니던가?
그쪽의 삽질 덕에 목숨을 잃을 뻔한 건 몇 번이고, 쓸데없이 엮인 건 얼마던가? 근데 서운이라니. 염치도 없지. 기순의 말에 동구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회장님께서 전에 했던 제안. 아직 유효하다고 하셨습니다.”
“말씀은 고맙지만, 상황이 이렇다고 전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기순이 슬쩍 머리를 흔들었다. 빗방울에 젖어 환희하는 머리카락들.
“오진의 약 때문입니까? 어떤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치료제 계열은 샬롯도 준비중에 있습니다.”
“뭐. 제 입장에서는 모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요.”
혼자 몸이라면 모를까 마루네 부모와 나루까지 엮여있는 상황인지라. 모험은 무리였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방해하면 재미없다는 눈빛을 보내는 안동구를 향해, 기순은 가늘게 휘어진 실눈으로 화답했다. 커다란 덩치의 안동구가 형사들이 들어간 골목으로 사라지자 기순은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후- 젠장.”
너울너울 꿈틀꿈틀 춤추는 머리카락을 그냥 내버려 둔 기순이 품에서 약을 꺼내 입에 털어 넣었다. 씁쓸한 약이 녹아 흡수되면서, 따로 놀던 머리카락이 서서히 통제되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참 난감했다.
“까마귀도 아니고.”
대가리가 깨지다 못해, 대가리에 뭐가 달릴 정도로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친엄마를 잃은 기순을 반갑게 맞이해 준 건, 마루네 집이었다. 이후, 그룹 회장인 기순의 부친까지 돌아가셔 기순이 순식간에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되자, 제일 먼저 태세를 전환한 건 마루의 모친이었다.
‘나루한테 신경 끊었으면 좋겠네.’
마루 엄마는 매정하게 대놓고 눈치를 줬다. 그거야 딸자식 가진 엄마가 하는 반응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었다.
‘남자라면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것도 있어야 하지 않겠나?’
상심한 기순에게 마루 아버지께서 해준 위로였다. 나루를 포기하라는 마루 엄마나, 우직하게 한 번 해보라는 마루 아버지나, 기순에게 있어 소중한 인연이었다.
“돌아버리겠네.”
마루 녀석에게 진 빚도 있었고 그 시절 가끔 얻어먹었던 집밥 값이 목숨 값이 된 꼴. 마루 놈에게 부모님 걱정은 말라고 호기롭게 말했던 과거의 자신을 때려주고 싶달까?
그나마 다행인 점은 나주연이 진심으로 마루를 원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마루의 부모님도 그렇고 나루도 지금처럼 심각한 상황에서도 보호받을 수 있었다.
‘다행인지 아닌지 모르겠네.’
나주연은 천재였다. 그것도 기이할 정도의. 그런 여자가 뭐가 아쉬워서 마루에게 집착하고 있는 걸까?
가끔 이야기하다 보면 섬뜩할 정도. 어디선가 한번 삐끗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만 같은 느낌인지라, 매일 조심조심 살얼음을 걷는 것 같았다.
‘핵전쟁, 변이 바이러스 창궐, 식인병, 괴수들의 등장으로 사람들이 잊고 있지만. 전 지구적인 재난은 지금부터 시작이죠.’
소름 끼치도록 태연하게 말하는 나주연의 모습이 떠올랐다.
‘후지산이 폭발했어요. 아소산도 그렇고요. 일본의 화산대가 전부 폭발했는데 사람들 정신은 전부 다른 데 팔렸더라고요.’
아파트 폭락이라든지, 물가급등이라든지, 중국과의 전쟁이라든지, 바이러스 사태라든지. 그런 것들. 근데 큰 게 오고 있다며 미소 짓는 모습이라니.
고개를 흔들었다. 다른 건 몰라도 나주연이 한 말이었다. 기순도 짐작됐다. 큰 것. 중국 남부와 일본은 홍수로 농사가 끝장났다. 한국은 가뭄으로 반쯤 절단이 났고.
날씨는 점차 개판으로 변하고 있었다. 7월인데 마치 가을처럼 새벽은 서늘하고 낮에는 찜통이었다. 햇빛이 그리 밝지 않은데도.
인공위성이 끊겨 다른 나라의 상황을 예전처럼 실시간으로 알기 어려웠지만, 확실한 건 세계규모로 농사가 망하고 있다는 것.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미국과 중국의 핵전쟁으로 세계 곡물 시장이 작살 나버렸는데, 프랑스와 스페인도 식인병과 난민, 테러로 박살.
호주는 농경지에서 괴수들과 군대가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하니, 사실상 식량 자원이 실제로 목숨줄이 될 판이었다. 나주연은 이미 대비하고 있는 것 같았고.
기순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빗방울을 만끽하며 꿈틀거리던 레게 머리카락이 한쪽을 가리키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한 형사와 안동구 과장이 간 골목과는 다른 방향이었다. 그러니까 허름한 문을 향하는 머리카락들.
‘여기라고?’
간질간질 두피를 뚫고 두개골을 직접 살살 긁는듯한 감각에 기순의 가느다란 눈매 끝이 삼각형으로 뾰족하게 변했다.
근처는 경찰들이 전부 수색했을 텐데.
잠긴 문짝을 톡톡 두들겨 본 기순이 가볍게 점프해 담을 넘었다. 전형적인 옛날 구조의 집. 작은 마당과 반지하가 있는 2층 주택.
부르르르-
무엇 때문인지 머리카락들이 긴장하는 느낌에 주의를 조심스럽게 살피는 기순.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붉은 냄새였다.
‘피?’
그것도 다수의.
‘살인 현장 근처가 아지트였다고?’
경찰은 그걸 못 찾았고?
‘식인병자들의 행동이 이상한 것 같던데. 그러니까 일종의 명령체계가 있는 것 같다고 할까요? 놈들을 찾게 되면 바로 신호를 주면 됩니다.’
나주연의 말이 떠올랐다. 기순이 신호기를 누르는 것과 동시에, 주택에서 50~60대 남자가 밖으로 나왔다.
“어이쿠- 당신 누구야!”
“······.”
“뭔데 남의 집 마당에 들어와 있는 거야? 엉?”
“······.”
화들짝 놀라며 거칠게 말하는 사내. 일반적인 반응이었다. 누구라도 낯선 사람이 집 마당에 서 있는 것을 봤다면 그랬을 테니까.
“도둑이야? 강도야?”
부르르르-
머리카락이 빳빳해지는 느낌이 강해졌다.
경찰을 부르겠다고 소리치며 휴대폰을 꺼낸 남자의 표정이 서서히 변했다. 이리저리 사방을 살피던 눈동자가 기순을 향했다.
“보자. 다른 놈은 없나 보네.”
슥- 남자가 소매로 입가를 훔쳤다.
“왜 들어왔는지, 뭐하는 놈인지 궁금하지 않으니까. 괜찮아. 괜찮다고. 그러니까 피차 조용히 하자고. 조용히.”
사내가 한 걸음 다가서자, 기순은 반사적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 마치 포식자가 노리는 것만 같은 느낌.
“그나저나 해물 맛인가?”
뜻 모를 소리와 함께, 사내가 기순에게 달려들었다.
육상 선수보다 빠른 움직임.
와락- 태클하듯 달려들어 기순의 두 팔을 구속한 사내가. 잘 먹겠습니다는 듯 입을 크게 벌렸다.
촤릭!
순간. 날카롭게 팽팽한 무엇이 남자의 입안으로 틀어박혔다.
케흑-
크게 벌린 사내의 입안으로 파고든 기순의 머리카락이 사내의 입천장을 꿇고 안구 밖으로 삐져나왔다.
휘리리리라라라락
레게 머리카락처럼 보이는 촉수들이 피 맛에 환호하며 통제에서 벗어났다.
파박!
팍-
파바박!!
입을 뚫고 들어가 눈알로 나온 촉수, 눈을 뚫고 들어가 귓구멍으로 나온 촉수. 콧구멍으로 파고 들어가 뇌를 헤집는 것까지. 온몸에 촉수가 박힌 남자가 잠시 꿈틀거리다 늘어졌다.
쭈우우욱-
삽시간에 쪼그라드는 시체, 미라처럼 말라 비틀어진 시체 위로 빗방울이 쏟아졌다.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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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진 그룹 본사는 요새처럼 굳건했다.
단단한 철근 콘크리트와 복합장갑으로 보강된 지하, 서울지도가 펼쳐진 모니터 한쪽에 붉은 점이 점멸됐다. 기순의 신호가 잡힌 것.
“출동!”
“식인병자다.”
“지휘 개체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반드시 생포해야 한다.”
타격조가 비밀통로를 향해 내달렸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이미 먹일 대로 먹여놨으니, 어지간해서는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자승자박을 한 덕에, 변이 바이러스와 식인병이 퍼지고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 먹으면 되는 오진의 약과, 하루에 3알 먹고도 확신하기 힘든 복제약 가운데 어떤 걸 원하겠는가? 오진을 건드리려다 삐끗하게 된다면 누가 손해일까?
“서울 시장이 엉뚱한 소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약을 잘 받아먹던 서울 시장이 갑자기 돌변했다. 심지어 지금도 약은 넙죽넙죽 받아먹고 있으면서 딴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서울시에서 의뢰한 연구결과. 변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은 아주 적은 칼로리로도 생존하는 데 무리가 없었고, 식인병자들은 소화능력, 해독능력이 강해져서 무엇이든 먹을 수 있게 진화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관점을 바꿔야 할 때입니다. 세계적으로 전례 없는 위기가 닥친 지금. 정부는 결단을 내려야 할 것입니다.’
‘억제제만 충분히 공급된다면, 변이 바이러스와 식인병은 오히려 생존의 열쇠, 번영의 축복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서울시에서 시작하겠습니다. 감염자나 식인병자라고 부르는 것을 멈춰야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억제제, 치료제이지 두려움과 공포가 아닙니다. 안전한 서울. 모두가 함께하는 서울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나주연이 조소했다.
“미쳤군요.”
중국과 전쟁을 벌였으면 어떡하든 결판을 냈어야 했다. 휴전이든 정전이든 끝맺음 없이 후퇴한 덕에 중국발 난민만 넘치게 됐다.
하루에 만 단위가 넘는 난민들이 밀려온 지 벌써 한 달. 그 속에 섞여 있는 감염자와 식인병자들은 어떻게 하겠는가?
그런 상황에서도 수도권에 인구가 집중된 나라였기에, 치안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인프라를 돌릴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아직 종말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었다.
하루에 1~2건씩 터지는 식인 사건이 빙산의 일각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못 하는 걸까? 그저 세계 최고의 치안, 테러가 없는 한국. 안전한 서울. 그러면 미래가 전부 괜찮은 걸까?
레시피가 어떤 의미였는지, 식인병자든 감염자든 그냥 두면 어떤 일이 벌어질 건지 모르는 걸까? 아니, 알고 있어도 자기들 이익이 우선이겠지.
“주한 미군이 입을 다물고 있는 걸 봤으면서도. 참···.”
주한 미군도 오진 그룹 앞에서 찍소리 못하고 있는데, 안전한 서울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겠다? 그러니까 약을 내놔라?
원료는 알아서 수입하든 어떡하든 서울 시민의 뜻이니까 따라라? 서울 시민이 한국인 전체가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나주연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본래 그런 거 아니겠는가?
평화의 시대에는 타인을 탓해도 사는 데 문제는 없었지만, 종말의 시대에는 남의 탓을 하기 전에 자기 목숨이 떨어지기 마련이라는 것.
모르면 목숨으로 배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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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가 옆으로 떨어지자, 김 양이 슬그머니 따라붙었다.
“야. 붙지 마. 떨어져. 그리고 갑자기 그 목소린 뭐야?”
“흐응- 무슨 목소리?”
아오-
소름이라도 돋는 것처럼 두 팔을 문지른 마루의 미간에 살짝 주름이 잡힐 기색을 알아챈 김 양이 바로 꼬리를 내렸다.
갸웃-
다들 이런 거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드라마 보면 살짝살짝 흐잉흐잉 하면 다 좋아하던데.
아닌가?
상처받은 것처럼 쓸쓸하게 돌아서면?
그래 그것이야. 쓸쓸함.
그럼 철혈의 백정이라도 어디 가느냐고 묻겠지?
김 양이 한껏 애융하게 돌아섰다.
끼융끼융
자. 불러라. 안 부르면 간다?
끼이융끼이융
말해. 부르라고! 진짜 간다고?
끼이이융끼이이융
···
···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