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353)
러스트 [RUST]-352
이런. 이거 폭탄인데.
‘하필이면 덴 브라운이냐.’
유력 가문이라든지, 군부라든지, 다른 어디든 회춘에 관심 많은 쪽이랑 연결되는 게 베스트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능력이 좋아도 문제였다.
“아시겠지만, 이거 위험합니다. 그래서 오픈한 거고요.”
마루는 시원하게 까버렸다.
[알고 있습니다.]“바로 태워버리려고 했다가, 이쪽에서 잡혔다는 소문 돌면 피곤해질 것 같아서 가지고 있던 겁니다. 태웠다고 해도 믿지 않을 것 같아서요. 꿩 대신 닭이 되기도 싫었고요.”
[그럴 거라 짐작하고 있었습니다.]짐작이 아니라, 확신하고 있었으면서 이 양반.
어쨌든 그나마 거래가 되는 양반인데 폭탄 끌어안고 터져버리면 어떡하나?
마루는 살짝 고민했다.
오지랖 부리지 않으려고 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들어볼 기회였다.
“남부에 던지거나, 유력한 세력에 던져버리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이쪽에 쏠릴 관심 벗으려고 하는 거라.”
그러니까 국토안보국에 비밀리에 넘긴다는 건 불가능.
주는 건 줄 수 있어도 비밀리에는 안된다는 이야기. 어그로가 이쪽에 끌리면 본말전도니 가져가려면 어그로까지 확실하게 가져가라는 말.
[···그건 좀 위험하군요. 다시 회수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 생각보다 멀쩡한 연구시설이 많이 남아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측하기 힘드니까요.]말을 돌리시네.
“그러니까 더 좋지 않겠습니까? 상대방이 크고 우람한 우라늄 덩어리를 확보했다는 소문이 나면 너도나도 폭탄 만들기 전에 어떻게 해보겠다고 할 테니까요.”
[위험한 생각이군요.]“당장 제가 위험해지게 생겨서 말이죠.”
[······.]위험하다?
블라디마루 칼린이?
덴 브라운은 어쩐지 씁쓸했다. 수차례 같이 일했지만, 블라디마루 칼린 곁을 내주지 않고 있었다. 그런 국장의 침묵을 무엇으로 생각했는지, 부하들이 분노를 표출했다.
(국장님. 이렇게 끌려가는 건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덴 브라운은 잠시 뒤에 다시 연락하기로 하고 일단 통신을 끊었다. 새로 합류한 부하들의 생각을 들어볼 필요가 있었다.
“블라디마루 칼린이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알겠나?”
“디트로이트 병원에서 있었던 습격 때문인 것 같습니다.”
“습격사건도 그렇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이 습격한 적도 있었습니다.”
“정체를 모르긴요. 라이저 제약을 중심으로 회사에서 용병 보냈다가 몰살한 건 다 아는 일인데요.”
“강제로 군 계급을 부여한 것도 역효과를 봤습니다.”
“강제든 뭐든 일단 계급을 받았고 국가가 불렀으면 따라야지요. 블라디마루 칼린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목줄을 채워야 합니다.”
뉴욕을 장악하는 데 성공한 국토안보국 요원들 사이에 강경론자들이 많아졌다. 성공했기 때문이 아니라, 장악하는 과정에서 미합중국이 망가진 현실을 직접 봤기 때문이었다.
뉴욕을 장악하려고 노리고 있었던 식인병자들에, 유력 가문과 금융 회사들이 하는 짓거리들 그리고 뿌리 깊은 범죄조직까지.
인프라가 멀쩡한 뉴욕과 동부지역이라지만, 속은 이미 썩을 대로 썩어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블라디마루 칼린의 태도는 국토안보국 요원들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그런 요원들을 바라보던 덴 브라운 국장이 입을 열었다.
“저번에 이야기했었지? 다들 바이러스 검사는 했나?”
“······.”
“바이러스 검사랑 인지능력 검사 하지 않은 사람들은 회의에서 빠지도록.”
“······.”
“뭣들하고 있어? 안 한 사람은 나가서 검사부터 받아.”
몇 명이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났다. 감정적으로 대응하던 자들이 밖으로 나간 뒤 이야기가 계속됐다.
“그래서. 블라디마루 칼린이 왜 그렇게 반응하는 것 같나?”
“군 생활 때문인 것 같습니다.”
“군 생활? 그러니까 한국군에서 복무했을 때의 경험 때문이라고?”
“예.”
덴 브라운은 짐짓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이야기를 이끌었다.
“그게 저런 행동양식과 무슨 상관인가?”
“명령을 받는 위치에 서게 되면 부조리한 명령에 따라야 하고, 불합리한 처분을 받는다는 경험 때문이라고 보입니다.”
“군인에게 하달되는 명령은 조국을 위한 명령일 터, 군인으로 복무하는 것이 부조리하고 불합리하다니 말이 되는 소린가? 한국군에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그건 너무 나간 것 같은데?”
“아시다시피, 한국은 징병제입니다.”
“아는 소리는 집어치우고 요점만.”
“징병제가 문제가 아니라 군인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문제였다고 봅니다.”
군 생활과 환경이 힘들고 나빠서 위험한 것이 아닌, 정신적 학대에 가까운 사회 분위기. 군인을 비하하고 조롱하는 분위기가 문제였다.
원해서 간 것도 아닌데, 2년 놀고 편하게 쉬는 군대라는 이야기를 버젓이 언론과 방송에서 하는 환경. 군인을 예비 살인자 정도로 취급하는 이야기가 방송에 여과 없이 송출되는 사회.
군인을 비하하는 속어를 대놓고 쓰는 사람들, 군인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지역 상인들. 조롱하는 위문편지까지.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을 경험한 블라디마루 칼린이라면?
회의실이 웅성거렸다.
“그래서. 그런 기억 때문에 미합중국에게 충성할 생각이 없다는 겁니까?”
“조국을 위해 봉사했더라도 남는 건 조롱과 모욕인 뿐이었다면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사실 군부도 그렇고 그를 써먹기 좋은 칼 정도로 생각한 건 사실이니까요.”
다행스럽게도 블라디마루 칼린 자체를 적대하는 자들은 없는 것 같았다. 사실 그래서 덴 브라운은 미합중국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국가를 위한 봉사에는 존경이 따른다는 것을 블라디마루 칼린이 경험할 수 있도록 하려고 했는데. 그놈의 새끼들이 손에 들어온 칼을 빨리 휘두르고 싶다고 일을 벌였다.
반강제적, 사실상 강제적으로 군 계급 박아 넣고 굴리려고 했던 것.
중국 작전에 투입된 이후로 블라디마루 칼린은 자기가 원하거나, 꼭 필요할 때 이외에는 연락 자체를 거부하기 시작했고, 이쪽은 그를 움직일 방법이 점점 없어졌다.
제일 좋은 것은 블라디마루 칼린이 미합중국을 믿고, 헌신하고, 보상과 존경을 받는 선순환이 되는 것. 그래서 충분한 보상을 했고 되도록 편의를 제공해줬건만. 결과적으로는 이 정도가 한계였다.
‘조금이나마 속마음을 이야기하는 관계가 됐다는 정도인가?’
국토안보국과 자신을 싫어했다면, 이번 일을 모르는 척 이용했겠지.
“그래서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단기적으로 해결할 방법이 없습니다.”
“관계는 시간을 들여 개선한다고 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유 이사의 시체입니다.”
“그건 반드시 확보해야 합니다.”
“동의합니다. 회춘의 단서라면 유력 가문과 회사들도 협조할 겁니다.”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국토안보국에서 직접 관리해야 합니다.”
덴 브라운 국장은 다시 마루에게 연락했다.
“유 이사의 시신이 필요합니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그냥 드릴 수는 없습니다. 비밀로 할 수도 없고요.]“후- 그렇게 하지요. 원하는 조건이 뭡니까?”
[교환 조건은 모듈 원전이면 좋겠습니다. 발전 용량에 따라서 2기 또는 3기였으면 합니다.]미친.
덴 브라운 국장은 마루의 조건을 듣고 욕이 반쯤 나왔다. 스피커 폰으로 들은 부하 직원들도 마찬가지 반응이었다.
“여기서 운반···.”
덴 브라운은 반사적으로 운반할 방법이 없다는 말로 회피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비행선이 있었기 때문.
[모듈 원전을 가져온 뒤, 현장에서 교환해 가는 방법으로 하지요.]동부의 인프라를 유지하는 가장 핵심적인 자산이 모듈 원전이었다. 남부는 화력발전 돌리고 있었고, 서부와 중부는 사실상 반쯤 전기 없이 살고 있었으니까.
모듈 원전을 하나도 아니고 두셋이나 블라디 아크 타워로 보낸다면 다들 알아채겠지. 이건 비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모듈 원전 하나가 작은 도시의 생활전력 소모를 담당할 수 있는 발전량인데, 그걸 더 달라는 이유가 뭘까?
블라디 아크 타워에 3~4기의 모듈 원전을 돌리겠다는 이유가. 그렇게나 많은 전기가 필요한 일이 없을 텐데.
‘공장이라도 돌리려는 건가?’
뭘 하려는 거지?
어쨌든, 유 이사의 시신은 반드시 확보하는 것으로 결론을 낸 상태. 덴 브라운 과장이 깔끔하게 거래를 끝냈다.
“그렇게 하지요. 자세한 사항은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지요.”
[되도록 빨리했으면 좋겠습니다. 소문이 돌았으니 이걸 노리는 자들이 많아질 겁니다.]덴 브라운 국장은 통화를 마치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협상에 쓸 카드가 없었다. 블라디마루가 원하는 것은 전력생산 시설 아니면 핵. 핵을 줄 수는 없으니, 줄 수 있는 건 모듈 원전뿐.
강제로 유 이사의 시체를 회수하는 건 논외였다. 비행선이 있다고 해서 블라디 아크 타워로 침투하는 건 불가능했다. 까마귀들 때문.
까마귀를 피해 침투하는 데 성공했다고 해도 블라디 아크 타워의 방어 능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타워에 침투해 시신을 회수하는 것이 불가능한 이유는 그것 말고도 넘쳤다.
기존에 있는 정보와 시설만으로도 그런데, 계속 방어설비를 강화하고 있었다면? 강제 회수 이딴 건 제외하는 게 맞았다.
“전기라. 모듈 원전을 원하는 이유가 뭘까?”
“생산 설비를 돌리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 전력이면 중공업을 중소규모로 돌릴 수 있는 전력입니다.”
“위험하다고 생각됩니다.”
“무력도 위험하지만, 만약 블러디 아크 타워를 중심으로 일종의 도시 국가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라면 향후 수복하는데 더 큰 대가를 치를지 모릅니다.”
그 막대한 전기를 그냥 놀릴 리 없다. 그리고 전기만 제대로 통해도 복구할 수 있는 인프라가 제법 많은 것도 사실.
풍부한 전력을 이용해 디트로이트 인근 지역을 장악한다면?
모듈 원전에서 생산한 전기를 마중물로 삼아 러스트 벨트 지역 전체를 장악하려는 것이라면?
러스트 벨트 인근 지역에는 아직도 채광성 있는 중소규모 광산들이 많았다. 모듈 원전을 돌려 광산을 살리고, 살린 광산으로 화력발전과 철강, 화학으로 넘어가면 말 그대로 누구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세력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었다.
“블라디마루 칼린의 행동패턴과 인물 분석을 보면 그럴 가능성이 없습니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집단의 문제입니다. 구심점이 있다면 모이기 마련이죠.”
“맞습니다. 사람들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세력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블라디마루 칼린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미 구심점이 됐다는 것 자체가 문제입니다.”
“동의합니다. 그는 향후 미합중국의 재건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습니다. 모듈 원전을 넘겨서는 안 됩니다.”
저 분석이 맞고 옳은 소리라고 해도, 국토안보국이라면 그 너머를 볼 수 있어야 했다.
‘중부 북부를 통째로 넘기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군.’
중부와 남부를 평정한다면,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따라올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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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찜하지만 국토안보국에 유 이사의 시신을 넘기기로 합의한 마루는 서부 지역을 탈탈 터는 것에 집중했다.
“저기. 저 말 계속 따라오는데?”
김 양은 미친 듯이 비행선을 따라오는 흑마를 보며 후흐흐-하는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위대한 영도자. 종의 한계까지 뛰어넘었나?’
한 달이 넘도록 주변을 배회하며 비행선을 쫓아다니는 흑마를 보곤, 그렇고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 김 양. 울컥한 마루가 비행선을 정지시켰다.
“보자. 왜 저렇게 따라다니는 건지.”
“후후후- 다 이해함.”
칼로 썰린 자국이 한쪽에 선명한 유 이사의 유품, 카우보이모자를 쓴 김 양이 느릿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히이이이잉-
푸르르르륵-
좋다고 실컷 쫓아올 때는 언제고, 마루가 얼굴을 보이자 투레질하는 흑마였다.
“야. 저거 암말이라며?”
“?”
“저거 안 보이냐? 수컷이잖아.”
“!”
히이이이잉-
흑마가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방향에는 김 양이 있었다.
어? 나?
졸지에 어리둥절한 김 양이 눈을 깜박이는 것을 본 마루가 슬쩍 자리를 피하자, 성큼성큼 다가온 흑마가 김 양에게 머리를 들이밀었다.
강제 간택이었다.
어- 음- 좋은 건가?
헤벌쭉 웃은 김 양이 폴짝, 안장에 올라탔다.
푸르르르륵- 투레질하는 흑마의 위에서 보니 풍경이 달라 보였다.
그러니까 자신의 위대함을 흑마도 알아봤다는 건가?
후후후- 하하하-
“에? 말?”
간호사의 놀란 목소리에 김 양이 자랑스럽게 허리와 가슴을 쭉 폈다.
다그닥다그닥
자연스럽게 움직인 흑마가 간호사를 향해 가더니 움찔움찔- 등판에 있는 김 양을 털어내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런 씨발 말 새끼가.
철컥-
소리와 동시에, 흑마는 조용히 간호사를 스쳐 지나갔다. 느릿하게. 애절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