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351)
러스트 [RUST]-351
치안 공백 상황인 서부 지역에서 중심을 잡아달라는 국토안보국 덴 브라운의 절절한 요청을 묵직하게(?) 거절하고 통신을 끊자마자, 마루가 말했다.
“털자.”
서부 지역 후딱 털자.
“에? 털어요?”
“그렇지!”
그런 마루를 본 간호사와 김 양의 반응은 상반됐다.
‘지금 이 상황에서 털자고요?’ 경악하는 간호사.
‘잘한다. 역시 우리 위대한 영도자.’ 초롱초롱 금빛으로 빛나는 김 양.
“건질 수 있는 걸 최대한 빨리 건지고 빠진다.”
“여기 사람들은 어떻게 하고요?”
슬픈 표정을 한 간호사가 두 손을 모으자, 포근한 압력이 점점 도드라졌다.
“생필품 털자는 소리가 아니잖아. 이쪽에 버려진 설비들 털자는 소리니까. 그러지 말고.”
“버려진 설비요?”
마루는 눈길을 돌려 은근한 압력을 털어냈다.
일본 대재난과 옐로우 스톤 사건을 거치면서 서부 지역에는 군용 엑소슈트와 기갑병 생산시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중국과의 핵전쟁으로 직접파괴 또는 EMP로 인한 간접 파괴된 시설이 대부분. 유 이사는 그걸 수리하지 못해서 기병대를 돌렸지만, 이쪽은 아니었다.
일단 뜯어만 가면 고칠 수 있는 부분은 고치고 쓸 수 없는 부품은 만들어서 가동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손으로 제작하는 라인을 절반만 자동화해도, 생산량이 훌쩍 증가할 게 분명했다.
“완전 박살 난 군수공장은 어쩔 수 없다고 쳐도. 대충 부품 생산시설은 뜯어볼 만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후딱 뜯자. 복잡해지기 전에.”
마루의 의견에 열렬히 동의하는 김 양 그리고 ‘에?’ 하는 간호사.
그러고 보니, 남부에서 서부를 장악하기 위해 온다는 이유도 목적이 있을지 몰랐다.
겸사겸사 이런저런 설비를 뜯으러 오는 거겠지. 괜히 식인병자, 범죄자, 변종들이 들끓는 곳을 뚫고 올 이유가 달리 있던가?
“그럼 위험한 거 아닌가요?”
“반대로 생각해보자고. 우리가 싹 뜯어갔다고 쳐. 여기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해봐. 그럼 텅 비었다는 곳으로 굳이 올까?”
빈껍데기만 남으면 굳이 점령하니 어쩌니 그럴 것도 아니고. 마루의 이야기에 김 양은 ‘역시 위대하신 우리 영도자, 적의 의욕부터 짓밟으시도다.’ 슬쩍 녹음하고 있었다.
“그냥 바로 가면 여기 치안은요? 위험하지 않을까요?”
“치안은 여기 사는 사람들이 알아서 지켜야지, 우리가 언제까지 있을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까마귀들 두고 갈 것도 아니고. 우리는 우리 동네 지키러 가야지.”
자경대가 10~15% 살아남았다는 것도 웃겼고, 그 살아남은 자경대 대부분이 뿔뿔이 흩어진 것도 웃겼다.
기스 라이저의 공작으로 식인병 감염된 애들이 40%라고 치자, 크게 50% 넘었다고 쳐도. 주민들이 감염되지 않은 자경단을 적극적으로 도왔다면 일이 그렇게 됐을까?
“맞음. 그리고 여기 새끼들 틈만 나면 자기 멋대로 하려는 새끼들 넘침.”
유 이사가 보이지 않자, 지역 주민들이 보여준 행동을 보면 답이 나왔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실종이란 사망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제껏 치안을 지켜준 그녀의 끝에 대해 슬퍼하거나 고마움을 표시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단지 인종별, 동네별로 갈라져 노골적인 갈등을 쌓을 뿐.
유 이사 덕에 개업 휴점 상태였던 행정부처와 경찰에서는 그녀의 죽음과 자경단의 해체를 오히려 좋아했다.
이런 개판에 중심을 잡고 있어 달라고?
중심을 잡고 뉴욕에서 설비 뜯으러 올 때까지 버티라는 소리를 하고 싶은 거겠지. 뉴욕을 중심으로 동부가 멀쩡하다고 하더라도 생으로 기갑병, 엑소슈트 생산시설 다시 깔려면 시간이 걸릴 테니까.
“그래도. 우리가 그냥 가면 사람들이 많이 죽을 텐데요? 여기도 아크 타운처럼 거점 만들면 안 될까요?”
그러니까 분점 내자는 말.
현실적으로 아크 타운처럼 하려면, 다른 건 여기서 자급자족한다고 치더라도 HOLLY 교단을 만들거나 아니면 하다못해 정신적인 지주가 되거나 그래야 할 텐데.
디트로이트 외곽 교회에서 했던 등장 같은 걸 여기서 또 하라고? 마루의 침묵에 김 양이 대신 대답했다.
“아크 빌딩 같은 거 만들기 어려운 거 알잖아. 밖에 돌아다니는 식인병자들도 거의 다 잡아서 뭔가 보여줄 것도 없고. 계속 경고했는데 못 알아먹으면 어차피 죽을 인생임.”
그게 위로인지 해설인지 모르겠다만, 마지막엔 운명론? 인생론으로 간호사를 다독인 김 양이 화제를 돌렸다.
“근데. 저건 뭐 하려고? 연구원들 선물?”
김 양이 기스 라이저와 유 이사의 시체가 담긴 보존 가방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 자리에서 다져버리고 홀랑 태울 줄 알았더니, 저건 왜? 묻는 눈빛.
“사실. 태워버리려고 하긴 했었는데, 기스 라이저 뇌 정보를 보고 생각해보니까. 그냥 태워버리면 귀찮아질 것 같아서.”
마루는 초인으로 소문났다. 기스 라이저를 비롯한 제약회사, 여러 연구기관, 행정부처 그리고 일부지만 군부에서도 노렸었고.
법질서가 남아있고, 연방정부의 힘이 살아있을 때야 국토안보국 산하 용병이라는 타이틀이 안전을 보장의 축이 됐지만 지금도 그럴까?
당장 여기 서부로 올 때를 생각하면 답은 확실했다.
국토안보국 산하라는 지위, 일본과 중국에서 활약한 영웅이라는 상징성이 안전을 보장할 수 없었기에 캐나다 국경을 끼고 돌아서 온 것.
이런 상황에서 용병 놈들이 노린 것과 뇌 정보를 연결해 보면, 시체 구매자가 있다는 건 확실했다.
유 이사가 회춘이라는 건 다 까발려진 사실이고, 기스 라이저가 상위 개체인지 파더인지가 됐다는 것도 이미 알려졌을 테고.
당연히 세력 있는 놈들은 시체를 회수하겠다고 꾸역꾸역 찾아올 거고, 그딴 새끼들이랑 드잡이할 필요가 있을까?
태웠다고 해도 그걸 믿을 놈들이 아니었고, 진짜 태웠다고 하면 다음 목표인 초인 블라디마루 칼린의 확보 어쩌고 하면서 또 피곤하게 하겠지.
“그러니까 저걸 던져주면, 서로 먹겠다고 자기들끼리 싸우느라 정신없을 것 같아서. 어쩔까 생각 중이다.”
기스 라이저가 생각한 예측대로라면 앞으로 인류는 가시밭길이었다. 최소한 몇 년에서 수십 년 동안 망가진 인프라를 고치고, 경제를 다시 일으켜야 했다.
세계가 일치단결해서 글로벌 공급망을 재구축해도 쉽지 않은 상황인데, 전쟁이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로 중국은 완전히 분열됐고, 미국도 사실상 분열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유럽과 러시아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빠졌고, 종교를 이유로 한 테러, 인종 간의 갈등, 변이 바이러스의 창궐, 식인병의 범람, 변이 괴수들의 공격.
현생 인류는 서서히 약해지고 그렇게 멸종을 향해 달려갈 것. 그래서 기스 라이저는 신인류로 진화하는 것만이 희망이라고 생각했다.
최소한 신인류를 중심으로 재건한 사회는 위와 같은 문제들 대부분 자연스럽게 해결될 테니. 그래서 인류를 가축이나 셰이크 원료로 생각하면서도 기스 라이저는 일말의 가책이 없었다.
문제는 기스 라이저와 같은 생각을 하는 자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 그것도 계층 구분 없이 많은 수의 사람들이 그랬다.
“에? 많이요? 사람 잡아먹는 걸 괜찮게 생각한다고요?”
“뭘 그리 놀람? 다 알면서.”
김 양이 간호사를 놀렸다.
사실상 현대 사회도 마찬가지 아니었나?
양털 깎고, 개미 털이, 도축해 잡아먹는 건 똑같으면서 아닌 척?
물론 이쪽은 경제 이야기고 저쪽은 진짜 생명이 달린 일이지만, 자살자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보자면 어차피 죽을 거 일용할 셰이크로 되거나, 가치 없이 사라지거나 그 차이 정도 아니겠는가?
“에에에엣? 그게 어떻게 똑같아요. 그거 시체로 비료 만들어도 된다는 생각이잖아요.”
“그러니까 괘씸할 뿐.”
“에?”
“일본산 비료가 괘씸하다고. 아까 두 손 모은 거 노린 거지?”
“에에에엣?”
“모른 척? 아닌 척?”
식은땀을 삐질 흘리는 간호사와 후후훗- ‘어디서 감히.’하는 표정의 김 양이 교육에 돌입했다. 마루는 그런 소란을 피해 창밖을 봤다.
샌프란시스코 상공에 둥실 떠 있는 비행선을 빙글빙글 돌면서 호위하는 까마귀. 그걸 구경하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평화로운 풍경에 마루는 갑작스럽게 불쾌감이 들었다.
유 이사와 자경단 그리고 지금은 마루와 까마귀가 만든 평화를 덧없이 소모하고 있는 사람들. 그저 소비하는 사람들.
‘미친년.’
여러모로 더러운 기분이 들었다. 생각할수록 여러모로. 이유 없이 떠오른 욕설을 삼킨 마루가 말했다.
“둘 다 그만 장난치고 뜯어갈 시설부터 찾아. 챙길 거 챙겨서 후딱 뜨자.”
작심하고 뜯어가려고 했더니, 생각보다 뜯어갈 시설이 많았다.
몇 번이나 왕복해 필요한 걸 뜯어갔을 때쯤에는 여름 무더위가 한풀 꺾이기 시작했다. 한 달 넘도록 해체 철거만 했던 것.
덴 브라운이 곧 밀고 올 것처럼 이야기했던 남부 자유 어쩌고는 소식이 없었고, 지하로 숨어 들어간 식인병자들도 조용했다. 일단 나왔다 싶으면 대기하고 있던 까마귀들에게 걸렸으니까.
그렇게 수월하게 진행되던 해체 작업은 갑작스럽게 중지되고 말았다.
“어쩔 수 없었음. 뜯는 거 걸리지 말라며.”
“까마귀들도 어쩔 수 없었다고 해요.”
국토안보국도 그렇고 버지니아 랭리 회사도 그렇고 껍데기만 남았음에도 만만하지 않았던 것. 어쩌다 보니 그쪽 요원들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설비 해체 작업 도중 실종되는 안타까운 사건이 생겨 버렸다.
“···그만하고 정리하자.”
지금이 시체 폭탄을 던질 때였다.
‘일단 배달은 용병한테 시키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기스 라이저와 유 이사의 시체를 훔쳐 달아나려던 용병들 가운데 생존자는 2명. 어차피 필요한 건 광역 텔레파시 능력자였으니, 나머지 한 사람이 자연스럽게 배달원으로 찍혔다.
뉴욕으로 시체를 배달하라고 했더니, 엉뚱하게 살려달라고 하는 용병이었다. 자기 혼자 가봐야 시체만 뺏기고 처분된다며 살려달라고 매달렸다.
“차라리 동부에 남아있는 라이저 PMC로 보내주십시오. 거기서 배달하면 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뉴욕이랑 동부지역에 아직 용병대가 남아있다고?”
“네. 부단장도 있고. PMC도 건재할 겁니다.”
“기스 라이저가 죽었는데도?”
“가주가 죽었다고 가문이 망하는 건 아니니까요.”
라이저 제약의 비상 시설인 코쿤에는 상당한 경비 인력이 있었다. PMC를 비롯해 전원 능력자로 구성된 용병대 절반 이상이 남아있다는 이야기.
기스 라이저가 어떻게 죽었는지 라이저 가문에는 정보가 들어갔을 거라고 했다. 어쨌든 그 라이저 제약이니까 시간이 걸리더라도 시체를 회수하러 올 것이라고 했다.
“어떻게 해도 흔적은 남으니까요. 사이코메트리 능력자가 있어서, 태웠다고 거짓말을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실제로 태웠어도 라이저의 핏줄을 건드린 대가를 치르게 하려고 할 겁니다.”
오히려 복수한 사람에게 차기 가주 선발에서 가산점을 주려 하겠지.
근데 이 새끼는 한 달이나 공짜 밥 처먹고 이런 중요한 이야기를 지금 말해? 기스 라이저의 기억을 검색한 마루가 교차 검증에 들어갔다.
“이 사람 말이 사실인가?”
“예.”
기스 라이저의 시체나 던져주려고 했는데, 시체와는 상관없이 엮이게 생겼다.
“사이코메트리 능력자라면 현장에 남은 흔적에서 기억을 읽을 수 있고?”
“예.”
기스 라이저의 기억도 마찬가지. 생체 단말기 검색도 더럽게 이상해서, 원하는 정보를 제대로 찾기 힘들었다.
#라이저 제약, #가문, #코쿤 이렇게 검색하면, 라이저 제약에서 개발한 약과 성분, 특허 같은 것들 위주로 쏟아졌고, 가문이나 코쿤도 마찬가지.
‘잭 니스 박사의 뇌로 만든 생체 단말이라더니 뭔 이딴 내용만.’
어쨌든 동부에 남은 라이저 가문과 버지니아 랭리, 국토안보국을 비롯해 유력 세력의 시선을 돌리려면, 아무리 생각해도 시체 폭탄뿐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태웠으면 피곤할 뻔했네.’
마루는 기스 라이저의 시체를 버지니아 랭리 쪽에 배달시켰다.
“저 죽습니다. 진짜로 죽습니다.”
“사이코메트리 있다며?”
“예?”
“그러니까 네가 결백하다는 증거만 있으면 된다는 소리 아니야?”
“그런 거 없습니다. 가주 시체를 다른 곳에 넘겼다는 순간 이유고 뭐고 없습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쯧-
이딴 게 어떻게 용병이 됐지?
용병이면 한몫 잡아야겠다. 그런 생각하지 않나? 버지니아 랭리에 넘기라고 주면, 가져가다가 다른 놈에게 넘겨서 한탕 해야지 이렇게 하는 거.
그럼 건네주고 돌아오든지, 아니면 가지고 라이저 가문으로 가든지. 알아서 하라고 남자를 쫓아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국토안보국 덴 브라운 국장의 연락이 들어왔다.
[···유 이사의 시체를 가지고 계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