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348)
러스트 [RUST]-348
위험하다.
마루는 판단과 동시에 몸을 날렸다.
까아아악?
“됐어.”
까마귀들이 ‘이거 어쩌나.’. ‘우리가 잡아드릴까요?’ 하는 표정으로 낙하하는 마루의 주변을 맴돌았지만, 마루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까마귀를 이용해 느릿하게 내려가면 공중에서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을 위험이 있었기 때문. 낙하산이나 패러글라이딩을 타고 내려가도 마찬가지. 그리 높지 않은 고도에서 뛰어내렸기 때문에 삽시간에 빌딩 끝에 도달했다.
쿠직- 두터운 철근 콘크리트를 파고든 칼날이 사정없이 빌딩을 헤집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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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목과 팔에 힘을 줘, 수직 각도를 조금씩 비틀어 수평으로 전환하자 깊고 깔끔하게 잘리던 외벽이 우둘투둘 거칠게 뭉개지며 떨어지는 속도가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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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부터 절반쯤 썰린 빌딩에 멈춰선 마루를 향해 날아드는 총탄.
역시 놈들이 노리고 있었다.
마루는 브레이크처럼 박아 넣은 칼을 뽑아 총알을 막으며 수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한 걸음 또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강화 유리가 터지고 발자국이 찍히는 모습이 점차 흐릿하게 변하더니 허공으로 녹아들었다.
리퍼 슈트의 은신을 활성화 시킨 마루가 고양이처럼 착지한 뒤, 김 양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멀리 빌딩이 썰리는 것을 본 유 이사가 곁에 선 여자를 향해 고개를 까딱였다. 머릿속에 연결된 실 같은 게 일종의 텔레파시 연결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포위망 풀리지 않게 바짝 조이고. 봤지? 저게 포위를 뚫으려고 하면 막지 말고 길 열어주라고 해.”
“알겠습니다.”
텔레파시를 쓰는 애는 따로 있었다. 라이저 제약 산하 PMC 소속인 능력자 쥴리아. 식인병자가 아니라 능력자 양성 실험의 성공작이었다.
유 이사는 적잖이 실망했다. 하위 개체를 직접 통제할 수 있나 싶었더니, 이 어중간한 연결은 뭐란 말인가?
하위 개체의 감정을 읽을 수 있다? 쓸모가 없지는 않겠지만, 아쉬운 능력이었다.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식인병자들이 이곳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기스 라이저가 죽기 전 발버둥을 친 결과였다. 기스 라이저를 죽이고 그 지배력을 계승했음에도 식인병에 걸린 것들은 이곳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애매하네.’
식인병자들은 상위 개체의 안전을 위해 강제로 헌신했다. 말이 헌신이지, 본능에 따라 움직인다는 이야기. 이건 양날의 검이었다.
지휘 개체를 잡고 뒈지도록 고문하면 그 밑에 것들이 본능적으로 반응한다는 건데. 미끼로 써먹기 딱 좋은 특성 아닌가?
‘별거 없으면서. 허세는.’
뇌둥둥 생체 단말에 가장 많이 떠오른 단어. ‘신인류.’
뒈진 기스 새끼는 뭔 생각만 하면 ‘신인류’를 찾았다. 신인류가 미래의 주역이자 지배종이고 일반인은 단지 가축일 따름이라고 믿었다.
자부심 넘치는 것과는 달리, 직접 겪어보니 별거 없었다.
신체 능력이 좀 더 강해지고, 재생능력이라든지 체력 같은 게 좋아졌을 뿐. 총알이 안 박히는 것도 아니었고. 뒈지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질병 저항력. 소화능력 같은 건 편하기는 하다만.’
그것도 지금처럼 열악한 상황에서나 좋지, 인프라가 재건되면 의미 없는 특성.
유 이사는 느긋하게 김 양을 토끼몰이하듯 몰아갔다.
작정하고 반쯤 죽여놓으려고 했는데, 미꾸라지처럼 잘 빠져나가는 걸 보니 어쩐지 묘한 기분이었다. ‘잘 컸네.’ 하는 생각과 ‘이걸 피해? 어쭈?’ 하는 기분이 같이 든다고 할까?
김 양을 몰아붙이니, 예상대로 칼잡이가 비행선에서 내려왔다.
착륙하도록 유도한 건데, 냅다 뛰어내린 것은 예상 밖이었지만, 어쨌든 칼잡이와 김 양을 잡으면 비행선 문제는 해결.
‘포위망은 됐고.’
그럼 슬슬 가볼까?
휘이이잌-
휘파람을 불자, 히이이이잉- 소리와 말발굽 소리가 다가왔다. 좋다고 달려오던 흑마가 유 이사를 보곤, 갑자기 멈춰 섰다.
푸르르르릉-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콧김을 뿜어대는 흑마.
‘어떻게 이럴 수가!’, ‘어째서?’ 믿을 수 없다는 듯 머리를 흔들었다.
“야- 뭐 해? 빨리 오지 않고.”
유 이사가 흑마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봤음에도 흑마는 제자리에서 투레질할 뿐 다가서지 않았다.
“갑자기 왜 그래?”
그녀가 성큼 다가서자, 히히힝- 뒷걸음치는 흑마. 그렇게 애교 부리던 녀석이 유 이사의 손길을 명백히 거부하고 있었다.
“너···.”
설마? 이 녀석. 그러냐?
식인귀들을 집요하게 다져 죽이던 흑마의 모습이 떠오른 그녀의 얼굴엔 씁쓸함이 가득했다.
“···간다. 몸조심해라.”
히히이이잉-
푸르르르륵-
마치 ‘어쩌다 그랬어? 왜 그랬냐고!’ 힐난하는 듯한 흑마의 소리를 뒤로 한 채, 유 이사는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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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양은 똥꼬가 빠질 것 같았다.
전용 엑소슈트 방어력이 좋아서 버티고 있지만, 위험했다.
[···이 새끼들 대구경 라이플 있음. 특수탄도.]그러니까 후딱 오라고. 올 거면 빨리 와!
[RPG랑 재블린도 있음.]빌딩 칼침 놓은 지가 언젠데, 왜 아직도 소식이 없어.
까마귀라도 보내라고. 설마 나보다 까마귀가 더 소중한 것이야?
걔들은 블라디 아크 타운에 있는 애들까지 합하면 진짜 많고 난 딱 하난데?
음험하게 조이는 포위망. 살아있는 채 생으로 갉아 먹히는 기분이었다. 퉁- 엑소슈트 어깨에 빗맞은 대구경 탄에 끼융- 균형이 무너지자, 김 양이 버럭했다.
[어디···.]어디에 있냐고 한마디 하려는 순간, 불길한 느낌이 김 양을 덮쳤다.
쭈삣쭈삣 빳빳하게 일어선 솜털. 백정의 살기는 아니었다. 전혀 다른 느낌. 마치 뱀이 슬슬 휘감고 있는 것 같은 감각에, 김 양은 제트팩을 써버렸다.
푸확-
제트팩에서 불꽃이 피어오르며 엑소슈트가 공중으로 떠오르려는 찰나, 둔중한 총탄이 제트팩 분사구를 때렸다.
태앵- 푸카카칵-
위로 솟구치던 엑소슈트가 균형을 잃고 오른쪽으로 휙 틀어져 땅바닥을 향했다. 그 짧은 순간, 김 양은 공격이 들어온 방향으로 대응사격 했다.
파바바바박!
총성과 함께 엑소슈트가 바닥에 처박혔다. 쿠직- 낙법보다 반격을 선택한 김 양의 판단은 효과적이었다. 상대방의 추가 공격을 막았으니까.
푸화아아악
바닥에 처박힌 충격을 무시하고 즉시 연막탄을 깐 김 양이 자세를 낮췄다. 삐-삐삑- 엑소슈트 HUD에 동작감지 센서로 잡은 움직임이 표시됐다.
“많이 컸네.”
연막 밖에서 들리는 목소리. 특유의 허스키하고 거친 목소리가 아니었지만, 김 양은 알 수 있었다. 목소리의 주인공이 유 이사라는 것을.
“백린? 나 때는 이거 들고만 다녔는데 말이지···.”
그놈의 지긋지긋한 라떼. 옛날 굴렀던 기억에 김 양은 반사적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투다다다당!
총알로 대답한 뒤 바닥에 납작 엎드린 김 양.
잠시간의 침묵. 맞았을까? 맞지 않았겠지. 눈먼 총질에 당할 년이면 그 고생을 하지 않았을 거다.
“설마 바퀴벌레처럼 납작 엎드려 있는 건 아니겠지?”
아니나 다를까 바로 반응이 왔다.
[······.]김 양은 속으로 욕했다. 이건 반칙이었다. 1:1도 아니고 포위당한 마당에, 저 아줌마까지 오는 건 아니었다.
대체 나한테 이러는 데? 그런 고요한 외침을 알아챈 것처럼 유 이사가 나긋하게 말했다.
“너를 조져야, 칼잡이가 헛짓하지 않고 바로 여기로 오잖니.”
이 아줌마가 진짜. 내가 그렇게 만만함? 천하의 유 이사가 왜 이렇게 혓바닥이 길어! 늙었으면 그냥 빨리 가버리라고!
김 양의 신경질적인 총질이 흰 백린 연막을 헤집었다.
삐- 삑-삑- HUD에 표기된 붉은 점이 하나 없어졌다. 설마 지금 맞았나? 잠시 뒤 또 하나의 붉은 점이 사라졌다.
왔다!
김 양은 재빨리 탄창을 갈고 사방으로 총질하기 시작했다. 놈들의 신경이 이쪽으로 쏠리게.
아줌마 이제 죽었어.
히죽-
사방으로 퍼지는 총탄에도 유 이사는 느긋하게 움직였다. 신체 능력이 좋아졌다는 건 감각도 좋아졌다는 뜻. 연막 속에서 꼬물거리는 김 양의 움직임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음?
일순 머릿속에 연결된 가느다란 실이 하나 끊어진 기분이 들었다. 잠시 뒤 또 하나가. 칼잡이가 왔다는 뜻.
김 양을 압박하면 그대로 달려들 줄 알았는데, 김 양을 미끼 삼아 돌려 깎기를 해? 꼬맹이들 여러모로 예상 밖이었다.
칼잡이가 온 걸 알아챘는지, 바퀴벌레처럼 납작 엎드린 김 양이 발발발 기어가며 요란스럽게 총질하기 시작했다.
“숲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조여.”
“··· 알겠습니다.”
에너지가 떨어지면 엑소슈트는 그대로 감옥이 될 테니. 팔다리 뜯어져도 목숨만 붙어있으면 되니까 강력하게 공격하라는 명령.
“잡으면 바로 감염시키고.”
“예.”
기스 라이저의 정보를 보면, 녀석은 식인병자를 모조리 죽일 기세였다.
김 양이 감염 되도 죽일까? 비행선에 있는 애들이 전부 식인병자가 된다면? 그들도 모조리 죽일까?
식인병자와 원수졌나?
그럼 그 원수를 갚기 위해 뭘 버릴 수 있을까? 전부 버릴 수 있을까? 두고 볼 일이었다.
“칼잡이가 뒤를 치고 있다. 경계하고 3인 1조로 움직이라고 해.”
“전달했습니다.”
더러운 식인귀를 선택한 이유?
잃지 않아도 되니까. 복수할 수 있으니까. 계승에 성공한다면 기스 라이저가 남긴 것을 전부 흡수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꼬맹이들을 귀여워 해줄 수 있으니까. 앞으로 오래도록.
“뒤로 물러서. 온다.”
유 이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거대한 나무에 사선으로 선이 그어졌다. 묵직한 소리를 내며 쓰러지는 나무 뒤로 느껴지는 존재감.
휘릭-탕-타다탕
쩌어어어엉-
12.7mm 특수탄이 검의 옆면을 때리자, 깨진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충격을 흡수한 이클립스의 칼날이 미친 듯 진동하기 시작했다.
3발을 막았지만 2발이 스쳤다. 대구경 특수탄이 훑은 자리에서 살짝 피가 배어 나왔다. 미친듯한 속사. 총이 한 자루였다면 달려들었겠지만, 무려 3자루나 차고 있는 유 이사였다.
웅- 우우웅-
팅-티디딩-
칼날이 우는 소리와 탄피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뒤섞였다. 김 양은 글러먹은 년이었고. 칼잡이는 어떨까?
느긋하게 총알을 재장전한 유 이사가 Rsh-12를 홀스터에 꽂으며 물었다.
“안 와?”
“······.”
기스 라이저의 뇌에 있던 정보. 마루의 행적은 이상했다. 이 흉흉한 꼬맹이는 자기와 같은 동류일까?
“보니까 궁금한 게 생기더라. 넌 뭘 원하니.”
원하는 게 뭐길래 그러고 사니?
유 이사의 질문에 마루는 전진을 선택했다.
탓- 앞으로 내디딘 한 걸음.
그리고 이어진 두 번째 걸음. 25m 거리가 단숨에 좁혀지는 순간, 처음처럼 벌어진 거리.
자신과 마찬가지로 두 걸음에 25m 거리를 벌린 유 이사가 연초를 뽑아 입에 물며 중얼거렸다.
“버릇없는 새끼네 이거.”
그런 유 이사의 눈동자에 앰풀을 박아 넣는 마루의 모습이 들어왔다.
“하- 약까지?”
어이없다는 목소리가 허공에 흩어지기도 전 마루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울리는 총성.
한 발.
쩌어어엉-
뒤로 밀려나는 충격을 이용해 대각선으로 움직이는 마루.
투아아앙-
두 발.
검을 한껏 기울였어도 충격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범선이 역풍을 질주하듯 역 대각선으로 몸을 날리자. 그렇게 움직일 것을 예측이라도 한 것처럼 두 발의 총탄이 날아왔다.
쩌-쩌저정-
하나를 막았지만, 거의 동시에 이어진 연격으로 흐트러진 무게 중심.
‘이 빌어먹을 할망구가!’
마루가 살기를 풀었다. 뭉클 흩어진 살기에 슬금슬금 주변을 포위하려던 식인귀 놈들의 움직임이 굳는 것이 느껴졌다.
지금이다.
죽어!
살기와 함께 앞으로 쏘아진 마루가 본 것은 길게 웃고 있는 유 이사의 얼굴이었다. 수직으로 치켜든 칼날 앞에 놓인 것은 겨눠진 총구.
살기를 뚫고 움직였다?
칼날은 이미 내리쳐지고 있었다.
반으로 갈라버리겠다는 의지가 담긴 일격.
느릿하게 흘러가는 시간에 따라 뒤로 젖혀진 공이가 앞으로 조금씩 움직였다. 칼날이 떨어지는 시간보다 총구가 불을 뿜는 게 더 빠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탕!
부화아아악!
총탄이 마루의 헬멧을 박살 냈다. 깨진 헬멧 사이로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
그 핏방울이 이어지기라도 한 듯 마루의 칼끝을 따라 핏방울이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