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39)
러스트 [RUST]-39
마루는 30대 초반? 중반? 그 정도로 보이는 직원을 바라봤다.
눈물과 콧물을 질질 흘리며 바들거리는 사람을 보니 기분이 참 뭣 같았다. 슬쩍 보니 총이랑 칼도 제일 좋은 걸 차고 있었다. 방탄복도 그렇고 여타 장비가 제일 좋은 것을 감안하면, 이 사람이 지휘관? 실장 같은 위치로 보이는데···
‘하- 기분 개 더럽네.’
최 실장과 백 실장을 생각하면 이건 뭔가 싶었다. 총이라도 뽑으려고 했으면 단칼에 쳤을 것이다. 도망치려고 했어도 마찬가지였다. 근데 이건 도망치지도 않고 제자리에서 바들바들 떨고만 있으니, 뭔 누렁이를 도축하는 느낌이 들어서 지랄 같은 기분이었다.
씨발 이걸 어쩌나 하는데, 낮음 직한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픽! 픽!
직원의 머리통에 틀어박히는 총탄.
눈물과 콧물, 침이 허공으로 튀었다. 바들바들 떨며 눈물을 흘리던 눈동자가 뒤로 돌아가며 쓰러졌다.
하-숨을 내쉰 마루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맑고 깨끗한 가을 하늘, 하얀 구름이 둥실 떠 있었다.
총알이 날아온 방향을 보니 김 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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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고 은밀하게 옆으로 돌아간 김 양이 자리를 잡았다.
권총의 사정거리는 짧다. 특히 22구경은 거리가 멀어질수록 위력이 급격하게 약해지는 느낌. 제조사 스팩 대로라면야 50m까지 유효거리라고 했지만, 막상 실제로 써 본 결과 20~25m 밖에서는 별로 쓰고 싶지 않은 구경이었다.
시가전이나 건물 안에서 쏜다면야 20~25m는 충분하지만, 야외에서 25m는 정말 짧은 거리였다. 마루가 얼마나 천천히 걸었는지, 꼼지락거리던 김 양이 자리를 잡고 나서야 멀찍이 직원들이 옹기종기 모인 곳으로 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김 양은 보았다. 사람의 머리통이 붕 떠오르는 것을.
‘오마니.’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엄마를 반사적으로 찾을 지경.
눈 깜박거릴 새가 없었다. 저게 사람 새낀가? 숨이 콱 막혔다. 놀란 심장이 벌렁벌렁 뛰고, 간신히 진정됐던 소름이 다시 돋았다.
‘내가 저런 거랑 싸웠던 거야? 살아남은 나, 정말 대단했구나.’
김 양은 앞으로도 분노는 선생님 저편으로 쉬게 해야겠다 다짐했다. 그런데 분위기가 좀 이상했다. 순식간에 썰어버린 백정이 어째선지 한 놈을 남겨두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하- 저 애미나이··· 또 저러네.”
김 양은 어쩐지 마음이 좀 놓였다. 저런 거라도 없었으면 진짜 저거랑 같이 못 다녔을 것 같았다.
하긴, 저런 놈이라서 자기도 살았다고 생각하니, 저건 또 저거대로 좋은가? 근데 계속 저렇게 비무장 무저항이라고 처리하길 주저하다가 뒈질 텐데 저거.
흠- 하고 김 양이 ‘어쩔까?’ 갸웃했다. 지금은 좀 도와줘야겠다.
퉁! 퉁!
픽-하고 쓰러진 마지막 직원.
마루 놈이 그 자리에서 우두커니 서 있다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더니, 김 양을 바라봤다. 김 양은 재빨리 깁스한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내가 했다구- 이럴 때 따는 점수는 적립이지 않을까?
마루가 아무 말 없이 자동차를 몰았다.
본래 김 양도 조용히 자기 세계에서 평안을 추구하는 스타일이었지만, 지금은 뭔가 껄끄럽다고 해야 하나? 침묵이 좀 불편했다. 인싸보다 아싸에 가까운 김 양인지라 뭔가 말을 붙이지 못하고 깁스한 오른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퉁퉁 부은 손가락, 이거 손가락이랑 팔에 부기 빠지면 깁스랑 연결해서 기관단총 쏠 수 있게 해볼까? 될 거 같기도 하고. 아니면 깁스를 좀 개조해서 수류탄을 숨겨두는 건··· 어렵겠구나, 20mm 유탄이라면 될 거 같기도 하고, 유탄은 좀 그런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미안.”
굳게 닫혔던 마루의 입이 열렸다.
“그 일은 됐어.”
김 양은 ‘기레도 양심 쪼가리는 있네.’하는 표정을 지었다. 김 양이 이동 불능으로 만든 5명의 직원. 마루는 회사에 대한 경고로 5명을 그냥 두고 가자는 쪽이었고, 김 양은 절대 그래서는 안 된다는 쪽이었다.
별다른 말다툼은 없었지만, 결과적으로 손을 쓴 사람은 김 양이었다. 마루는 그게 마음에 걸렸다. 어쨌든 그들을 죽인 이유는 자신에 대한 정보를 회사에 넘기지 않기 위해서였다.
자기가 이렇게 칼 쓰는 능력이 있다는 게 까발려진다면? 회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마루를 잡으려고 할 것이 분명했다. 그 수단과 방법의 끝에는 가족이 있겠지···. 그렇지 않아도 최 실장과 백 실장을 잡은 사람을 쫓고 있다던데, 밝혀진다면 꼬일 게 분명했다.
경찰에 신고하고 저격하고 그 지랄한 이유가 뭔가? 자기가 밝혀지는 걸 막기 위해서 그랬던 것 아닌가? 확신이 들지 않도록 하려고 그렇게 일을 복잡하게 했고, 조용히 지나갈 일도 터뜨렸던 것 아닌가?
그러니 목격자를 제거하는 건 필수적인 일이었다. 그래서 마루는 김 양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어쨌든 감정대로 경고 어쩌고 하면서 살려주자고 했던 건, 자기가 잘못한 것이니까.
그렇다는 것을 알지만, 알면서도, 마루는 비무장·무저항인 사람에게 손 쓰는 게 껄끄러웠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다 보면, ‘언젠가는 비무장·무저항인 사람들도 죽이겠지, 그렇게 홍 과장이 말했던 그런 인간 백정이 되겠지.’란 생각을 떨쳐버리기 힘들었다.
사람의 마음에 못질 하는 게 말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홍 과장이 한 ‘인간 백정’이라는 말은 지워지지 않는 낙인처럼 마루를 괴롭혔다.
기분이 더러웠다. 아주.
“다시 말하지만, 적이면 냉큼 죽이고 보라우. 아니- 죽이고 봐야 한다 이거야. 이거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진짜 중요한 거야.”
내가 중국에 있었을 때 이야긴데, 거기가 상해랑 가까운···.
김 양은 조용했다. 하지만 일단 입이 열리면, 좀처럼 닫히지 않았다. 중간이란 게 없는 여자였다. 마루는 뭔가 말하려다, 꾹 참고 김 양의 설교를 들었다.
기순이랑 막상막하인데? 설마 양쪽에서 이러는 건 아니겠지?
기순이 잡아 놓은 호텔.
코로나 시국이 시국인지라. 호텔이 파격 할인이었다.
“부산에서 호텔 하면 역시 샬롯이지. 역사와 전통이 있잖아. 때깔도 좋고, 부산 샬롯이면 서비스가 서울 샬롯 못지않다. 클럽 주니어 스위트가 파격 할인일 줄이야. 그것도 어마어마한 할인.”
기순의 연설이 시작될 무렵. 마루가 김 양을 내밀었다.
“그러니까 비록 1박이지만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가··· 아, 전에 말했던 그분? 그··· 저 ···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마루 친구 기순. 김기순이라고 합니다.”
김 양이 기순을 물끄러미 쳐다보곤, 다시 마루를 쳐다봤다. 잠시 뒤 기순을 쳐다보더니
“김 양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하고는 꾸벅 폴더 인사를 했다.
기순은 김 양의 인사에 어리둥절했다. 마루의 옆구리를 쿡쿡 찍어 살짝 거리를 벌리더니, 귓속말로 속닥였다.
“야. 저분 실명이 김 양이야?”
“나도 몰라.”
정말 실명이 뭔지 몰랐다. 김영희인지 김희영인지 심지어 김영영까지 있는 판국에, 실명이 뭐냐고 물을 사이도 아니었고.
“아니 장난치지 말고 진지해. 김 양이라고 하면 되는 거야?”
“그러라잖아.”
기순이 또 뭔가를 말하려고 하자, 김 양이 소리를 높였다.
“애미나이들처럼 속닥이는 거 듣기 그렇습니다. 할 말 있으시면 사내답게 앞에서 이야기하시면 좋겠습니다.”
기순이 화들짝 마루를 봤다. 저분 그러니까 김 양 원래 저런 사람임? 뭔가 좀 위쪽 느낌도 나고. 그거 거기 있잖아. D로 시작하는 청정한 지역. 그래. 거기. 그 위에 지역. 그 눈빛을 읽은 마루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순이 아- 하는 표정을 휙 지우며 김 양에게 사과했다.
“큼. 죄송합니다. 근데 김 양이라고 부르면 되는 겁니까?”
“그러면 됩니다. 저는 기순씨라고 하면 될까요?”
“저 실례지만 나이가 어떻게 되시는지.”
“여자 나이 함부로 묻고 다니는 거 아니라는 건 아시지요?”
김 양의 둥글둥글한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아니 또 제가 실수를 했네요. 죄송합니다.”
“그건 됐으니···”
김 양이 휙휙 좌우를 두리번거리더니, 마루를 봤다.
마루는 5덩어리나 되는 김 양의 짐을 노끈으로 둘둘 묶어, 한 덩어리로 만든 것을 번쩍 들며 기순에게 말했다.
“일단 방 예약한 거기 가자.”
기순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죠. 방. 여기 이쪽으로.”
여자가 하나 껴서 그런가, 그렇지 않아도 많던 말에 새끼까지 치는 기순이었다.
기순은 김 양의 근처에 부유하면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는 순간부터 올라가는 도중을 거쳐 다시 문이 열릴 때까지 입을 쉬지 않았다.
저 새끼는 본래 말이 많았었지. 기순이랑 김 양이랑 붙여 놓을까? 그것도 나쁘지 않아 보이는데, 김 양의 표정을 보니 사고가 날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었다. 그것도 총기사고.
하나 남은 친군데, 그럼 곤란했다.
“기순아, 피곤하시단다.”
“어? 그래? 아 죄송합니다. 제가 또 반가운 마음에.”
“······.”
김 양은 대답 대신 가늘어진 눈매로 마루를 쳐다봤다. ‘실화임?’ ‘이게 너님 친구?’ ‘레알?’
마루는 침묵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쪽팔리더라도 친구를 버릴 순 없지. 자- 저 기순이가 내 친구다. 왜 말을 못 해. 이건 아니고. 말로 하긴 쪽팔렸다.
기순이 예약해둔 방문이 열리자, 널찍한 창밖으로 시원한 풍광이 펼쳐졌다.
이것만큼은 김 양도 좋았는지 둥글둥글한 눈매가 초롱초롱해졌다. 김 양은 기순을 향해 폴더 인사를 했다. 기순은 핫핫 그러면서도 돈은 마루가 냈다며 손사래 쳤다.
점수를 왕창 깎아 먹다. 9회 말, 2사에서 만루홈런 친 기순이었다. 마루는 방콕교 신자로 보이는 김 양이 푹 쉬도록 기순을 끌고 나왔다.
“야- 아니 쉬는 것도 좋지만 서로 좀 알아야 오해도 없고 그렇지. 그리고 피곤할 때 좀 찔러봐야 본래 성격 나오는 거다. 앞으로 긴 시간 좁은 배 안에서 부대끼고 생활하는데, 본성을 모르고 있다가 위급한 일 터지면 진짜 위험해진다. 미리미리 거를 수 있으면 걸러야지.”
“짜식 핑계는. 왜? 김 양 눈매만 봐도 미인 같냐?”
“내 순수한 마음을 왜 그렇게 ‘오-예’하냐?”
그럼 그렇지, 오해가 아닌 ‘오-예’였다.
장난스러웠던 기순이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알지? 나 일편단심인 거.”
“지랄하네.”
반사적으로 대꾸한 마루가 대답해놓고는 머쓱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기순은 그런 마루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다.”
“그래.”
마루와 기순은 조용히 호텔 식당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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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침대에 점프해 퐁 한, 김 양은 세상 좋았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세상이 좋았다. 너무 좋았다.
회사에서 정해 준 숙소에서만 지냈었다. 좋은 오피스텔이라고 해봐야 투룸이었다. 일하러 지방에 내려가면 싸구려 모텔이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폐가를 개조한 안가는 끔찍할 지경이었다.
자본주의 만세를 부르짖으며 벌떡 일어난 김 양이 욕실로 향했다. 드라마에서 보던 욕실처럼 화려한 욕실을 보니, 온 전신이 가려운 것 같았다. 후딱 목욕해야지 하려는 찰나.
꼬르르르륵
배가 아우성쳤다.
아- 그러고 보니 아침에 버거퀸 먹은 거 빼고 굶었구나. 김 양은 마루가 떠올랐다. 자기보다 더 많이 먹은 마루.
흠- 밥이나 같이 먹을까?
저번에는 내가 샀으니까 이번에는 백정보고 사라고 해야지.
후후- 복수다.
김 양이 문자를 보냈다.
[어디?] [밥 먹는 중.]뭬야? 벌써 먹고 있다고? 나는?
[어디서 먹어?] [여기? 5층 뷔페.]뷔페? 뷔페라고? 뷔페엘 자길 부르지 않고 갔다고?
김 양은 손이 떨리고 몸이 떨리고 당이 떨어지는 느낌에 정신이 아찔했다.
세상에 믿을 놈 없다더니, 자기만 입인가?
폭신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 김 양이 분노를 일발 장전하고 5층으로 향했다.
계의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