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347)
러스트 [RUST]-347
마루와 김 양은 까마귀들의 행동을 보곤 할 말을 잃었다.
프라이팬이나 냄비 같은 걸 들고 와서 쟤들 왜 저러나 싶었는데, 그걸 우수수 떨어뜨려 RPG 탄두와 소형 미사일을 막을 생각하다니.
위로 치솟는 RPG와 재블린이 아래로 떨어지는 프라이팬과 냄비가 만나 폭발하는 모습. 이걸 좋아해야 할지. 마루는 조금 당혹스러웠다.
폭격이야 시키기도 했고 짧게나마 훈련도 시켰지만, 지금 주방용품을 던져 막은 것은 까마귀들이 알아서 생각하고 행동한 것이었다.
마루는 일단 치하했다.
“···잘했다고 해. 정말 잘했어. 특식 배급하고.”
간호사가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다들 들었죠? 오늘 저녁은 특식입니다. 고생했어요.]까아아아악-
깍!
까마귀들이 비행선을 원형으로 감싸고 돌았다.
비행선에는 총 6문의 근접 방어 무기 체계(Close-In Weapons System, CIWS)가 있었지만, RPG나 재블린 같은 것에도 반응할지, 반응한다면 요격에 성공할지 실험한 바 없었으니 어쨌든 잘한 게 맞았다.
마루와는 다르게 김 양은 까마귀가 아닌, 유 이사를 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확실히 자기 또래로 보이는 여자는 유 이사였다.
‘기스 라이저 종간나 새끼를 누가 인질로 잡았나 했더니.’
일본에 있을 때, 도난병원에 침입한 중국 특수부대 단말기에 회춘한 유 이사의 사진보다 조금 더 어려 보이는 느낌도 있었지만, 나이를 떠나서 김 양은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HUD에 출력된 확대 영상. 유 이사의 얼굴엔 특유의 광기가 뚜렷했다. 그 눈빛이 노려보고 있는 것은 비행선.
김 양은 어쩐지 입술이 바짝 마르는 것 같았다.
어린 시절 굴림 당했던 경험 때문일까?
하지만 그건 옛날 일인걸.
이젠 위대한 옆자리이자, 블라디 아크 타운의 넘버 2.
겉보기 등급 영계 하지만 실질등급으로 따지면 노계 유 이사에게 밀릴 자신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지금은 전용 엑소슈트가 함께하고 있지 않은가?
[유 이사도 봤음?] [···지금 확인했다.] [어쩌려고? 까마귀들이 시켜서 싹 쓸어버리게?] [상황 좀 보고]까마귀들의 기지로 RPG와 재블린을 막았지만, 식인병자들에게 그런 게 얼마나 더 있을지 모르는 관계로 고도를 높이는 중이었다.
고도만 높여도 RPG는 사실상 무력화 됐고, 재블린도 막기 수월했기 때문. 그래서 문제였다. 비행선이야 고도를 높이면 된다지만, 까마귀들이 숲과 수풀에 숨어있는 식인병자들을 공격하는 순간 RPG나 대구경 화기에 당할 위험이 컸으니까.
[일단 숲에 있는 식인병자들 숫자부터 줄이자. 유 이사는 굳이 우리가 먼저 건드릴 필요가···.]마루는 유 이사가 있는 곳을 보곤 눈썹을 찌푸렸다.
기스 라이저의 머리통에 붙은 장치. 긴 촉수처럼 보이는 것의 끝에 있는 건 뇌둥둥 생체단말기. 그러니까 잭 니스 박사의 뇌로 만든 장비였다.
[저거 뇌 둥둥, 박사 같은데. 챙기지 않고?] [일단 식인병자들부터 정리하자.] [···알겠음.]김 양은 말을 아꼈다.
‘선빵이 최곤데.’
총은 먼저 쏘는 놈이 두 번 쏘는 법이었다.
거리는 대충 1.5~1.6km. 이 정도 거리면 거의 99.9% 자신 있는데.
씁- 살짝 아쉬움을 감춘 김 양이 식인병자들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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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PG와 재블린 공격에 쫄았는지, 거대한 비행선이 고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천 단위 까마귀들이 비행선을 호위라도 하는 것처럼 빙글빙글 원을 그리는 모습.
압도적인 전력 차이.
일본에서 장난 좀 친 게 전부니까, 싸울 의사가 없다는 걸 보여주면 딱히 큰 문제는 없었다.
총을 내려놓고 두 손을 들기만 하면 갈등이고 뭐고 없겠지.
“······.”
무기만 버리고.
손만 들면 됐다.
근데.
그게 안 됐다.
유 이사는 이길 방법을 본능적으로 찾기 시작했다.
이길 수 있을까?
객관적으로 불가능했다.
적은 최소 천은 됨 직한 까마귀떼. 거기에 귀염둥이들도 있겠지.
병신 같은 부하들이 멀쩡했어도 어려웠다.
이기려면 옹기종기 오순도순 총질하는 규모로는 어림도 없었다.
필요한 건 전투.
치열한 교전이 벌어져야 기회가 생겼다.
전투.
교전이 필요했다.
승리하기 위해서.
생각만 해도 전신의 피가 끓어올랐다.
하-
참자. 참아야 해.
간신히 참고 있는 유 이사의 눈앞에 영상이 떠올랐다.
뉴욕과 디트로이트 CCTV 영상.
건물을 뚫어버리는 마루의 돌진.
단칼에 반원으로 썰어버리는 검격.
흩뿌려지는 피.
공중으로 떠오르는 팔다리.
그리고
적들의 총격을 태연하게 검으로 막는 마루의 모습.
씨발.
총알을 저따위로 막는다고?
유 이사의 입꼬리가 꿈틀댔다.
CCTV 화질은 자동 보정됐는지 밝고 선명했다.
마루의 무심한 눈빛과 칼질이 그녀의 가슴에 확 불을 질렀다.
썅-
이걸 어떻게 참으라고.
부화하아악-
단순히 소리 없는 영상인데 칼질 소리가 귓가에 생생했다.
이런 씨발.
오해고 나발이고 이걸 어떻게 참아.
그녀는 언제나 항복을 거절했다.
타인의 손에 자신의 목숨과 부하들의 운명을 맡긴다고?
그딴 걸 증오했다.
그렇게 죽음이 다가올 때마다 패배가 확실한 전장에서, 그녀는 살아남고 이겼다.
이라크에서는 마을 여럿을 통째로 날려 패배를 뒤집었고, 아프간에서는 작은 도시 하나를 가루로 만들어서라도 살아남았다.
그녀는 언제나 그랬다. 부하들의 복수는 반드시 했고, 시작하면 기어코 끝장을 봤다.
그런데 쫄아서 무기를 내리고 두 손을 들어?
젖비린내나는 꼬맹이들에게 목숨을 구걸?
이렇게 달아오르는데 그냥 참으라고?
유 이사의 눈동자가 위험한 빛으로 변했다.
성큼- 뇌둥둥 생체 단말기로 다가간 그녀의 손이 기스 라이저의 머리통에 박힌 촉수형 장비를 움켜잡았다.
뽀르르르륵-
왜 그러냐는 것처럼 거품이 솟아올랐지만, 유 이사는 거침없었다.
빠극- 강제로 뽑아낸 촉수 장비에 기스 라이저의 허연 회백질 조각이 일부 딸려 나왔다.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처럼 전신을 떨어대는 기스 라이저를 노려본 유 이사가 말했다.
“비행선 너희 쫓아 온 게 맞지?”
“······.”
비서실장은 석상처럼 반응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새낀 날 노렸고. 노린 이유는 저거랑 싸우기 위해서. 맞지?”
“······.”
하늘 위에 있는 저거.
“계산해 보니까 비벼볼 만하다 싶어서 우리 애들까지 끌어들였고. 그렇지?”
비서실장의 석상 같은 표정에 작은 실금이 가기 시작했다.
회장의 뇌에서 뽑아낸 정보를 봤으면서, 다 알면서 이딴 소리 하는 건 도발이었으니까.
끝까지 잘 참네. 키득- 웃은 유 이사의 눈빛이 흉흉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지독한 불길함. 전장의 냄새를 물씬 풍기는 유 이사의 모습에 비서실장이 긴장했다.
“그러니까 내가 식인귀가 되면 나랑 우리 애들 지배해서 저거랑 싸운다. 좋은 생각이야. 그런데 말이야.”
만약 식인귀가 된 내가 기스 라이저를 죽이면 어떻게 되지?
이놈의 지배력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되는 건가?
아니면 이 새끼를 계승해서 내가 너희 모두를 지배할 수 있게 될까?
궁금하지 않아?
유 이사의 혼잣말에 비서실장의 눈이 자기도 모르게 커졌다.
“자. 잠깐···.”
비서실장의 외침이 끝나기도 전, 촉수처럼 늘어진 기계 끝에 붙어있는 회백질을 후루룩- 빨아먹은 유 이사가 태연하게 말했다.
“변이가 제일 뚜렷한 부위가 뇌라고 하더라고.”
그러니까 이왕에 갈 거면 확실하게 가야지. 안 그래?
“미. 미친년이.”
비서실장의 말에 유 이사가 이를 드러냈다.
그래.
그리고 그걸 건드린 건 너희들이지.
기스 라이저의 뇌에 붙어 있던 변이 인자가 유 이사의 전신에 퍼지기 시작했다. 녹아 버릴 것 같은 고통에도 그녀는 웃었다.
강한 억제력이 전신을 옥죄기 시작했다.
무릎 꿇어라! 복종하라!
기스 라이저를 향한 충성심이 무럭무럭 솟아올랐다.
강제로 정신이 해체되고 재조립되는 느낌.
병신같이 머리에 구멍 뚫린 새끼를 향해 끝없는 애정이 샘솟았다.
크. 크흐흐흣-
아 그래? 네가 날?
너 따위가 날? 지배하겠다고?
유 이사의 손이 기스 라이저의 옷깃을 잡아 일으켰다.
모가지를 비틀어 버리려고 했는데, 손이 통제를 벗어난 것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간신히 할 수 있었던 게 그저 멱살을 잡아 일으키는 정도.
크핫
기괴한 미소를 띤 유 이사가 두 손으로 기스 라이저의 옷깃을 잡은 채, 허리를 굽혀 크게 인사했다.
“아이고 주인님 잘 부탁드립니다. 유 다인이라고 합니다.”
빡!
유 이사의 이마가 기스 라이저의 안면에 틀어박혔다. 강한 충격에 정수리에 열린 구멍에서 뇌수가 새어 나왔다. 흔들. 지배력이 살짝 흩어졌다.
“이런 실수를.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뻐걱!
기스 라이저의 코뼈가 주저앉고 안구가 터졌다.
“이년이 제대로 다시 인사 올립니다!”
빠악! 우득-
목뼈가 부러졌는지, 고개가 옆으로 꺾이는 기스 라이저를 향해 유 이사가 크게 소리쳤다.
“근데 지금 무시하는 겁니까! 사람이 인사를 하면 받아야지!”
뻐어어억!
강력한 충격에, 구멍이란 구멍에서 전부 검붉은 핏덩이를 쏟아낸 기스 라이저가 미역 줄거리처럼 늘어졌다.
그 순간 유 이사의 머릿속을 옥죄던 모든 것이 풀리며, 비서실장의 감정이 느껴졌다.
충격과 공포.
그것을 시작으로 수풀 속에 몸을 숨기고 있는 것들의 위치가 손에 잡히는 것 같았다. 간질간질 느껴지는 감각. 마치 새로운 감각 기관이 생긴 느낌.
동시에 참을 수 없는 강한 식욕이 치솟아 올랐다.
으적.
유 이사는 멀리 갈 것 없이 손에 쥔 것을 베어 물었다.
우물우물
이거 못 먹을 맛이네. 중얼거린 유 이사는 기스 라이저의 시체를 쥐고 있던 한 손을 풀고서 비서실장을 향해 손바닥을 내밀었다.
부르르
분노, 증오, 두려움을 숨기지 못한 비서실장이 붉은색 셰이크를 얌전히 바쳤다.
쪼오오오옥-
이 새끼가 이래서 이걸 빨았군.
좋아 그럼. 이제 해볼 만하겠네.
유 이사의 눈동자는 어느덧 파랗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 새파랗게 빛나는 눈동자가 멀리 하늘 높이 떠 있는 비행선을 노려봤다.
저걸 끌어내리려면 미끼가 필요하겠군. 귀여운 미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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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다다다당!
엑소슈트가 폴짝 뛰어오르며 12.7mm 특수탄을 쏟아냈다.
머리. 머리. 눈알. 주둥이 그리고 눈알에서 시뻘건 불꽃이 피어올랐다. 김 양을 향해 달려들던 식인병자들이 우수수 쓰러져 몸부림치는 모습.
[이것들 움직임이 변했음.] [숲에서 나와.]나도 나가고 싶다고. 이것들이 계속 길목을 막고 있는 걸 어떡하라고.
놈들의 움직임이 확 변했다니까.
마치 노련한 지휘관이 현장 지휘하는 것처럼 더럽게 움직이고 있다고. 화력과 기동력에서 우위가 있음에도 포위망에서 벗어나는 정도가 한계라고.
지원이 필요해 공중지원! 공군!
투다다다다당!
[아니. 진짜임. 이것들 장난 아니라니까.] [3시 큰 빌딩 보이지?]아래 언덕 저쪽에 보이는 외딴 빌딩. 대충 30층은 될 법한 빌딩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확인.] [좋아. 5초 뒤 네이팜으로 주변 날려버릴 테니까. 빌딩으로 달려.] [알겠음.]3, 2, 1. 투하-
강력한 폭음과 함께 엑소슈트 주변이 불바다로 변했다. 더러운 불꽃이 치솟는 틈을 타 빌딩으로 내달리는 김 양은 세상 분했다.
시키는 대로 열심히 식인병자들 잡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심지어 유 이사가 어디로 갔는지 놓쳤다고 하니,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화르르르륵-
네이팜 불꽃에 휩싸인 엑소슈트가 수풀을 뚫고 아스팔트 도로를 내달리기 시작했다. 엑소슈트 관절에서 나는 특유한 기동음이 선명했지만 그걸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삐-삐이이이-
HUD 영상에 표시된 붉은 점이 삽시간에 가까워졌다.
끼융-
납작 엎드리자, 엑소슈트를 스친 RPG 탄두가 벽을 때렸다.
콰아앙!
발딱 일어선 김 양의 눈앞에 또 붉은색 점이 반짝였다.
데굴. 탑 어택으로 내리꽂힌 재블린을 옆으로 굴러 피한 엑소슈트가 앞으로 엎어진 모습 그대로 끼유끼유끼유 포복했다.
시간차 공격. 적의 습관을 이용한 기습. 쉴 틈 주지 않고 몰아쳐 적을 위축시킨 뒤, 목덜미에 이빨을 꽂아 넣는 방식. 어디선가 많이 본 방식이었다.
[나 보고 있음?] [다 왔으니까 조금만 버텨. 제트팩 연료 한 번은 가능하지?]그러니까 30층 넘는 빌딩 옥상에서 제트팩 써서 비행선으로 올라오라고? 김 양이 말했다.
[이거 유 이사 지휘임.]어디로 도망치는지 이미 알아채고 길목에 매복했을 확률이 높았다.
최악이라면 높은 빌딩에서 비행선 잡을 준비를 하고 있을 수도 있고. 아까 선빵 때렸어야 하는데.
[···확실해. 유 이사 지휘?] [네이팜 터졌는데도 놈들 움직이는 거 보면.]응. 그 아줌마 아니면 설명이 안 됨.
김 양의 단언에 마루의 표정이 무섭게 굳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지?]유 이사가 식인귀들을 지휘한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는 건 유 이사도 식인귀가 됐다는 뜻이었다. 아니면 식인귀랑 손을 잡았거나.
응? 그러네?
김 양이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댕글 커진 그녀의 눈동자에 고도 300m 상공의 비행선에서 누군가 뛰어내리는 장면이 들어왔다. 이어 수식으로 자유낙하 하는 백정의 모습.
야! 미쳤어?
거기서 왜 뛰어내려.
···
···
···
크콰가가가가가가각!
빌딩에 칼자국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