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390)
러스트 [RUST]-390
시간이 지나고 제정신을 차렸는지 웅크려 앉아, 무릎과 무릎 사이에 머리를 파묻는 에리카. 그러거나 말거나 하던 일을 계속하는 마루.
‘귀찮아도 후딱 해야지.’
브렛 베이든과 쥴리아 버튼의 시체 때문에 꼬이는 것보다 귀찮은 게 백번 나았다. 무려 바퀴벌레를 조종할 수 있는 식인귀 우두머리와 광역 텔레파시 능력자의 시체인지라, 조각하나 남길 생각이 없었다.
“나··· 버릴 건가요?”
뒤에서 들리는 작은 목소리에 마루가 헛웃음 지었다.
뭔 개소릴.
누가 들었으면 사귀다가 찬 줄 알겠네.
“아니면··· 죽일 건가요?”
멈칫-
쥴리아는 애초에 죽였어야 할 여자를 살려준 것이라, 요원의 총에 맞고 죽었어도 능력이 아까웠지 고민될 일은 아니었다.
다만 에리카는 국토안보국에서 반강제 스카우트한 것이라 경우가 달랐다. 능력을 쓸 때마다 징징거려서 피곤한 게 사실이더라도, 그게 죽일 이유는 아니었다.
사실 텔레파시랑 사이코메트리 때문에 살기 쓰지 않고 섬광 폭음탄을 쓴 거였다. 죽이려고 마음먹었으면 살기 쓰고 달려들면 됐다. 식인귀는 몰라도 그 둘은 살기 맞으면 거의 확실하게 위험했을 테니까.
그리고 이들이 배신했는지 식인귀랑 붙어먹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처음에는 더 긴가민가했었다.
확실하지 않은데 ‘몰라 그냥 전부 다 뒈져라.’ 죽여버리는 건 아니었다. 영 아니다 싶으면 국토안보국에 넘겨도 톡톡히 제값 받을 수 있는데 굳이.
뭣보다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가는 게 껄끄럽다 싶으면 여기에 그냥 두고 가면 끝이었다. 편하게 그냥 ‘원하는 자유를 줄 테니 가라. 가서 잘 살고.’ 그러고 떠나면 그만.
그러면 바퀴벌레든, 쥐든, 뉴욕의 뒷골목이든, 하다못해 이들을 노릴 것들이 알아서 치고받다가 치워줄 테니, 손에 피를 묻힐 이유가 없었다.
무심하게 할 일 하는 마루를 향해, 두 무릎에 얼굴을 파묻은 채 에리카가 말했다.
“브렛 베이든이 중요하게 생각한 거. 혼자 독식하려고 한 게 뭔지 알아요.”
그러니까 이 새끼가 혼자 독식하려고 한 게 있다고?
별로 관심 없었다. 어차피 먹지 못하고 죽은 놈이 탐낸 거 아닌가? 뉴욕에 있는 식인귀 세력도 전부 무너졌으니 그게 식인귀 쪽으로 갈 것도 아니었고.
쿠직- 좌르르륵-
‘이 새끼는 유독 뼈가 단단하네.’
상위 개체들 뼈가 단단하다는 건 겪어서 알고 있었지만, 브렛 베이든은 유독 더 그랬다. ‘이 새끼들 점점 더 단단해지는 거 아니야?’ 처음부터 풀로 찌르고 휘둘렀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지저분해졌을 뻔했다.
브렛 베이든과 쥴리아의 시체에 네이팜 액을 꼼꼼하게 뿌려 태울 준비를 마친 마루의 등판에 대고 에리카가 중얼거렸다.
“유 플러스- 그게 어디 있는지 알아요.”
뭐?
화르르르륵-
네이팜이 뿌려진 시체가 타올랐다.
쥴리아의 시체를 살라 먹는 검붉은 불길을 보며 에리카가 말했다.
“U+ 프로그램 그게 어디 있는지 알아요. 그게 회춘과 연관됐다는 것도, 유력자들과 식인귀 모두 그걸 노린다는 것도요.”
“······.”
중요한 이야기라 그쪽으로 신경이 쓰였지만···.
저 정도로 중요한 내용을 알려면 브렛 베이든의 잔류사념을 읽었어야 했을 거다. 상위 개체에 바퀴벌레를 조종했던 놈이니만큼, 못 볼 꼴이 넘쳤을 게 분명함에도 전처럼 질질 짜지 않고 있는 모습.
얼굴을 무릎에 파묻고 있는 에리카를 바라보는 마루의 눈매가 살짝 가늘어졌다. 마루의 침묵을 뭐라고 생각했는지, 에리카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식인귀 가문들이 모여 휘하에 있던 능력자 용병들을 보냈어요. 국토안보국의 비밀실험실로. 용병들은 식인귀가 아닌 능력자라서 검문에도 걸리지 않고, 능력자니까 공격력도 컸거든요. 그리고 얼마 전 U+ 프로그램 일부를 탈취하는 데 성공했다는 연락이 왔어요.”
대답 없이 시체에 불을 붙이는 마루.
화르르르륵-
쥴리아는 잘 타는데, 브렛 베이든은 오지게 안 탔다.
마루는 네이팜을 휙-휙- 더 뿌리곤 생각에 잠겼다.
타닥- 타닥-
화르르르륵-
고요한 가운데 시체 타는 소리가 지하수로를 울렸다.
그 울림을 파고들듯 키틴질 비벼지는 소리.
사사사사- 사사사사-
섬광 폭음탄에 놀라 도망쳤던 바퀴벌레들이 한두 마리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쯧-
마루는 김 양의 특제 귀여운 V의 x를 바퀴벌레들이 슬금슬금 나오는 통로 저쪽으로 던져 넣었다.
퍼엉- 작은 소리와 함께 냄새도 맛도 없는 죽음의 가스가 통로를 채우기 시작하자 바퀴벌레 소리가 사라졌다.
‘가스가 퍼진 걸 알고 금방 피하는군.’
바퀴벌레 따위가 학습하다니, 앞으로 골치 아플 듯했다.
‘뭐.’
알아서들 하겠지. 어쨌든 식인귀가 해결됐으니, 방역이야 인력 갈아 넣으면 될 일이었다. 지하로 연결되는 구멍에 가스든 살충제든 때려 넣으면 희생이야 있겠지만, 해결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고.
‘U+ 프로그램의 소재를 안다고?’
이거 애매해졌네. 고개를 좌우로 스트레칭한 마루가 결정을 내렸다.
“일단 나가지.”
“···예.”
“내가 뉴욕에 온 건 비밀이니까. 보급 캠프나 국토안보국 쪽에 엉뚱한 소리 말고.”
“예. 그럼 추격대는 어떻게 됐다고 하죠?”
“싸우다 흩어져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됐는지 모른다고 해. 그리고 바로 간호사가 있는 비행선으로 가. 그쪽에도 상황을 보고해야 해서 간다고 말하고.”
“알았어요.”
치지직-
일그러지는 은신이었지만, 어둑한 지하수로의 구석을 따라 이동하는 마루의 움직임은 지독하게 은밀했다.
에리카가 보급 캠프에 도착해 상황을 전달하자, 사람들이 부산스러워졌다.
그녀는 마루가 시킨 대로 보고를 핑계로 지하수로 밖으로 빠져나왔다. 사이코메트리 능력자인지라 경호 둘이 따라붙었지만, 이동하는데 별다른 제지는 없었다.
“에엣. 벌써 끝났어요? 다친 데는 없고요.”
간호사가 넓은 마음으로 귀환한 에리카를 반겼다. 그녀는 쥴리아가 어떻게 됐는지 묻지 않았다. 마루와 김 양이야 언제나 걱정이 없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
현장에 나가서 하루에도 몇 명씩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 깊은 상처를 입고 간신히 목숨만 붙어서 돌아오는 사람들을 봤었기에, 간호사는 에리카가 무사히 왔다는 것에만 집중했다.
그 배려에 에리카는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까아악-
“에? 지금 여기에 오셨다고요?”
간호사의 말에 에리카는 구석으로 슬그머니 들어갔다.
치직- 치지직-
깨진 일렁거림이 국토안보국에서 새로 받은 비행선 안으로 들어왔다. 츠파팍- 은신이 풀어지며 리퍼 슈트 헬멧을 벗는 마루에 간호사가 수건을 건넸다.
“오셨어요. 아 땀이···. 여기 수건이요. 목욕 준비됐는데 하시겠어요.”
“그러지.”
땀방울을 수건으로 닦은 마루가 구석에 틀어박힌 에리카를 쓱 한 번 보곤 욕실로 향했다.
“에리카도 빨리 들어가서 씻어요. 씻고 상처 좀 보죠.”
간호사의 씻으라는 말에 에리카는 화들짝 놀라 시선을 어디에 두지 못하고 횡설수설했다.
“예? 지금 저기. 저. 저분 씻으러 가지 않았나요?”
“여기 비행선에는 샤워실이 4개나 있더라고요. 이쪽이요.”
간호사가 사이코메트리의 손을 덥석 잡아끌었다.
질끈 눈을 감은 에리카가 나나에의 손을 꼭 잡고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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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안보국 덴 브라운 국장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제롬 렌달이 실종이라고? 아니···. 추격대가 완전히 와해 됐다고?”
“예. 제일 먼저 퇴각한 에리카 리스본의 보고로는 그렇습니다.”
텔레파시와 사이코메트리를 설득하기 위해 얼굴마담으로 보냈다지만, 제롬은 미남인 것을 떠나 뛰어난 요원이었다.
어린 나이에 잘생긴 남자라면 대부분 비슷했다. 예쁜 여자를 옆에 끼고 다니면서 SNS 인플루언서(Influencer)나, 뉴투브 방송인으로 활동해 돈 벌 생각을 하기 마련이었지만, 제롬은 그렇지 않았다.
요즘 세태와는 달리 드물게 건실한 청년이었고, 혹독한 훈련과정에서도 상위권에 들 만큼 열정적이었다. 그래서 이번 추격대 토벌 작전 지휘권을 줬던 것.
텔레파시와 사이코메트리, 거기에 과잉 전력이라면 도망치는 식인귀 따위를 잡는 건 미지근한 수프 먹기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실적이나 쌓으라고 보냈건만 부대 전체가 와해 됐고 전원 실종이라니.
덴 브라운 국장의 얼굴에 노기가 올라왔다.
“사이코메트리년 데려와. 그년이 또 동료를 버리고 도망친 건지 확인해야겠어. 그리고 그년을 끌고 지하수로를 샅샅이 뒤져서라도 우리 애들 찾는다.”
“···저 국장님. 에리카 리스본이 블라디마루 칼린에게 넘긴 비행선으로 들어갔습니다.”
“뭐?”
“그게··· 관리역으로 따라온 오노 나나에 간호사에게 보고해야 한다고 해서, 현장에서 막을 명분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런 모지리(idiot) 같은. 이쪽으로 보고부터 했어야지!”
“현장에서도 본부로 통신하려고 했는데, 통신장애라 어쩔 수 없었다고 합니다. 식인귀들이 공격할 수 있으니, 계속 붙잡아 두는 것도 여의치 않았고요.”
“···무선 통신이 먹통이라고? 뉴욕 전체가?”
“그건 아닙니다. 지하수로 인근만 그렇습니다.”
덴 브라운 국장이 물을 들이켰다. 답답한 가슴.
젊고 유능한 재원은 소중했다. 그들을 잘 키워야 미합중국 재건의 중추가 될 텐데 이렇게 잃다니. 이건 아니었다.
‘그냥 밀고 들어가서 그년을 끌어낼까?’
디트로이트와의 통신은 끊어진 상황. 이쪽에서 거칠게 나가도 저쪽에서는 알 길이 없었다. 일단 사이코메트리를 끌어내서 돌리고 굴려도 죽이지만 않으면 될 일 아니던가?
무엇보다 사이코메트리년이 없으면 거미줄 같은 지하수로에서 와해 된 추격대의 흔적을 찾는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웠다.
지하수로는 야니아 킴이 VX 가스를 사방에 살포해 곳곳이 지뢰밭이었다. 그래서 완벽한 화생방 장비를 갖추고 수색해야 하는데, 대부분 장비를 추격대가 가지고 들어간 상황.
“최대한 빨리 화생방 장비 확보해. 부족하면 해병대에 연락해서 협조 요청하고.”
“옛.”
“엑소슈트 부대는?”
“여유가 없습니다.”
식인귀들 거점 공격하면서 파괴된 곳을 수색하고, 인프라 공사 지원에 투입됐기에 여유가 없었다.
“전부 중단하고 지하수로 수색부터 한다. 그쪽에 있는 애들 전부 복귀시켜.”
“예.”
모병한 병력 8만 명이 있다지만, 그쪽은 아직 훈련도 끝나지 않은 피라미들. 교전 위험성이 높은 수색 임무에 투입하기 어려웠다. VX 가스 대책도 그렇고.
추격대와 교전한 식인귀들이 남아있을지 모르니, 그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엑소슈트 부대도 완전무장해야 했다.
“빌어먹을. 당장 사이코메트리가 틀어박힌 비행선으로 가서 협조를 구해.”
“거절하면 어떻게 합니까?”
“···미합중국은. 국토안보국은. 결코. 결단코 전우를 버리지 않는다고 해. 어째서 지금 이 순간까지 추가로 나온 생존자가 단 한 명도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하고 사이코메트리 끌고 나와.”
사이코메트리를 강제로 끌고 나간 것이 나중에 알려지더라도 블라디마루 칼린. 그 역시 이해할 것이다.
역지사지.
블라디마루 칼린이 그게 불가능한 인간이라면, 생각을 달리해야겠지.
‘이해하기 힘들어. 텔레파시와 사이코메트리 조합이야. 거기에 충분한 병력과 무장까지. 그렇게 들어가서 식인귀 잔당에게 당했다고? 통신장애가 생겼어도 그래. 텔레파시로 보급 캠프에 상황을 전달할 수 있는데 소식이 없었다? 아무리 위급한 상황이 닥쳤다고 해도 그렇지 텔레파시로 지원요청을 못 할 정도였다고?“
덴 브라운 국장이 이마에 서서히 혈관이 돋았다.
“아무래도 내가 직접 가야겠다. 거짓말 탐지기 준비해. 심문용 밴도.”
“예?”
“몇 시간이 지났는데 아직도 생존자가 나오지 않고 있어. 그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알겠습니다.”
진실을 찾을 것이다.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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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을 마친 마루는 차가운 탄산수를 마시며 에리카를 기다렸다.
지하수로에서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다 못해 마지막에는 엉금엉금 기어서, 무릎과 팔꿈치에 상처가 심했기 때문에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말에 마루가 한마디 했다.
“그거 얼마나 다쳤다고. 대충 연고나 바르면 되지.”
“에에엣- 대충이요? 지하수로에서 다쳤는데요? 그러면 안 돼요. 그러다 큰일 나요.”
“아니. 저래 보여도 용병 출신이니까 파상풍 주사는 맞았을 거고, 세균이든 바이러스든 그래도 능력자인데 그렇게 쉽게 감염될 리 없지 않나?”
간호사는 그게 무슨 소리냐며 샤워하고 나온 사이코메트리를 그대로 붙잡고 치료하러 나갔다.
‘저래도 되는 건가?’
저거 매번 덥석덥석 사이코메트리 손을 잡고 그러는데. 저러다가 속마음 읽히면 어쩌려고. 마루는 고개를 흔들었다.
창밖을 보며 생각을 정리하는 마루의 시야에 저 멀리 까마귀들이 날아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까아아악-
까악! 깍!
경계 신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