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332)
러스트 [RUST]-332
잠시 밝아졌던 새벽이 까마귀 떼로 인해 순식간에 어둑하게 변했다.
붉은 태양과 검은 까마귀 떼, 그리고 거대한 비행선 어우러진 하늘은 비현실적이었다.
그것은 마치···.
“HOLY S···.”
“Oh My···.”
국토안보국 요원들이었거나 다른 기관 출신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 주변에서 열렬한 침묵으로 경외하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다들 미쳤나?
저게 구원자라고?
어떤 사람들의 마음에 공포와 충격이 떨어진 것처럼,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는 신비와 경배가 가득 차올랐다.
보라. 저 장엄함을.
까마귀 무리도 경배하는.
저분이야말로 진정한 그분이시다.
마루의 귀환을 환영하러 모인 사람들의 마음이 어떻든, 이들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비현실적이었고 신비스러웠으며 무엇보다 압도적이었다.
고오오오오-
어느새 훌쩍 가까이 다가온 비행선의 아랫부분이 열리고,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는 까마귀들.
까아아악!
까아악!
후드드득- 칼날 같은 검은 깃털이 금속처럼 반짝이는 모습. 사방으로 뻗어 나간 까마귀들이 호위하는 까마귀들과 뒤섞여 검은 구름처럼 하늘을 뒤덮었다.
우우우웅-
검은 구름을 뚫고 내려오는 거대한 비행선의 모습.
그분이다.
그분이 오셨다.
그분이 돌아오셨다.
까아아악-
까아아악-
까마귀들이 기뻐하는 모습, 소용돌이치며 회전하는 광경에 심력이 약한 몇 명은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마루의 무사 귀환을 환영하기 위한 행사가, 공포체험, 신비체험으로 변하겠다 싶은 무렵.
멍하니 착륙 장면을 구경하던 김 양이 화들짝 편집한 음악을 틀었다.
[앗- 음악. 음악. 디아나 음악.]너무 장엄해서 구경하던 나머지 깜빡 놓칠 뻔했다.
환영식에 음악이 빠질 수야 있겠는가? 인공지능 년들을 닦달해 만든 웅장한 음악이 외부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졌다.
빠빠밤!
두구두구두구– 빠밤!
-아아- 위대하신–
영도자? 우리를 지키시는–
-위대한? 은혜–
비행선이 공터에 착륙하고 크게 열린 문으로 나오던 마루의 이마에 살짝 힘줄이 돋았다.
“디아나. 음악 꺼.”
–백두에서 한라까지—
–반도에서 북미까지—
딸깍.
삐이이이익—
“······.”
“······.”
“······.”
뚝 끊긴 외부 스피커에서 들리는 치직-소리가 선명한 가운데, 어쩐지 불편한 마루의 시선이 김 양을 향했다.
아니 왜?
환영식 해줘도 불만이야?
김 양은 억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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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서란 여러 상황에 대비할 수 있어야 했다.
특히 표정관리는 중요한 부분 가운데 하나. 만에 하나 곤란한 상황이 생겼을 때, 안정적인 포커페이스는 윗사람을 모시는 기본이었으니까.
생각해 보라, 윗사람이 곤란한 상황에서 비서란 것이 풉, 큽, 큭, 해버리는 경우를. 그러니까 어떤 경황없는 상황이 닥친다고 하더라도 편안하게 넘길 수 있는 미소와 포커페이스는 비서의 미덕 가운데 하나였다.
흐읍-
숙련된 비서인 니나 로건은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까마귀들을 지배하는 존재?
이걸 지배라고 할 수 있을까?
텔레파시?
수천이 넘는 까마귀 떼를 텔레파시로 통제한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불가능해.’
바로 자신이 곁에 있었다. 까마귀들에게 텔레파시를 썼다면, 주변에 있는 자들의 뇌리에도 뭔가 영향을 끼쳐야 했다.
‘아무렇지 않아. 텔레파시는 아니야.’
그러면?
까마귀들은 자발적으로 그를 경배하고 있었다.
그것은 경배이자 경외, 숭배라고 밖에 다른 표현이 떠오르지 않았다.
수천의 까마귀들이 내뿜는 의지가, 기백이 느껴졌다.
하위 개체를 지배하는 마더나 파더도 이런 진정한 섬김은 받지 못했다. 하다못해 자기도 그렇지 않았던가?
지휘 개체의 지배는 본능적이었다. 피할 수 없는 굴레이자, 거역할 수 없는 목줄과 같은 것.
그러나 저 까마귀들을 보라.
진심으로 기뻐하며 경배하는 모습을.
환영하러 나온 인파를 보라.
그들의 두 눈동자에 서린 경외와 두려움을.
니나 로건의 가슴 속에서 어떤 열망이 피어올랐다. 그 열망은 뜨거운 기운으로 변해 그녀의 전신을 내달렸다.
나도. 경배받고 싶어.
작은 씨앗이 발아했다.
‘이건 뭔 아수라장이야?’
사람들이 죽 나와서 기다리고 서 있는 것도 불편한데, 빨간 맛이 떠오르는 이상한 음악까지 울려 퍼지자, 마루는 불편함을 숨길 수 없었다.
이건 분명히 김 양 짓이었다.
‘네가 원흉이구나?’ 김 양을 바라보니, 세상 억울한 표정을 짓는 그녀였다.
자기 딴에는 좋다고 열심히 한 거 같은데, 미리 말을 하던가.
까마귀들이야 본질이 새니까 그런다 치지만, 사람들은 뭔데?
그렇지 않아도 후드와 비서 때문에 살짝 짜증이 난 상황에서 불편한 환영식까지 쌍으로 펼쳐지자, 꿈틀 기운이 살짝 흘러나왔다.
분명 살기는 아니었다. 살기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미약한 기운이었지만, 사람들이 느끼는 건 그게 아니었다.
무언가 짓누르는 느낌. 기온이 뚝 떨어진 것만 같은 감각.
저벅저벅.
외부 스피커에서 새어 나오는 치이익-소리와 무심하게 울려 퍼지는 마루의 발걸음 소리가 사람들의 뇌리에 깊게 파고들었다.
PD는 떨리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분의 위엄은 숨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보라. 그분의 위엄에 굴복한 만물을. 그 발걸음 앞에 대기(大氣)가 엎드렸고, 태양도 빛을 잃었다.
그분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셨다. 구원의 순간에도 그분은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셨었다.
‘하지만.’
그분을 중심으로 굳건한 믿음이 세워지려면 이런 환영식은 꼭 필요했다. 그분의 위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그분의 진실함을 전하려면 이 방법이 제일이었다.
누가 그들을 다스리고 있는지.
누가 그들을 보호하고 있는지.
인간이란 쉽사리 변하지 않았다. 하루하루 밤과 낮으로 기적을 베풀었던 신을 배신하는 게 인간이었다.
그러니 그분이 실재한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라, 실존하는 존재가 곁에 있다는 것을···.
그런 PD의 눈에 들어온 사람들.
경외하고 경배해야 마땅하건만, 불손한 눈빛, 불안한 낯빛을 감추는 자들.
눈으로 보았음에도 깨닫지 못하고,
몸으로 경험했음에도 돌이키지 않는다면?
그런 불신자들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
PD의 표정이 차갑게 변했다.
저벅저벅
스쳐 지나가는 블라디마루 칼린의 모습을 보며 국토안보국 출신 팀장은 식은땀을 흘렸다. 일본에서 활약한 그의 영상을 봤다. LA에서 갱단과 약쟁이를 정리한 작전도 알고 있었다.
블라디마루 칼린에 대해 군부와 국토안보국, 연방정부의 공통된 생각은 미합중국의 안보를 담당할 영웅으로 만들자는 것이었다.
영웅- 그러니까 히어로. 미국은 히어로에 열광하는 나라였다. 그리고 블라디마루 칼린은 그 히어로에 가장 근접한 인물이었다. 능력적으로는.
하지만 지켜본 결과 글러 먹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영웅은 능력도 있어야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게 있었다.
그것은 자기희생.
없다면 최소한 자기희생의 메타포라도 있어야 하는 법이었다. 비유적이든 아니면 은유적이든 희생의 메타포가 없는 존재가 어찌 히어로가 되겠는가?
피자 배달 일을 하는 거미맨이 위험을 무릅쓰고 시민을 지키는 것이나, 세계에서도 손가락에 꼽을 부자인 웨인이 홀로 핵을 운반해 텅 빈 바다로 향하거나, 빨간 망토를 휘날리는 인간형 외계인이 지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행위는 하나의 주제를 관통하고 있었다.
‘영웅은 값없이 희생한다.’는 것. 그래서 이야기 속 그들은 빛났고 영웅이었다.
히어로와는 달리 우리는 받은 만큼 싸우는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다.
‘용병’.
블라디마루 칼린의 능력은 히어로가 되기에 차고도 넘쳤지만, 그의 행동양식은 뼛속 깊은 곳까지 용병이었다.
실로 안타까울 따름이었지만, 그저 초인적인 칼잡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지금까지는.
‘씨발.’
저벅저벅
치이이이익-
이제 저걸 ‘용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애초에 저게 같은 인간이기는 한 걸까?
모르겠다.
팀장의 입에서 길고 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협상이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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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들은 마루의 귀환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식인병자들을 정리하러 간다고 했으니, 이번에는 기대해봄 직했다.
다른 도시도 아니고 잠들지 않는 도시(City that Never Sleeps) 뉴욕이니, 분명히 빈손으로 돌아오시지는 않았으리라.
그래 그분께서는 우리를 잠들지 않게 할 것이다.
오오오-
살아있는 샘플과 함께 밤 셀 생각에 연구원들은 흥분했다. 과연 몇이나 가져오셨을까?
열? 스물? 설마 서른이 넘는 건 아니겠지?
그럼 우리 한 달은 연구실에서 박혀 있어야 하겠는데? 좋은걸?
“이번에 개량한 변이 바이러스 치료제 말입니다. 공개하실 겁니까?”
“공개해야죠.”
오진에서 전 세계에 무상으로 공개한 치료제 레시피. 블라디 아크 연구원에서도 그것을 연구했다. 그래서 나온 결과는 하루에 한 알 정도로 이상 욕구를 억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시뮬레이션 예측.
임상 결과 분노조절 장애인 사람들은 확실히 효과를 봤고, 이제 살아있는 식인병자에게도 효과가 있을지 확인하면 됐다.
일주일에 한 번만 먹으면 되는 오진의 약보다는 부족하지만, 하루에 세 번을 먹는 약보다는 월등히 뛰어난 약이었다.
[수석 연구원은 중앙회의실로 와주시기 바랍니다.]디아나의 녹색 불빛이 깜빡였다.
“다녀오지.”
“이번에는 먼저 챙기는 거 없는 겁니다?”
“많다고 두 명은 안 됩니다. 아시죠?”
“이번에도 실험체에 먼저 침 바르면 진짜 권법 마렵습니다.”
“아니라니까 그러네.”
“믿습니다.”
“진짭니다.”
“알았다니까.”
수석 연구원이 중앙회의실로 들어서자, 마루가 말했다.
“올 사람 다 온 것 같은데, 시작하지요.”
마루의 말에 PD가 현황을 보고했다.
“예. 우선 외벽 공사 현황입니다.”
모니터에 지도가 표시됐다. 흑백으로 표시된 지도에 붉은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외벽 공사현장이었다.
“차단공사는 어제부로 마무리됐으며, 내부 보강공사와 하수도 공사만 남았습니다.”
빌딩과 건물을 연결해 만든 외벽이므로 보강공사는 필수적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런데 공사하는 도중 분란이 있었다고 하던데 그건 어떻게 됐습니까?”
잠시 생각을 고른 PD가 설명을 시작했다.
“외부 인력을 받아들이자는 사람들과, 믿음이 없는 자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분열과 타락을 일으킬 것이라는 사람들의 갈등이 있었습니다.”
“-있었다는 것은. 지금은 해결됐다는 겁니까?”
“실언했습니다. 죄송합니다.”
PD가 깍듯하게 사죄했다.
아니, 죄송할 것까지는 아닌데. 큼- 마루는 작은 헛기침으로 불편함을 떨쳐버렸다.
“듣기로는 거주민들의 친인척들이라고 하더군요. 확인은 해보셨습니까?”
“예.”
규칙대로 하자면, 일단 한 번 나간 사람은 돌아올 수 없었다. 그러니까 밖으로 나갔다가 돌아오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규칙대로 하면 되는 일이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친인척들이었다. 영역이 넓어졌으니 받아들여도 되지 않을까 하는 의견과 그들이 들어오면 내부 갈등 세력의 규모가 커지는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것을 반대하는 측이 팽팽하게 맞섰다.
둘 다 일리 있는 말이었지만 마루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일단 받지 않겠습니다.”
전 보안팀장이 반론하기 전, 마루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감염자 웨이브 때, 블라디 아크 타워 인근 생존자들 다수가 사망했습니다. 거기에 비교적 안전한 지하 대피소에는 변종들과 식인병자 그리고 거대 쥐가 들끓었고요. 그 모든 위험에서 살아남을 자들이라면 굳이 블라디 아크 타워가 아니더라도 생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군요.”
능력이 있는 게 아니라면, 누군가 블라디 아크 타워로 침입하기 위해 친인척 타이틀을 쓰고 있는 것이고.
“친인척이 됐든, 누가 됐든. 적합하지 않은 사람은 받지 않겠습니다. 제 방침에 불만인 사람들은 전부 내보내도록 합니다.”
“전부 말입니까?”
“예. 전부. 지금 당장. 내보낼 사람들 분류하도록 하세요.”
팀장은 눈을 꾹 감았다. 타협의 여지가 없었다.
‘불만이면 나가라.’
처음부터 끝까지 블라디마루는 일관적이었다. 이건 영웅도 아니었고, 구원자도 아니었다.
“이대로 쫓겨난다면 전부 죽을 겁니다.”
어쩌라고?
“이곳 주변에 자리 잡는 것까지는 그냥 두겠습니다.”
살려는 드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