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381)
러스트 [RUST]-381
텔레파시와 사이코메트리와 이야기해 볼 사람으로 결정된 것은 간호사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무해 하잖아.’
속이 시커멓다고 해도 그래 봐야 간호사였고. 보안이나 중요한 정보도 모르고 환자들 치료하고, 까마귀들 관리하는 것 외에는 딱히 문제 될 게 없었다.
‘머리가 막 근질근질하는 거 알지? 텔레파시 하기 전에 느껴지는 거.’
‘에- 엣.’
‘대화하기도 전에 텔레파시부터 하려고 하면 일단 그만하고 나와.’
‘그래도 되나요?’
‘괜찮으니까. 마음 편하게 먹고. 그냥 새로운 친구를 사귄다고 생각해.’
‘새로운 친구요?’
그게 더 어려운 거 아닌가?
‘처음이니까 내가 따라가 보겠음.’
따라온 김 양은 엑소슈트를 입은 채, 금강역사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뭐함? 문 열지 않음?]간호사는 문 앞에서 심호흡했다.
‘괜찮다고 했다. 괜찮다고 했다.’
간호사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스러웠지만, 그래도 믿고 맡겨준 거니까. 일단 부딪쳐 보기로 했다.
똑-똑-
“에-또- 저기 쥴리아 버튼 씨. 저 오노 나나에입니다. 들어가도 될까요?”
“······.”
또옥-똑-똑- 또옥-
“에- 저 오노 나나에입니다. 간호사요. 저번에 비행선에서 같이 있었잖아요.”
“······.”
어? 대답을 안 해.
문도 안 열어? 어쩌지?
안절부절 우잉-우엥-하는 모습을 본 김 양이 간호사를 옆으로 밀어내고 말했다.
[문 여셈. 안 열면 강제로 열고 들어감.]김 양의 협박성 발언 뒤에야 건너편에서 들리는 작은 목소리.
“···무슨 일이시죠?”
[무슨 일은 개뿔이 무슨 일. 야- 말귀 못 알아먹어? 당장 문 열라고.]엑소슈트 헬멧 스피커로 나온 목소리가 위협적으로 들렸다. 간호사는 김 양의 폭력적인 대응에 더욱 우엥-우잉-하며 말했다.
“저기. 그 사생활 보호도 그렇고···. 막 갑자기 당장 열라고 그러시면···.”
[1호기. 조용히 하고 저쪽으로 가서 있으셈.]단호한 김 양의 태도에 간호사는 입을 꾹 다물고 옆으로 피했다.
잠시 뒤 빼꼼 열리는 문. 안전장치를 걸어 조금 열린 문틈으로 살짝 얼굴을 내비친 쥴리아가 말했다.
“무슨 일인데 이러시는 거죠?”
안전장치를 걸어?
···무슨 일?
이년 이거 미친 거 아닌가?
아무래도 못 써먹을 년 같은데?
사이코메트리는 원한관계라든지 엮인 일이 없었지만, 이년은 자신과 마루를 죽이려고 한 년 아닌가? 살려줬으면 납작 어떻게 하든 살아보겠다고 알아서 바닥을 닦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야. 지금 장난해?]“네?”
우지직- 엑소슈트로 문짝을 밀자, 안전장치가 뽑히면서 문이 활짝 열렸다. 이제까지 이렇게 거칠게 나온 적이 없었기에 쥴리아는 깜짝 놀랐다.
“잠시만요. 무슨 일인데···.”
텔레파시로 생각을 읽을까?
아니야 읽었다가 목줄이 터지면?
극도의 불안과 스트레스에 쥴리아는 경황이 없었다.
그 모습에 김 양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이거 근본이 썩었네.’
그러니까 자기 능력이 쓸모 많다는 걸 알고 뻗대는 거지?
맞지?
‘이래도 대가리에 총구멍 나지 않을 거다.’
그렇게 생각해서 이 지랄인 거.
‘그냥 쏠까?’
김 양의 혼잣말에 쥴리아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위험하다.
분위기가 이상했다.
텔레파시를 쓰지 않았더라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김 양이 ‘생각하고 쏠까?’, ‘한 번 더 참아?’ 진지하게 고민하는 도중. 저쪽에 떨어져 있던 간호사가 앞으로 흔들흔들 달려왔다. 리듬을 타는 듯한 움직임에 김 양과 쥴리아의 대치상태가 풀어졌다.
“저번에 우리 비행선에서 인사했었죠? 오노 나나에에요.”
“예? 예- 쥴리아 버튼입니다. 갑자기···.”
피를 볼 것만 같았던 분위기가 풀리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대체 무슨 일인데 안전장치까지 뜯고 이러는 건데!’라고 소리치려던 쥴리아의 입이, 우두커니 지켜보고 있는 김 양으로 보곤 다물어졌다.
아무래도 지금 상황은 위험했다. 일단 피해야 했다. 목소리를 조곤조곤하게 바꾼 쥴리아가 간호사에게 말했다.
“무슨 일이시죠?”
“별다른 일은 아니고요. 에-또- 그러니까. 생활하시는 데 불편한 일은 없는지, 따로 원하는 건 없는지 앞으로 담당이 저니까. 저한테 이야기해주시면 좋겠다고···.”
고작 그런 일인데 안전장치를 뜯어버려? 거짓말인가? 쥴리아는 바로 앞에 있는 간호사를 봤다. 순진무구하다 못해 1%의 유해성도 없어 보이는 눈빛.
“아! 커피 좋아하세요? 아니면 차라도? 티-타임을 하면서 이야기하면 좋겠네요.”
“예?”
이 상황에서 무슨 티타임? 쥴리아는 당황했다.
“아니요. 그게 제가 맡은 일이라서요. 아? 일이 아니라. 조금 편하게 이야기를 하려면 같이 디저트랑 차를 먹으면서···.”
포섭인가? 미남계도 아니고. 이건 뭐지? 혼돈에 빠진 쥴리아에게 지원군이 도착했다. 옆 방에 있던 에리카가 안전장치 뜯기는 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온 것.
“무슨 일이야···?”
높았던 목소리가 김 양의 엑소슈트를 보곤 작아졌다. 쥴리아를 보고 있던 간호사가 몸을 휙 돌려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아- 저기 이제부터 에리카 리스본 씨를 담당하게 된 오노 나나에라고 합니다. 잘 부탁합니다.”
“어? 예? 네. 저도 잘 부탁해요.”
하면서 손을 내미는 에리카였다. 간호사는 해맑은 얼굴로 덥석 손을 붙잡아 악수했다.
“그럼 잠시 차라도 마시면서 이야기를 해볼까요?”
“···차요?”
“네. 차도 그렇고 커피도 좋아요. 여기 빌딩에 있는 카페 진짜 신실하신 분인데, 잘하거든요. 가시죠. 제가 대접하겠습니다.”
그렇게 한바탕 폭풍이 몰아쳤다.
정신을 쏙 빼놓은 간호사와 불만이 가득한 김 양이 떠나고 난 뒤, 목숨이 간당간당했었다는 사실에 초췌해진 쥴리아가 에리카에게 말했다.
“그래서. 그 정신없는 여자는 무슨 생각이야?”
무슨 병신 같은 여자지?
자신도 에리카의 손을 잡는 건 껄끄러웠다. 에리카도 그걸 알고 자기를 직접 터치하지는 않으려고 했고. 그런데 사이코메트리 능력자인 줄 알면서 손을 덥석 잡아?
“······.”
대답 없이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는 에리카. 잠시 시간이 흐르고. 에리카가 말했다.
“나. 새 친구가 생긴 거 같아.”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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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융끼융
김 양은 불만이 가득했다.
이거 소리 어떻게 하려면 엑소슈트 정비랑 개조 맡겨야 하는 데 그냥 나가라고? 뉴욕에서 연속으로 구르고 왔잖아. 바퀴벌레 잡으려고 한 번, 그리고 식인귀 잡는다고 두 번.
근데 또 나가라고 하는 건, 솔직히 너무한 거 아닌가? ‘아크 혁명 친위대.’는 피로가 많이 쌓이고 절반이 부상이라 두고 가야 했다.
‘그럼 나 혼자 그 많은 짐을 챙기라는 소리임?’
‘당연히 아니지, 네가 뉴욕에 있는 동안 편성한 부대가 있으니까 그 부대를 지휘하면 돼.’
‘홀리 아크 기사단.’ 자신이 뉴욕으로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PD가 만든 부대였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고 생각하는 김 양에게 있어, PD가 키웠다는 부대는 솔직히 껄끄러웠다.
‘일단. 최고 명령권은 너에게 있으니까. 문제가 생길 때만 네가 지휘하고 이동하는 건 따로 움직여도 좋아.’
‘알겠음. 근데 위성 마을 사람들 왜 보내 줬음?’
그것도 바리바리 싸 들고 나가게 한 건 뭐임? 너무 물러진 거 아님? 탈탈 벗겨서 내쫓아도 될 것들인데?
‘이젠 핵도 있고, 무기도 넘치는데 애들 앞에서 부모 죽이고 회수하기도 그렇고. 사실 그렇잖냐? 중화기 없으면 가다가 전멸인 거. 있어도 쉽지 않을 거다.’
‘그거랑 무슨 상관임? 남의 거 가져가려면 대가를 받아야지.’
그러다가 뒈진다고 하더라도 그쪽 애새끼들 신경을 왜 우리가 써야 함?
다들 그렇게 강하게 크는 거였다. 자신도 어린 시절부터 구르지 않았던가? 진짜 죽을 고비 많이 넘겼었다. 그걸 생각해보면 하나도 불쌍하지 않았다.
그녀의 말에 드물게 복잡한 심사를 내보이는 마루였다.
‘그래. 그렇기는 하지···. 그래서 그랬다. 이왕에 흘릴 피면 값져야 하니까.’
뭔 소리래?
남의 거 가져간 대가를 받으려고 무기를 가져가라고 했다고?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그리고 지금.
‘이왕에 흘릴 피면 값져야 한다.’
김 양은 마루가 한 말을 떠올렸다.
그러니까 뭔 소린지 모르겠고. 그녀가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 지금 자기가 쉬지 못하는 이유는 병신 같은 새끼들이 뉴욕으로 쳐 간다고 지랄해서였다.
‘심지어 우리 것을 가지고.’
바리바리 싸 들고 나간 작자들이 가져간 장비에는 분명 자신의 지분이 상당수 있었다. 그러니 온전하게 전부 회수해야 했다.
이번에는 이미 지나갔으니까 그렇다고 쳐도.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전부 혹독하게 굴릴 생각을 하는 김 양이었다.
‘몸이 편하면 생각이 많아지는 법. 굴려야지.’
마루가 알았으면 깜짝 놀라서 ‘그 구르는 게 바로 너야.’라고 할 법한 생각을 하는 그녀였다.
‘어디 얼마나 각이 잡혔는지 보고.’
김 양은 PD가 뽑았다는 ‘홀리 아크 기사단.’을 보곤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각이 잘 잡혀있었다.
[작전 설명 들었으면 출발한다.]대략 30~1시간 거리 뒤에서 추격하며, 정찰과 경계는 무소음 드론과 까마귀를 이용해 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무소음 드론? 까마귀가 있는데?’
‘걔들 은신한 적을 감지하지 못함. 거기에 다른 곳에 정신 팔리면 그거 신경 쓰느라 경계를 놓침.’
이번 무기고 방어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한 김 양이었다.
‘그래 필요한 장비는 알아서 챙겨가고.’
‘걱정 마셈.’
김 양과 ‘홀리 아크 기사단’이 길을 나섰다.
첫째 날은 별다른 일 없이 지나갔다.
[5마일(8km) 앞에서 캠프를 꾸리고 있습니다.] [우리도 근처에서 자리 잡는다.]오후 3시 30분. 10월 중순이라고 해도 아직은 밝을 때였다. 이른 아침에 출발하더니 제대로 걸은 시간은 6시간 남짓, 중간 휴식도 거의 2시간 넘게 한 것으로 보아 확실히 가족 단위가 많은 것 같았다.
[대체 무슨 생각이지?] [예?] [아니. 가는 건 좋은데, 가족들 전부 데리고 나가는 게 이상해서.] [······.]하루에 고작 6~7시간 이동한 거리는 15마일(24km) 정도. 40km는 바라지 않지만 그래도 30km는 가야 하지 않을까? 하루에 24km 속도로 이동한다면 뉴욕까지 40일이 넘게 걸렸다.
장거리 이동하는데 생각은 하고 가는 걸까? 식수는? 식량은? 거의 2천 명에 육박하는 무리가 현지 보급하는 데 걸리는 시간까지 생각하면 40일이 50일, 60일로 늘어나는 건 순식간이었다.
‘제정신 아닌 거 같은데?’
지금은 10월 중순. 한 달만 지나도 11월 중순이 됐다. 이쪽엔 겨울이 없나? 그렇기엔 10월 중순 날씨가 만만치 않았다. 다시 말해 40일 안에 도착하지 못한다면 길바닥에서 겨울을 보내야 한다는 소리였다.
진심으로 제정신인지 궁금해진 김 양이었다.
간다고 해도 겨울나고 봄에 가는 게 맞지 않나? 이번 겨울 지나면 약탈자들이든, 변종, 식인귀 할 것 없이. 숫자가 줄 거 같은데.
지금 가는 건, 굶주린 맹수가 겨울잠 자기 전 마지막 사냥을 하겠다고 날카로울 때, 굳이 가겠다는 소리 같았다.
‘설마 규모를 믿고 가겠다고 한 건 아니겠지?’
2천에 육박하는 무리니까. 그 가운데 절반만 총을 쏠 수 있어도 무시할 수 없는 화력이기는 했다.
어쨌든 자신은 장비만 회수하면 되는 일이었다. 신경 쓰지 않기로 한 김 양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까마귀들이 듬성듬성 앉아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까지는 디트로이트 인근이라는 소리.
[드론으로 경계 세우고 전원 휴식.] [드론 경계. 전원 휴식]조금 지나면 불침번을 지겹도록 서야 할 테니. 초장부터 힘 뺄 필요 없었으니까.
꿈지럭거리며 이동하는 일주일 동안, 차가운 가을비가 한 번 쏟아졌고 2천 마리의 메뚜기들은 점차 굶주리기 시작했다.
“털리도에서 식량과 식수를 구해야 했어.”
“핵 떨어진 곳에서 식량과 식수? 미쳤냐?”
“식수도 그렇고 식량도 직접 오염만 되지 않으면 상관없잖아.”
“빌어먹을 다들 지금 이게 무슨 짓거리야? 그래서 다시 털리도로 돌아가자고?”
“최단거리는 불가능합니다. 일단 식수부터 챙기도록 하죠.”
“약탈자 새끼들이 많다고 하더니, 역시 개구라였어.”
“코빼기도 안 보이는구먼.”
약탈자들이 있었지만, 굶주린 2천의 메뚜기들을 털 정도로 규모 있는 세력은 없었기에 쉽게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을 마루 측이 겁을 준 거라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식인귀고 변종이고 2천이 넘는데 들어오면 자살하겠다는 거지.”
“그럼. 그럼.”
“빌어먹을 약탈자든 식인귀든 덤볐으면 좋겠군. 그놈들도 물은 마실 테니.”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어.”
길을 떠난 지 열흘이 넘어가자, 점차 식수와 식량을 구하는 시간이 길어지기 시작했다. 식량이 있을 법할 정도로 괜찮은 마을에는 중무장한 자경대가 있었고 빈 마을은 이미 털린 상태인 곳이 대부분이었다.
처음에는 최대한 마찰을 피하려고 노력했지만, 삼 주가 넘었을 때는 한계에 달했다.
“후. 문제 일으킬 생각 없소이다. 그저 식수만 보급하고 떠나겠소.”
“무장을 해제하는 거면 모를까, 접근을 허가할 수 없소!”
목책과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마을 앞에서 여러 차례 이야기가 오갔지만, 2천이 넘는 중무장한 자들을 들여 보내줄 정도로 간이 큰 사람은 없었다.
“일부만 들여보내면 어떨까요? 물통만 가지고 들어가서 물만 받아서 나오는 겁니다.”
“저쪽에서 인질로 잡으면 어떻게 하고요?”
마을 쪽도 이쪽을 믿기 힘든 건 마찬가지였다.
서로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분위기는 점차 험악해졌다.
마루는 뉴욕으로 떠난 자들이, 식인귀와 변종, 약탈자의 습격으로 대부분 죽으리라 예상했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광산에서 챙긴 다이너마이트 있지?”
“어.”
“빌어먹을 새끼들 날려버리자.”
“개새끼들 물 좀 달라는 데 총구를 들이밀어?”
콰아아아앙!
그렇게 목마르고 굶주린 2천의 메뚜기떼가 마을을 덮쳤다. 이어 타오르는 불길과 검은 연기가 치솟기 시작했다.
멀리서 상황을 보고 있던 김 양은 어이가 없었다.
‘자유 어쩌고 뉴욕으로 가서 일상을 찾겠다고 하더니.’
그러면서도 드론을 이용해 알뜰하게 촬영한 영상을 까마귀 편에 보내는 김 양이었다.
반성하라. 메뚜기 풀어놓은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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