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342)
러스트 [RUST]-342
어쩐지 찝찝하더라.
이게 항상 나오는 느낌은 아니었는데, 일단 기분이 걸쩍지근하다 싶으면 거의 반드시 이유가 있었다.
[잠수정? 그럼 살아있겠네?]대가리는 내 거. 김 양이 엑소슈트를 장착하며 의욕을 불태웠다.
멋지게 활약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기록해 둬야 위대한 옆자리의 체면이 선다는 것을 의식한 행동이었지만, 마루는 알 수 없었다.
‘갑자기 왜 이렇게 의욕적?’
마루가 김 양의 활활 타오르는 태세에 눈을 깜박였다. 슬쩍 고개를 돌린 김 양이 부연 설명했다.
[애들이 요즘 새소리를 많이 내서.]까마귀 새끼들이 위대한 옆자리를 물로 본단 말이지. 지금 하는 꼴을 보니, 모가지랑 깃털을 빳빳하게 세울 게 뻔히 보이는데, 그 꼴을 그냥 보고만 있어야 하겠는가?
“새소리?”
까마귀는 새인데? 새가 새소리 낸다고 짜증 내는 거니?
[그렇다고. 그냥.]크루즈에 선단까지 꾸리고 있어서 한가락 하는 놈들이겠거니 했는데, 고작 까마귀 폭격도 제대로 못 버티나?
까마귀 정도는 어떻게 막으리라 예상했다. 그럼 바로 히어로 랜딩으로 강하해서 멋지게 쓸어버리려고 했는데···.
툴툴.
끼융끼융.
툴툴.
[강하 준비하고 있겠음.]그러니까 빨리 잠수정 찾으셈. 어서. 냉큼. 당장.
김 양의 등판에서 뿜어지는 기백에 마루는 헛웃음을 삼켰다.
“까마귀들 피해 상황은?”
[부상 스물일곱이요. 많이 다치지는 않아서 잘 치료받고 요양하면 괜찮아질 것 같아요.]간호사도 저번 교회 구조사건 이후 경건한 궁서체 느낌으로 말하더니, 요즘엔 좀 내려놨는지 예전처럼 둥글둥글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가끔 이렇게 저렇게 섞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완전 궁서체보다야 훨씬 듣기 좋았다.
“어쩌다가 그랬데?”
[조종실 안으로 들어갔을 때요. 거기서 반격당해 다친 애들이 제일 많고 나머지는 수류탄을 너무 늦게 던져서요.]액션 영화를 너무 많이 봤나? 3초 들고 있다 수류탄 던지기? 세상에.
그나저나 잠수정이라니 기스 라이저 녀석 곱게 죽지, 사람 피곤하게 하고 있었다.
“예비대 애들 무장 바꿔서 출격시켜. 요트에 탑재된 소형 잠수정이니까 그리 멀리 가지는 못했을 거다.”
[알겠습니다. 들으셨죠. 무장 가볍게 하고 탐색, 추적 임무입니다. 준비하세요.]까아아악-
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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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덜덜
기스 라이저는 자기도 모르게 손을 떨고 있었다.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분노 때문이었다. 모멸감에 심장이 쥐어 짜이는 것 같은 고통.
‘fuck! Fuck! FUCK!’
두 손을 깍지껴 떨림을 억누른 그가 깊게 숨을 골랐다.
“최대 심도로 잠항.”
“최대 심도로 잠항 시작합니다.”
최대 심도라고 해봐야 70~80피트(21~24m)였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충분한 깊이였다. 이쪽이 저쪽을 공격할 수 없었듯, 저쪽에서도 마찬가지일 테니.
“위험지역 벗어났습니다.”
“후- 그래.”
직원들과 그 가족을 포함해 1만이 넘었던 신인류가 몰살됐다.
‘잠수정 4척에 40명 남짓이라.’
잠수정 4척 가운데 2척은 말 그대로 소형 잠수정이었다. 멀리 가지 못한다는 소리. 거기에 챙겨나온 장비라고는 연구기록이 담긴 노트북과 생체 단말 하나였다.
‘박사의 뇌로 만든 생체 단말이라도 챙겨서 다행이야.’
신인류의 거점을 세우겠다고 야심 차게 준비했던 그 많은 장비와 전문인력이 모조리 수장됐다. 공군의 무서움이야 알고 있었다지만, 이게 뭔가? 까마귀가 공군?
‘빌어먹을 까마귀를 그렇게 다루다니.’
이라크군이 느꼈던 허망함이 이런 느낌이었겠지. 기스 라이저는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했다.
블라디마루가 뉴욕에서 서부 지역으로 달려온 이유가 뭘까?
복수?
비서 1팀, 니나 로건과의 교전에서 아끼던 부하가 죽었을까?
복수가 목적이라면 선단을 궤멸시킨 순간, 복수심을 채웠을 테니 돌아갔을 것이다.
만약 복수가 아니라, 말살이 목적이라면?
수색과 추적이 뒤따를 것이다. 그건 분명 까마귀를 이용한 수색과 추격이리라.
‘최악이군.’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는 습관.
그것 때문에 기스 라이저는 지금껏 살아남을 수 있었다.
강박증적이기까지 한 그 집요함 때문에 형제들 모두 제치고 회장 자리에 오를 수 있었지만, 그런 그도 지금 같은 상황을 예측할 수는 없었다.
‘블라디마루 칼린. 까마귀.’
기스 라이저는 치욕을 가슴 속 깊이 담았다. 이 치욕을 갚아주려면 다시 세력을 재건해야 했다.
짐승처럼 식욕에 휘둘리는 세력을 재건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약이든 장비든 그런 것들이 필요했다.
다행스럽게도 선단이 침몰한 곳은 잔잔한 바다.
‘수심이 아주 깊은 곳은 아니었어.’
그렇다면 일부 회수 가능성이 있었다. 아니, 얼마가 됐든 회수해야만 했다. 이제는 구할 수 없는 것들이니까.
기스 라이저는 숨을 골랐다.
생각해 보면 고작 잠수정 4척이 아니었다. 그 끔찍한 공습에서 살아남은 잠수정 무려 4척이나 있었다. 주요인력과 근접 경호원도 살아남았다.
무엇보다.
기스 라이저 자신이 살아남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언제든 기회는 있었다.
기회는···.
그 기회를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파나마 운하를 장악하게 남겨둔 세력으로 돌아간다?
기각.
잠수정으로 거기까지 가는 것은 무리.
동부 지역에 있는 코쿤으로 돌아가는 것도 마찬가지.
‘세력. 우선 세력을 확보해야 해.’
지금부터 한 명씩 감염시켜 신인류를 늘린다? 어느 세월에? 거기에 유 이사도 걸렸다.
가만···.
‘유 이사?’
분노가 가득했던 심장이 어느새 탐욕으로 물들었지만, 기스 라이저는 정신을 붙잡았다.
기존의 계획은 전부 폐기해야 했다. 장비가 모조리 수장된 상황에서 유 이사를 생포한들 의미가 없었다.
그렇다면···.
“LA로 간다.”
수석 비서는 ‘LA는 범죄자들과 유 이사가 싸우고 있을 텐데요?’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회장의 저 눈빛은 승부를 걸 때의 눈빛이었으니까.
그저 믿고 따를 뿐. 그리고 그가 모신 주인은 저런 눈빛일 때,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모두 남부 LA로 향한다.”
잠수정 4척이 남쪽 천사의 도시를 향해 조용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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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이사가 남기고 간 부하들이 전멸한 뒤로 LA에는 생지옥이 펼쳐졌다. 식육의 본능을 활짝 풀어버린 식인귀들의 파티가 도시 곳곳에서 열렸기 때문.
“다들 살이 실하네, 가축 주제에 그간 배부르고 등 따셨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애새끼들 볼이 통통한 걸 보니 미친년이 잘 챙겼나 봅니다.”
킬킬거리며 웃은 놈 가운데 하나가 툭 내뱉었다.
“그년 지금쯤 꼭지가 돌았을 걸요.”
“두목 선물을 받았으면 그래야지.”
“깜짝 놀라서 뒈지지 않았을까?”
“독한 년이라서 입에 거품 물었을 듯.”
부하들의 너스레에 두목은 기분이 좋았다.
간질간질한 감각이 요즘 들어 부쩍 심해지고 있었다. 뭐라고 할까 부하들이랑 가느다란 끈 같은 게 연결된 느낌이라고 할까?
종이컵 전화기, 실 전화기 그렇게 부르는 장난감 있잖은가? 꼭 그런 게 연결된 기분이었다.
그 기괴한 감각 뒤로 살인을 비롯해 온갖 중범죄란 중범죄를 전부 달고 있는 거친 놈들이 자기 앞에서 설설 기는 모습이란.
갱단 출신도 카르텔 조직원도 식인병에 감염된 새끼들은 전부 자신의 발아래 엎드렸다. 이게 진정한 권력 아니겠는가?
“두목. 항구에 잠수함. 아니, 잠수정입니다.”
“잠수정? 요즘에도 그딴 게 있었어?”
“돈 좀 있는 새낀가 봅니다.”
“그 새끼 속 편한 새끼네, 요즘에도 유유자적하게 놀고 다니게?”
그렇게 좋은 게 있으면 아껴 쓰고, 나눠쓰고, 바치고, 다 그래야 하지 않겠나.
“애들아. 오늘 점심은 바닷속 유람하면서 어떠냐?”
오우. 오우. 오우-
우우우우우우우우-
그렇게 우르르 몰려간 선착장에는 조금 큰 잠수정 2척, 작은 잠수정 2척 이렇게 4척이 빼꼼 고개를 내민 채 정박하고 있었다.
“어이. 거기!”
“그래 거기 너.”
“여기 누구 마음대로 이딴 걸 디밀어. 엉?”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1시간당 주차요금으로 한 마리··· 몰라?”
껄렁껄렁 잠수정으로 가던 부하들이 갑자기 뱀이라도 본 것처럼 뚝 굳었다.
“야. 쟤들 왜 저러냐?”
“모르겠는데요?”
두목은 머릿속에 이어진 끈 같은 것이 끊어진 느낌이 들었다. 잠수정이 있는 곳으로 간 부하들과 연결된 가늘고 길게 이어진 무언가가, 분명 끊어졌다.
‘설마.’
말 그대로 그건 그냥 느낌이었다. 딱히 뭔가 작용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애들 데리고 가봐.”
“예이.”
두목은 직속 부하들을 내보냈다. 거친 녀석들이 우르르 몰려갔다.
손에 칼과 총을 들고 여차하면 쓸어버리겠다는 흉흉한 기세를 숨기지 않고 달려갔던 부하들이 어느 순간 모조리 제자리에 멈췄다. 태엽이 풀린 인형처럼.
툭-
그와 동시에 두목의 머릿속에서 뭔가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명백하게.
그냥 느낌이 아니었다.
상실감. 뺏겼다는 허무함. 무엇보다 두려움.
잠수함이 있는 곳. 여기서 잘 보이지 않는 한쪽에 분명 뭔가가 있었다. 이런 일을 일으킨 뭔가가.
“씨발.”
두목은 자기도 모르게 주춤주춤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뒤로 물러서는 만큼, 잠수정이 정박한 곳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서서히.
“이거 반푼이었네.”
“그렇습니다. 회장님.”
반푼이? 회장님? 저 새끼들이 뭔지는 모르지만, 위험했다.
두목의 뒷걸음질은 어느새 뒤로 돌아선 걸음걸이로 변했고 이윽고 필사적인 도주가 됐다.
바바바박-
위기에 닥치면 평상시 몇 배의 능력을 발휘하는 바퀴벌레처럼 두목의 뜀박질은 엄청나게 빨랐지만, 의미 없었다. 이미 라이저 제약 경호원들이 퇴로를 끊고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저벅저벅 등 뒤에서 들리는 발걸음 소리. 두목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날 것만 같았다.
“너. 너희 뭐야? 뭘 원해. 뭐냐고?”
퇴로를 막고 있는 경호원들을 향해 항변했지만, 검은 선글라스를 쓴 경호원들은 무표정했다.
“기분 나빠하지 말라고. 내가 급하게 인력이 좀 필요해서 말이지.”
기스 라이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뭐라고 했더라. 미친년 이야기 말이야. 내가 그 여자한테 관심이 좀 많거든.”
“······.”
뱀 앞에 놓인 쥐처럼 두목은 반항할 수 없었다.
높은 존재가, 항거할 수 없는 존재가, 자신을 억누르고 있었다.
“마. 말씀하십쇼. 다 말해드리겠습니다. 그 미친년이요? 그년은 독하지만, 제 새끼는 끔찍하게 아끼는 년···.”
두목이 고개를 숙인 채 주절주절 이야기를 꺼냈지만, 기스 라이저는 무표정했다.
“미안한데, 싹수가 노란 놈을 밑에 두는 취미는 없어서.”
푹-
두목의 뒤통수에 기다란 촉수 같은 장치가 틀어박혔다.
꺽-
뽀르르르륵- 박사의 뇌로 만든 생체 단말에서 공기 방울 소리가 울려 퍼졌다.
부르르- 눈을 까뒤집기 시작한 두목이 입에서 거품을 물고 쓰러지는 것과 동시에, 화면에 텍스트가 출력되기 시작했다.
그걸 본 기스 라이저의 얼굴에 기괴한 미소가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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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이사의 목소리가 차갑게 내려앉았다.
“비켜.”
“대장님. 보지 마십쇼.”
“비켜.”
“남부연합에 약 있답니다.”
“그거 약 먹으면 괜찮아진다고···.”
“그거 가지러 애들 갔으니까요. 걔들 돌아오면 보십쇼. 네?”
“비키라고. 새끼야.”
툭- 슬쩍 걷어찬 것 같은데, 공중에 붕 떠버린 부하들이 허우적대다 도미노처럼 쓰러졌다.
그래도 어디가 터지거나 부러지지 않게 찼는지, 멍하게 엎어졌던 부하들이 창고로 들어서는 유 이사의 등판에 대고 애절하게 외쳤다.
“대장!”
“에이 씨발!”
“저 고집 진짜.”
“들어가지 말라고!-요.”
그런 부하들의 소리를 뒤로, 유 이사의 눈에 들어온 건 전신을 쇠사슬로 둘둘 감은 빌리였다.
“빌리?”
“···대. 대장?”
주르륵-
자기도 모르게 흐르는 침을 슥- 옷소매로 닦은 빌리가 처연한 표정을 지었다. 옷소매에는 있어야 할 게 없었다. 손목이.
주르륵-
슥–
“대장. 저 때문에···. 제가 애들 못 지켰습니다.”
“누구냐?”
“그. 그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에 유 이사가 성큼 다가섰다.
“누구야?”
“······.”
힐끔힐끔 눈치를 보는 빌리의 어깨에 유 이사의 손이 얹어졌다.
“어떤···?!”
그런 유 이사의 팔뚝을 노리고 벌려진 입.
텁!
허공을 물어뜯은 빌리의 눈빛이 언제 죄책감에 빠졌느냐는 듯 식욕으로 번들거렸다.
주르륵-
슥-
“아- 대장. 이. 이건 말이죠.”
“······.”
“이건···.”
팍! 온몸을 날린 빌리가 크아아아! 크게 입을 벌렸다.
철컹! 철컹! 쇠사슬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크으-
크아아아!
어느새 간격 밖으로 빠진 유 이사를 향해, 미친 듯 입을 벌리는 빌리.
슥- 유 이사의 손이 허리춤에 있는 총 손잡이로 향했다.
Rsh-12. 러시아제 리볼버. 5연발 12.7mm구경. 철갑소이탄을 장전한.
언제 들어왔는지 부하들이 유 이사를 뜯어말렸다.
“그러니까 보지 말라고 했잖습니까?”
“약 가지러 갔다니까요.”
“저번에 라디오에서 들었다고 했잖습니까?”
“여러 제약회사에서 약 만든다고.”
철컹! 철컹!
쇠사슬 소리에 흐느끼는 소리가 뒤섞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