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407)
러스트 [RUST]-407
썰자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김 양은 전용 엑소슈트를 장착하러 일어났다.
“잠시만요. 정말 괜찮겠습니까?”
후드가 진지한 목소리로 재확인했다.
피츠버그와 관계됐을지 모르는 세력이 군부, 국토안보국, 버지니아 회사 이들 셋 또는 전부였다. 이들과 척을 질지 모르면서도 썰겠다고 결정한 이유를 더 자세히 설명해달라는 뜻.
“당연히 안 괜찮겠지 괜찮겠냐?”
인구 30만 도시 하나를 꿀꺽한 놈인데 그런 놈이 저렇게 설치기 시작하면, 어디까지 연결됐든 위에서 그냥 있겠냐?
저거 왜 저러는데?
‘몸이 좋군.’ 때문이라는데요?
그게 뭔데?
블라디마루 칼린이요. 칼질 흔적 남은 거 보니까 딱 걘데요?
그 새끼 때문에 프로젝트가 날아간 거라고?
조져! 그 새끼를 프로젝트로 만들어버려!!!
대충 이렇게 되지 않을까?
“우리가 가만히 있다고 해서 조용히 끝날 가능성이 있을까? 난 없다고 봐.”
“결과적으로 어디든 척을 질 수밖에 없다는 소리군요.”
지금 상황만 봐도 그랬다. 식인귀를 내보내 추적하겠다는 집요함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결국엔 엮일 거다.
“그래. 피츠버그에서 놈과 엮인 이상, 언젠가는 터질 일이라고 생각해라.”
“···그렇군요.”
후드는 말하려던 것을 도로 삼켰다.
확실하지 않았다. 인터넷만 연결됐어도, 인터넷만 제대로 돌아가고 있었어도 이렇게 무력하지는 않았을 텐데.
“혹한이 우리에게 벽이 되듯, 적에게도 벽이 될 겁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기회가 되듯 놈들에게도 기회가 될 거고요.”
후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마루가 전투준비를 시작했다.
영하 40도를 오르락내리락하는 날씨인지라 배터리가 급속도로 닳았다. 엑소슈트는 영하 20도 이하에서는 전기 먹는 하마로 변해 사실상 써먹기 힘들 정도가 됐다.
그래도 첨단 기술을 모조리 때려 박은 김 양 전용 엑소슈트는 사정이 좀 나았다. 전술차량 지붕 위. 늑대 가죽으로 전신을 감싼 김 양의 엑소슈트가 자세를 잡았다.
[늑대 가죽이 좋아도 오래는 못 있음.] [알아. 귀찮아도 왔다 갔다 해야지 뭐. 바로 깎아 먹기 들어가자. 10~12마리씩 무리 지어 퍼졌으니 반시계방향으로 돌면서 잡자고 9시 방향부터.]설상차가 크게 반원을 그려 9시 방향으로 향했다.
투각-투다닥!!!
퍽- 퍼버버벅!
30mm 기관포가 불을 뿜자, 강추위를 뚫고 이동하던 식인귀들이 삽시간에 다진고기로 변했다. 장갑차도 박살 내는 30mm 탄을 맞았으니 식인귀 할아버지라고 해도 결과는 정해졌다.
혹한에 뻣뻣하게 움직이던 식인귀들이 놀란 토끼처럼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그 흩어진 틈을 타고 죽음이 내려앉았다.
서걱-
다리를 잘려 기동력을 뺏긴 식인귀가 필사적으로 팔을 휘저어 저항해봤지만
콰득-
목뼈가 끊어지는 소리와 함께 머리를 잃어버린 식인귀의 몸뚱이가 하얀 설원을 붉게 물들였다.
[이게 끝?] [그래.]총탄을 피했다고 한들 운명의 칼날은 피할 수 없었다.
쥴리아 같았으면 오퍼레이팅 들어가서 조직적으로 움직였을 거다.
[확실히 그년보다 어설펐음.] [이대로 가면 금방 끝내겠는걸.] [마지막에 허우적거린 놈은 뭐임? 그거 갑자기 이상하게 움직이던데.] [저번에 영상에서 봤던 것처럼 직접 움직이려고 한 것 같다.]마지막 한 놈에게 접속해 상황을 살피려고 했던 것 같지만, 마루의 칼질이 훨씬 빨랐다.
[그 새끼 식인귀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거 아님?] [···그런 것 같다.]식인귀들의 움직임이 너무 단순했다.
처음 피츠버그에 들어갔을 때 마주쳤던 식인귀, 옥상에서 눈을 치우고 있던 것들도 비슷했다. 갑작스럽게 공격한다고 냅다 점프하는 그 단순함을 떠올려 보면 확실히 그랬다.
식인귀의 특징인 이성과 기억을 사용하지 못하는 움직임은 분노조절 장애 증상의 끝에서나 볼 법한 것이었다.
[그렇지? 맞지? 우리가 식인귀랑 안 싸워 본 것도 아니고.]지금 돌아다니는 것들은 그냥 껍데기만 식인귀였다. 그러니까 하드웨어는 받쳐주는데 최적화에서 말아먹은 스마트폰 같은 상태라고 할까.
[에- 정찰결과인데요. 적들이 뭉치기 시작했어요.]HUD 화면에 떠오른 영상. 10~12마리씩 뿔뿔이 흩어졌던 식인귀들이 50~60마리 단위로 뭉치기 시작하는 모습이었다.
너무 늦었다. 9시 방향에서 처리하기 시작해서 지금은 3시 방향까지 내려왔다. 절반 가까이 쓸린 뒤에야 주섬주섬 뭉치기 시작하는 꼴이라니.
[뭉쳤다.]김 양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계획대로.’라는 듯한 음색에 마루가 고개를 저었다.
[까마귀들은 어때? 가능하겠어?] [한 번 정도는 될 것 같아요.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많이 먹어도 한계가 있어서. 이번에 나가면 정찰도 최소한만 가능할 것 같은데 괜찮으시겠어요?]먹는다고 바로 열량으로 변하는 건 아니었다. 소화될 시간이 필요했으니 당연한 이야기. 그래도 밖으로 기어 나온 것들을 싹 쓸어버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괜찮아. 밖에 나온 것들을 싹 쓸어버리면 놈이 움츠러들겠지.] [네. 그럼 바로 준비할게요.]잠시 후 60여 마리의 까마귀들이 전용 폭탄을 들고 날아올랐다.
콰아아아앙!
화르르르륵!
50~60마리씩 뭉쳐있는 식인귀 사이로 네이팜 탄이 터졌다. 영하 40도의 추위 따윈 우습다는 듯 치솟아 오르는 불길. 생각지도 못한 공중에서의 공격에 식인귀들은 제대로 반격 한번 못 한 채 땔감으로 전락했다.
그렇게 식인귀를 연료 삼아 타오르는 모닥불이 여기저기 피어오를 동안, 마루는 피츠버그 철조망 지대에 도착했다.
까아악!
[조용히!]······.
눈에 잘 띄지 않는 밤이라면 모를까 낮에는 조심하는 게 좋았다.
잠시 뒤 HUD에 뜬 까마귀 정찰 영상에는 수색대를 내보내기 위해 철조망 지대에 열어둔 길이 그대로 있었다.
‘따로 경계도 하지 않아?’
폭음이 그친 것으로 보아 폭격이 끝난 것 같았다. 그런데도 추가 지원도 없이 덩그렇게 열려있는 철조망 지대.
[들어가서 한 바퀴 돌아.]까마귀 한 마리가 철조망 지대를 건너 빌딩들 사이를 한 바퀴 휙 돌았다. 식인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옥상에서 눈을 치우는 놈들도 없었다. 그냥 텅 빈 도시처럼 보이는 모습.
마루는 잠깐 당황했다. 이거 뭐지? 진짜 뇌가 없는 새낀가? 이렇게 본진 문 열어둔다고? 함정일까? 아니면 삼국지에서 성문 열어 놓고 ‘들어와. 들어와.’ 했던 것처럼 그런 건가?
수천 마리의 식인귀를 노예처럼 부릴 정도로 압도적인 지배력을 가진 놈. 도시하나를 잡아먹고 식인귀를 유인하는 함정을 팔 정도인 놈이 이렇게 나오니까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영 찝찝한데.’
시간을 끌어볼까?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어쩐지 찝찝함이 더 커졌다. 마루는 그 작은 느낌을 무시하지 않았다.
쯧-
지금도 찝찝하지만, 이대로 돌아가면 더 찝찝해질 것 같다는 느낌에 마루는 혀를 찼다.
[어떻게 됐어?] [폭격 끝났음. 살아남은 것들 머리에 구멍 뚫는 중.] [폭격 마치고 다들 돌아왔어요. 계속 무리해서 오늘 하루는 쉬어야 할 것 같아요.]설상차의 공간이 작아 데려온 까마귀들 숫자가 60마리 정도였다.
날씨가 추워 자주 교대를 시켜줘야 한데다, 폭격하느라 힘을 써서 오늘 하루는 쉬어줘야 했다. 추가 폭격지원은 없다는 뜻.
‘밖에 나온 놈들을 잡을 게 아니라, 직접 폭격하고 상황을 봤어야 했나?’
아니. 이렇게 하는 게 맞았다.
어차피 60마리로 인구 30만 급 도시를 폭격해봐야 소용없었다. 밖에 남겨뒀다가 안팎으로 포위당할 위험을 남기는 것보다 밖을 확실히 쓸어버리는 게 좋았다.
일렁이는 그림자가 활짝 열린 철조망 지대를 건너갔다.
식인귀들이 쏟아지는 영상이 마루의 HUD에 올라왔다. 어두운 밤이라서 그런지 이 영상만으로 찾아가긴 힘들었다.
[어딘지 잘 모르겠는걸.] [위치안내 시작합니다.]지도와 화살표가 떠올랐다. GPS 위성이 먹통이 됐는데도 이게 가능해?
[네비게이션? 이게 지금 가능한가?] [까마귀로 기준을 잡아서 시도해봤습니다.]고개를 들어보니 빌딩에 앉아있는 까마귀들이 보였다. 후드의 순발력이 장난 아니었다.
뽀득- 뽀드득-
눈은 그게 문제였다. 눈 위를 걸어도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는 답설무흔(踏雪無痕)이 아니라면 아무리 소리 없이 이동한다고 하더라도 발자국이 남는다는 것.
리퍼 슈트의 은신이 있으면 뭐하나, 눈 위에 발자국이 찍히는데. CCTV가 있는 교차로에 진입하지 않고 잠시 멈춘 마루에게 간호사가 말했다.
[에- 그거 발자국은 까마귀들이 지울 수 있다고 해요.] [어떻게?]조용히 날아온 까마귀가 마루의 등에 바짝 붙어 날갯짓했다. 푸드덕 소리와 함께 바닥에 있던 눈발이 휘날리며 발자국이 지워지기 시작했다.
[생각은 좋은 데 아니야. 까마귀를 경계하고 있다면 까마귀들이 푸드덕거리는 걸 보고 역으로 알아챌 가능성이 있어.] [아- 예.]까마귀가 시무룩하게 날아올랐다.
리퍼 슈트의 은신 기능은 확실히 좋았지만, 그걸 맹신하지 않았다.
냄새로 걸린 적도 있었고, 감각이 예민한 것들은 공기의 움직임을 감지해 은신을 간파하기도 했었다.
쥴리아 버튼 같은 정신계 능력자는 정신파를 이용해 뭔가 있다는 걸 알아차리기도 했었다. 이놈이 그렇게까지 응용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걸 역이용한 함정이 있을지도 몰랐다.
탁- 건물 위로 점프한 마루가 외벽을 타고 달리기 시작했다. 점프- 중간에 신호등에 착지 다시 점프. CCTV로 보면 바람에 흔들리는 것처럼 보이리라.
건물 외벽을 타고 쭉쭉 내달리면서도 마루는 극히 조심했다. 이렇게까지 하면서도 CCTV 사각을 노려 움직였고 그렇게 수천의 식인귀들이 쏟아져 나온 거대한 빌딩에 도착했다.
‘여기군.’
HUD에 표시된 지도와 영상 속 모습이 일치하는 빌딩.
우르르 쏟아져 나오려면 입구가 넓어야겠지. 지금 빌딩의 모습이 딱 그랬다. 1층 전면 유리창이 없어 우르르 뛰어날 수 있도록 열린 공간구조는 텅 비어있었다.
마루는 빌딩 안에 들어가서도 벽과 천장을 타고 다녔다. 후드와 사만다는 마루의 영상을 이용해 즉석에서 대략적인 평면도를 만들었다.
[위로 올라가는 계단은 한 곳인데 반해, 내려가는 계단은 8곳이나 있습니다.]식인귀들이 지하에 있다는 의미.
[다른 움직임은 없고?] [없습니다.]어떤 놈인지 확인해 보려면 내려가는 방법밖에 없다는 건데. 마루는 리퍼 슈트의 배터리를 새로 갈고 가까운 계단으로 내려갔다.
휙- 휙- 계단을 밟지 않고 난간을 밟고 뛰어내리는 식으로 순식간에 내려온 마루의 눈에 들어온 1층 공간.
환하게 켜진 전등과 기다란 복도를 따라 양옆에 쭉 나열된 창살은 마치 감옥 구조와 비슷했다. 어떻게 보면 번식장과 비슷하기도 했고.
좁은 방에 2층 침대 2개, 세면대와 변기가 그대로 보이는 구조. 얇은 옷에 선명한 동상의 흔적이 그대로 남은 자들이 멍하니 누워있었다.
‘식인귀?’
지하 1층임에도 그렇게 춥지 않았다. 대략 영상 10도 내외. 일반인이라면 춥다고 느꼈을지 모르겠지만, 식인귀는 별 상관없는 온도였다.
넓은 1층이라고 해도 수천 마리를 수용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지하 2층이나 3층도 이렇다는 건데.
마루가 보낸 영상을 확인한 후드가 실시간으로 반응했다.
[구조를 보면 이 빌딩 지하는 식인귀들을 가두려고 만든 시설입니다.] [이 정도 규모면 정부기관이나 군부가 직접 개입한 게 확실합니다.]마루는 전술배낭에서 콜라 캔처럼 생긴 것들을 꺼내 복도 한쪽에 하나씩 내려놓고 이동했다. 복도는 양 끝에 스테인리스 재질로 된 금속 줄이 쭉 그어져 있었다.
[잠시만요. 네. 거기 복도 천장에 있는 거 확인하셨습니까?]후드가 마루를 멈춰 세웠다. 천장에 보이는 금속구조물. 이게 뭐지? 환풍기인가? 일본 비밀실험실에는 특수 환풍기가 있었는데.
[이건 급수구 같습니다.]물구멍이라고? 불로 태우는 게 아니라 물로 질식시켜 죽인다고? 태워버리면 남는 게 없으니 시체를 건지려고 한다면 이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다. 마루는 다시 캔을 바닥에 내려놨다. 복도에 길게 이어진 스테인리스 줄은 배수로였다.
지하 2층도 똑같은 구조였다. 마루는 CCTV를 피해 캔을 내려놓으면서 이동했고 이어 지하 3층에 도착했다. 계단으로 갈 수 있는 곳은 지하 3층이 마지막이었다. 더 아래로 내려가려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야 했다.
지하 3층이라서였을까? 최소한 15도는 될 법한 따뜻한 온도. 그리고 지하 1~2층과는 달리 쿨럭거리는 기침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흡-]마루의 전술 카메라에 찍힌 참혹한 영상을 본 후드가 자기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지하 3층은 일반인을 가둔 곳이었다.
먹이 저장고.
번식장의 모습이었다.
식인귀 그리고 사람들.
식인귀에게 복수심을 가진 능력자 따위는 없었다. 단지 거대한 규모의 생체실험장만 있을 뿐.
[어떻게 하시려고요.] [들어왔으니까 끝을 봐야지.]찝찝한 기분이 더러워졌다.
[급수구 보셨잖아요. 위험합니다.] [물이라면 상관없어.] [네? 상관없다뇨?]마루는 성큼성큼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암호키가 붙어있는 엘리베이터.
쓰커커커컹
깊은 칼질에 엘리베이터의 금속 문이 쪼개지며 아래로 내려가는 어둠이 속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