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327)
러스트 [RUST]-327
그게 왔다.
기스 라이저는 지금 이 기분이 무슨 기분인지 혼란스러웠다. 조금 전 마더 헤나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절단되는 소리를 듣지 않았던가?
마더 헤나가 어째서 죽음의 공포를 접하고도 그것에 욕심을 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도 여러 차례 블라디마루 칼린을 노리지 않았던가?
군에 입대시켜 공용으로 써보자고 충동질도 했었고, 간호사를 인질로 잡아 생포하려고도 했었다. 정신계 능력자를 이용해 장악하는 방법까지,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
모두 실패하고 디트로이트에 박혀 있는 그것을 어찌할 방법이 없어 포기할 무렵, 뉴욕으로 제 발로 오다니···. 분명히 기뻐해야 할 일인데, 상황이 그렇지 않았다.
“하하하하- 이거야 원.”
회유?
말할 수 있어야 회유를 하든 말든 하지.
조금 전 마더 모가지 썰리는 소리 들어놓고?
마더가 어떤 존재인가?
식인병자들을 실질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존재였다.
그것을 모르고 있을 리는 없을 터, 그런데도 그냥 회를 쳤다. 식인병자는 문답 무용으로 토막 낸다는 의미.
“헤나. 헤나 스프링. 가려면 조용히 가지, 갈 때도 예술적으로 똥을 싸질렀군.”
마더가 죽었으니, 그녀가 통제하고 있던 식인병자들은 폭증하는 식욕을 억제하지 못하고 날뛸 것이다. 식인병자들의 유리함이란 일반인들 속에 숨어들 수 있다는 것인데, 그게 날아가 버렸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구조를 전투로 바꿀까요?”
헤나 스프링이 죽었으니, 보낸 정예부대를 어떻게 할 것이냐는 말.
“퇴각시켜.”
지금 썰리는 소리 못 들었나?
정예고 나발이고 그게 있다면 제대로 준비가 필요했다. 무엇보다 그녀가 뒈졌으니 상황이 더러워질 게 뻔했고.
“알겠습니다.”
“본사 폐쇄하고 전부 코쿤(Cocoon)으로 옮긴다.”
지금은 손절 할 타이밍이었다.
그녀의 파밀리아가 무너진 결과, 뉴욕에 식인병이라는 이슈가 터질 게 뻔했다. 그 끝은 마녀사냥이겠지.
“자리를 잡기 전에 일이 터져 돌이킬 방법이 없다.”
아마도 최악을 생각한다면, 즉결 처분이 시작될 것이다.
“억제제가 있는데 바로 사살할까요?”
치료제를 먹으면 폭력성이나 식인 욕구를 제어할 수 있었다. 약이 없으면 모르겠지만, 약이 있는데도 사살할까?
“정상적이라면 그랬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경찰과 군을 정리하면서, 거의 동시에 파티장을 공격했다는 건, 강력하게 대응하겠다는 소리야.”
뉴욕의 밤거리는 환했다. 밝게 빛나는 간판들 사이로 사이렌 소리와 총성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마더가 죽은 여파가 시작된 것.
타다다당!
요란스러운 자동소총 소리.
뉴욕 경찰이 자동소총을 동원하고 있다는 소리는 식인병자들의 처분이 결정됐다는 뜻.
기스 라이저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덴 브라운 국장이라면 제약회사를 정리하려고 할 거다. 국토안보법을 동원해서라도.’
국토안보국 놈들은 안보에 미친놈들이었다. 미합중국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놈들. 버지니아 회사 새끼들과 국토안보국 놈들.
중요 시설인 제약 시설과 관련자들은 더욱 엄밀하게 검증하려고 할 테고. 무엇보다 그게 뉴욕에 있을 때 뽕을 뽑으려고 하겠지.
‘국토안보국을 중심으로 재건할 생각인가? 뉴욕을 시작으로 최소한 동부 지역을 확보할 생각이겠군.’
그렇다면···.
코쿤으로 자료와 인력을 옮기는 것으로 끝날 일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기스 라이저는 창밖을 바라봤다.
사냥꾼이 사냥감으로 전락하고 있는 풍경.
사이렌 소리와 총소리. 소수로 각개격파 당하는 식인병자들과 떼로 몰려들어 난도질하는 사람들. 피식자가 포식자를 사냥하는 상황.
‘병신 같은 것들···.’
식인병자를 색출한다고 끝일까? 아니었다.
중국과 전쟁이 터지지 않았다면? 변이 바이러스가 퍼져 변종들과 괴수들이 생기지 않았다면, 인류는 오래지 않아 지구환경을 돌이킬 수 없이 파괴한 뒤, 멸종했을 것.
그러니까, 어쩌면. 식인병을 통한 신인류로의 진화는 지구를 되살리는 데, 결정적인 것일지 몰랐다. 지구를 파괴하는 구인류를 제거하고 통제할 존재가 필요했고, 그것이 신인류의 역할일지 몰랐다.
어쨌든 지금 신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거점.’
신인류에게도 제대로 된 거점과 안정적인 인육 공급을 할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필라델피아, 버지니아는 어렵고···.’
남부는 텍사스를 중심으로 연방탈퇴를 선언했다. 연방을 재건하려는 동부와 제일 먼저 마찰을 빚을 지역이 남부였다.
남은 지역은 중부, 북부, 서부.
중부지역이야 콘 벨트를 비롯해 거대한 농경지가 많았지만, 신인류에게 필요한 건 농지보다 사람이었다.
인구. 그것도 밀집된 인구. 그렇다면 서부였다.
태평양을 통해 중국, 인도, 동남아라는 최대 인구 밀집지역과 이어질 수 있고, 그 자체로도 충분한 인구가 있는 서부야말로 신인류의 터전으로 삼기 가장 적합한 지역이었다.
서부로 가야 했다.
어떻게?
기스 라이저의 눈동자에 어둑한 하늘이 들어왔다.
비행선이 필요했다.
그리고 지금이 절호의 기회였다. 그게 땅에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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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에서 식인병자들의 축출이 성공했다고 합니다.] [뉴욕 경찰국도 식인병자들을 모조리 정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덴 브라운은 이어지는 보고에 주먹을 꽉 쥐었다. 지휘부 검거를 시작으로 남아있는 놈들 전부를 색출했다는 것은 1단계 작전이 성공으로 끝났다는 의미.
“다음 단계는 어떻게 됐나?”
식인병자들과 연관된 정황이 있는 자들을 모조리 검거하는 단계.
[월스트리트에 있는 회사들은 출입구를 폐쇄하고 영장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유력 가문들은 종말을 대비한 빌딩으로 들어가 외부와의 연락을 차단했습니다.]“식인병자들이 쿠데타를 노려서 색출해야 한다고 했는데도 그런가?”
[예. 적법한 절차를 거치라면서 극렬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맞는 말이었다. 처맞는 말.
침 한 번 뱉는 게, 법원 명령까지 필요한 일인가?
미합중국을 좀먹는 기생충들이 이렇게 많았을 줄이야.
“유력 가문이고 뭐고 연결된 놈들 전부 잡아. 반항하면 현장 처분하도록.”
[즉결 처분 말씀이십니까?]“그래.”
[······.]국토안보국이 독단적으로 행동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역풍에 맞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덴 브라운은 강경했다.
병신 같은 전임 국장이 하고 죽었어야 할 일이었는데, 덴 브라운이 오물을 뒤집어쓰게 생긴 상황.
그래서? 오물이 무서워 기생충을 그냥 두자고?
덴 브라운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지금이야말로 미합중국을 갉아먹는 것들을 모조리 쓸어 버릴 기회였다.
“국토안보법에 의거, 필요한 대응일 뿐. 향후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진행해.”
[···알겠습니다.]블라디마루가 가져온 식인병 진단키트는 사용하기 간편하고 직관적이었다. 흰 종이컵에 침을 뱉기만 하면 됐으니까.
코를 쑤실 필요도 없고, 시약이 어쩌고 그럴 일이 없었다. 그저 침을 뱉기만 하면 누가 봐도 확연히 구분할 수 있었다. 근데 그걸 거부해?
“반항하는 자들이야 즉결 처분한다지만, 저항 없이 연행된 자들은 치료제를 요구할 겁니다.”
“······.”
그렇겠지. 영악한 놈들일수록 그럴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지금은 놈들이라면 뿌리까지 뽑아버릴 칼날이 있지 않던가? 피도 눈물도 없는 블라디마루 칼린이 식인병자를 도륙하고 있었다. 거기에 던져 놓으면 알아서 해결될 일.
“그건 방법이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라이저, 모나더 제약부터 확인하도록.”
“아. 확실히 치료제 생산에 차질이 생기지 않으려면 그래야겠군요. 알겠습니다.”
요원이 나간 뒤, 덴 브라운 국장은 의자에 깊게 기대 눈을 감았다.
식인병자가 된다고 해서 겉모습이 변종처럼 변하는 건 아니었다.
걸리기 전과 거의 똑같았고, 피부가 깨끗해지고 신체능력이 좋아지는 등, 전반적으로 생기가 넘치는 모습이 됐다.
그것만으로도 호감이 생기는데, 지휘 개체인 마더는 식인병자 특유의 매력에 포식자 특유의 아우라가 더해졌다.
육식동물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이유가 무엇일까? 사자나 호랑이를 보고 끌리는 이유는? 그것이 육식동물이며 위험한 것을 알면서도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이유가 뭘까?
어쩌면 본능적인 반응에 가까웠다. 포식자의 호의를 피식자는 거부하기 힘들다는 자연스러운 반응.
지휘 개체의 아우라는 보통 인간이 거부하기 힘든 무형의 기운이었기에, 군에서는 제법 많은 희생이 있었다고 했다.
뉴욕 경찰국을 중심으로 갱, 마피아, 카르텔을 정리하는 과정에서도 비슷한 상황이었고.
특히 여자가 지휘 개체일 경우, 남성으로 구성된 타격대의 피해가 심했다. 굳이 식인병자가 아니더라도 매력적인 여성이 이야기를 걸면 대화조차 거부하기란 쉽지 않았으니까.
‘블라디마루 칼린에게는 통하지 않았지.’
전술카메라에 찍힌 영상은 확실히 이질적이었다.
뉴욕시 최연소 부시장에 오른 여자. 헤나 스프링이 지휘 개체, 마더였다는 것도 놀라운 일인데, 그녀가 말을 붙이기도 전에 썰어버린 손속은 경악할 지경.
지휘 개체가 위험하다는 걸 알고 있는 그와 부하들도 ‘이야기는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먼저 들 정도로 그녀의 매력은 대단했다.
‘식인병자도 치료제를 먹으면 괜찮잖아.’ 그런 핑계를 자연스럽게 떠올릴 정도였으니, 확실히 그랬다.
그런데 그런 마더를 단칼에 토막 내버린 블라디마루 칼린은? 다들 냉혹한 처리 방식에 놀랐지만, 덴 브라운 국장은 달랐다. 지금 제일 필요한 인재는 그와 같은 존재였다.
[국장님! 도시 여기저기에서 식인병자들이 강력사건을 터트리고 있습니다.] [강력사건과 총기 사건 때문에 더 이상은 백업해주기 어렵다고 합니다.]4만 명을 넘나드는 뉴욕 경찰국이 백업에서 빠진다면, 국토안보국 단독으로 참수 작전을 속행하는 건 무리.
‘놈들이 선수를 쳤군. 혼란을 틈타 도망치려는 건가?’
그렇다면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라이저 제약, 모나더 제약을 우선 정리해.”
[알겠습니다.]“놈들의 지휘부가 혼란한 틈을 타 도주할 가능성이 있다. 외곽으로 빠지는 도로를 통제하고 CCTV의 사각을 없애도록.”
덴 브라운 국장의 눈빛이 창밖 빛나는 뉴욕 시가지를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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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지방 탐사지원 비행선.
명칭에 탐사지원이라는 말이 붙어 군용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였지만, 진실은 육군에서 추진했던 초대형 비행선 건조 계획의 시제작품. 민간에서 운용되고 있는 적재량 10~12톤을 아득하게 넘어선, 적재량 100톤에 육박하는 비행선이었다.
까아아악!
“아 수고했어요. 간식은 조금 있다가요.”
토라진 까마귀를 다독이고 있는데, 푸드득- 까마귀 몇 마리가 복귀하더니 소리를 높였다.
까악.
까아악. 깍!
“사람들이 총을 쐈다고요?”
순찰하는데 다짜고짜 총질했다며 흥분하는 까마귀들.
키르키르?
그 새끼들 죽여도 돼?
간호사는 일단 달랬다. 얘네들 앵무새도 아닌데, 간혹 소리를 잘 모사했다. 고양이 소리라든지, 개 짖는 소리를 흉내 내더니, 요즘에는 사람이 쓰는 단어도 흉내 내기 시작했다.
“안 돼요. 그분이 뭐라고 하셨어요. 공격하는 건 식인병자들, 감염자들만. 기억하죠?”
까악? 까아악?
그럼? 총 쏘면 그냥 맞고만 있으라고?
“맞지도 않잖아요. 맞아도 괜찮고요.”
까악. 까아악!
괜찮긴. 아프다고!
“알겠어요. 그분께 말씀드릴게요. 순찰하느라 고생했어요.”
순찰을 나갔던 까마귀들이 얼추 돌아온 것을 확인한 간호사가 간식을 배급했다. 이번 간식은 특제 육포.
까마귀에게 특제 육포가 가당키나 하냐며 김 양이 분노했지만, 출장 나간 것이니 대접받을 만하다며 특식을 제공하겠다는 마루의 결정을 돌이킬 수는 없었다.
그렇게 가져온 특제 육포를 맛보게 된 까마귀들은 매우 만족했다. 총에 맞을 뻔했다며 흥분했던 까마귀들도 육포를 음미하기에 바빴다.
“자- 아시겠죠? 여러분이 고생하신 것을 알고 그분이 준비하신 것을. 감사해야 하는 겁니다.”
이렇게 얌전해진 까마귀들을 보라, 역시 그분의 선견지명 아니겠는가? 간호사는 소소하게 믿음이 강해졌다.
[라이저 제약이 이상하네요.]뉴욕 주요 기업과 행정기관을 해킹하던 후드의 통신.
[본사에 있는 자료를 삭제하고, 코쿤이라는 곳으로 옮기려고 하고 있어요.]그 말에 마루가 반응했다. 도망치려는 건가?
[라이저 제약 본사로 가지. 오퍼레이팅 가능한가?] [네. 지금 시작하겠습니다.]HUD에 떠오른 안내 표시에 따라 마루가 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