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358)
러스트 [RUST]-358
PD의 참회하는 모습에 김 양은 담담하게 끄덕였다.
역시 PD는 근본이 됐다. 잘못을 알고 깨닫지 않던가? 그에 반해 1호기, 2호기는 전부 뭐라고 할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럼 어떤 명칭이 좋을까요?”
아직 디트로이트도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건만.
두 사람은 모두 위대한 그 무엇을 꿈꾸고 있었다.
“North Holly Republic 이거 어떰?”
느낌만으로도 저거 건드리지 말자, 그런 느낌이 들지 않음?
김 양의 갑작스러운 난입에 PD는 감동이 확 깼다.
하필이면 미국 사람들의 뇌리에 강하게 박힌 ‘북’과 ‘공화국’이라니. 이게 마케팅이라면 이런저런 의미로 성공적인 느낌이지만, 나라 이름을 이런 식으로 내걸었다가는 다들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은데?
PD의 떫은 표정을 본 김 양이 한 걸음 후퇴했다.
“그럼 어떤 명칭이 좋겠음?”
“신성 교국이지요.”
신성 교국(Holly Christendom)이라는 말에 이번에는 김 양의 표정이 묘해졌다.
일단 정리를 할 필요가 있었다.
“그 교국. 그거 기독교적인 의미 맞음?”
“그분은 신성하십니다.”
김 양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는 하지.
특히 칼을 뽑으면, 여러 의미로.
응.
인정.
“그분은 이 땅에 새로운 질서를 세우실 것입니다.”
그것도···. 인정.
위대한 영도자의 질서를 세울 거니까.
끄덕
“천벌을 받아 죽어갈 자들도, 회개하고 돌아올 자들도, 믿고 기다린 자들까지 모두에게 그분이 다스리는 나라임을 알리는 이름으로는 신성 교국이 제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 좋은데, 그거 그분이 싫어할 듯.”
그분 곁에 오래 있어서 아는데 말이야, 그분이 뭐라고 할까 예상보다 섬세한 부분이 있더라고. 김 양이 은근히 목소리를 낮췄다.
“무슨 어쩌고 교국, Holly 저쩌고 교국. 이렇게 종교 향기 짙으면 그분 부담스러워 하실 듯.”
“그런가요?”
“당연함. 그러니까 일단은 종교 느낌 싹 빼고, 인민의, 인민에, 인민을 위한, 느낌으로 가는 게 무난하지 않을까 싶음. 오직 그분만이 영도자이자, 오직 그분만이 총통이신 인민공화국. 이거 느낌이 딱 좋지 않음?”
그러니까 공화국의 최고 존엄으로 가는 게 좋음. 설득되는가 싶던 PD의 눈빛이 ‘인민’의 반복과 ‘영도자’, 그리고 ‘총통’에서 다시 엄해졌다. 뭔가 매운맛이 너무 강하다는 눈빛.
두 사람은 일단 이름은 나중에 정하기로 하고 한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중요한 것은 희망과 구원입니다. 무너진 세상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고 안전한 삶을 살 수 있다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모일 겁니다. 모인 자들을 잘 다스려 신성 교국의 신도가 될 수 있도록 가꾸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PD의 생각은 그랬다. 이기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사고방식에 찌든 사람들에게 진정한 HOLLY가 무엇인지 교육해, 그분의 아래에서 서로 섬기고 도우며 살아가는 신성한 사회로 가자는 것.
“그건 너무 추상적이라고···.”
“그분이 이곳에 계시기 때문에 괜찮습니다.”
신성한 그분이 실재하기 때문에 괜찮다는 PD의 대답.
그분 아래에서 딴 맘 먹는 놈은 물리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굳건한 믿음.
‘그렇기는 한데···.’
위대한 영도자가 지배하는 영원한 공화국, 찬란한 공화국. 그 곁을 노리는 김 양은 PD의 이야기를 일단 잠자코 들었다. 일단 소나기가 내리면 굳이 맞을 필요 없이 살짝 피하는 게 당연했으니까.
PD와 김 양의 건국계획은 그렇게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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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로이트의 미래가 성스러운 매운맛으로 버무려지는 동안, 뉴욕은 갑작스럽게 증가한 실종 사건 때문에 어수선했다.
“실종자가 또 나왔습니다.”
국토안보국 덴 브라운 국장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이번엔 어디야?”
“할렘 거리입니다.”
“또?”
그렇지 않아도, 식인귀 갱단을 솎아내면서 식인귀와 연관된 자들까지 전부 정리한 동네가 할렘이었다.
처분된 자들 모두 동네에서 알던 자들이었고, 그들에게 있어 갱은 일종의 방파제 같은 역할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다른 갱이나, 마피아, 카르텔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방파제. 경찰은 멀고 총은 가까웠으니까.
그런데 할렘에 있는 갱들을 쓸어버리고 난 뒤, 실종자가 늘기 시작한 것.
할렘 지역 사람들은 ‘경찰은 뭐하냐?’, ‘실종자 찾아내라.’, ‘이러려고 애들 다 잡았냐?’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이런 불만을 간과할 수 없는 것이. 사방에서 모여드는 피난민 가운데 흑인과 라틴계의 유입 증가로 뉴욕의 인종 구성비가 급격하게 변하고 있었기 때문.
백인이 20%, 흑인이 25%, 라틴계가 23%, 유대인이 20% 정도의 비율. 나머지 12%가 유럽과 아시아 사람들인 상황.
4명 가운데 1명이 흑인인데 이를 무시할 수 있겠는가?
당장 뉴욕 시장도 흑인이었고, 문제를 일으킨 식인귀 부시장을 포함한 5명의 부시장 모두 백인을 제외한 인종의 여성이었는데?
“할렘을 중심으로 시위가 벌어질 조짐이 있다고 합니다.”
“지금?”
“예.”
당장 뭐라도 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지 않으면 바로 뭔가 터질 분위기였으니, 뉴욕 경찰국이 도움을 요청한 것이었다.
덴 브라운은 한숨을 내쉬었다. 국토안보국의 인력 고갈 현상은 식인병자 색출 작전으로 정점을 찍었다.
그 뒤 현장 요원을 뽑는 조건을 완화해 대규모 인력 충원을 했지만, 그 충원한 인력이 어디로 갔는지 모를 정도로 소모가 심했다. 이제는 만성 인력부족 조짐이라고 봐도 될 지경.
“연방수사국도 돕겠다고 합니다.”
“마약수사대도 지원하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하- 그나마 다행이군.”
연방정부의 각 부서는 서로 경쟁하고, 심할 경우 방해하기까지 했지만, 식인귀 토벌 작전 이후 뉴욕에서만큼은 서로 믿고, 돕고, 끌어주는 훈훈한 분위기가 됐다.
이렇게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 놓고서, 힘들다고 도움 요청을 무시할 수 없었다. 인력이 부족하면 나누고 쪼개서라도 갈아 넣을 수밖에.
“지금까지 실종자가 나온 곳을 올려봐.”
대형 모니터에 뉴욕시 지도가 떠오르곤 붉은색 점으로 실종자가 신고된 지역이 찍히기 시작했다. 확실히 흑인과 라틴계가 거주하는 구역이 붉었다.
“식인병자들이 있는 건 아니겠지?”
“전수 검사에 들어갔기 때문에 그럴 확률은 낮습니다.”
덴 브라운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작정하고 숨겨줬다면 놓쳤을 수도 있어. 그리고 그렇게 숨었던 놈이 식인병을 퍼뜨리고 있다면?”
“···가능성 있습니다.”
범죄자들 사이에서는 신체능력이 강화되고 질병에도 면역된다는 소문과 함께 식인병에 걸리는 게 유행이 됐었다.
당시에도 수많은 사람이 갑작스럽게 실종됐었는데, 지금 증가하는 식인병 숫자도 그에 못지않은 것을 보면. 그쪽을 확인해야 했다.
“엑소슈트와 대구경으로 무장하고. 브루클린을 북부와 동부, 퀸스 남부, 브롱스 북부를 싹 뒤지라고 해.”
지도를 살피던 덴 브라운이 하수도와 지하철 지도를 겹쳤다. 확실히 그 라인을 따라서 찍힌 붉은색 점이 제법 있었다.
“숨었다면 하수도, 지하도와 지하철, 건물 지하일 확률이 높으니까. 그쪽을 중점적으로, 연안 부두와 창고도 빼먹지 말고.”
“확인하겠습니다.”
“이쪽에서 진입할 테니, 경찰은 주변 통제와 포위망 만들라고 해. 최소 철갑탄을 준비하고, 산탄총에는 슬러그 탄 챙기고.”
“예.”
“연방수사국에는 새로 생긴 범죄집단이 있는지, 갑작스럽게 세력 확대한 집단 있는지, 그쪽 수사 부탁한다고 하고. 마약수사국에는 최근 도는 약들의 종류와 남은 마약조직이 있는지 확인 부탁하고.”
“알겠습니다.”
그렇게 순조롭게 수색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덴 브라운의 예측대로 숨어있는 식인귀들이 잡히기 시작했다.
“얼마나 잡았나?”
“브루클린에서만 13명입니다.”
“놓친 거 없고?”
“출입구 막고 들어갔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도망쳤으면 모를까 브루클린에 있는 놈들은 다 잡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시민들이 탈출을 도왔을 가능성은?”
“작전구역 내에 거주하는 시민들 전부 식인병 감염 진단 끝냈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지만, 덴 브라운 국장의 주름이 잡힌 미간은 펴질 줄 몰랐다.
브루클린에서 실종된 사람만 하더라도 40명대가 넘어 50명이 될 판인데 고작 13명? 식인귀들은 첫 식욕만 채워지면 이후에는 어느 정도 식인욕구를 조절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13명이 많이 잡아먹었다고 가정해도 20명 안짝이어야 했다. 두 배로 먹었다고 해도 26명이었고.
“숫자가 맞지 않아.”
최소한 절반 이상의 숫자가 식인귀와는 상관없이 발생했다는 의미였으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덴 브라운 국장의 중얼거림을 들은 직원들이 서로 웅성거리는 가운데, 그는 생각에 빠졌다.
‘식인귀들은 브루클린을 비롯해 퀸스, 브롱스를 모두 합해도 50명 이하. 그런데 실종자는 200명 육박. 식인귀의 특성을 무시하고 2배로 잡아먹었다고 해도 100명이 남는다.’
실종자 100명은 어디로 간 거지?
뉴욕은 이미 한 번 식인귀 청소를 대대적으로 한 도시인지라, 실종자가 하루에 200명 가까이 나올 이유가 없었다.
‘기다려보면 알겠지. 식인귀의 이상식욕 사태일지, 아니면···.’
하루가 지나고 다시 실종자가 생겼다. 어제 식인귀를 50명 가까이 처분했음에도 불구하고 무려 167명이나 되는 실종자가 새로 생긴 것.
그렇다는 것은 식인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소리였기에, 국토안보국이 발칵 뒤집혔다. 대대적인 수색과 색출을 했음에도 고작 하루 만에 대량의 실종자가 또다시 생기자, 도시의 분위기가 흉흉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CCTV는?”
“전부 확인했습니다.”
“추가로 CCTV 달아.”
“인근 주민이 반대하고 있습니다.”
“닥치고 설치해. 지금 사람들 실종되고 있는데 개소리하지 말라고 해!”
“특수집행부를 부르는 것이 어떨까요?”
“저도 동의합니다.”
특수집행부. 전 라이저 제약 소속 용병단에 있던 사람들이 속한 부서를 언급하는 요원들이었다.
라이저 제약의 저장시설과 비밀 설비인 코쿤 외부에서 경비하던 용병들은 기스 라이저가 이끌고 간 본대와의 연락이 끊기고 장거리 텔레파시도 끊기자, 현장을 이탈할 수밖에 없었다. 잘못하면 들어가지도 못하는 빈집 지키다 죽는 것으로 끝날 조짐이 보였기 때문.
그렇게 뉴욕으로 들어온 그들은 곧 국토안보국의 감시망에 걸려들었고, 과거를 지워주는 대신, 새로 신설한 특수집행부라는 기관 소속으로 일할 것을 제안받게 됐다.
‘기스 라이저의 밑에서 불법적인 일을 했던 것을 지워주지. 어떻게 하겠나?’
즉결처분이냐? 아니면 새로운 신분이냐?
부단장을 비롯한 남은 용병들은 덴 브라운 국장의 거래에 동의했고, 특수집행부 소속이 되었다. 그들을 투입하자는 이야기는 그대로 진행됐다.
“이거 어디든 구르는 게 우리 일이 된 거 같지 않나?”
“조용히 해. 식인귀인지 신인류인지 싹 쓸었는데도 쥐도 새도 모르게 사람들이 사라졌다.”
오래된 하수도를 타고 이동하는 용병들의 목소리가 어두운 터널 저편을 흔들었다.
“어때? 뭔가 느껴지나?”
“아니요. 사람의 흔적은 느껴지지 않아요.”
정신계 능력 사이코매트리 능력자인 에리카의 이야기에, 팀장이 혀를 찼다.
“쉽게 가긴 글렀군. 계속 진입한다. 에리카는 중간마다 한 번씩 확인 부탁해.”
“예. 알겠어요.”
그렇게 두 시간 넘게 지하수로를 헤매던 도중, 바닥에서 사념을 읽던 에리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티. 팀장님!”
“찾았나?”
“무. 물결이요. 물결처럼 밀려드는···.”
“물결? 무슨 물결?”
횡설수설 에리카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을 본 팀장이 즉시 진정제를 주사했다. 사방팔방으로 흔들리던 눈동자가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했다.
“진정했나? 좋아. 뭘 봤지?”
“나. 나가야 해요.”
콰직- 바닥에 짓밟히는 소리. 마치 빈 페트병 찌그러지는 소리가 깜깜한 지하수로를 가득 채웠다.
“이게 뭐지?”
손바닥 두 개 정도 크기의 갈색 물체, 속이 빈 갈색 구조체를 집어 든 사람이 팀장에게 보고했다.
“팀장님 여기 이상한 게 널려있습니다.”
“나. 나가야 해요.”
“진정해. 능력을 너무 많이 써서 그래. 잠깐 쉬고 있어. 뭔데?”
당장 나가야 한다며 달라붙는 에리카를 떼어낸 팀장이 선두로 나섰다. 쭉 길게 이어진 라이트 불빛 아래, 반투명한 갈색. 그러니까 맥주병 색 비슷한 색깔의 납작한 것들이 사방에 널브러져 있었다.
“이게 뭐지?”
콰직-
텅 비어있는 껍질? 용병들 가운데 빈민가 출신인 대원 하나가 바닥에 굴러다니는 그것을 유심히 보더니, 중얼거렸다.
“이거 바퀴 알집 같은데요?”
“무슨 개소리야. 5~6인치(12.7~15.2cm) 바퀴 알집이면 바퀴 크기가 15~20인치(38~50cm)짜리라는 거냐?”
“여기가 아마존이냐?”
“아. 마. 존?”
킥킥- 큭큭- 팀원들이 키득거리는 가운데, 진정하나 싶던 에리카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왔던 길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젠장. 가지가지 하네.”
팀장이 고개를 흔들었다.
“에리카가 또 발작했다. 호세.”
“예-”
“에리카 데리고 나갔다가 진정되면 들어와.”
“알겠습니다.”
“여. 호세 쫄았네? 쫄았어.”
“8.8인치 호세. 힘내라.”
“둘이 있을 기회다. 파이팅-”
휘익-
예-
에리카를 따라가는 호세의 뒤에 휘파람을 불며 배를 잡고 웃던 대원이 문득 천장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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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드는 소리를 틈탄 움직임.
반질반질 오래된 지하수로 습기 먹은 벽돌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Shit!!!”
샤샤샤샤샤-
짙은 갈색의 물결이 그들을 덮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