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375)
러스트 [RUST]-375
지하 8층은 엉망이었다.
지배력이 풀린 식인귀들은 이제까지 억제되고 있었던 본능이 폭발했는지, 주변을 닥치는 대로 파괴하고 번식장으로 들어갔다.
[반응 없음.] [이쪽도.]뇌 정보를 통해서 봤지만, 실제로 본 번식장은 처참함 그 자체였다. 닭장처럼 좁은 공간에 갇힌 사람들은 식인귀의 광란을 피하지 못하고 뇌와 심장, 간 같은 장기를 잃었다.
[8층에 동작 반응 전무. 9층으로 내려감?] [그래.]9층으로 내려가기 전, 마루는 8층 소각 장치를 작동시켰다. 차단벽이 내려지고, 번식장으로 쓰였던 공간이 전부 불꽃에 휩싸였다.
[지금 소각해도 괜찮겠음?] [1층 통제실에서 확인했어. 층마다 지금처럼 수동으로 작동할 수 있더라.]쉬지 않고 9층으로 내려가 수색을 마친 두 사람은 9층 소각절차까지 실행한 뒤, 핵무기가 보관된 최하층인 10층에 들어섰다.
끼이이익-
비상문이 열리자, 넓은 공간에 차곡차곡 쌓인 물자들이 보였다. 그리고 영롱한 자태를 뽐내는 전술핵 B61-12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곁에 전신에 피칠을 한 식인귀들까지.
놈들 가운데 하나가 기폭장치 같은 것을 손에 들고 외쳤다.
“꼼짝 마!”
김 양이 멀뚱멀뚱 바라보자, 소리 지르는 식인귀들.
“당장. 무기 버려!”
“무기 버리라고!”
“움직이면 누른···.”
발돋움 소리가 요란스런 소리에 묻혔다.
탁-
?그리고 이어진 절단음.
츠커커컥-
!!!
피가 뚝뚝 떨어지는 칼날을 털어낸 마루가 중얼거렸다.
[이 새끼들이 어디서 구라야. 핵 장전 코드도 없는 것들이···.]곁에 있던 식인귀들이 메뚜기 떼처럼 펄떡 뛰었다.
김 양은 깜짝 놀랐다. 핵 버튼이라고 하고 들고 있는데 그냥 가서 썰다니. 근데 다 생각이 있었구나. 핵은 그렇지, 해제 코드 모르면 안 터지지. 응.
그래도 저거 폭파 버튼 위험하지 않았을까? 그냥 일반 폭탄 터지는 버튼이었다고 하더라도 그거 여기서 터지면 생매장 아님?
식은땀이 등골을 타고 내려가는 것이 느껴지는 그녀였다.
[밖으로 나가서 쏴.]‘안쪽에 유탄 튀지 않게.’ 라는 말을 생략했지만, 김 양은 바로 알아들었다.
[알겠음.]텅 빈 곳을 향해 대답한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끄덕이는 그 짧은 순간, 이미 셋을 썰고 도망치는 네 번째를 따라잡고 있는 마루의 모습에 그녀는 학을 뗐다.
김 양은 사방을 썰어대기 시작한 마루를 피해 재빨리 밖으로 나가. 자리를 잡았다.
흐억- 으억! 흐억-
얼마 지나지 않아 들리기 시작한 거친 숨소리가 점차 다가왔다.
곧이어 문을 급하게 밀어젖히고 나오는 식인귀가 김 양의 HUD에 잡혔다. 공포에 질린 눈동자와 떨리는 발걸음은 마치 사람 같았다. 번식장에서 죽여댄 피를 뒤집어쓰고 있지 않았다면···.
투앙-! 철컥-
계단이 울리며 식인귀의 관자놀이에 작열 소이 철갑탄이 틀어박혔다.
두개골을 파고 들어간 특수탄이 안에서 뇌를 구워버리자, 그대로 꼬꾸라진 식인귀가 전신을 오징어처럼 뒤틀기 시작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바로 앞에 구운 오징어 자세를 한 동료의 시체를 보고서도 밖으로 내달리는 식인귀들.
으아아아!
문밖에 저격수가 있다는 것을 알아챘을 텐데도 필사적으로 밖으로 나오는 식인귀들.
셋.
타앙! -탱그랑.
둘.
투팡! -팅
하나.
투앙—탱그르르-
계단을 울리던 총성이 점차 잦아들자, 반쯤 열린 문 안쪽에서 들리던 썰리는 소리도 조용해졌다.
[입구 4마리 잡았음.] [치이익- 수색- 안으로 더 들어가- 치익-니까- 입구 막고- 삐이익] [알겠음.]이럴 때 통신기 년이 있어야 하는 건데.
잠깐. 맞다 거미 드론!
이거 짧은 거리면 중계기 역할도 가능하다고 했었지.
장비함에서 거미 드론을 하나 꺼낸 김 양이 문 안쪽으로 드론을 보냈다. 마치 거미처럼 생긴 작은 드론이 삐뀩삐뀩 소리를 내며 안으로 들어갔다. 모두 3마리의 드론을 보내고 통신을 연결하자, 처음보다 확연히 좋아진 통신 감도.
[통신 감도 확인] [칙- 어 좋아졌는데? 어떻게 한 거야?] [거미 드론 썼음.] [아 그거. 칙- 잘했어. 그쪽으로 간 놈은 더 없고?] [없음.] [여긴 넓고 짐이 많아서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천천히 조심히 하셈.] [오케이. 수고.]그렇게 간간이 한 번씩 무언가 둔탁하게 썰리는 소리와 처절한 비명이 문틈으로 새어 나왔다.
‘어휴- 강심장이네.’
저것들이 폭탄 터뜨리면 어쩌려고.
보니까 마루와 리퍼 슈트의 조합은 더 무시무시해진 것 같았다. 리퍼 슈트의 신발 부분을 신소재로 바꾼 것도 주요했지만, 마루의 움직임 자체가 더 은밀해지고 빨라졌기 때문.
‘나도 걸을 때마다 소리 나는 걸 어떻게 해야겠어.’
김 양은 업그레이드를 다짐했다.
휘이이익-
감각에 걸리는 것을 찾아 내달리는 공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텅 빔 그 자체가 움직이는 느낌은 소름 끼쳤다.
흐억- 으아아아-
“괴. 괴물 새끼가!”
잘 숨어있다가 걸린 식인귀 하나가 발버둥치던 것도 잠시. 놈은 총을 뽑으려고 했다. 여기저기 넘치는 폭발물들 사이로 총을 쏘겠다는 건 같이 죽자는 뜻.
그렇게 총을 뽑으려고 했다. 했었다.
툭-
어느새 총을 쥐려고 했던 팔은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뜨겁고도 차가운 불꽃이 전신을 핥고 지나간 것 같았다.
주르르륵- 철푸덕-
마지막 소리도 내지 못한 채, 무너진 조각을 보던 마루가 작게 숨을 내쉬었다. 넓은 공간을 이리 뛰고 저리 뛰다 보니, 슬슬 몸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안 쓰고 넘기나 했더니 결국 쓰네.’
혈관으로 들어온 차가운 액체가 달궈진 몸뚱이를 빠르게 진정시켰다.
‘조절을 잘해야겠군.’
10m를 움직일 수 있었을 때와 12m를 움직였을 때는 확연히 달랐다. 따지고 보면 고작 2m 차이였지만, 살상력에서는 엄청난 차이가 났다.
쭉 뻗은 팔과 손에 든 이클립스의 칼날 길이까지 생각하면 살상 반경이 확연히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시가전에서 싸웠던 경험을 따져보면, 생각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교전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체로 10~15m 내외? 그리고 마루의 공격 거리는 이미 그 영역에 닿아있었다.
한 걸음. 말 그대로 단숨에 들이치는 참격과 찌르기를 피하려면 신체능력에 특화된 상위 개체 정도나 가능할까?
그러니 번식장 관리나 하던 말단 식인귀들이 허겁지겁 사람들의 장기를 먹어치웠다고 하지만, 마루를 막는 것도 도망치는 것도 불가능했다.
몇 놈은 혼자 죽을 수 없다며 자폭하려고 했지만, 살기를 읽는 마루에게 있어 같이 죽자는 살기는 위치를 알려주는 좋은 신호일 뿐.
‘자폭은 얼어 죽을.’
개중에는 허공에 대고 자기도 식인귀가 되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면서 눈물 콧물 질질 짜는 것들도 있었지만, 참회가 끝나기도 전에 영원한 안식이 찾아왔다.
쿠직-
비통해하는 식인귀에게 마음의 평화를 찾아준 마루는 문득 피곤해졌다.
‘이것들은 입만 열면 구라네.’
구라도 구라지만, 사람이랑 똑같이 생긴 것들이 자기들도 사람이라며 엉겨 붙는 걸 정리하다 보면 정신적으로 피로해지는 게 사실.
“더럽네. 기분···.”
휙- 칼날을 털자, 지방과 핏방울이 바닥에 털렸다.
문밖에 저격수가 대기하고 있다는 걸 안 뒤, 놈들은 말 그대로 꼭꼭 숨었다. 숨바꼭질하는 것도 아니고.
지하 10층에서만 벌써 3시간 가까이 보냈지만, 전부 다 잡았다고 하기엔 기분이 찝찝했다. 그렇다고 하나하나 물건 상자까지 다 까면서 찾을 수도 없고.
[텔레파시 연결시간 얼마나 남았지?] [9~10분.] [그럼 이번에 엑소슈트 부대 내려보내라고 해.] [친위대 애들?]그놈의 ‘아크 혁명 친위대.’ 그거 컨셉도 아니고 언제까지 하려고 하는데? 이것도 이번에 돌아가면 진지하게 한번 말해봐야겠다 생각하는 마루였다.
[···그래. 일단 핵부터 챙기자.] [알겠음.]마루는 이곳저곳을 고요히 배회했다. 남은 놈들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지만, 식인귀들은 말 그대로 숨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김 양의 친위대는 지하 10층을 왕복하며 B61-12 핵폭탄을 비롯해 헬파이어 미사일, AIM-9 사이드와인더, JDAM(Joint Direct Attack Munition-합동정밀직격탄-합동정밀탄), GBU-39 SDB (활강 유도 항공 폭탄), AIM-120 암람(중거리 공대공 미사일)까지 들고 갈 수 있는 건 전부 챙기기 시작했다.
[이거 양이 너무 많아서 한 번으로는 힘듦. 다 챙기려면 여러 번 왔다 갔다 해야 할 것 같은데? 한 일주일에서 열흘 잡아야 할 듯.] [핵은?] [제일 먼저 챙겼음.] [그럼 실을 수 있을 만큼 싣고, 나머진 국토안보국에 넘길 거니까 그렇게 알아.] [아까운데.]아깝기도 하고 지금 이거 챙길 정신 있을까? 싶기도 하고.
[놈들이 남아있어서 그냥 둘 수는 없어. 내부가 너무 넓어서 다 찾을 수도 없고. 며칠 동안 이러고 있다가 사고 나거나, 놈들이 갑자기 단체로 발광하다 폭탄 터지면? 우리가 처리할 수 없으면 국토안보국에 넘기고, 적당히 나눠 먹는 게 낫지 않겠어?] [오- 그렇게 하면 되겠네.]일반인 3배에 달하는 신체 능력을 가진 식인귀라 하더라도, 엑소슈트를 이용하면 충분히 해볼 만 했다.
[근데 국토안보국에서 여기 감당할 수 있겠음?] [저번에도 식인귀랑 싸웠고, 이번에도 슬슬 싸울 것 같던데 설마 밀릴까?]다 잡아 가둬 놓은 것들도 이기지 못하면 장기적으로는 힘들 듯했다.
[감당한다고 쳐도, 지금은 일손 없을 거 아님?] [일손은 너랑 친위대가 도와야지.]‘내가 왜? 한 번 다녀왔는데 또?’
김 양의 불퉁함에 마루가 피식 웃었다.
[너랑 친위대가 뉴욕에서 테러리스트가 됐는데 그 이미지는 어떡하고?]‘우리가 언제 이미지 생각했었음?’
‘이미지 생각했었지. 그래서 군소리 없이 LA 범죄자들 소탕도 하고, 일본이랑 중국도 다녀오고 다 연결된 거지.’
[······.]김 양은 눈을 가늘게 떴다.
[지금 같은 때 등장해서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정의의 사도였다. 이렇게 이미지를 바꿔야 해. 그래야 나중에 혹시라도 엮이지 않지.] [그게 되겠음? 진작 테러리스트로 찍혀서 나랑 친위대 가면, ‘테러리스트와 결탁한 공권력의 타락을 보라.’ 이렇게 국토안보국에 똥이나 뿌리는 거 아님?] [걱정하지 말고. 벙커 지배하던 식인귀 뇌에서 뽑은 정보, 디아나를 통해 덴 브라운 국장에게 전달했으니까.] [언제?]그건 또 언제 그랬데?
[아까. 까마귀 통해서 비행선으로 보냈지. 간호사한테 디아나에게 보내라고 했으니까, 지금쯤 영상보고 난리가 났을 거다.] [······.] [덴 브라운 국장이라면 받은 정보를 제대로 써먹을 테고.] [······.] [뭐- 놈들이 언론, 방송을 대부분 장악했다고 해도, 국토안보국과 연방수사국, 뉴욕 경찰국을 중심으로 여기 지하에서 벌어진 일을 까발리면, 여론전이야 끝나버리는 거지.]여론이 등을 돌리면 그쪽도 방법이 없었다. 여론을 통해서 공권력의 힘을 깎아내릴 수 있다는 것은, 역으로 여론을 통해서 공권력이 강한 힘을 낼 수 있게 된다는 것과 마찬가지.
그럼 여론 떼고 힘 싸움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는데 그게 절망적이었다. 놈들의 세력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그 영상을 보면, 식인귀를 모조리 잡아 죽여야 한다고 총을 드는 사람들이 쏟아질 거다.
총기 자유화 국가에서 총을 들고 싶게 만드는 사육장 영상이 공개되는 순간, 먹잇감도 모이면 무섭다는 자연의 섭리를 직접 체험하게 될 것.
그러니까 김 양과 부하들의 이미지를 바꿀 절호의 기회라는 말씀. 제대로 활약하면 식인귀들을 잡기 위해 음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영웅들 정도 되려나?
김 양과 아크 혁명 친위대가 영웅?
마루의 픽-웃음 참는 소리에 그녀가 발끈했다.
[나중엔 비행선에 미사일도 쐈다니까! 그건 누가 책임지고?] [그러니까 미사일 쏜 놈 찾아서 조져야지.]아? 그런가? 김 양이 갸웃했다.
[어떻게 찾는데?] [까마귀들이 봤을 거 아니야. 애들이 봤으면 기억하니까 찾는 건 걱정하지 말고 가서 화끈하게 스트레스 풀고 와. 사람들도 실전을 경험해보긴 해야 하잖아. 지금처럼 좋은 기회가 어딨겠어? 사방에 아군만 있는 환경. 흔하지 않다?]아크 혁명 수비대의 실전? 김 양이 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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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로 넉넉한 휴식을 취한 덴 브라운 국장이 눈을 뜨고 처음 받은 것은 영상 파일이었다.
블라디마루 칼린이 보낸 자료. 몇 분이나 봤을까? 그대로 영상을 종료한 덴 브라운은 바로 긴급회의를 소집하고, 연방수사국과 뉴욕 경찰국, 마약단속국까지 화상회의에 불러모았다.
“지금부터 보시는 영상은 식인귀의 본질을 알려주는 영상입니다. 우리가 왜 식인귀와 싸워야 하는 건지. 결단코 패배해서는 안 되는지.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식인귀라니요. 이제는 무조건 식인병자로 칭해야 하며, 명확한 증거가 없는 한 불필요한 수사를 하지 말아 달라고 정식으로 공문이 내려왔습니다. 아직 모르셨습니까?] [식인병자가 일으킨 살인사건은 치료제를 안정적으로 공급하지 못한 정부의 책임도 있다고, 감형하겠다는 공문도 내려왔습니다.]연방수사국과 뉴욕 경찰국이 앓는 소리를 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가진 모든 판단을 유보하시고. 증거 영상을 보고 다시 이야기하겠습니다. 괜찮으십니까?”
[그러죠.] [그럽시다.]그리고 잠시 뒤, 회의장은 경악과 분노로 가득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