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380)
러스트 [RUST]-380
서울 하늘은 흐릿한 잿빛이었다.
“···수출 물량이 줄었다고요?”
“예. 치료제와 다른 약들 요청 물량이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습니다.”
오진 그룹 나주연의 미간에 주름이 살짝 잡혔다.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상황. 불과 몇 개월 전만 하더라도 ‘잘못했다. 제발 약을 팔아달라.’, ‘계약을 성실히 이행하겠다. 도와달라.’ 이러면서 추가 물량을 확보하겠다고 서로 신경전까지 펼치던 자들이었는데···.
“완벽하게 카피한 약이 나돌고 있는 건가요?”
“확인 결과 그건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제대로 된 약을 만들어서 그러는 것도 아니라면 대체 무슨 이유로 그러는 걸까? 치료제가 썩는 것도 아니고, 미래를 생각한다면 최대한 많이 비축해둬야 한다는 것쯤을 알 텐데.
“대신 무기를 수입으로 대체하고 싶다고 합니다.”
“무기요? 치료제와 다른 약들 대신 무기?”
“그렇습니다. 전차와 장갑차, 자주포, 박격포, 기관총···. 거의 육군 장비 전체를 구하고 있습니다.”
“좋지 않네요.”
치료제 수출을 통해 식량과 에너지, 원자재 등을 거의 독점적으로 공급 관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유로웠는데, 상황이 이렇게 변하면 위험했다.
“남부지역은 어떻게 됐나요?”
“예상하신 것처럼 농사가 어렵게 됐습니다.”
후지산 분화의 영향도 조금은 있겠지만, 한반도 남부에 실질적인 영향을 준 쪽은 규슈 지역 화산의 분진이었다. 화산재와 분진 그리고 그것이 섞인 비는 토양을 황폐하게 했다.
깨끗한 물을 뿌려 농작물과 토양을 살려내려고 애썼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저수지와 댐에 있는 물도 화산 분진이 섞인 비에 오염됐기 때문. 산성화된 물, 분진에 섞인 여러 가지 독소는 남부지방을 서서히 그러나 확실히 잠식했다.
물과 토양의 오염도 심각한데, 극단적인 이상 기후도 감당하기 어려웠다.
7~8월의 기상 고온과 폭우가 끝나는가 싶더니, 고작 며칠 만에 기온이 뚝 떨어진 것. 마치 가을을 빠르게 건너뛰고 그대로 초겨울로 돌입한 것처럼 변한 날씨는 무서울 지경이었다.
10월 초에 중부지방은 새벽 얼음이 얼기 시작했고 10월 중순이 되자, 남부지방에도 서리와 살얼음을 볼 수 있게 됐다.
“혹독한 겨울이 길겠네요.”
“······.”
한겨울에도 눈과 얼음 보기 쉽지 않은 남부지방에서 고작 10월 중순에 살얼음을 보게 됐다는 건, 길고 긴 겨울을 알리는 예고편과 같았다.
“회장님 이대로 가면 어렵습니다.”
“어쩔 수 없군요. 울릉도로 가지요.”
진작부터 울릉도에 있는 주민을 육지로 옮기고 몇몇 시설을 울릉도로 옮기고 있었지만, 그건 최악에 대비한 준비였다.
“회장님! 아직 공사가 끝나지 않아 위험합니다.”
“본격적으로 겨울이 시작되면 더 위험해 질 겁니다.”
중국과의 전쟁으로 뽑힌 병력만 200만이 넘었다. 지금까지야 오진 그룹에서 식량과 에너지, 필수원자재를 거의 독점적으로 수입 공급하고 있기에 문제가 없었을 뿐. 그 부분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서울 절반과 경기도 남부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남은 것이 없었다.
정당을 만들어 정치권력을 획득하기엔 시간이 너무 짧았고, 경제력을 바탕으로 지배력을 공고하게 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했다.
‘수도권을 장악하는 자가, 한반도를 장악한다고 생각했었는데···.’
거의 다 됐었다. 거의. 이대로 치료제 수출이 2년 정도만 더 유지됐어도 됐고, 러시아와 남미에서 곡물, 에너지, 원자재 수입만 계획대로 됐어도 가능했다.
하지만 그 두 전제가 무너진 이상. 수도권은 독이든 성배에 불과했다. 나주연은 그 성배를 계속해서 마실 생각이 없었다. 계속 마시다 죽으면 누구 좋아하라고.
‘치료제 수출이 줄어들어서 식량, 에너지, 원자재 수입이 줄어들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어, 그걸 명분으로 군대를 동원할 게 뻔해.’
지금도 계엄령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정부였다. 이대로 끌려다니다가 실권을 잃느니, 역전을 노릴 확률이 높았다.
200만이 넘는 병력이 있는데 노리지 않을 리가···. 식량, 에너지 대란이 벌어지는 순간. 치안을 유지한다는 명분으로 병력을 동원할 게 뻔했다.
그걸 막기 위해 주한 미군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는데, 그것도 오래가기 어려워 보였다. 중국전에 참전했던 미군을 비롯해 본래 한국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 대다수가 본토로 귀환 명령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 수송 선단을 제공한 것은 부산의 샬롯이었다. 아마도 미군의 귀환이 이뤄지는 순간까지는 미군의 보호를 받겠지.
그 뒤에는? 낙동강 오리알이었다. 지금이야 미군에게도 치료제를 공급해주고 있지만, 저들이 전부 미국으로 가버린 뒤엔 어쩌겠는가?
실질적 억지력을 잃은 미군은 깊은 유감만 표명할 게 분명했다. 그 끝에는 이미 갈려버린 오진 그룹이 있을 테고.
세상은 종말을 향해 가고 있었다. 단순한 종말이 아닌, 이상한 종말. 동물들이 서서히 변이를 일으키고 있었다.
‘이미 늦었어.’
나주연은 냉정하게 판단했다.
미국에서는 급속도로 변이를 일으킨 동물들 때문에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지역도 있었다. 한국은 그렇지 않아서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 이제는 아니었다.
한국도 지방에서는 동물 변이의 영향을 받은 사건이 터지고 있었다. 방사한 반달 가슴 곰이 사람을 습격한 사건이라든지, 들개 무리의 축사 습격, 하다못해 키우던 닭에게 쪼여 중상을 입은 농장 주인까지.
아직은 덩치가 심하게 커진 개체가 발견되지 않았어도, 성격이 포악해지기 시작한 동물들이 조금씩 생기고 있다는 뜻이었다.
결국. 시간문제일 뿐 한국도 미국처럼 변이 괴수의 공격을 받을 게 분명했다.
“이주를 빨리해야겠어요. 부족한 숙소는 사람들이 쓰던 집을 그대로 쓰기로 하고. 직원 가족들과 직원들부터 이주시키도록 하지요.”
“알겠습니다.”
“김실장님들을 김기순 과장에게 붙인 건 어떻게 됐나요.”
“잘 되고 있습니다.”
“시간은 얼마나 걸릴까요?”
“제대로 수색하려면 최소한 6개월 이상 잡아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대응하려면 원인을 알아야 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치료제는 분노 조절장애를 억제하는 약이 식인욕구까지 억제했을 뿐이었다.
그렇게 폭력성이 억제되고 시간이 지나면 분노 조절장애를 가졌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극복하고 나아지는 경우가 많았다.
‘식인병은?’
식인병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식인욕구가 사라지는 걸까?
이주 논의와도, 변이의 원인을 찾으려고 중국과 일본에 사람을 보낸 일과도 상관없는 부분으로 치닫는 생각.
후유증, 재감염, DNA 변이, 식인병에 걸린 사람들의 식욕 억제, 식욕이 억제됐다면 기존 식인병자들이 가졌던 신체변화는?
미국 국토안보국이 보내온 정보들까지 뒤섞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생각의 그물이 현재 점차 감소하고 있는 치료제 수출 물량에까지 닿았다.
설마. 식인병 확산?
아니면, 식인병을···. 이용하려고? 어떻게?
국토안보국에서 받은 정보, 라이저 제약 기스 라이저가 식인병자가 됐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제약회사의 수장이 어쩌다 감염됐는지 과정도 이상했지만, 그 이후도 이상했다. 치료제를 먹어서 식인욕구를 억제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갈아만든 셰이크를 마신 것.
식인병에 걸린 상태가 그만큼 매력적이었다는 건가?
제약회사 회장이 선택할 정도로?
신체능력 강화, 질병과 독성에 강한 저항성, 빠른 치유 등, 좋은 점이 많았다. 식인욕구만 제외하면 거의 진화에 가까운 모습.
‘식인병자들은 상위 개체와 하위 개체를 이룸.’
‘범죄자들을 중심으로 식인병이 퍼졌으나, 부하들 가운데 상위 개체가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무분별한 확산을 자발적으로 멈춤.’
‘초기에 비말로 감염되던 식인병의 전파력이 급속도로 약화 되어, 타액을 통한 감염이 주를 이루고 있음.’
그리고 최신 정보, 식인병자가 아니라 식인귀로 보고 반드시 박멸해야 한다는 영상이 국토안보국에서 전달됐던 일까지.
비틀- 현기증을 일으킨 나주연이었다.
“회장님!”
“괜찮아요.”
“처음부터 생각을 잘못했네요. 제 욕심이 컸습니다.”
“······.”
어쩌면 그가 미국에서 거물이 됐다는 소리에 마음이 급해졌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식량, 에너지, 원자재를 이용해 영향력을 키우려고 했던 것도 어쩌면···. 그 사람보다 더 큰.
같은 실수를 또 할 수는 없었다. 그가 했던 것처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게 맞았다.
“이번에 본사도 함께 이주하지요. 뜯어갈 수 있는 것은 모조리 뜯어갑니다. 원자재, 설비, 인력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전부 울릉도로 옮기세요.”
미국 뉴욕에 있는 상류층들이 자발적으로 식인귀가 됐다는 소리는, 다른 나라들도 그렇게 갔을 확률이 높았다.
정치권이나 군부를 중심으로 식인귀들이 권력을 잡으면 어떻게 될까? 치료제를 많이 수입하려고 할까?
치료제 수입을 줄이고 대신 무기 수입을 늘리겠다는 나라들이 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나라 상류층들이 어떤 선택을 했을지···.
치료제가 담당하는 부분이 줄고, 무기 수출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는 순간. 이제껏 끌려다닌 자들이 가만히 있을까? 심지어 200만이 넘는 병력이 있는데?
만약 한국의 상류층들도 미국 뉴욕의 상류층과 비슷한 선택을 한다면? 심지어 200만의 군대가 식인귀의 손아귀에 떨어진다면?
시간 싸움이었다.
“역량을 총동원하세요. 돈이 얼마가 들든, 폭설이 쌓이기 전에 공사를 마무리 지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수색 작전은 취소하도록 하지요. 지금은 방어를 우선해야 할 상황입니다. 김기순 과장과 김실장님들 울릉도 공사 현장으로 보내도록 하세요.”
“김기순 과장은 샬롯이 일본 피난민 캠프 방어에 쓰고 있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샬롯 심 회장에게 전하세요. 긴급 상황이라, 당분간 인력을 빼야 한다고. 대신 치료제를 얹어준다고 하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뿌연 하늘 아래, 김기순은 침을 탁 뱉었다.
씨발 똥개 훈련 시키는 것도 아니고.
“다들 짐 싸시죠. 회장님께서 울릉도로 가라고 합니다.”
햇빛이 없음에도 검은색 선글라스를 쓴 남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라고? 당신들이 빠지면 여기 방어는 어떻게 하라고? 샬롯에서 당신들 보낸 거 아니었나? 계약 위반이라고.”
미군복을 입은 남자가 기순을 향해 으르렁댔다.
“진정하시죠. 로이 스턴 소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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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로이트, 블라디 아크 타운 회의실.
“어쨌든 이번 작전으로 뉴욕은 한숨 돌렸다고 보면 되겠네요.
“그렇습니다.”
가만히 생각하던 마루가 입을 열었다.
“텔레파시, 사이코메트리 이 두 사람을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의견 있으면 말해보세요.”
다들 조용히 생각에 잠긴 가운데 김 양이 손을 번쩍 들었다.
“나중에 뭘 시키든 지금은 딴생각 못 하게 바싹 굴려야 함! 내가 굴리겠음.”
‘음- 너는 따로 출장 좀 가야 할 일이 있는데?’
이번에 뉴욕에서 일 처리하는 모습을 가만히 보면, 소규모 지휘가 가능해 보였다. 이왕 그쪽으로 돌릴 요량이면 경험치를 더 먹이는 게 좋을 듯싶었다.
사람들이 약탈자나, 변종, 식인귀에 당하면 남겨진 장비 회수하는 일이라고 쉽게 생각할 건 아니었다.
놈들이 약탈한 장비를 순순히 돌려주지 않기도 하겠지만, 이왕 걸린 놈들을 토벌하려는 것도 사람들의 뒤를 밟는 이유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그런 버러지를 잡는 데 있어, 김 양 만큼 최적화된 사람이 없기도 했고.
‘지금 막 돌아왔는데 또 어디를 보내려고.’
‘쉬운 일이라니까.’
‘텔레파시랑 사이코메트리 사람 만들어 놓겠음. 진짜 잘할 수 있음.’
보내려는 자와 가지 않으려는 자의 눈빛이 교차했다.
“제가 먼저 이야기해보면 어떨까요?”
후드가 말에 김 양이 고개를 돌려 반반한 후드를 노려봤다.
‘뭬야? 지금 이 상황에서 초를 쳐?’
김 양의 이글이글 타오르는 휴식의 눈빛을 무시한 후드가 이야기를 계속했다.
“텔레파시나 사이코메트리는 정신계 능력자입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데 능하지요. 어쩌면 능력의 강도에 따라서 기억까지 읽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광신과 이상 어디엔가 있는 PD는 위험했다. 마찬가지로 마루와 김 양도 어딘가 생각이 이상해 보였고.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일상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은 자기밖에 없었다.
솔직히 자신의 과거가 그들에게 까발려진다고 생각하면 부끄럽기도 하고 그렇지만···. 그렇게 마음을 열어서 그들과 친해질 수 있다면? 서로 나쁘지 않았다.
“······.”
“······.”
잠시 생각에 잠긴 마루가 대답했다.
“그건 어렵겠네요.”
“어째서죠? 제가 제일 적임자입니다.”
“적임자고 아니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너무 많은 정보를 알고 있어서 안 됩니다.”
“······.”
후드는 정보 담당자였다. 블라디 아크 타운의 보안 정보를 비롯한 잡다한 정보를 전부 다 알고 있다고 봐야 했다. 텔레파시나 사이코메트가 그런 정보를 다 알게 된다면? 마루는 그래서 반대했다.
후드의 의견을 기각시키자, 김 양의 타오르던 분노가 스르륵 사라졌다.
물론. ‘지켜보겠어. 반반.’
뒤끝은 남았지만.
“그럼 누구에게 맡길 생각이신가요?”
“나나에. 그 두 사람 챙길 수 있지?”
마루의 말에 간호사가 화들짝 했다.
“에? 저요?”
그래 너.
에에에에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