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37)
러스트 [RUST]-37
김 실장의 눈에서 살기가 흘러나왔다.
질식하도록 짙은 살기에 직원은 말하던 것을 순간적으로 까먹었다.
“왜 말이 없어? 그년 어디에 있는데?”
“그게 확실한 건 아···.”
쫘악!
직원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어디래?”
“포장 택시. 포장 택시 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김 실장이 고개를 살짝 꺾었다.
“포장 애들이 김 양을 잡았다고?”
“그게 아니라.”
짜악!
“똑바로 말 못 해?”
“그. 2팀이 올라가면서 포장 택시 팀에게 연락했답니다. 2팀이 올라간 뒤, 허겁지겁 내려오는 여자가 있으면 포장하라고요. 그래서 급하게 뛰는 여자들이 택시를 잡으면 바로 포장하려고 대기하고 있었는데, 다 꽝이었고, 한 택시가 이상한 여자를 봤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김 실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하라는 의미였다.
“버스 정류장 인근에 대기하고 있던 택시인데, 한 여자가 가방을 주렁주렁 매달고 와서, 예약된 택시라고 다른 택시 잡으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택시를 지나쳐 버스 정류장으로 가더랍니다.”
“그게 김 양하고 무슨 상관이야?”
라고 싸대기를 날리려던 김 실장이 문득 무엇이 떠올랐는지 벌떡 일어났다. 김 양이 쓰던 방으로 달려간 김 실장. 벽에 구멍이 난 객실에는 짐이나 물건이라고 할 게 없었다.
“그년이다. 그년이 무슨 버스 탔는지, 택시 블박 확인해서 몇 번 버스 탔는지 찾아. 애들 전부 장비 챙겨. 방탄복이랑 방탄 마스크 잊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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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양이 탄 버스는 돌고 돌고 돌았다. 영등포역을 돌아 서울역까지 가는 버스였다. 김 양이 폰으로 기차 예매를 하려고 했더니 영등포역에서는 부산 가는 열차가 너무 없었다.
영등포역이든 서울역이든 부산만 빨리 가면 되니까 뭐. 어차피 지금 탄 버스가 서울역까지 가니 그냥 계속 타고 가기로 했다.
와- 김 양은 감탄했다.
택시를 타면 10~15분이면 올 거리를 무려 30분이 넘게 걸려서 왔다. 버스 전용차선으로 왔는데? 세상에 실화인가? 아니면 버스를 잘못 탔나? 너무 무겁고 힘들어서 영등포역·서울역 간다고 쓰인 버스를 반갑다고 탔더니 함정이었다.
끙-
끙-
등에 메고 양쪽 어깨에 걸고 왼팔로 들고 오른팔로 캐리어를 끌었다, 김 양의 몸통보다 짐의 부피가 더 커서 무슨 피난민처럼 보였다. 김 양이 서울역 고지를 향해 땀과 눈물과 저주를 흘릴 무렵 지나가던 두 청년이 말했다.
“이거 ···저희가 좀 도와드릴까요?”
김 양의 얼굴이 희망을 본 것처럼 환해졌다. 마스크를 쓰고 모자도 썼기에 얼굴 보고 껄떡대는 사람들도 아니었다. 순·수·한 호·의!
“네. 정말 감사합니다.”
친구로 보이는 두 청년이 김 양이 들고 끌고 있는 짐을 두 개씩 들어줬다. 양팔의 자유를 찾은 김 양이 폴더 인사를 했다.
좋아서 욕한다는 게 이럴 때 하는 소리였구나. 정이 넘치는 한국 만세.
청년들은 김 양이 매표소로 간다고 하자, 자기들도 기차 타려고 가는 길이었다며 매표소까지 짐을 들어줬다.
기차에 타서 약간 문제가 생겼다. 조막하고 여린 체형의 김 양인지라. 기차 선반에 짐을 올려놓기 힘들었다. 낑낑거리며 까치발로 짐을 올리겠다고 사투를 벌일 무렵, 근처에 있던 아저씨가 무심하게 으쌰- 하는 소리와 함께 짐을 들어 올려줬다.
“아니 뭔 짐이 이렇게 무거워요.”
허허- 웃으며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아저씨에게 김 양은 다시 폴더 인사를 했다. 일반인의 일상이란 거. 어쩌면 나쁘지 않은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순간 중국에 있던 시절 기억이 떠올랐다. 깡패에게 빼앗긴 짐. 아무도 돕지 않았었다. 못 본 척 지나가는 사람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길바닥에 똥을 싸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아- 길바닥에 똥은 한국도 그럴지도?
김 양은 조금은 여유로워진 마음으로 출발시간과 도착시간을 문자로 날렸다.
매번 회사가 운영하는 자가용이라든지 승합차, 트럭만 타고 다녔던 김 양이라 고속철도는 처음이었다. 진짜 빨랐다.
부산역에 도착해서도 사람들이 짐을 내리고 옮기는 걸 도와줬다. 김 양은 폴더 인사에 적응됐다. 오늘 하루가 김 양 인생에 있어 가장 많은 호의를 받아본 날로 기록될 듯싶었다.
택시와 자가용들이 죽 늘어서서 기다리는 승차장에서 김 양은 대포폰을 노려봤다.
고시텔에서 막 탈출했을 때는 아드레날린이 분비됐기 때문인지 어떻게든 들고 나를 수 있었는데, 부산까지 왔더니 긴장이 풀렸는지 전신이 쑤시고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뭔가 진이 빠진 느낌이었다.
출발시간 도착시간 보냈는데···
우우우웅
우우우웅
왔다! 김 양은 매우 조금, 아주 약간의 기대감으로 폰을 확인했다.
[어디?] [택시 많이 서 있어]마루는 김 양의 문자를 받고 뒷골이 당겼다.
택시를 조심하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택시 승차장 근처에 있다고? 렌트카의 액셀을 밟았다. 서울에서 부산행 열차 도착시간이라 그런지 승객을 태우려는 택시와 지인을 마중 나온 승용차가 길게 늘어서 있었다.
승차장 저쪽에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여자가 보였다. 딱 봐도 김 양이었다. 마스크를 쓰고 모자까지 썼어도 저게 김 양이다 이렇게 알아챌 정도면 다른 사람도 그렇겠지?
‘저걸 어쩌나?’
지금이라도 버리고 튈까? 지진으로 일본이 개판 났으니 돈이면 뭐든 할 수 있을 것이 뻔했다. 김 양 근처까지 와서 그냥 지나갈까 말까 고민하는 찰나, 김 양이 마루의 얼굴을 확인했는지 손을 번쩍 들고 흔들었다. 진짜 눈이 좋은 여자였다.
‘아- 몰라-’
마루는 차를 몰아 김 양이 있는 곳까지 갔다.
낑-
낑-
다섯 덩어리나 되는 짐을 끙끙거리며 뒷자리에 던져 넣은 김 양이 냉큼 조수석에 앉았다. 김 양이 앉으면서 살짝 옆구리가 보였다. 건 홀스터가 잠깐 드러났다.
마루는 못 본 척 정면을 보며 기순에게 전화했다.
“어- 기순아, 지금 픽업했다. 가면서 뭐 사갈까?”
[됐어. 그 아가씨는 여기 호텔에 방 예약해 놓을 테니까 그렇게 알고]“생큐.”
김 양이 뭔가? 누군가? 친군가? 하는 눈빛으로 마루를 봤지만, 마루는 신경끄고 핸들을 돌렸다. 얼마나 운전했을까? 초록색 택시가 뒤쪽으로 언뜻 비쳤다.
백미러를 힐끗 본 마루가 김 양에게 물었다.
“오면서나, 역에서나 뭔가 이상한 낌새는 없었지?”
“좋은 사람들이 많았어.”
오늘 좋은 사람들이 응- 많았다. 짐도 들어주고 짐도 올려주고 짐도 내려주고 짐도 옮겨주고 김 양은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해맑은 표정의 김 양을 본 마루가 머리를 흔들었다.
다시 힐끗 백미러를 본 마루가 핸들을 확- 꺾었다.
끼이이익!
김 양의 동글동글한 눈매가 가늘게 좁혀졌다. 겨드랑이로 손을 가져가는 김 양.
“아직 꺼내지 마.”
랜트한 자동차라 전면엔 선팅이 없었고 측면도 선팅이 흐렸다. 김 양이 불안한지 깁스한 오른팔을 만지작거렸다. 퉁퉁 부어있는 손가락이 꼼지락거렸다.
김 양은 자기도 모르게 부르르 떨었다. 회사가 얼마나 지독한지 김 양은 알고 있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따라왔지? 어떻게 부산 온다는 걸 알았지?
“미행 붙었어?”
“아직 확실하지 않은데, 보면 알겠지.”
백미러를 보며 운전하는 마루였다. 얼마 가지 않았는데, 초록색 택시가 저 멀리서 속도를 높여 따라오는 게 보였다.
“씨발. 내가 택시 조심하라고 했어? 안 했어?”
“택시 안 탔어.”
안 타면 단가? 택시 근처엘 가지 말았어야지. 택시 운전사가 조직과 연관됐으면 바로 보고 올라가는데 왜 택시 근처에서 얼쩡거려.
“아···. 됐어. 어차피 내일이면 뜨니까.”
마루는 속도를 올렸다. 교차로를 돌고 차선을 바꿔도 계속 따라오는 택시. 추격이 확실했다. 빈 차라고 불 켜 놓고 쫓아오는 택시가 지나가는 택시일 리 없었다.
도심지는 위험했다. 도시에서 도망치다 포위되면 끝이었다.
“야- 폰으로 부산 근처 검색해봐. 사람 별로 없는 동네, 한적한 마을. 뭐 그런 거.”
“개룡마을? 대룡마을?”
“됐다. 검색에 나오는 마을이면 이미 유명한 마을이잖아. 그냥 지도 열어서 논두렁이나 그런 녹지 많은 지역 거기 지명 말해봐.”
김 양이 찾은 지명으로 내비게이션을 맞춘 뒤, 마루는 액셀을 밟았다.
우우우우웅!
부산을 빠져나오자 바로 녹지가 펼쳐졌다. 도로를 따라 논과 비닐하우스들이 늘어선 길. 시골길이라고 하기에는 길이 넓고 포장이 잘된 길이었다.
“선루프 열 테니까 올라가서 뒤에 쫓아오는 택시···. 바퀴 맞출 수 있겠어?”
김 양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속도 줄인다. 한 번에 맞춰야 해.”
열린 선루프를 통해 상반신을 내민 김 양이 퉁퉁한 소음기를 장착한 발터 P22를 따라오는 택시를 향해 겨눴다. 택시 운전사가 총을 봤는지 화들짝 핸들을 꺾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김 양의 발터 P22에서 낮은 총소리가 터졌다.
퉁! 퉁! 퉁! 퉁! 퉁!
끼이이이익!
콰콰콰-
급히 핸들을 꺾는 순간 타이어까지 터지자, 택시가 균형을 잃고 휙 전복되면서 논두렁에 처박혔다. 그대로 기어를 후진으로 바꾼 마루가 전복된 택시 근처로 갔다.
휙- 마루가 사시미를 빼 들자, 김 양이 움찔했다.
마루는 차에서 내려, 전복된 택시 운전석으로 향했다. 슬쩍 뒷좌석을 보니, 역시나 안쪽에서 문을 여는 손잡이가 없는 택시였다.
‘이 새끼들 서울에서만 그런 게 아니네.’
그때, 택시 문짝이 퍽 열리며 택시 운전사가 밖으로 나왔다. 전복됐음에도 상처 하나 없는 깨끗한 얼굴이었다. 택시 운전사의 시선이 마루의 얼굴을 향했다가 마루가 쥐고 있는 칼로 향했다.
씨익-
비릿한 미소와 함께 택시 기사가 허리춤에서 뭔가를 빼내려는 순간, 픽! 픽! 머리에 총알 틀어박히는 소리와 함께 풀썩 쓰러지는 택시 기사.
택시 운전사의 손이 허리춤으로 향하자마자 튀어 나갈 준비를 했던 마루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고개를 돌렸다. 선루프 밖으로 몸을 내민 김 양이 깁스한 오른손을 휙휙 흔들고 있었다.
“하- 저걸 진짜.”
마루는 택시 운전사의 시체를 운전석으로 밀어 넣고 블랙박스 메모리 카드를 뽑는데 무전이 들어왔다.
[3호차. 3호자. 계속 추적 중인가?] [3호차, 보고하라.]마루가 목소리를 깔았다. 어차피 잡음이 있으니까 뭐.
“여기는 3호차. 지금 확인해 보니, 불륜 커플이었다. 흥신소에서 추격하는 줄 알고 도망쳤다고 한다.”
[뭐? 불륜 커플? 야 3호차. 너 이 새끼 위에서 찾는 그년이라며?]“아- 실수였다. 마스크를 껴서 착각했다.”
[야! 이 개새끼야. 지금 보안팀장이 애들 전부 다 끌고 거기 가고 있는데, 불륜 커플? 너 뒤지고 싶냐?]“지금이라도 확실히 확인했으니 그나마 다행 아닌가?”
[너 이 개새끼 씨발 보안팀장에게 직접 말해 새끼야.]“알았다.”
무전을 끊은 마루가 고민했다.
‘이번엔 이렇게 해결되긴 했는데, 어쩔까?’
벌써 2번째다.
전기 튀는 소리가 들렸다.
치직- 치직- 치지직
전복된 택시에 불꽃이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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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으로 가는 고속열차.
으직!
김 실장이 맨손으로 호두를 까먹고 있었다.
“얼마나 남았냐?”
“40분 정도 남았습니다.”
크직!
“다른 보고는 없고?”
“포장 택시 하나가 김 양이 탄 차를 미행하고 있습니다.”
“그래? 그건 잘하고 있네.”
“그런데 그쪽에서 김 양이 도망치기 전에 잡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도망쳐?”
“예. 미행하다 걸렸는지, 시 외곽으로 빠지고 있다고 합니다.”
김 양이 시 외곽으로 빠진다? 도망치지 못하게 포위하고 기다리는 게 아니라, 잡겠다?
콰직! 호두를 깬 김 실장이 호두알맹이를 입에 털어 넣고 우물거렸다.
“부산 지사도 많이 컸네. 한 번 솎아낼 때가 되긴 했지, 거기는 보안팀이 이쪽 일을 하던가?”
“예 그렇습니다.”
“잡을 수 있으면 잡으라고 해.”
날씨 좋네.
운도 좋았다.
솎을 건 솎고, 딸 건 따고, 묻을 건 묻기에 좋은 날씨였다.
후우-
우직! 호두가 바스러졌다.
계의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