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343)
러스트 [RUST]-343
창고를 가득 채운 흐느끼는 소리.
억눌린 울음소리가 처연하게 흘러나왔다.
끄흑- 끄흑-
“대장- 차라리 죽여줘요.”
“죽여달라고!”
흑- 크으으흑-
“배고프다···. 배고파아.”
“한 입만. 한 입만. 한 입만 달라고!”
크아아아아-
“또 발작이다.”
“씨발. 야. 대장 모시고 나가.”
“빨리.”
“이걸 꼭 보겠다고 진짜.”
치지직-
파지지직-
전기봉을 꺼내 빌리를 한쪽 구석으로 몰아넣기 시작하는 부하들.
몇 사람이 달라붙어 유 이사를 끌고 창고 밖으로 향했다. 질질 끌려 나온 유 이사의 눈동자에 파란 하늘이 들어왔다. 이라크, 아프간 그리고 일본의 화산재 넘치는 하늘까지. 언제나 하늘은 밍밍했다. 빌어먹을···.
“그러니까 그 약. 라이저 제약에서도 만든다고 했었지?”
“예. 근데 그 회사 뉴욕에 있는데요?”
“아니. 그놈들 샌프란시스코에 있다.”
“예?”
중요 요충지를 방어하고 있던 부하들은 샌프란시스코에 나타난 라이저 제약의 선단 이야기를 모르고 있었다.
EMP 때문에 끊어진 통신망 때문. 그나마 정찰대가 몇 개 없는 무전기를 돌려쓰고 있는 상황이.
장거리 통신이 제대로 됐다면, LA를 방어하던 애들이 지원을 요청했을 테고 일이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겠지. 유 이사는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한 뒤, 부하들에게 말했다.
“너희는 여기 잘 막고 있어. LA 쪽에서 올라오는 건 사람이고 뭐고 전부 돌려보내고 가지 않겠다고 하면 저 능선 뒤쪽에서 기다리라고 해.”
“예.”
“말을 무시하고 통제에 따르지 않으면 사살하고. 그게 남녀노소, 유명인, 정치인, 경찰 누구라도. 설령 우리 애들이라고 하더라도. 예외는 없다.”
심각한 목소리에 부하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여자나 아이도 안 돼. 우리 애들도 안 된다고. 겉은 멀쩡해도 속이 뭔지 모르니까. 알겠나? 적이 다수면 고민하지 말고 봉화를 올려.”
“걱정하지 마십시오.”
“대장 믿고 가십쇼. 잘하고 있겠습니다.”
유 이사는 믿겠다는 것처럼 모자를 살짝 기울이곤 흑마 위에 올라탔다.
“뒈지지 마라. 가자-”
히이이이잉-
성큼성큼 달리기 시작한 거대한 흑마가 먼지 구름을 피워올렸다.
“휘유- 저 말 새끼 진짜.”
“저딴 걸 타고 다니는 대장이 더 그렇다.”
두런두런 이야기하던 부하들이 바리케이드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LA가 날아갔다면, 그놈들이 언제든 올라올 수 있을 테니.
잠시 뒤, 스륵- 흔들리는 수풀 속에서 라이저 제약 마크를 단 방탄복을 입은 사내가 소리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위험요소가 위로 올라갔다. 작전 개시한다.”
“4할 이상 진화시키는 게 목표다. 무리하지 말고 최대한 진화시키고 빠진다.”
기스 라이저는 일생일대의 도박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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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손에 쥐고 있는 떡은 아쉬워 보이는 법.
지금 같은 경우가 그랬다. 비행선과 까마귀로 이동이 자유로워졌나 했더니, 물속으로 도망치는 잠수정을 쫓기는 어려웠다. 애초에 비행선으로 잠수정 추격할 일이 생기는 게 이상한 일이었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어떻게 됐어?”
[에- 근처에는 흔적이 없다고 해요.]까아아악!
[인근 해변 마을도 수색하느냐고 하는데요?]“너무 멀리 가지는 말고. 최소 15마리 이상씩 묶어서 이동하라고 해. 흔적 발견하거나, 위험하다 싶으면 무조건 빠지고.”
[다들 들었죠? 너무 멀리 가지 마요.]까악!
까아악-
까마귀들이 전방위적으로 정찰에 나섰지만, 이것들 어디로 도망쳤는지 흔적이 없었다. 강하 준비를 하고 기다리다 기다리다 지친 김 양이 결국 늘어졌다.
[이것들이 진짜 사람 피곤하게 만드네. 그 새끼 진짜 얍삽하게 생겼다 싶더니 도망 하나는 기가 막히게···.]김 양의 넋두리를 배경음 삼아 마루는 상황을 되짚었다.
‘이대로 수색하는 건 너무 오래 걸려. 놈이라면 어떻게 할까? 놈이라면···.’
잠수정을 타고 간신히 도망쳤다. 계속 도망친다? 어디로? 언제까지?
문득 비서의 말이 떠올랐다. 라이저 회장은 편집증적인 성격이 있다고. 실패한 원인을 집요하게 파고들지만, 발을 빼야 할 때는 과감하게 발을 빼는 성격이라고.
그런 성격이라면 어떻게 할까?
선단이 전멸됐다. 군함처럼 대공망을 갖추지 않은 이상, 까마귀를 이용한 공중 공격을 막기란 사실상 불가능. 그렇다고 아무런 결과 없이 도망만 칠까? 나중에 또 만날지도 모르는데?
비서가 말한 성격대로라면, 빈손으로 가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도망치면서도 까마귀들의 정찰에 걸릴지도 모른다고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겠지. 도주가 수월하면서 적의 약점을 파악하기 쉬운 지형을 타고 이동할 터.
마루의 시선이 서부 지역 해안선을 훑으며 내려갔다.
‘작은 마을에 숨어들지는 않을 거다.’
작은 마을에 들어갔다가 공중 정찰에 걸리면 뒤가 없을 테니.
마루는 과감하게 해안가 마을을 지우기 시작했다. 높은 빌딩에서 까마귀를 요격하고 내부로 유인해 공격하는 게 그나마 승산이 있겠지.
‘그렇다면’
기스 라이저가 갈 곳은 대도시였다. 높은 빌딩이 많은.
‘샌프란시스코 또는 LA.’
샌프란시스코는 이곳에서 너무 가까우니까 도망치려고 했다면 거리를 최대한 벌리고 싶지 않을까? 어쩌면 이렇게 생각할 걸 예측하고 샌프란시스코로 갔을 가능성도 있었다.
어차피 놈의 세력은 전멸이나 마찬가지니 무리할 필요 없었다. 천천히 한 번 훑으면서 내려가는 것이 좋겠지.
“샌프란시스코를 수색한 뒤 LA로.”
까마귀들의 호위를 받는 거대한 검은 비행선이 남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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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유 이사는 기스 라이저와 회담을 했던 방파제로 향했다.
“대장 오셨습니까?”
“별일 아니었나 봅니다?”
부하들이 ‘왜 이렇게 빨리 왔데?’ 하는 표정으로 유 이사를 반겼다.
일 끝날 때까지 헤집고 다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예상 밖이라 어안이 벙벙한 얼굴들. 그런 부하들의 반응에 고개를 한 번 까딱한 유 이사가 텅 빈 바다를 향해 턱짓하며 말했다.
“그 새끼들은 어디 갔어?”
“이야기 끝난 거 아니었습니까?”
“시애틀로 간다고 했습니다.”
“언제?”
“대장님 가시고 바로 출발했습니다.”
“하-”
최소 4시간 전에 출발했다는 이야기.
푸르르릉-
쉬지 않고 전속력으로 달렸으니 흑마도 쉬어야 했다. 유 이사가 흑마의 목덜미를 두들기며 말했다.
“먹고 푹 쉬고 있어. 힘쓸 일 많을 것 같으니까.”
히이이잉-
힘쓰는 일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흑마가 길게 울었다.
“오토바이 움직이는 거 있나?”
“예. 근데 혼자 가시게요?”
“시끄러워. 애들 관리나 잘하고 있어. 빌리 이야기 들었지?”
“······.”
그렇게 유 이사가 홀로 북상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샌프란시스코 시내 여기저기서 폭발이 일어났다.
“공격인가?”
“유인이다. 다들 각자 자리를 지켜!”
“대장이 각개격파를 조심하라고 했잖아!”
“저쪽은 동생이 있는 곳이라고!”
“정신 차려 새끼야. 나도 부모님 근처에 계신다고.”
“닥쳐. 훈련한 대로 한다.”
“각자 위치로!”
“위치로”
“봉화! 봉화부터 올린다.”
탕! 타당!
“봉화대에 적입니다!”
“습격이다!”
유 이사의 부하들은 훈련받은 대로 봉화대부터 탈환하기 위해 움직였다.
“씨발. 저거 뭐하는 짓이야.”
봉화대를 습격한 적은 이상했다. 자경 대원의 사지를 끌어안고 깊게 프렌치 키스를 하고 있었다. 싸우는 것도 아니고 이게 무슨 짓?
주도적으로 키스하고 있는 쪽은 여자였다. 심지어 새끈하고 늘씬한. 포위당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던 찐한 키스를 계속하자, 빠져나가겠다고 몸부림치던 자경 대원의 몸이 어느 순간부터 부르르 떨리더니 축 늘어졌다.
대원들의 눈이 전부 늘어진 사람을 향했다. 위아래로 오르락내리락하는 가슴. 죽지 않았다. 그러니까 지금 기절할 때까지 키스한 건가?
길게 이어진 타액을 슥- 닦은 여자가, 입맛을 다시고는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참기 힘드네.”
“당신. 지금···.”
대원 하나가 말을 꺼내기 무섭게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둔탁한 충격. 기절 키스를 보느라 뒤를 잡혔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적이면 일단 쏴라. 적이라고 의심되면 먼저 쏴라. 죽이기 어렵다면 팔이 됐든 다리가 됐든 먼저 쏘고 나서 움직여.’
대장이 강조했던 게 떠올랐다.
근데 왜 아무도 안 쐈지? 나는 왜 보고만 있었지?
꼭 뭐에 홀린 것만 같다는 생각을 끝으로 그렇게 눈앞이 서서히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4할은 금방이겠는데요?”
“···끝나고 나면 싱싱한 놈으로 잡아가지.”
그 소리를 마지막으로 대원의 의식은 어둠 속으로 떨어졌다.
히이이이이잉!
흑마는 미친 듯이 날뛰며 자신을 포위한 적들을 짓밟았다.
“미친 망아지가!”
“뒤로 가. 앞에서 유인할 테니까 뒷다리 얽어!”
슬금슬금 뒤로 접근하던 사람이 둔탁한 소리와 함께 하늘로 붕 떠올랐다. 뒤차기에 맞은 자의 상반신이 반쯤 너덜너덜 뭉개져 떨어졌다.
“저거 쏴버려!”
“소용없습니다. 38구경이나 9mm는 먹히지도 않습니다.”
“이것들이 가지고 있던 총 있잖아. 대구경. 그걸로 쏴.”
마치 그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흑마는 고삐를 끊어내고 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잡아. 저거 잡으라고!”
“쏴! 쏘라고!”
투앙! 투앙! 타앙!
굵직한 총성에 잠깐 멈칫했던 흑마가 기어코 포위망을 뚫고 북으로, 내달렸다.
···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의식을 잃었던 자경 대원은 깨질 것 같은 두통에 미간을 찌푸렸다. ‘깨질 것 같은.’이 아니라 진짜 깨졌군.
뒤통수를 만져보니 피가 끈적하게 만져졌다. 이렇게 피가 많이 나왔으면 상처가 깊었을 텐데? 중상이어야···.
으직- 우걱-
무언가 뜯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어째선지 입에서 침이 고이기 시작했다.
확장되는 감각.
향긋한 피의 냄새.
그리고 고기. 고기. 고기.
머릿속이 생각이 신선한 고기로 가득 차올랐다.
꼬르륵- 허기가 졌다.
위장이 뻥 뚫린 것 같은 끔찍한 허기.
그의 눈에 들어온 건, 딥키스를 받고 기절했던 놈이 머리를 처박고 고기를 먹는 모습이었다.
‘어 저게 고기였나?’
팔다리가 달려있는데?
꿈틀거리는 걸 보니까 아직 살아있는 거 같은데?
주르륵- 자기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침을 슥- 닦은 대원이 곁으로 가자, 힐끗 쳐다본 딥키스 기절 새끼가 슬쩍 자리를 내줬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내어준 곁에 앉았다. 향긋한 냄새에 이끌려 으직- 고기를 씹었다. ‘익히지 않았는데.’ 하는 생각은 어느새 사라졌다.
그 두 사람의 뒤로 피 냄새에 이끌린 자경 대원들이 하나둘씩 정신을 차리고 깨어났다. 그렇게 콰득- 으직- 고기 씹는 소리 가운데 새소리가 높게 울렸다.
까악-
까아아악-
까마귀 울음소리가 이정표라도 된 것처럼 정신없이 먹어대는 만찬장 위로 거대한 비행선이 침묵처럼 다가왔다.
[식인병자 새끼들이 잔치하고 있네. 봤음? 저기.]“그래. 봤다.”
어딘가 약간 이상하지만, 분명히 식인병자들이었다.
[그냥 계속 감? 아니면 저것들 치우고 감?]“치워야지.”
식인병자는 모조리 쓸어버리기로 했으니까. 그 소리에 강하 준비를 하고 있던 김 양이 작게 웃었다. 드디어 위대한 옆자리의 위엄을 기록할 순간이었다.
위이잉- 제트팩 소리와 함께 강하한 엑소슈트가 만찬장을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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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스 라이저의 선단을 찾기 위해 시애틀까지 올라갔던 유 이사는 종일 인근을 수색했다.
‘이 새끼들은 어디로 간 거야?’
해안도로를 타고 달리면서 봤지만, 선단은 그림자도 찾을 수 없었다. 크루즈가 2척이나 낀 선단이라 눈에 확 들어올 텐데 보이지 않았다.
‘먼바다로 갔을 리는 없고. 꼭꼭 숨었나? 아니면 설마?’
캐나다 밴쿠버?
“개 썅-”
거기까지 가봐야 하나? 칙- 연초를 꺼내 불을 붙인 유 이사가 잔잔한 바다를 바라봤다. 연초를 연달아 태운 그녀의 귓가에 익숙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히이이이잉-
흑마가 유 이사를 향해 달려왔다.
“야- 너 이 새끼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잖아.”
푸르르르- 투레질을 하는 흑마의 몸에서 작은 핏방울이 튀는 모습에 퉤- 연초가 땅바닥에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