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330)
러스트 [RUST]-330
기이이잉-
후드와 임원용 엘리베이터 안쪽에 있는 놈들과 해킹 줄다리기가 시작됐는지, 엘리베이터가 오르락내리락 꿀렁거렸다.
“오래 걸리겠나?”
[-아니요. 저쪽이 쓰는 컴퓨터와 인공지능이 예상보다 좋아서···.]그러니까 자기는 지금 개조한 노트북 달랑 하나로 싸우고 있다는 소리.
큼- 흠- 마루는 작게 헛기침했다. ‘누가 뭐라 했나?’ 그냥 얼마나 걸리는지 물어봤을 뿐인데.
까아아악!
까악-
비상탈출구로 빠져나간 놈을 찾았는지, 까마귀 무리가 한 뭉텅이 달려들었다. 날개를 접고 끝에 있는 긴 깃털을 사용해 방향을 미세하기 조종하는 솜씨는 맹금류 못지않았다.
휘이이익
으아아악!
급강하 폭격기처럼 내려꽂히다가 목표 근처에서 발톱을 세워 찢고 지나가는 모습. 살이 쫙쫙 갈라지는 사이로 수십 마리의 까마귀들이 스쳐 지나간 곳에는 너덜거리는 고깃덩이만 남았다.
오- 마루는 작게 감탄했다.
급강하, 연속공격과 날개 깃을 이용한 에어브레이크, 급가속과 상승. 붐 앤 줌. 임벨만 턴까지. 1~2차대전 전투기 에이스라고 해도 될 법한 다양한 비행기술을 보여주는 까마귀들이었다.
마루가 감탄하는 것을 알았는지, 점점 더 과격하고 곡예비행에 가까운 짓을 하는 애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까마귀들의 공격을 구경했음에도 후드와 임원 엘리베이터와의 싸움은 끝나지 않고 있었다.
스릉-
칼을 뽑은 마루가 후드에게 이야기했다.
“난 신경 쓰지 말고 하던 거 계속해.”
[네? 네.]후드의 대답과 동시에, 마루가 휘두른 칼날이 대테러 방어 능력이 있다는 엘리베이터 문짝을 파고들었다.
끄드드드득-
콰지지지직-
임원용 엘리베이터 1층 문짝을 4조각으로 잘라버린 마루가 엘리베이터 통로로 뛰어내렸다.
쿵- 투둥- 텅-
잘려나간 문짝이 둔중한 소리를 내며 임원용 엘리베이터 천장을 두들겼다. 그 소리에 놀라 해킹 싸움에서 반응이 늦었는지, 아래로 조금 내려갔던 엘리베이터가 위로 성큼 올라갔다.
-위다. 천장에 있어!-
-쏴! 천장 쏘라고!-
-이건 특수 엘리베이터라고. 방탄이야.-
-여기서 쏘면 어쩌라고?-
-위에 있다니까!-
-씨발.-
-조용히 하세요. 거기 천장 비상문으로-
밟고 있는 엘리베이터 천장 아래에서 놈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기스 라이저는 남자로 알고 있었는데, 여자가 지휘하는 것 같았다.
‘라이저 놈은 패닉룸 같은 곳에 짱박혀 있는 건가?’
입이 많을 필요는 없었다. 세상이 이렇다 보니, 생각하는 게 나도 참 살벌해졌구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든 마루였다. 어쩌겠는가?
나서서 맑고 깨끗한 세상을 만들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눈앞에 보이는 쓰레기는 치우는 게 좋겠지. 여러모로.
엘리베이터 천장에 있는 비상문이 살짝 열리고 총구가 삐죽 삐져나왔다. 출입구를 발로 콱 밟자, 화들짝 놀란 놈이 총을 쏴댔다.
공포에 잠긴 총소리가 엘리베이터 통로를 가득 채웠다. 하는 짓을 보아하니, 제대로 훈련된 놈은 아닌 듯.
고기 방패로 어떻게 하나 반응을 보려고 이런 건가?
철컥철컥.
흐으으아
‘반응은 무슨.’
쯧-
밟고 있는 비상문 아래에서 들리는 소리를 향해 칼을 박아 넣자, 순식간에 잠잠해지는 바닥. 발끝으로 비상문을 살짝 들어 올린 마루가 틈으로 수류탄 두 발을 까 넣었다.
-으악-
-아아악-
-수류탄-수류탄-
아우성과 비명이 수류탄 폭음에 묻혔다.
[치지지직- 문이-치익- 열립—]전신에 상처 난 자들이 먼저 나왔고, 그 뒤로 엄중한 경호를 받는 여자가 뒤따랐다.
‘이 새끼들. 식인병자면서 엄살은.’
하긴, 수류탄을 몸으로 실험해 보지는 않았을 테니까 놀랐겠지. 이제 실험 데이터가 아닌, 자기 몸뚱이로 경험했으니 의기양양하겠네.
후드는 마루가 만든 틈을 타, 주변 전자기기를 완벽하게 장악했다. 동작감지기, 하중감지기 같은 센서를 비롯해 적외선 카메라와 CCTV까지 통제에 성공했다.
[주변 전자기기 장악했습니다.]기회를 놓치지 않는 후드였다.
해킹을 막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인 여자가 마루를 불렀다.
“블라디마루 칼린 씨. 여기 있는 것 알고 있습니다. 잠시 대화를 할 수 있을까요?”
수류탄 파편으로 엉망이 된 놈들이 주변이 뚫어지게 살폈다.
“은신 기능이 있는 리퍼 슈트를 입고 있습니다. 주의하세요.”
“예.”
조그맣게 경호원들에게 경고하는 여자.
기스 라이저가 어디에 있는지, 저 여자라면 알 것 같았다.
마루의 시선이 여자가 들고 있는 노트북으로 향했다. 수류탄 파편에 여기저기 상한 노트북을 들고 나왔다? 상한 노트북을 버리지 않은 이유가 있다는 소리.
뭉클- 검붉은 느낌의 살기가 일순간에 공간을 잠식했다. 수류탄에 맞아 흥분했던 놈들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흐윽
크윽
폐와 심장을 움켜쥔 것 같은 살기에 호흡곤란이 온 놈들이 무릎을 꿇고 숨을 쉬려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총도 내버리고 목과 가슴을 부여잡은 채 꿈틀거리는 놈들이 나올 즈음, 마무리를 시작하는 마루.
그저 가볍게 찔렀다 빼는 행동. 질기고 단단한 식인병자라고 하더라도 이클립스로 목을 찔러 비틀자, 그것으로 끝이었다.
실로. 덧없고 허무한 결말.
피할 수 없는 죽음에서 도망치기 위해 굳어버린 사지로 저항해 봤지만, 확정된 결과 앞에서는 의미 없었다.
푹-
칼날이 틀어박히고
우드드득-
칼날이 목뼈를 뒤틀었다.
“제. 제바···.”
푹- 우드드드득-
농부가 밀밭을 추수하는 것같이, 도축업자가 가축을 도축하는 것 같이. 증오나 분노 없는 차가운 행동이었기에 더욱 무서웠다.
마루는 살려둘 생각이 없었다. 부시장 년을 잡았을 때 겪지 않았던가?
이것들 처음 살기를 먹었을 때는 저항하지 못했지만, 한 번 경험하고 나서는 버티는 것들이 나왔다. 그러니 지금 살기를 경험한 놈들은 처리 확정이었다.
삽시간에 경호원을 비롯한 직원들을 전부 잃어버린 여자의 눈동자는 공허했다. 이걸 생포하겠다고 했다고? 이딴 게 같은 생명체인가?
‘신인류?’
여자는 어쩐지 히죽 웃음이 나왔다. 신인류고 나발이고 이런 거 앞에서는 의미 없었다. 기스 라이저 회장은 이걸 안 걸까? 알았다면 왜 막지 않았지?
막았다면 불만이 생겼겠지, 남은 자들은 전부 공명심이 강하거나 승진이나 대우에 불만이 있는 자들이었으니까.
무엇보다. 그녀는 느끼고 있었다. 조금만. 작은 계기라도 있으면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그러니까 자신도 지휘 개체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감각.
기스 라이저 회장에게서 떨어진다면 기회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했던 생각. 숨겼지만, 간파됐던 건가? 그래서 두 번 묻지 않고 그러라고 했던 거고?
뭔가 이상한 미소를 짓는 여자의 모습에 마루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거 미친 거 아니야?’
그래도 이거 하나 남았으니, 마루는 기대하지 않고 여자에게 물었다.
“야. 기스 라이저 어딨어?”
“서부 지역으로 갔습니다.”
어?
즉답?
당연히 대답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마루가 슬그머니 칼을 내렸다.
뭐야 이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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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호화 요트를 중심으로 중대형 규모의 크루즈 2척을 포함한 11척의 선단이 파도를 가르며 나가는 모습.
“초계함이 멕시코 해역까지 호위해준다고 합니다.”
“고맙지만 사양한다고 해.”
“옛.”
수석 비서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생각보다 피해가 크지 않은가 봅니다.”
전력의 80~90%가 날아갔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 태평양 7함대에 비하면, 대서양 2함대는 생각보다 많이 남은 것 같았다.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겠지만, 버지니아 햄프턴 해군기지가 날아갔으니, 어느 쪽이든 선택해야 할 거다.”
현재 가장 큰 세력은 뉴욕을 중심으로 한 동부와 텍사스를 중심으로 한 남부였다.
그러니까 연방의 재건을 꾀하는 동부, 연방탈퇴를 선언하고 독자 노선을 가겠다는 남부. 잔존 함대는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함대가 둘로 쪼개질 가능성도 있군요.”
“그럴 확률이 높지.”
“군부의 결정이 힘들겠습니다.”
“아- 그렇겠지. 그래도 결정해야 할 거다.”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라질 테니까. 연방해체론은 생각보다 뿌리가 깊었다. 산업구조의 문제, 자원 분배의 문제를 비롯해 인종갈등까지 엮여있는 것이었으니까.
지금이야 핵전쟁 여파 때문에 생존이 우선이라 잠잠하지만, 곧 문제가 터질 일만 남았다.
“군인들 월급부터 문제가 될 테니까.”
아이러니하게도 미합중국의 돈, 달러는 국가가 발행하는 화폐가 아니었다. 간단히 말해 사기업이 돈을 찍어 내고, 그걸 국가에서 통용하는 시스템.
팍스 아메리카 시대에는 장점이든 단점이든 그냥 지나갈 수 있었다. 미합중국이 연방으로 굳건했을 때는 달러가 가진 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었지만,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어떨까?
기스 라이저의 눈이 짙푸른 바다를 향했다.
덴 브라운 국장은 알까? 그가 그렇게 추구하는 미합중국의 재건, 위대한 연방을 부활시키겠다는 애국심 가득한 행동이 누군가의 이익을 대변할 뿐이라는 걸.
기스가 보기엔, 덴 브라운 국장 같은 자들은 기존의 세계가 끝났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모든 것은 시간문제일 뿐.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나면,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이 변했다는 걸.
‘그러니까 지금은 좋은 꿈 꾸길.’
앞으로 꾸는 꿈은 언제나 악몽일 테니까.
신인류가 지배종이 될지, 구인류가 다시 부흥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역사는 언제나 같은 대답을 했다.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자,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자만이 살아남았다고.
적자생존이란 그런 것 아니겠는가?
“안타깝군.”
제법 쓸만한 인재였는데. 블라디마루 칼린을 생포하겠다며 본사에 남은 1비서 니나 로건을 떠올린 기스 라이저는 드물게 안타까워했다.
부시장 헤나 스프링의 밑에서 구르던 자신이 진화해 지휘 개체가 됐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니나 로건도 진화의 조짐이 있었다.
상반되는 감정. 비서가 지휘 개체가 될지 모른다는 불쾌함과 아랫사람이 마더가 됐어도 잘만 다룰 수 있다면 세력이 더 커지고 공고해질 수 있다는 기대감이 뒤섞였었다.
니나 로건도 자신의 진화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본능적으로 알았는지 본사에 남겠다고 해서, 두말하지 않고 그러라고 했건만. 역시 아쉬웠다.
“니나 로건이라면 성공할 수 있을 겁니다. 생포는 어렵더라도 최소한 잠시나마 무력화시킬 겁니다.
블라디마루 칼린이 활약한 영상은 지겹도록 분석했기에, 수석 비서는 가능성 있다고 생각했다. 분명 그는 뛰어난 칼잡이지만, 다양한 첨단 장비를 갖춘 용병들이 신인류로 진화까지 했으니, 붙어 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랬으면 좋겠군.”
기스 라이저는 짧은 대답을 끝으로 망망대해를 감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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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안보국 작전통제실은 또 한 번 시끄러워졌다.
블라디마루 칼린에게 비행선을 줬더니, 변이 괴수로 보이는 까마귀를 싣고 왔다는 이야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수천 마리가 넘는.
[그것들 좀 어떻게 해봐요. 비행선에서 쏟아져 나왔단 말입니다.]뉴욕경찰국장이 하소연했다. 까마귀들이 산채로 사람을 해체하는 것을 목격한 자들이 SNS와 뉴투브에 올려 신고가 빗발치고 있다고.
[공포에 질린 사람들이 사고를 치기 전에 어떻게 부탁합니다.]“후- 알았습니다.”
덴 브라운 국장은 숨이 답답해졌다.
세상에 비행선에 변이 괴수를 태워 오다니.
‘아니지. 괴물 까마귀들이 비행선에 얌전히 타고 왔다는 건···.’
길들였다는 건가? 괴물 까마귀를 떼로? 인공위성이 날아가기 전에 찍은 위성사진이 떠올랐다. 블라디 아크 타워를 배회한 검은 구름. 까마귀 때문에 위성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덴 브라운 국장의 생각이 복잡해졌다.
[국장님. 라이저 제약을 진압했다는 연락입니다.]“그래? 좋아. 생산시설부터 확보하고, 원료 재고부터 파악해. 라이저 제약 직원들은 몇이나 잡았나?”
[···그게 VX 가스를 본사에 뿌리고 진압했다고 합니다.]뭐?
VX 가스?
그거 씨발 잔류성 미친 듯이 긴 거 아니야?
그걸 그냥 뿌렸다고?
뒷골이 띵- 울린 덴 브라운이 할 말을 잃었다.
“하아- 그래서 블라디마루 칼린은 어디에 있지?”
[예. 라이저 제약에 있던 식인병자들을 처분하고, 갱단을 정리하겠다고 갔습니다.]아니, 갱단이 어디 있는지 어떻게 알고.
“···그래. 갱단 정리가 끝나면, 카르텔이랑 마피아 쪽도 손 봐야 한다고···.”
“국장님. 블라디마루 칼린에게서 직통 연락입니다.”
덴 브라운 국장이 전화를 넘겨받자마자, 마루가 본론을 말했다.
[방금. 갱단, 카르텔, 마피아 덩치 큰 애들 정리를 끝냈습니다. 약속대로 이제 가보도록 하겠습니다.]“···예? 식인병자들. 지휘 개체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 범죄조직을 전부 정리했다는 말입니까?”
[예. 요원들 보내서 확인해 보세요. 그럼 이만.]당황한 덴 브라운 국장이 잠시 생각을 정리할 틈을 주지 않고 통신을 종료한 마루였다.
“···들었지? 지금 바로 확인해. 정말 전부 정리했다면, 어떻게 했는지 알아보고. 그리고 블라디마루 칼린에게 연락 걸어.”
일단 까마귀부터 해결해야 했다.
“국장님!”
또 왜?
“까마귀들이 비행선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비행선이 고도를 높인 채 뉴욕에서 벗어나고 있다는데요?”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