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385)
러스트 [RUST]-385
마루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국토안보국 비행선을 보고 곤란하겠구나 싶었다. 어지간한 일이 아니었다면 직접 찾아올 리 없었을 것.
PD가 서서히 하강하는 비행선을 보며 말했다.
“비행선까지 보내다니, 심각한 문제가 생겼나 봅니다.”
“심각해 봐야 식인귀 문제겠지요. 뭐.”
시간 끌고 그러더니, 한 방에 보내버렸으면 될 일을 복잡하게 만들었다면 자업자득이었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식인귀들 거점은 공략했을 테고 아마 도망친 것들 추적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글쎄요. 일단 무슨 소리를 하는지 들어봐야 하겠네요.”
도망친 식인귀들의 섬멸을 위해, 추적에 특화된 사이코메트리를 요구할 가능성이 컸다. 거지 같은 날씨와 통신장애까지 고려하면 텔레파시까지 세트로 요구할지도 몰랐고.
“까마귀도 없는 비행선이 다닐 수 있다는 게 신기하군요.”
“야간 이동을 해서 그럴 겁니다. 소음도 거의 없다시피 하고요.”
대부분 조류는 주행성. 거기에 제일 민감하게 반응하는 게 소음이었으니, 비행선이 돌아다니는 것도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도 위험한 건 마찬가지인데, 부랴부랴 몇 척 없는 비행선을 바로 보낼 정도라면 발등에 불이 떨어지긴 했나 보다.
옥상에 착륙한 비행선에서 사람들이 내렸다. 이것저것 선물로 보이는 것들을 내리는 모습은 바람직했다. 모름지기 부탁하려면 두 손 무겁게 하는 게 기본.
확실히 덴 브라운 국장은 기본이 있었다.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마루에게 말끔하게 생긴 사내가 인사했다. 시원하고 깔끔한 미소.
“이른 새벽인데 이렇게 맞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미남 순위로 뽑은 것처럼 보이는 잘생긴 얼굴이었지만 생긴 것과는 다르게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요원이었다.
“···식인귀들의 동태가 이상합니다. 놈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무슨 짓을 하려고 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사이코메트리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렇습니까?”
시큰둥한 마루의 반응에 상황의 심각성을 재차 설명하기 시작하는 요원.
“···전리층의 이상 때문인지 통신장애가 많이 심각한 상황입니다. 유기적으로 작전을 진행하려면 광역 텔레파시가 꼭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사이코메트리와 텔레파시를 빌려달라는 말이군요.”
어쩐지 떨떠름한 마루의 표정에 요원이 살짝 물러섰다.
“국토안보국에서 가능한 선이라면 뭐든 된다는 전언이 있었습니다.”
“일단, 생각을 좀 해보지요.”
백지수표나 다름없는 조건인데 생각을 해봐야 한다고? 좋지 않은 반응이었다. 이제까지 국토안보국과 좋은 관계였는데, 갑자기 이렇게 나오는 이유가 뭐지?
요원은 태연한 얼굴이었지만, 흔들리는 눈빛을 숨길 정도로 자연스럽지는 못했다. 그 미세한 반응을 잡아챈 마루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멀끔하게 생긴 미남을 보냈다? 이거 참-.’
텔레파시와 사이코메트리에 먹힐 만한 남자긴 했다. 여자들 사이에서 유명한 백인 팝가수와 매우 비슷한 느낌이었으니까.
그래서 조금 괘씸한 생각이 든 마루였다. 자신과의 협상은 성공한다는 전제 아래, 두 여자의 입맛을 생각한 요원을 보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젠 핵이 있었다. 벙커버스터든 그냥 순항 미사일이든 미사일도 넘치게 있었다. 다른 게 뭐가 필요하겠는가?
광산 굴리기 시작하면서 암염, 석탄, 제철 쪽은 그냥 여유였다. 화력발전소 돌아가면서 일반 전력 공급도 부족함 없었다. 그냥 전기난로와 전기보일러로 난방해도 넉넉할 지경.
‘그러고 보니, 진짜 필요한 게 없네?’
“어차피 돌아가려면 오후 늦게나 가능할 테니, 점심 먹고 다시 이야기하도록 합시다.”
생각 좀 해보게.
마루는 사이코메트리와 텔레파시 파견을 주제로 회의를 소집했다.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후드가 사이코메트리와 텔레파시 두 사람을 파견 보내는 것에 반대했다.
“이유는?”
“국토안보국과의 관계 때문에 예상하지 못한 일이 발생하면 대응하기 곤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만약 국토안보국이 시간을 끌고 돌려보내지 않으면 어쩔 건가? 이제까지 사이좋게 지내다가 안면 몰수하고 싸울 건가?
“게다가 사이코메트리와 텔레파시 모두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입니다. 뉴욕에서 일하다 정신에 타격을 입는다면 우리만 일방적으로 손해를 보는 일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불안정한 사람들인데, 보내서 정신적으로 충격받아 능력을 쓸 수 없게 되면? 지금까지 요양은 여기서 했는데 나을 때쯤 뉴욕에서 일하다 망가진다? 그건 웃기는 일이지 않을까?
후드의 설명은 확실히 일리가 있었다. 마루는 일단 사이코메리트리와 텔레파시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좀 어때? 아직도 불안해하고 있어?”
“에? 이이에- 앗- 아니요. 에리카는 많이 좋아졌는데, 그 쥴리아랑은 이야기를 많이 못 해서요.”
“뉴욕으로 파견 가면 식인귀 추적을 해야 할 텐데, 에리카가 할 수 있겠어?”
“그.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아요.”
식인귀 읽다가 반쯤 미칠 뻔했는데 그걸 또 하라고? 간호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 많이 좋아졌다면서?”
“두 사람 모두 본래 용병을 하려고 했던 것도 아니었고. 텔레파시 쪽은 모르겠지만, 에리카는 능력 때문에 많이 힘들어해서요.”
처음 능력을 발현했을 때는 마냥 즐거웠고 재밌었다고 한다. 다른 사람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라니.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능력이 저주였다는 걸 깨닫고 말았다.
겉과 속이 다른 가족들. 웃으면서 속으로는 재수 없다고 생각하는 친구들, 심지어 끔찍한 생각을 속에 품고 있는 이웃들은 에리카를 힘들게 했다.
에리카의 성격은 점차 거칠어지고, 이기적으로 변해갔다. 교우관계도 망가졌고 가족들도 데면데면해지던 찰나, 에리카의 소문을 들은 라이저 그룹이 접근해 스카우트했다는 것.
그렇게 졸지에 라이저 그룹 산하 용병단에 들어가 능력을 사용하면서 정신이 피폐해졌다는 이야기.
반반 후드는 간호사의 말에 어이없다는 표정이 됐다. PD도 마찬가지로 눈살을 찌푸렸다. 사이코메트리가 사이코메트리를 혐오하게 된 이유라는 건데.
질풍노도의 시기도 아니고, 사람들이 속으로 이런 생각, 저런 생각, 음흐흣한 생각을 한들 그건 생각뿐 아닌가?
운전 병신같이 하는 인간과 엮이면 확 받아 버리고 싶고. 갑질하는 인간 뱃대지에 칼침 놓는 상상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였고.
그런데 그걸 보고 인간의 본성이 어쩌고 능력이 저쩌고 하다가, 자기가 보고 싶을 때는 슬쩍 보는 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 보였다.
무엇보다 사이코메트리의 능력은 자기가 원할 때 쓸 수 있는 능력인데도 저런 반응을 보인다는 건 여러모로 곤란했다.
“그래서. 앞으로 사이코메트리를 쓰지 않겠다고 했나요?”
“그런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면, 자기가 궁금할 때나 쓰고 싶을 때는 쓰면서, 작전 때문에 쓰는 건 괴로우니까 쓰지 않겠다는 소린가요?”
“에엣. 그건···.”
그 소리였다.
“좋아요. 사이코메트리는 그렇다고 치고. 텔레파시 이야기를 해보죠. 지금 말씀대로라면 대화를 거의 하지 않는다는데, 짐작되는 이유가 있습니까?”
“······.”
간호사가 긴장되는지 두 손을 앞으로 모았다.
순간. 주변이 숙연하게 웅장해졌다.
크흠- 헛기침 소리에 슬그머니 마루를 쳐다본 간호사가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에··· 그 목걸이 때문이에요.”
“목걸이요? 그게 왜요?”
반반 후드의 질문에 다시 마루를 힐끔 쳐다보는 간호사. ‘이거 말해도 되는 건가?’ 하는 눈빛에 마루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목걸이가 아니라. 잘못하면 터지는 목걸이라고 하더라고요.”
“폭발 목걸이?”
“······.”
깜짝 놀란 얼굴로 마루를 보는 후드, PD는 이해한다는 듯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텔레파시는 나와 김 양을 공격했던 사람입니다. 사실 죽였어야 하는데 포로로 잡은 거고요, 배신하지 못하게 최소한의 장치를 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래도. 그런 걸 목에 걸고 있으면 정신적으로 불안정해 질 겁니다.”
“딴 마음 먹지 않으면 될 일인데 무슨 소리죠?”
“···그렇지 않습니다. 반대로 그것 때문에 다른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몰라요.”
“에-또- 에리카도 그런 소리를 했어요. 목걸이 때문에 많이 힘들어한다고.”
“그렇다고 하더라도 목걸이를 푸는 건 위험할지 모릅니다.”
가만히 있던 PD가 입을 열자, 두 여자가 휙 노려봤다.
“극단적인 생각이지만, 텔레파시를 이용해 사람들을 충동질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무슨 소리죠?”
반반 후드의 질문에, PD가 잠시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곤 설명했다.
“능력을 교묘하게 이용해, 얼굴에 반쪽 가면을 쓴 여자를 죽여라, 반쪽 가면을 쓴 여자는 악마다. 이런 소리를 사람들의 뇌에 직접 꽂아 넣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
“장거리 텔레파시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광역으로 텔레파시를 송출할 수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 능력자를 마냥 멋대로 자유롭게 두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잘한다.’
마루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그래도 국토안보국의 요청을 무조건 거절하는 건 좋지 않았다.
“일단, 에리카를 부르지요. 도와주러 가겠다고 하면 보내기로 합시다.”
무턱대고 보내지 않는 것보다 이런 방법이 좋아 보였다. 당사자의 자유의사에 따르겠다고 하는 것이니까.
‘혹시 이것도 고려한 건가?’
어쩌면 그럴지 몰랐다. 협상하는 사람을 멀끔하게 생긴 미남을 보낸 것을 보면 가능성 있었다. 당사자의 자유의사에 맡긴다고 하면 요원은 자신의 얼굴을 앞세워 설득하겠지.
“단, 사이코메트리가 간다고 할 경우, 파견 시간에 제한을 둬서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작전의 성패와는 상관없이 무조건 돌려보내는 조건으로 하지요.”
“텔레파시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가요?”
“일단 텔레파시가 가진 문제점을 그대로 알려주지요. 국토안보국에서 위험을 감수하겠다고 데려가겠다고 하면, 보내기 전에 목줄을 풀어줄 생각입니다.”
“예? 위험하다면서요?”
“······.”
“어차피 통신이 먹통이라, 뉴욕에서 뭔 짓을 해도 막을 방법이 없어요. 그냥 풀어주고 지켜보는 게 낫지 싶습니다.”
“차라리 기폭장치를 국토안보국에 넘기는 건 어떻겠습니까? 단거리라면 신호가 전달될 테니 충분히 제 기능을 할 것으로 보입니다.”
PD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마루의 대답은 부정적이었다.
“작전에 들어가면 지하수로에 들어가거나, 환경이 급변해 신호가 먹히지 않는 순간이 생길 겁니다. 반동으로 식인귀에게 붙어버린다거나, 어떤 방식으로든 일탈해 버린다면요? 감당이 안 될 겁니다. 어차피 뉴욕에 가면 통제하긴 힘들어요. 우리가 선택해야 할 건, 처분하느냐? 아니면 목줄을 풀어주느냐? 둘 가운데 하나입니다.”
“······.”
“······.”
“······.”
세 사람의 표정은 전부 달랐다.
반반 후드는 반쪽 표정이 좋지 않았고, 간호사는 약간 밝아졌다. 어쨌든 사이코메트리와 텔레파시에 잘된 일이라고 생각하는 모습. PD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얼굴로 눈을 감고 있었다.
“그 두 사람을 보내주면, 이쪽에 대가를 준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제일 필요한 게 뭔지 말씀들 해보세요.”
그렇게 결정된 요구사항은 비행선이었다. 현재 블라디 아크 타운에서 운용하는 비행선 이상의 스팩을 가진 것이라면 1척, 그 이하라면 2척을 달라는 것.
“그럼 비행선으로 결정하기로 하지요.”
고작 한시적 파견 대가로는 큰 요구였지만, 요원은 선선히 받아들였다.
“그렇다고 해도 당사자들이 가지 않겠다고 하면 강제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럴 일은 없을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사이코메트리와 텔레파시는 뉴욕행을 선택했다.
쥴리아 버튼, 텔레파시는 목줄을 풀 수 있다는 말에 무조건 가고 싶다고 했고. 에리카 리스본, 사이코메트리는 그냥 얼빠였기 때문이었다.
“에? 저요? 저도 다녀오라고요?”
“두 사람 관리도 해야 하고.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말이지, 일단 까마귀 중대 붙여줄 테니 정찰, 지원 좀 해줬으면 해.”
그리고 간호사, 오노 나나에도 덤으로 파견됐다.
마루는 비행선에 제법 진심이었다. 저쪽에서는 그냥 수송용 비행선이지만, 이쪽으로 온다면 공중항모 아니던가? 일이 잘 풀리면 공중항모가 복사되는 일감이었다.
그렇게 세 여자를 태운 국토안보국 소속 비행선이 뉴욕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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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든 항구로 빠져 뉴욕을 탈출할 수 있음에도 베이든 가문은 지하수로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
사삭- 사사사사삭-
바퀴벌레를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을 깨우친 가주의 명령에 따라, 바퀴벌레들을 돕기 시작한 베이든 가문 사람들이 통신장애를 호소했다.
“이상합니다. 통신이 되지 않습니다.”
“무전기가 먹통이 됩니다.”
아무리 지하수도라고 해도 근거리 무전은 먹히는 게 정상이었다. 그런데 무전기가 먹통이 된 것.
사사사사삭- 사사사삭-
“상관없다.”
브렛 베이든은 파랗게 빛나는 눈으로 바퀴벌레들에게 명령했다.
“지하수도에 있는 인간을 찾아라.”
샤사사사삭-
다갈색 물결이 꿈틀 지하수도를 뒤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