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340)
러스트 [RUST]-340
기스 라이저는 자기가 본 것이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눈으로 보고도 이해할 수 없는 영상. 정확하게 말하자면 눈으로 볼 수 없었다는 사실.
‘적의 위치를 파악하지도 못했다고?’
신인류는 식인이라는 패널티를 빼고는 모든 것이 압도적이었다.
근력, 체력, 순발력, 반사신경에 이르기까지 최소 2배 평균적으로 3배에 달하는 신체 능력을 고려하면, 생존능력은 10배 이상 차이 난다고 봐야 했다.
2인 1조로 투입된 현장에서 한 번의 총성이 울리고 2명이 동시에 쓰러진다. 이게 가능한가?
“영상 느리게 재생해봐.”
그렇게 계속 느린 재생으로 확인한 뒤에야 총성이 길게 이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 발의 총성이 아닌, 2발의 총성이 한 번에 묶인 상식을 벗어난 총질.
“What The···.”
진기명기, 서커스 같은 데 있어야 할 총잡이가 왜 저기 있는 거지? 총잡이라고 하더라도 38구경이나 40구경으로 신인류를 잡는 건 어려웠다.
철갑탄이라고 해도 두개골을 뚫기 쉽지 않을 테고, 심장은 더더욱 불가능했다. 그럼 대체 어떻게 죽인 거지?
LA로 정탐 보낸 10명 가운데 6명이 바닥에 누운 상황. 심지어 어디서 쐈는지,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더 이상의 희생은 의미 없었다.
“작전 중지하고 돌아오라고 해.”
“알겠습니다.”
남은 4명 가운데 돌아온 직원은 둘 뿐이었다. 그 짧은 시간에 또 2명이 죽은 것.
“미치겠군. LA는 포기한다. 위로 올라가지. 샌프란시스코로.”
기스 라이저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적이 도사리는 도시에 들어가겠다고 할 만큼 무모하지 않았다.
“한꺼번에 내리면 끝장을 볼 수 있을 텐데요?”
“그래. 그렇겠지.”
괴물 같은 총잡이가 천 단위로 있는 게 아닌 이상, 이기는 건 이쪽이었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수천 단위가 한꺼번에 쏟아져 내려, 총질하는 놈들을 족족 죽여 버리면 그 뒤에는? 이것저것 귀찮게 엉기는 것들 본보기로 잡아먹고 난 다음에는?
도망치는 자들이 생길 것이고, 식인병자들이 장악한 도시라는 소문이 돌고 나면 남은 것은 끊이지 않는 전쟁뿐이었다.
서부까지 온 이유가 무엇이던가?
신인류의 거점을 만들려고 했기 때문 아니었나?
거점이라고 함은 안정적인 생산과 소비, 자연스러운 수요와 공급이 이뤄지면서 자생할 수 있어야 오래가는 법이었다.
“우리는 끝장을 보려고 온 게 아니라 거점을 만들려고 온 거다. 끝장은 거점을 만들고 나서 봐도 돼.”
기스 라이저가 이끄는 선단은 북으로 올라갔다.
그렇게 북상하는 선단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대장. 저 새끼들이 도망치는데요?”
“그래?”
유 이사는 가죽 부츠를 신은 다리로 방금 죽인 2마리를 하나씩 뒤집었다. 철컥- 카우보이 부츠 뒷굽에 달린 박차가 쇳소리를 내며 빙그르르 돌았다.
하나는 왼쪽 눈, 나란히 널브러진 놈은 오른쪽 눈에 뚫린 큼지막한 구멍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동굴처럼 푹 들어간 속에서 불꽃이 이글이글 피어오르고 있었다.
꿈틀.
“흐이이익- 이거 산 거 아닙니까?”
“새끼 겁은 많아서.”
툭- 철그르르. 툭- 차르르륵
발끝으로 시체를 건드려 견적을 잡는 유 이사. 그녀의 고운 미간에 살짝 주름이 잡혔다.
“이것들 사람이 아니네.”
유 이사의 말에 부하들 인상이 와락 구겨졌다.
‘이 뭐···.’
‘이 양반은 발가락 끝에 센서라도 달았나?’
‘어쩌긴 대장이 그렇다면 그런걸.’
“아. 예···.”
“변종은 아닌 것 같은데요.”
“옷도 멀쩡히 입었는데?”
“얘들 이거 무기도 그렇고 방탄복 이건 진짜 좋은 겁니다.”
부하들이 한마디씩 했다.
“이 새끼들 진짜 뭐지?”
“저번에 온 용병 떨거지도 아니고.”
“아까 대장이 한 말 못 들었어?”
“이것들 인간이 아니라잖아?”
“그럼 뭔데?‘
칙- 연초에 불을 붙은 유 이사가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차이나타운.”
차이나타운? 그 식료품점 지랄 났던 거?
“어?”
“설마 그놈들이란 말입니까?”
“그 새끼들, 인육에 눈 돌아간 새끼들 아닙니까?”
사람 하나 잡아먹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하게 있다가 갑자기 발작하는 새끼들. 이게 참 더러운 새끼들이었다.
깔끔하니 멀쩡한 것처럼 보이다가 갑자기 사람 목을 물어뜯어 경동맥을 날려버리는데 선수인 새끼들.
“우드 그 병신이 그렇게 갈 줄 몰랐지.”
“그냥 이쁘다고 껄떡대다 한 방에 갔잖냐.”
“제대로 해보기나 하든지.”
“그러니까 병신이지.”
산전수전 다 겪은 마초들이 어이없게 목을 물릴 일이 있겠는가? 입 벌리고 달려들면 아구창을 날려 버릴 텐데.
놀랍게도 있었다. 남녀가 은밀하게 분위기를 잡고 있는데 갑자기 파트너가 목을 물어버리면? 그건 속수무책이었다.
안타깝게도 식인병자들이 제일 식욕을 느끼기 쉬운 때가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식욕과 성욕이 서로 얽혀있다는 속설처럼, 식인병자들은 멀쩡하게 있다가도 분위기가 달아오를 즈음 먹잇감의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아주 그냥 잡아 족쳐야 한다니까.”
“구분은 어떻게 하고.”
“졸라. 미치겠다 요즘.”
“그냥 참아.”
그전까지는 잘 참고 일반인 코스프레를 하다가도 꼭 그때만 되면 그랬다. 어쨌든 식인병자라면 지긋지긋했던 부하들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저기 도망치는 새끼들이 전부 식인귀란 말입니까?”
“젠장. 중형 크루즈가 2척이나 있었다고.”
“못해도 수천 단위라는 소린데. 저 숫자의 식인귀가 사나흘에 한 명씩만 잡아먹어도 보름이면 최소 만 명은 희생될 겁니다.”
“그 새끼들 싱싱한 시체 아니면 먹지도 않습니다.”
후- 하얗게 연기를 뿜은 유 이사가 나른한 목소리로 부하들을 닥치게 했다.
“주둥이 다물어. 오버하지 말고.”
유 이사는 죽인 놈들의 행동을 떠올렸다. 전문적인 군사훈련을 받은 움직임은 아니었다.
주변은 잘 살피는데, 은폐는 초짜. 보안이나 경비 애들이 그런 버릇을 가지고 있었다. 월드 시큐리티 애들도 그랬었고.
툭-철르르르
발끝으로 툭 찬 시체가 반 바퀴 돌아 뒤집혔다. 등판에 있는 마크. 동그란 원 속에 기울어진 알파벳이 들어간 문양.
“무슨 마크인지 아는 사람?”
“······.”
“어디서 많이 본 마크인데?”
“이거 라이저 제약 같은 데요?”
“라이저 제약?”
“예. 그 이런저런 약 만드는 제약회사요.”
“맞다. 라디오에서 들었는데 말입니다. 이번에 변이 바이러스 제약 레시피가 공개돼서 라이저 제약과 모나더 제약에서 생산한다고 했었는데.”
유 이사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그러니까 식인귀들 식인 욕구 치료하는 약을 이 새끼들이 생산한다고?”
“아. 예전에는 100% 수입이었는데, 이제는 자체 생산한다고···.”
툭- 차르륵 다시 시체를 발끝으로 뒤집은 유 이사가 이를 드러냈다.
“식인병 치료제 생산하는 새끼들이 식인귀면 그게 무슨 의미냐?”
어? 그러네?
얘네들이 라이저 제약 새끼들이라면 뭐지?
뉴욕에 본사에 있는 새끼들이 왜 여기까지 왔고?
“멀티?”
“아니지 이건 본진 이동 같은데?”
멀티든 본진 이사든 확실한 건 하나, 약 만들던 새끼들이 다 집어치우고 여기로 기어들어 왔다는 것. 그렇다면 그 이유는. 툭- 반쯤 남은 연초를 비벼끈 유 이사가 차갑게 말했다.
“개새끼들이 이 동네에서 알 까려고 한다는 거다.”
휘이익- 휘파람을 불자, 멀리서 울부짖는 소리와 함께 바닥이 흔들렸다. 두두두두- 온몸이 근육질로 뭉쳐진 커다란 흑마가 유 이사를 향해 달려와 애교를 부렸다.
푸르르릉-
애교를 부리던 흑마가 푸릉푸릉 냄새를 맡는가 싶더니, 널브러진 시체를 향해 코를 킁킁-거리곤 푸르르륵- 몸을 떨었다.
순간 번뜩, 사납게 눈을 치켜뜬 흑마가 붕 치켜든 앞발을 내리찍어 시체의 머리통을 터뜨렸다.
뻐석- 뻐그극- 그 단단한 식인귀의 머리통을 박살 낸 것도 모자랐는지, 쿵쿵. 콰직- 쿵쿵. 와그작- 자근자근 짓밟아 다져버리는 흑마.
시체를 새벽에 흔히 보이는 길바닥 피자로 만들고 나서야, 언제 그랬느냐는 듯 유 이사에게 촐랑촐랑 애교를 부리기 시작하는 흑마의 모습에 부하들이 진저리쳤다.
‘왜 얘가 뭘 어쨌다고?’
잘했다고 흑마의 목덜미를 툭툭 친 그녀가 7피트(2m 10cm)가 넘는 높이에 있는 안장에 훌쩍 올라타며 말했다.
“저 새끼들 알까기 전에 치운다. 가자.”
“옛.”
“둘로 나눈다. 빌리.”
“예이-”
“애들 반 데리고 LA 지켜.”
“넵. 들었지?”
말에 탄 카우보이들이 둘로 나뉘었다. 그리고 한 무리가 해안도로를 따라 북상했고, 다른 한 무리는 LA 항만 수리 공사를 하는 방향으로 들어갔다.
그것을 먼 곳에서 망원경으로 쳐다보던 자들이 누런 금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에이 더러운 년. 드디어 올라가네.”
“두목 갔습니다.”
“그 미친년 샌프란시스코 쪽으로 갔습니다.”
“그래? 남은 놈들은?”
“절반 정도요.”
“좋네. 씨발. 남의 새끼 죽이면 자기 새끼도 뒈진다는 걸 보여주자.”
오우!
LA는 강제로 깨끗해졌다. 사태 초기 마루가 싹 쓸어버렸기 때문. 하지만 천사의 도시는 언제나 악에 타락할 준비가 된 곳이었다.
중국과 마찰이 심해질 무렵, 다시 슬금슬금 자리를 잡기 시작한 갱단과 카르텔은, 핵전쟁을 기점으로 대놓고 활개를 치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범죄자들 전성시대였다. 아주 짧은.
샌프란시스코와 일대를 평정한 유 이사가 부하들과 강림했기 때문. 갱단과 카르텔은 굴러 온 돌을 쳐내려고 했지만, 시원하게 바람구멍이 뚫린 채 도주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반쯤 괴멸된 뒤, 외곽에서 기회를 노리고 있던 그들은 유 이사가 떠난 LA를 급습했다.
“살려주세요.”
“사람 살려!”
으직- 산채로 해체한 시체를 게걸스럽게 뜯어 먹은 갱과 카르텔 조직원들은 아직도 배가 고팠다.
“병신 새끼들이 지키기는 뭘 지킨다고.”
방어선을 펼친 유 이사의 부하들을 필사적으로 일반인들을 지켰지만, 역부족이었다.
“빌리 부대장. 탈출해.”
“부대장이라도 대장한테 가.”
“닥쳐! 씨발. 살아도 같이 살고 뒈져도 같이 죽는다.”
“저 새끼들 총에 맞아도 안 죽어.”
“식인귀다. 머리를 날려. 맞췄어도 확인 사살해.”
갱과 카르텔. 서로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던 것들이 이렇게 손잡고 공격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심지어 놈들이 전부 식인귀라는 것도 예상할 수 없는 변수였다.
콰르릉!
클레모아가 터지고 매설해 놓은 폭발물이 연쇄 폭발을 일으키길 몇 차례.
놈들은 건물과 건물 사이를 타고 벌레처럼 기어들어왔다.
타다다다당!
“저쪽이다!”
“악! 저 씹새끼가 내 귀를 쐈어.”
“여 짝귀.”
“저 새끼 건드리지 마. 내 거다.”
한 사람에게 대여섯의 식인귀가 달려드는 모습.
이제는 난전조차 아니었다. 일방적인 학살일 뿐.
그 느릿한 도축의 축제를 지켜보던 우두머리의 입이 열렸다.
“저 새끼들 싹 죽여.”
“다 죽입니까?”
“아니다. 미친년이 아낀다는 부하. 이름이 뭐였지?”
“빌립니다.”
“아. 그래 그년한테 딱 달라붙어서 총질 배우던 새끼. 그 새끼는 두 팔 뜯어서 보내. 침 듬뿍 발라서.”
흐흐흐흐
“그거 좋은데요?”
“미친년이 눈 돌아가겠네요.”
“기분이다. 새끼들 대가리도 곱게 뜯어서 보내주자.”
워우우우우-
오우우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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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
총성과 함께 영상이 끊겼다. 드론이 박살 났다는 소리.
‘개- 새- 씨-’ 기스 라이저는 욕을 삼키곤 말했다.
“저것들은 우리랑 원수라도 졌나? 왜 저러는 건데?”
샌프란시스코는 핵이 터진 것치고는 방사능 수치도 생각보다 낮았고 그래서인지 사람들도 제법 많았다.
사람이 많다는 건 앞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었다. 무엇보다 신인류에게 있어 먹거리가 많다는 건 여러모로 든든한 일이었고.
그런데. 그놈의 괴상한 총잡이가 지랄을 떨기 시작했다. 그런 총잡이가 LA에도 있고 샌프란시스코에도 있다? 웃기는 소리.
그러니까 그게 LA에서부터 따라 올라왔다는 소리였다. 사람들이 놈들을 따르는 것을 보니, 총잡이 세력이 샌프란시스코와 LA를 장악하고 있다고 봐야 했다.
‘서부에 세력이 뭐가 있었지?’
분명히 군과 관련된 세력은 없었다. 핵으로 행정력도 날아간 동네였고. 정보에 따르면 서부개척시대처럼 개판이 됐다고 했는데.
‘가만. 그게 사실이라면?’
잔 다르크 같이 전쟁 성녀가 나왔다는 소문, 총을 든 발키리가 강림했다는 말. 그런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가 실재라면? 기인열전에나 나올 법한 총질의 주인공이 소문의 주인공이라면?
스읍- 꿀꺽-
기스 라이저는 오랜만에 강한 식욕을 느꼈다. 생각만 해도 하반신이 묵직해지는 느낌. 서부로 온 이유는 많지만, 놓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었다.
코드 네임 회춘
서부에 회춘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산하 PMC에서 능력자를 보냈었다.
“바쿰 바락에게서는 연락이 없고?”
“네. 통신이 완전히 끊겼습니다.”
무법 지대가 됐다고 해서 선별한 자였는데, 연락이 없다니.
총잡이에게 죽었나?
뭔가 놓치고 있는 게.
기스 라이저가 치밀어오르는 욕구를 잠재우려 붉은 셰이크를 빨았다.
묵직하고 찡한 느낌이 혀끝에서 식도 그리고 위장에 닿자, 조금 정신이 돌아왔다.
‘전쟁 성녀? 총을 든 발키리? 여자라는 소리.’
소문의 주인공은 여자.
그리고 늙은이들이 눈이 뒤집혀 찾아 헤맨 회춘.
‘회춘. 유 이사. 월드 그룹 이사이자, 과거 이라크와 아프간 음지에서 전쟁 영웅···.’
전쟁 영웅?
유 이사의 장기가··· 속사권총··· 이었지?
총잡이!
설마?
생각을 정리하던 기스 라이저의 입에서 허탈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흐흐흐흐
확률이 이렇게 되나?
저 총잡이가 회춘이라면?
회춘을 독점할 기회였다. 신인류라도 늙고 죽었다. 하지만 회춘의 비밀에 신인류의 진화가 더해진다면 어떻게 될까?
“애들 다 불러들여. 그리고 저쪽과 이야기를 한 번 해보자고 해.”
기스 라이저의 눈빛이 번뜩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