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393)
러스트 [RUST]-393
블라디마루 칼린은 자신을 팔지 않았다. 구해줬고.
그러니까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머릿속에서 자꾸 이상한 생각이 드는 에리카였다.
‘속지 마.’
‘중요한 걸 다 알려주면 쓸모가 없다고 버릴 거야.’
‘알잖아.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거.’
대답 없이 살짝 미간을 찌푸린 그녀의 모습에 마루가 말했다.
“날 물 먹인 거면 곤란해.”
가늘게 피어오르는 마루의 살기에 번뜩 정신을 차린 에리카가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아니요. 그게 아니고요. U+ 프로그램 그게 좀 그래서요.”
“뭐가 그런데?”
“그러니까. 여자의 몸속에 있어요.”
여자의 몸속에 있다고?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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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틈타 움직이는 가문소속 능력자들의 모습은 초췌했다. 국토안보국 비밀실험실에서 U+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탈취하라는 명령을 받고 갔지만, 5개 가운데 성공한 것은 2개.
‘가져갈 수 없는 건 파기해야 해.’
‘그럴 시간이 어딨어? 당장 탈출해야 한다고.’
‘저게 남아있으면 우릴 다시 보낼 놈들이다.’
‘감시 카메라는 어떡하고? 왜 파기했느냐고 그러면?’
‘가져갈 수 없어서 파기했다고 하면 된다. 책임은 내가 지겠다.’
‘···좋아. 여- 후딱 해치워버리고 가자고.’
완벽하게 파괴됐는지 확인할 시간이 없어서 그냥 나왔지만, 냉동 시스템을 박살 냈으니 냉동된 난자와 배아가 버틸 리 없었다.
그렇게 유 플러스인지 나발인지 하는 것을 탈취하는 데 성공한 그들이었다. ‘이제 가족들의 안전은 보장받을 수 있겠지.’라고 생각한 것도 잠시. 국토안보국의 집요한 추적이 시작됐다.
“하-악- 하- 그 새끼들··· 믿는 게 아니···.”
대구경 총탄이 간을 관통해 죽어가는 사람의 마지막 유언. ‘그 새끼들을 믿는 게 아니었어.’ 연방군이 새로 개발한 신형 지혈제가 있었다면 살 수 있었을 텐데, 그게 없어서 이렇게 죽다니 허무했다.
“······.”
“······.”
능력을 각성했다고 좋아했었다. 운동과는 전혀 상관없었는데도 엘리트 체육 코스를 밟은 사람을 압살할 정도의 신체능력이 됐으니,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야구선수를 할까? 농구나 하키도 괜찮고 (미식)축구도 괜찮겠는걸. 나이야 좀 있지만, 알게 뭔가 그냥 몸뚱이 하나로 씹어 먹을 수 있을 텐데.
그렇게 몇 명이 SNS에 글을 올렸다가 실종됐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뉴투브에 올렸다가 사라진 사람도 있다는 이야기가 떠돌았다.
‘군대에 끌려갔다는데?’
‘생체실험?’
‘알게 뭐야.’
공권력에 대한 두려움, 중국과 전쟁이 터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빠졌을 때, 유력 가문에서 나온 집사가 그들에게 제의했다.
‘가문에 의탁하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유력 가문의 경호원으로 4교대 근무하는 간단한 일. 그에 비해 미칠 듯이 높은 연봉. 말 그대로 꿀 빠는 삶이었다.
경호원 가족이 납치되거나 안전에 문제가 생기면 경호에 구멍이 난다며, 가족들까지 돌봐주겠다는 이야기까지.
새로 이사할 집은 최고급 맨션에 애들이 다닐 학교는 유명한 사립학교. 그저 어쩌다가 신체능력 각성자가 된 것치고는 분에 넘칠 정도로 좋은 조건이었다.
‘저희 쪽에 온 분들은 이렇게 좋은 혜택을 받으며 생활하고 계십니다. 거절하셔도 괜찮습니다만, 군과 정보기관에서 각성자를 색출하고 있는데, 그곳에 끌려가게 되면 어떻게 되실지···.’
거절하던 사람들도 하나둘씩 가문에 의탁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가족들까지 신경 써준다니, 유력 가문은 역시 뭐가 달라도 다르다고 생각했었지만, 사실은 인질이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후- 국토안보국 놈들 독이 바짝 올랐는데?”
“우리는 맹물이고?”
투다다다닥!
파파파파팍!
12.7mm 철갑탄은 기본에 30mm 벌칸까지.
“저 새끼들 화력이 장난 아닌데?”
“SWAT까지?”
“엑소슈트다! 뒤로 빠져.”
“저건 군에서 사용한다고 들었는데.”
몇몇이 견디지 못하고 항복했지만, 뭐라고 이야기를 하더니 항복한 자들을 벌집으로 만들어 버리는 모습.
“저 새끼들 쐈어? 쐈다고!”
“!”
“미친 새끼들 항복했는데도 쏴?”
“왜지? 뭐하는 짓거리야!”
“뭐긴 뭐겠어? U+가 없다고 하니까 쏴버린 거지.”
“······.”
“······.”
“실험실 날려버린 새끼들이 도망치다 말고 항복한다고 하면 저쪽에서 아이고 그러십니까? 그럴 줄 알았냐? 병신새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라. 우리가 여기서 실패하면 괴물 같은 새끼들이 우리 식구들 살려줄 것 같냐?”
식인귀들 저녁 식탁에 가족들이 올라가는 꼴 보고 싶지 않으면 무조건 성공해야 했다.
“젠장. 여자가 맞았어.”
“씨발 죽었어?”
“아니 아직. 팔이 날아가서 출혈이 멎지 않아.”
배가 부풀어 오른 여자의 한쪽 팔 뜯어져 사방이 피로 범벅이었다.
“유 플러스가 중요한 거라면, 저 여자를 왜 쏜 건데?”
“빌어먹을 우리랑 똑같은 생각을 한 거 같다.”
“무슨 생각?”
“병신. 그렇게 대가리가 안 돌아가냐? 우리가 싹 박살 냈잖아. 남기지 않으려고, 저쪽도 뺏길 바에야 처분하려고 한 거겠지.”
“피도 눈물도 없는 새끼들 같으니. 뻔히 임산부라는 거 알면서 쏜 거잖아.”
“지랄하네. 그 식인귀 새끼들이 눈독을 들이는 거 보면 저 여자가 품고 있는 게 그렇게 단순한 거로 보이냐? 국토안보국 새끼들 눈이 시뻘게져서 쫓아오는데?”
조금씩 줄어들던 인원이 이제는 열 명도 남지 않았다. 그렇게 한쪽 팔이 날아간 채, 색-색- 숨을 몰아쉬던 여자가 의식을 잃었다. 그걸 바라보던 한 사람이 입고 있던 방탄복과 장비를 벗기 시작했다.
“야? 뭐하냐?”
“갑자기 뭔 짓거리야?”
“죽으려고 환장했어?”
방탄복과 이런저런 장비들을 벗어버린 남자가 툭툭, 몸을 털어내며 말했다.
“대구경 철갑탄이다. 지금껏 그 흔한 소총탄 하나 없었어.”
“···그렇군.”
몇 명이 몸을 가볍게 하자, 따라서 방탄복을 벗는 사람들.
“이 여자는 어떻게 하지?”
“안가까지 얼마 남지 않았으니 들것으로 옮기자. 가다가 죽더라도 데려가야 해.”
필사적으로 도주한 끝에 U+ 프로그램을 양도하기로 한, 안가에 도착한 그들이었다. 35명이 가서 살아남은 사람은 고작 5명이었다.
“···통신이 끊겼어.”
“무슨 일이 생긴 거 아니야?
다들 연락이 되지 않았다. 연결된 곳은 오직 하나 베이든 가문 하나뿐.
“안가는 안전하다고 한다. 내일 저녁까지 회수팀 온다고 하니까. 다들 쉬어 둬. 여자는 좀 어때?”
“아직 숨은 붙어있지만, 오늘을 넘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저쪽에 응급키트 있으니까 수액이라도 놔. 레베카. 몸은 어때?”
레베카라고 불린 여자가 고개를 저었다.
“기분이 이상해.”
“그렇겠지. 조금만 참아.”
“가족들은 괜찮겠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희 가족은 괜찮을 거다.”
사내가 레베카의 배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 어색한 침묵을 깨듯 높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삐—–
심장이 멎었다는 전자음이 건넌방에서 들렸다.
“젠장. 딕. 여기- 여자 심장 멎었어. 딕! 화물 뒈졌다고.”
그 외침에 딕이 레베카를 보곤 입매를 비틀었다.
‘이젠 레베카 하나뿐이군. 세상에서 하나뿐인 귀한 몸이 됐어.’
그는 자신의 목에 걸린 목걸이를 매만졌다.
‘어차피 이 목걸이가 있는 이상 뉴욕을 벗어나지 못해.’
아마도 물건을 넘기면 터지겠지? 놈들이 증거를 남길 리 없을 테니.
‘레베카 말고는 전부 죽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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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속에 있다는 게 무슨 말이야.
“보관 장비가 교전 중에 망가져, 동료의 뱃속에 넣어서 나왔다고 했어요.”
뱃속? 유 이사의 난자로 만든 걸 뱃속에 넣어? 설마 그건 아니겠지?
“···그러니까 여자 능력자 자궁에 유 이사의 난자로 만든 배아를 착상시켜서 나왔다고?”
“네. 그리고 비밀실험실에 있던 대리모도 같이 데려왔어요.”
대리모까지? 그러니까 유 이사와 관련된 걸 품고 있는 여자가 2명이나 된단 말인가? 쾌락 없는 책임···도 아니고. 대체 무슨 생각이지?
“가족들이 인질로 잡혀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해요.”
“인질? 지하수로에는 일반인들이 한 명도 없었는데?”
마루의 말에 에리카의 얼굴색이 하얗게 떴다.
“그들의 가족들은 이미 전부 죽었어요.”
“안됐네.”
능력자들은 자신들의 가족들이 이미 죽었는지도 모르고 목숨 걸고 U+ 프로그램은 탈취한 것이었다.
“안가에 도착한 그들이 브렛 베이든에게 연락해서 의료지원을 요청했는데, 브렛 베이든은 U+ 프로그램을 넘겨받으면 증거를 남기지 않을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렇겠지. 유 이사 난자로 만든 배아가 식인귀에게 들어갔다고 생각하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지옥 끝까지 추격할 것이다. 벙커 버스터든 전술핵이든 써서라도 처리하려고 할 테니, 증거 인멸은 당연했다.
“의료지원?”
“예. 대리모 쪽이 부상이 심하다고 했어요. 다른 사람들도 여기저기 상처가 많고요.”
“그건 그렇다고 치고. 안가는 어딘데?”
에리카가 지도를 보며 허둥댔다.
지도만으로 확신하기 어려웠는지 길 안내 프로그램으로 주변 도로를 찾고 다시 되짚어 보기를 한 시간 넘게 하고 나서야, 간신히 안가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텔레파시가 없으니 이게 불편했다. 사이코메트리로 읽은 것을 텔레파시를 이용해 바로 전달하면 그만인데 그게 불가능해졌으니.
쩝- 대리모 1명에 배아 착상으로 운반책 1명이라.
“그럼 다녀오지.”
“저도 같이 갈게요.”
마루와 함께 가겠다고 나서는 에리카.
“넌 조금 쉬었다가 지하수로에서 유해와 유품 정리하러 가야 하잖아.”
“제가 가면 그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잖아요.”
그렇기는 한데. 그 사람들 생각을 알아서 뭐하게?
“저도 갈게요.”
간호사까지? 왜 갑자기들 이러는 거지?
“배가 부른 임산부가 있다고 하고 부상자도 많다고 하니까. 제가 함께 가면 분명히 도움이 될 거에요.”
진지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는 간호사의 눈빛에 마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안가의 지하주차장으로 들어오는 검은색 밴 2대를 본 능력자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내일 온다고 하더니.”
“그만큼 중요하다는 거겠지.”
“그나저나 대리모가 죽었는데 어쩌지?”
“레베카가 있으니까 괜찮아.”
두런두런 이야기하던 사람들의 말소리가 순간 뚝 끊겼다.
다들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어쩌면 입막음 당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빌어먹을···.”
“그 새끼들이 개 같다는 건 알고 있었잖아. 왜들 죽상이야.”
마지막 유언을 남긴 사내의 말이 떠올랐다.
‘그 새끼들을 믿는 게 아니었어.’
어차피 방법이 없었다. 믿어서 간 게 아니었으니까. 그렇다고 싸우는 것도 불가능. 목에 걸린 폭탄과 남은 가족들 때문이었다.
“가족들과 마지막으로 통화할 수는 있을까?”
“야- 다들 재수 없는 소리 그만해. 아직 모르는 거잖아.”
“그래. 대형 밴이라고. 우릴 다 묻어 버릴 거였으면 2대나 올 필요 없잖아.”
“그 밴에서 중무장한 놈들이 내리면?”
“됐어. 다들 조용히 해. 올라온다.”
전자식 비밀번호가 눌리고 두툼한 문이 열렸다. 중무장한 갑주형 엑소슈트가 안으로 들어서자, 사람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비밀번호를 알아? 안가는 어떻게 알고?’
‘씨발 이게 뭐지?’
영문을 모르겠지만, 지금 상황은 이상했다. 그렇게 4기의 엑소슈트가 자리를 잡자, 그 뒤를 따라 간호사와 사이코메트리가 들어왔다.
“임산부는 어디 있죠? 위급하시다면서요?”
“그··· 저. 이미 늦었습니다.”
“예? 그래도 어디 봐요. 어서요.”
간호사가 늘어진 대리모를 향해 후다닥 내달렸다. 잠시 후 간호사의 깊은 탄식이 들렸다. 그 한탄에 딱딱하게 굳었던 사람들의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그 안타까운 탄식은 분명 유 플러스 프로그램이 소실됐다는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그저 사람이 죽은 것을 슬퍼하는 사람의 탄식이었기 때문.
“그 인공수정하신 분은 괜찮으신가요?”
무리 가운데 여자는 한 사람뿐인지라, 나나에가 레베카를 향해 다가섰다. 간호사의 다가섬에 레베카는 주춤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잠깐만요. 가족들. 제 가족들과 통화하고 싶습니다.”
“네?”
그 끊어진 대화를 에리카가 채웠다.
“저희는 베이든 가문에서 온 게 아닙니다.”
‘잘했어. 그래. 계속해.’
순식간에 긴장감이 차올랐다.
에리카는 달달 떨리는 다리를 한 번 꼬집어 버티곤 말했다.
“브렛 베이든 가문을 비롯한 대가문들은 전부 토벌됐습니다.”
“······.”
“···그럼.”
사람들이 가족들의 안부를 묻기 전, 에리카가 먼저 말했다.
“안타깝게도 현장에 일반인 생존자들은 없었습니다. 전부 바퀴벌레와 식인귀의 먹이가 됐습니다. 이런 소식을 전하게 돼서 미안합니다.”
“너. 너. 닥쳐!”
“그 소릴 어떻게 믿지? 어?”
“너희는 뭐야? 어디서 왔어?”
삽시간에 험악해진 분위기를 차가운 금속음이 짓눌렀다.
철컥-
갑주형 엑소슈트를 입은 경호원들이 말없이 격철을 잡아당겼다. 12.7mm 기관총과 30mm 기관포가 장전되는 소리에 흥분했던 자들이 이를 뿌득- 갈았다.
“지. 진정들 하세요.”
“다들 일단 총구를 내리고···.”
간호사와 에리카가 허둥댔다.
그리고 더 지켜볼 수 없다는 듯.
치직- 치지직-
그림자 속 일렁이는 공간을 비틀고 마루가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