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394)
러스트 [RUST]-394
에리카는 식은땀이 맺히는 손을 두툼한 재킷에 닦았다.
‘저거 봐. 음흉한 거. 보라고.’
‘처음부터 같이 들어왔으면 됐을 텐데 숨어있다가 나오잖아.’
‘여차하면 전부 죽여버릴걸.’
바짝 긴장한 에리카를 나나에가 데리고 옆으로 비켜섰다.
“걱정하지 마세요. 다 잘 해결될 거에요.”
“······.”
‘수틀리면 전부 죽여버리는 건 아닌가요?’라고 묻기엔 간호사의 표정이 너무나 평안했다. 하지만 사이코매트리로 간호사와 블라디마루의 만남을 읽었던 에리카는 심장이 쿵쿵 뛰었다.
일본에서 블라디 마루와 간호사의 첫 만남은 피가 튀고 뼈가 부러지는 만남이었다. 간호사에게 추근대던 사람들을 문답 무용으로 그냥 박살 것이 시작이었다.
노인 공격도 있었다. 가다마 게이치 의원이라는 일흔이 훌쩍 넘어 보이는 노인을 건물 밖으로 던져버린 것을 시작으로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휴게소를 피바다로 만들었던 것까지.
망상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순식간에 여기도 피바다가 될 것만 같은 느낌.
정말 그러면 어쩌지?
‘뻔하지. 기분 나쁘면 썰어 버릴 거야.’
‘백정이야. 인간 백정.’
도리도리.
에리카는 고개를 흔들어 이상한 생각을 떨쳐버렸다.
10m 간격을 두고 은신을 해제한 마루는 조금 실망이었다.
치지직- 치직- 바퀴벌레에게 이곳저곳 뜯긴 은신 모듈에서 미세한 흔들림이 있었는데도 알아차리지 못하다니. 국토안보국의 추격을 뿌리쳤다고 해서 기대했었는데. 좀.
지금도 그랬다. 극도로 흥분한 저들들이 방아쇠를 당길 것 같아서 막으려고 모습을 드러낸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전부 썰어버렸을 것을 살려준 건데 말이다.
“넌 또 뭐야?”
“이 새끼들이 우리 뒤통수를 치려고 해?”
상황 판단이 느리네.
물론 가족들이 전부 죽었다는 소리에 꼭지가 돈 건 이해하지만, 꽝인 듯싶었다. 그러니까 텔레파시와 사이코메트리처럼 일반인이 능력 각성했을 뿐인 느낌. 국토안보국 비밀실험실도 털고 탈출한 자들이라서 기대를 많이 했었는데. 아니었다.
[에리카. 나나에 고생했어. 그만하고 가자.]“예? 이 사람들은요?”
“여기에 그냥 두고 가시는 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두 사람은 저 여자랑 대리모 시체만 챙겨서 나가.]“누구 마음대로 레베카를 데려가? 엉?”
“전 어디도 가지 않겠어요.”
툭- 가볍게 디딘 발걸음이 공간을 쑥 줄였다. 그리고 쏘아지는 마루의 칼날.
‘거봐. 전부 죽이잖아.’
‘똑바로 봐.’
떠오르는 생각에 에리카는 눈을 질끈 감았다.
쿠직- 쿠자직-
능력자들이 들고 있던 총기가 일순간에 고철로 변했다.
어?
어어?
으억!
몇 인치만 깊게 들어왔으면 손이고 손목이고 함께 썰려 버렸을 상황. 그것보다 더 무서운 건 아무도 반응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대로 목이 잘렸어도 반응하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에 흥분했던 능력자들이 조용해졌다.
“······.”
“······.”
칼. 그리고 압도적인 무위.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것 같지만, 딕 헤롤드는 들어본 적 있었다. 블레이드 마스터에 대한 소문을.
[알아서 잘들 해보라고. 그리고 레베카라고 했나? 저기 저 여자처럼 비밀실험실에 갇혀서 죽는 게 꿈이었나?]마루의 담담한 이야기에 다들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
“······.”
딕은 재빨리 정신을 차렸다.
전부 죽이고 레베카만 끌고 가면 됐을 일이었다.
이렇게 이야기한다는 건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닐까?
털썩-
딕은 그대로 무릎을 꿇고, 간청했다.
“도와주십시오.”
[······.]마루는 딕 헤롤드를 보곤 고개를 작게 저었다.
늦게나마 정신을 차린 놈이 있기는 하지만 신체능력자란 것들이 칼질에 반응 못 한 거 하며, 아직도 넋 놓고 있는 것들을 보니 이거 영 맹탕이었다.
남은 놈들도 딕의 모습을 보곤 주뼛주뼛 따라 엎드렸다. 마루는 갑주형 엑소슈트로 무장한 경호원들에게 대리모의 시신부터 챙기게 했다.
[넌 어떻게 할 거지?]마루는 바로 여자에게 물었다.
“저. 전. 살려주세요. 동료들도 제발.”
레베카의 말을 들은 마루가 무심하게 등을 돌리자, 딕과 남자들이 레베카를 앞으로 밀었다.
‘너라도 가.’
‘복수해야지.’
‘우리 몫까지 살아.’
‘안 가요. 어떻게 저 혼자만 가요.’
그들의 모습에 마루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속까지 썩어 문드러진 놈들은 아니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레베카라도 데려가십시오. 아시다시피 이 녀석 U+를 가지고 있습니다.”
“동료들과 같이 가고 싶어요. 살려주세요.”
[그 목걸이는 뭐지?]마루는 자신이 텔레파시의 목에 걸었던 것과 유사해 보이는 목걸이 걸고 있는 것을 보곤 말했다.
“식인귀 놈들이··· 폭탄 목걸이를 걸었습니다. 놈들을 배신하거나 도망치려고 하면 터지도록 세팅된 목걸이입니다. 뉴욕 시에서 벗어나면 터진다고 했습니다.”
그렇군.
[나는 자선사업가가 아니야. 피에는 피로, 목숨에는 목숨으로. 동의하나?]목숨을 살려주면 목숨으로 갚으라고 대놓고 말하는 마루의 모습에 사람들은 딕을 쳐다봤다.
바보 같은 새끼들.
일단 살고 봐야 할 것 아닌가? 왜 날 봐.
생각과는 달리 마루의 질문에 즉답하는 딕 헤롤드.
“그러겠습니다.”
그의 대답에 다른 자들도 동의한다고 앵무새처럼 따라 외쳤다.
[목 내밀어.]“예?”
[목을 쭉 내밀라고.]딕 헤롤드가 목을 쭉 내미는 것과 동시에 번뜩이는 칼질이 목 언저리를 스쳐 지나갔다. 스컥- 툭- 기폭장치 부분이 잘려나간 폭탄 목걸이가 그대로 해체되는 모습에 다들 입을 헤 벌렸다.
[하나씩 목 내밀어.]그렇게 그들은 폭탄 목걸이를 풀었다.
에리카 리스본은 계속해서 깜짝깜짝 놀랐다.
총이 잘릴 때도, 목을 내밀라고 했을 때도. 하지만 블라디마루는 그들을 죽이지 않았다. 오히려 폭탄 목걸이도 해체해줬다.
간단하게 해체된 폭탄 목걸이를 보니 쥴리아가 떠올랐다. 지금 하는 행동을 보니까 그가 함부로 목걸이를 채울 것 같지는 않아 보였는데, 어째서 쥴리아는 그렇게 오래 목걸이를 풀어주지 않았을까.
‘어?’
어느새 모조리 죽일 거라는 생각, 그렇게 떠오르던 잡생각이 사라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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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주차장을 통해 커다란 밴 2개가 밖으로 나오자, 밖에서 감시하고 있던 국토안보국과 연방수사국이 부산해졌다.
“소유자가 불분명한 저택에서 블라디 아크 소속으로 보이는 검은색 대형 밴 2대가 나왔다. 확인 바람.”
[CCTV 확인됐다.]도로에 깔린 CCTV를 통해 추적을 시작했다.
“투과 영상은 어때?”
“대응 장비가 갖춰진 밴이야.”
일반 밴이 아니라는 뜻.
“뉴욕 경찰국에 소스를 넘겨. 비행선 착륙장이 있는 빌딩에서 콕 박혀있다가 갑자기 우르르 나와서 여기까지 온 이유가 뭔지는 알아야지.”
“일단 비행선 착륙장 방향으로 가는 도로에서 검문하도록 했어.”
국토안보국과 연방수사국이 예상한 방향과는 달리, 지하수로 입구를 향해 이동하는 밴이었다.
“에? 엣- 이대로 지하수로로 간다고요?”
[그래.]간호사의 질문에 마루가 대답했다.
[저번에 국장이 의식을 잃었을 때, 국토안보국 움직임이 변했었잖아.]“조금. 그랬었죠?”
그건 국토안보국 내에서도 성향이 다른 세력이 있다는 걸 의미했다. 덴 브라운 국장과 거래했을 때마다 느꼈던 건데, 거래 내용에 불만이 있는 자들이 제법 많아 보였다. 어쩐지 찝찝하다고 해야 할까?
[저쪽에서 말이 나오기 전에, 유해를 수습하는 걸 도와주고, 저 사람들도 직접 확인해야 하지 않겠어?]가족들은 어떻게 됐는지, 일이 어떻게 돌아간 건지 직접 보고 듣는 게 좋았다. 그리고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을 대비하는 데도 좋았고.
‘꼬투리 잡는 것들이 나오면 이쪽 인력이라고 하면 되니까.’
문제 될 일 없으리라. 마루는 그렇게 판단했다.
지하수로 수색은 순식간에 진척됐다. 뿔뿔이 흩어진 추격대의 생존자를 수색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더욱 그랬다.
현장에 도착한 에리카는 파랗게 질렸다. 당시 상황이 떠오른 모양. 그 옆에 간호사가 꼭 달라붙어 토닥토닥 진정시켜주고 있었다.
추격대와 식인귀, 바퀴벌레들이 뒤엉킨 현장은 참혹했다. 사지가 제대로 된 시신을 찾기 힘들 정도. 대부분 바퀴벌레에게 파먹혀 뼈가 드러나 있거나, 뼈도 제대로 추스르기 어려운 시신도 많았다.
“다들 조심해서 분류해.”
“거기 식인귀랑 섞이지 않게 잘하라고.”
끔찍한 현장이었지만 동원된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유해, 유품 정리가 생각보다 빨리 진행됐다.
마루는 새로 합류한 사람들을 데리고 더 안쪽으로 향했다.
이들의 가족 유해를 확인하려면 더 안쪽으로 들어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까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은혜 정말 잊지 않겠습니다.”
바퀴벌레들을 쫓아낸 통로 근처에 식인귀들이 있던 넓은 공간이 있었다.
‘에리카를 데려올 걸 그랬나?’
에리카를 데려오기엔 그녀의 상태가 안 좋아 보였으니 어쩔 수 없었다.
[지금부터는 혹시 모르니까 방독면을 쓰도록.]작은 V의 x에 당하면 그게 무슨 꼴인가?
그렇게 얼마 뒤, 널따란 공터가 나왔다. 지하수로에 이런 공간이 왜 있는지 모를 빈터. 한쪽 구석에는 식인귀들이 챙겨온 장비들과 물품들이 쌓여있었고, 구덩이처럼 파인 곳에는···.
“흐흑- 서. 설마.”
“···저건 아니겠죠?”
“큽- 우-우엑- 아니야.”
마스크를 쓴 채로 구토하는 남자, 숨을 쉬지 못해 컥컥거리는 사람에 주저앉아 망연자실 구덩이를 보는 자까지. 다섯 모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저쪽이 현장 정리하고 오기 전까지 수습해야 해. 아니면 국토안보국 쪽에서 이곳도 일괄적으로 처리할 테니까.]마루의 말에 주춤주춤 일어나 유해를 수습하기 위해 구덩이로 향하는 능력자들이었다.
다섯 가운데 넷은 가족들 유해를 일부라도 찾았지만, 한 명은 유해를 수습하지 못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남자의 손에는 손목시계가 들려있었다. 유해는 찾지 못했어도 부모님에게 선물했던 손목시계가 나온 것.
마루는 고개를 작게 끄덕여 조의를 표하곤, 식인귀들이 모아둔 짐을 확인했다. 4개의 가문에서 챙겨온 것들이라 그런지 슬쩍 봐도 값비싸 보이는 물건들이 가득했다.
[치이이익- 치직-]교전 지역에 있는 경호원들과 간호사, 에리카를 이쪽으로 부르려고 했더니 통신이 연결되지 않았다. 고작 도보로 5~7분 정도 거리인데도.
마루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근거리 통신장애?
엘로우 스톤 국립공원에서도 이랬었다. 쥐떼가 습격한 마을에서도 그랬었고, 일본에서 바퀴벌레들이 매복했을 때도 마찬가지. 변이된 것들이 모여 밀도가 높아지면 재밍(Jamming)이라도 하는 것처럼 통신이 교란됐다.
‘김 양이 숫자를 많이 줄였다고 했는데.’
절대적인 숫자를 줄였는데 이렇다는 건, 바퀴벌레든 쥐떼든 이 근처에 몰려있다는 뜻이었다. 마루는 사람들을 시켜 최대한 많은 짐을 싣고 교전 현장으로 이동했다.
“이건 어디에 있었습니까?”
“중요 증거품으로 보이는데 말입니다.”
[내 전리품에 대고 허튼 소리하지 말고. 불만 있으면 공식적으로 하도록 합시다.]꼬투리를 잡으려고 눈을 번뜩이는 자들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함부로 건드리는 놈들은 없었다.
[여기 현장 정리가 다 된 것 같은데 우리는 이만 돌아가도록 하지.]마루 일행이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한 사람이 길을 막았다.
“사이코메트리는 이곳에 남겨주십시오.”
[요청받은 업무는 끝났습니다만. 추가 파견을 원한다면 제대로 형식 갖춰서 요청하도록 합시다.]본부에 연락하려고 해도 통신이 연결되지 않자, 마루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무력이면 무력, 지위면 지위. 여기서는 마루가 최고였기 때문이었다.
[통신장애가 있다는 건, 좋지 않은 조짐으로 보이는데. 그쪽도 유해 수습 다 했으면 빨리 퇴각하고 입구 막도록 하지요.]나름 친절하게 조언을 했음에도, 몇몇이 마루가 나온 통로를 향해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이어 식인귀들이 쌓아 놓은 물품 상자를 가지고 나오는 모습.
“안쪽에 산더미처럼 쌓여있습니다.”
“특수 장비와 중요한 부품으로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유해 수습을 마친 인력이 통로 안쪽으로 줄지어 이동하기 시작했다. 마루는 두 번 만류하지 않고 즉시 밖으로 나왔다. 어차피 저쪽 전술카메라에 자신이 나가라고 했던 이야기가 남아있었으니 그거로 됐다.
지하수로로 갔을 때와는 달리, 비행선으로 가는 길은 순조롭지 않았다. 검문이 있었기 때문.
“전부 밖으로 나오십시오.”
“무장 해제하고 밖으로 나오십시오.”
“빨리 나와서 무릎 꿇어. 손 머리에 올려!”
마루의 눈이 차갑게 식었다.
[지금 나보고 무릎 꿇고 두 손 머리에 하라는 건가? 뉴욕 경찰국 국장이 명령한 건가? 아니면 국토안보국 국장이 알고 있는 거고?]꼬투리를 잡아 일단 억류하려고 했었는지 강경하게 나온 경찰이었지만, 마루가 함께 있는 것을 알고는 꼬리를 내리는 그들이었다.
‘역시 오길 잘했군.’
마루 자신이 없었다면 별꼴을 다 봤을지 몰랐다. 비행선에 탑승한 마루는 즉시 출발 명령을 내렸다.
[블라디 아크 타운으로.]비행선이 이륙하자, 통신이 빗발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