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363)
러스트 [RUST]-363
뽁-
경쾌한 소리를 내며 뽑힌 꼬챙이 아래 늘어진 변종.
항문과 내장이 찢겨 버둥거리면서도 죽지 않던 놈을 깔끔하게 친구들 곁으로 보내준 마루가 고개를 들었다. 머리 위를 배회하는 까마귀들이 입맛을 다시는 느낌
까아아악!
깍!
조용히 경계를 돌던 놈들이 마루가 자기들을 본 것을 알아챘는지 제각각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밥이다.’, ‘밥 주세요.’, ‘먹이.’ 대충 그런 느낌에 마루가 쿨하게 자리를 피하며 말했다.
“그래라.”
마루의 주변을 맴돌던 까마귀 무리가 변종의 주검을 헤집기 시작했다. 빼곡하게 앉았는데, 발톱과 부리가 잘 박히지 않자 당황하는 녀석들.
그나마 눈부분을 쪼는 녀석은 보람 있었지만, 나머지는 어떻게 하지 못하고 쩔쩔맸다.
사실 까마귀들은 변종을 피했다. 그들의 부리와 발톱으로는 어떻게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
한 마리가 용기를 냈는지, 아니면 벌칙으로 나오게 됐는지 마루를 향해 총총 다가오더니 이클립스가 들어있는 검집을 부리로 살살 두들겼다.
콕콕- 까악-
톡톡- 깍?
피식- 헛웃음 지은 마루가 칼을 뽑자,
까마귀들이 슥- 자리를 비켰다.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바라보는 모습에
‘에라- 서비스다.’
그날 까마귀들은 진귀한 변종 고기로 포식했고, 마루를 찬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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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 브라운 국장과 김 양의 이야기는 겉돌았다.
알아듣는 것 같으면서도 알아듣지 못하고, 꼬리를 잡고 늘어지지 않지만, 꼬리가 잡힌 대화. 마치 뫼비우스의 띠에 갇힌 것 같았다.
이게 어이없는 것이 단답형으로 질문해야만 무한 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니, 블라디마루 칼린과 했던 대화처럼 서로 적당히 배려하면서 이야기하기 불가능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요. VX 가스를 쓰지 마세요.”
“바퀴벌레가 밖으로 빠져나갈 경우, 책임은?”
아니 이년이 진짜. 드물게 열이 오른 덴 브라운 국장.
“무리하게 들어가지 않으면 되지 않습니까.”
“시간은? 한 달이고 두 달이고 해결될 때까지 여기 있으라는 거임?”
VX 가스 누출로 지하수로 곁가지에 거주하고 있던 노숙자와 피난민 몇이 사망했다. 그리고 그건 득달같이 달려든 기자들에 의해 끔찍한 사건으로 포장되어 팔렸다.
‘뉴욕의 참사. 5명의 죽음.’
‘약자의 죽음에 눈을 돌린 당국.’
‘인간성을 상실해가는 뉴욕시.’
‘사망원인은 무엇인가? 침묵하는 경찰.’
물론 5명이나 죽은 사건이 가벼운 사건은 아니었지만, 엄밀하게 따지자면 그건 통제에 따르지 않은 노숙자와 피난민 탓이 맞았다. 여러 차례 대피하라고 했으니까.
‘강제소거해야 했을까?’
그건 그 나름대로 또 문제가 됐을 것이다.
‘하수도에 있던 자들이 거리로 나온 현실.’
‘갈 곳 없는 자들의 마지막 피난처에서 내쫓는 이유.’
‘지하수도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이런 기사가 나왔겠지.
뉴욕 행정당국은 질서를 유지하려면 과도한 불안감을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분명히 일리 있는 판단이었지만, 그 결과 천 단위의 사람을 잡아먹은 것으로 추측되는 괴물 바퀴벌레는 감추기로 했다.
실종자들이 주로 노숙자, 피난민으로 거주가 불명확한 자들이거나, 할렘 지역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기에 그런 선택이 가능했다.
식인 바퀴벌레 공포로 질서가 무너질 것을 염려해, 정보공개 하지 않은 선택했던 것이 지금 기자들의 특종 사냥 거리가 됐을 뿐. 다만 당장 작전의 주체인 국토안보국은 답답할 따름이었다.
“우리 계약은 기간제 계약이 아닙니다. 그쪽에 의뢰를 맡긴 이유는 안전하게 처리를 하기 위해서고.”
“그래서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처리될 때까지 계속 붙잡아 두시겠다?”
김 양은 솔직히 웃겼다. 상황이 어떤 상황인데 아직도 이러고 있는 건지, 이러다가 일이 잘못되면 덤터기 씌울 것 아닌가? 지금 하는 소리 보라. 뭔가 뒤집어쓰겠다 싶으니까 저러는 것.
마루가 뒤에 있으니까 선을 넘지는 않겠지만, 꼬투리를 잡아서 마루 이용권 획득 같은 짓을 시도할지 모른다고 생각 들었다.
‘책임 소재는 가려야 해.’
문제는 김 양이 그렇듯 덴 브라운 국장도 책임 소재를 짚고 넘어가려고 했던 것.
뉴욕의 인프라는 대부분 멀쩡했다. 기존의 체계가 온전하게 남아있다는 말은 언론, 방송도 멀쩡하다는 의미. 정보의 유통이 활발했고 사람들의 인식도 예전과 다르게 변할 이유가 없었다.
마찬가지로 정치, 행정, 사법, 경제 시스템이 그대로 작동하고 있었기에 어느 기관도 함부로 움직이기 힘들었다. 그 기관이 현재까지 제일 많은 일을 한 국토안보국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균형과 견제는 굉장히 좋을 수도 있었고 반대로 아주 안 좋을 수도 있었지만, 김 양은 그저 웃길 따름이었다.
‘새끼들이 전부 꽃밭이야.’
뉴욕에서 반나절만 달려도 동네가 쓰레기통이나 다름없었다. 죽음이 가득한 마을과 작은 도시들이 넘쳐나고 있는데, 여기서는 노숙자 몇 죽은 거로 호들갑 떨고 있는 아이러니.
이 빌어먹을 뉴욕이라는 동네는 전쟁 전처럼, 변이 바이러스 사태가 막 일어났을 당시와 별달리 변한 것 없이 그렇게 굴러가고 있었다.
그게 김 양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거기다 대고 책임?
“민간인들 사망사고에 관한 책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VX까지 않았으면 바퀴벌레들 사방으로 퍼졌을 텐데, 그게 낫다는 소리임?”
“그것까지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의뢰를 받았으면 제대로 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의뢰는 바퀴벌레 잡는 것 아님? 우리는 바퀴벌레만 잡겠다고. 노숙자고 피난민이고 모르겠고.”
김 양의 ‘배 째.’ 벼랑 끝 화법에 덴 브라운 국장은 한계에 달했다. 도돌이표 같은 년.
“···아니. 지금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됩니까?”
“그러니까 계약대로 바퀴벌레만 잡겠다는 말임. 민간인들 관리를 하든, 책임을 지든, 국을 끓이든 그쪽에서 하고. 이쪽은 바퀴벌레를 잡는 게 맞지.”
끝까지 일관된 주장을 하는 김 양. ‘다른 건 모르겠고. 우린 새우만 잡겠다.’
덴 브라운 국장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야니아 킴은 협의나 협상이 가능한 게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김 양은 이곳에 오래 있고 싶은 생각 없었고 다른 거 신경 쓰고 싶은 마음도 전혀 없었다.
노숙자든 피난민이든 죽지 않게 하려면 자기들이 미리 끌어내든지. 새우 새끼들 굽기도 바쁜데 그딴 걸 신경 써야 하나?
안 나간다고 하면 쏴도 되나? 그것도 아니잖아. 그럼 아쉬운 놈들이 하든지.
식인병자들 처리했을 때처럼 조용히 정리하고 싶은 덴 브라운 국장과 시끄럽든 말든 후딱 치워버리고 싶은 김 양은 간신히 합의점에 도달했다.
VX 가스탄을 쓰지 않는 대신, 뒤로 빠지는 바퀴벌레들은 국토안보국이든 뉴욕 경찰국이든 그쪽에서 알아서 막기로.
김 양은 바로 작전에 돌입했다. 이딴 동네에서 시간 끄는 거 정말 싫었으니까.
[···지금부터는 최대한 깊게 들어가야 하니까 소모품 넉넉하게 잡도록.]소모품을 최대한 챙기는 중에 섬광 폭음탄과 최루탄을 넉넉하게 넣은 김 양이었다. 일본에 있을 때 제법 효과가 좋았던 걸 떠올렸기 때문.
[진입.]3번째 새우잡이가 시작됐다.
후- 진입하는 모습을 카메라를 통해 지켜보던 덴 브라운 국장이 울화 섞인 숨을 내쉬었다. 대체 블라디마루 칼린은 무슨 정신으로 저 여자를 지휘관으로 보낸 걸까?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일부러 엿 먹이려고 할 이유는 없고.’
그러고 보면 그쪽의 인적 자원은 상당히 빈약했다. 말이 통하는 사람이라고는 한국으로 떠난 버나드 그린(김기순) 그리고 블라디마루 칼린 두 사람 정도.
이번에 확인한 결과 야니아 킴은 보고서대로 이상한 여자였고, 그렇다면 마이클 뉴먼 PD도 제정신이 아닐 가능성이 컸다.
‘그나마 간호사가 정상적이긴 한데.’
이쪽과는 작전 관련된 이야기나, 향후 미래 대책을 이야기하긴 힘들어 보였다. 일본인 특유의 과장된 반응도 그렇고 청순한 타입이라는 소리였으니, 진지한 이야기를 하기엔 좋지 않은 상대라고 봐야 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자도 대화 상대로 거북하긴 마찬가지. 전신화상을 입은 천재적인 컴퓨터 전문가. 그리고 지금은 자유롭게 풀려났지만, 목줄이 채워져 정부기관에 쥐어 짜였던 해커. 제니아 로든.
후드를 깊게 덮어쓰고 고글과 마스크를 착용해 얼굴을 감추고 다니는 그녀는 과거가 화려했다. 어쨌든 정부나 정부기관 자체를 극도로 경계하고 혐오하고 있으니, 정상적인 대화는 불가능하다고 봐야 했다.
‘생각보다 빨리 세력을 확장 하나 했더니, 어렵겠군.’
많이 퍼줘도 나중을 생각하면 많이 퍼준 게 아니었다. 원자재 10배? 그 원자재로 만든 장비는 결국 미합중국의 자산이 될 텐데?
따지고 보면 건네준 것들은 미합중국 시민을 지키는 데 사용되고 있었다. 그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중북부를 지키는 방패가 되고 있었으니까.
덴 브라운 국장은 연초에 불을 붙였다. 매콤한 연기가 후각을 자극했다. 뭣도 모르는 것들이 퍼준다. 손해다 말하는 데 그게 아니었다.
좁고 작게 보면 퍼주는 것 같아도, 그들이 한 만큼 가져나는 것이었고. 넓고 크게 본다면 전부 미합중국과 시민을 위한 일이었다.
‘디트로이트에서 멈추면 곤란해. 최소한 5대호 인근 도시를 장악해줬으면 했는데 말이지.’
[국장님 최신 자료 올렸습니다.]“그래? 수고했네.”
블러디 아크 타워는 빠르게 세력을 확장해 디트로이트 시를 거의 전부 수복하고 있는 상황. 주요 정치세력은 마이클 뉴먼 PD를 중심으로 한 HOLLY 교도들의 세력. 신정(神政) 일치를 추구하며, 블라디마루 칼린을 신의 화신, 구원자로 생각함.
‘좋지 않은데.’
덴 브라운 국장은 자료를 읽자마자 위험함을 느꼈다. 종교적인 가치를 떠나서 블라디마루 칼린을 신격화한 정치구조가 뿌리를 내리면 나중에 통합하기 어려웠다.
다음은 김 양을 중심으로 한 공화국 세력. 블라디마루 칼린을 최고 존엄의 위치에 놓은 수직적 정치구조. 말이 공화국이지 일종의 철인 정치였다. HOLLY 교도가 껄끄러운 사람들이 중심이 된 세력이었다.
‘이건 사실상 그 나라 아닌가?’
덴 브라운 국장은 눈을 감았다. 이쪽도 답이 없었다.
이런 상황인데도 ‘블라디마루 칼린은 정치적 성향을 보이지 않고 있다.’라···.
권력에 대한 욕심이 없는 건가? 너무 커도 문제였지만, 지금처럼 신경 쓰지 않는 것도 문제였다. 생각 같아서는 사람들을 보내 중간 관리자를 채워주고 싶지만, 이쪽도 극심한 인력난.
‘나중을 생각하면 민주주의적 정치세력도 자리 잡고 있어야 해.’
대세가 아니더라도 두 세력을 견제할 정도는 돼야 했다. 그것도 블라디마루 칼린과 직접 소통 가능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수장이어야 했다.
일단 성향상 간호사는 아웃. 간호사는 이미 PD 쪽이라는 분석이 있었으니까. 그럼 후드, 해커밖에 남지 않았다.
‘이쪽은 무정부주의에 가까울 것 같은데.’
덴 브라운이 어떻게 써먹어야 하나 고민하던 중. 보안팀에서 연락이 왔다.
[국장님 외부 연계 서버에서 해킹 흔적이 발견됐습니다.]“안쪽은?”
[문제없습니다.]“그럼 괜찮으니까 됐어. 어디서 들어왔는지는 몰라도 대응하지 않으면 의심할 테니까 보안수칙대로 하도록 해.”
먹음직스러운 걸 종류별로 넉넉히 깔았으니, 숨은 것들이 한 번 맛을 보면 머리를 들이밀겠지.
[알겠습니다.]“방비 강화하고, 무슨 소린지 알지?”
[예. 준비하겠습니다.]“좋아. 수고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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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로이트와 뉴욕 사이의 거리는 생각보다 가까웠다. 자동차로 가면 10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으니까. 거리로는 640마일(990km) 내외.
물론 현실은 도로가 파괴된 구간도 많았고 감염자, 변종, 변이 괴수에 식인귀 그리고 약탈자들까지 넘쳐 육상 이동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저 아래 무너진 도로와 불타는 도시를 내려다보며 후드는 생각에 잠겼다. 뉴욕은 난민들로 복잡해진 것을 제외하면 예전과 같았다.
자유로움이 넘치는 분위기. 뉴욕 주와 인근에 한하지만, 인터넷과 인터넷 기반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었다. 지하철도 굴러가고 있고, 자동차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찌라시 신문까지.
공항 인근에 자리 잡은 새떼 때문에 항공편을 쓸 수 없다 뿐이지, 나머지는 예전 뉴욕과 다를 바 없었다.
책상에 놓인 노트북과 USB. 여기에 있는 정보라면 충분히 얼굴을 치료할 정도의 공이 됐다. 치료해 주겠지? 지켜본 결과 그는 거래가 확실했다.
후드는 양팔을 쭉 내밀었다. 티 하나 없이 새하얗고 매끈한 피부. 이제 곧 얼굴도 되찾을 수 있었다.
어쩐지 간질거리는 느낌.
블라디 아크 타워에서의 삶은 나쁘지 않았다. 필요한 것은 넉넉했고, 원하는 자료는 마음껏 살펴볼 수 있었다.
그러나 뉴욕에서의 삶 같은 것은 없겠지, 앞으로도 없을 것 같고. 본래의 얼굴을 되찾은 그녀의 생각은 무럭무럭 자라 뉴요커의 삶까지 이어졌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자 몇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저 멀리 동그랗게 순찰하는 까마귀 무리는 이제 디트로이트의 상징과 같았다.
큰 원이 있고, 한쪽 구석에 작은 원이 빙빙 도는 모습에, 후드는 망원경으로 그 아래를 살폈다. 저렇게 까마귀들이 움직이는 것은 그가 있다는 의미였으니까.
그리고 그녀의 눈에 들어온 광경.
양손에 각기 꼬챙이와 칼을 든 그가 있었다. 바닥에 널린 시체를 밟고 선.
슥- 하늘을 올려다보는 그의 눈동자.
마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