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409)
러스트 [RUST]-409
좋은 몸이었다. 강인한 몸.
게다가 강력한 정신력을 가진 두뇌.
저런 몸이라면 충분히 옮겨갈 수 있었다.
CCTV와 링크로는 정신을 뚫고 들어갈 수 없었지만, 근거리에서라면 충분히 가능했다. 그래서 유인했고 예상대로 몸이 왔다.
정신을 일시에 장악해 과거로 밀어 넣고 안전하게 몸을 지배하려고 했는데, 그걸 찢고 나왔다. 어떻게?
트라우마를 자극하면 틈을 보이기 마련이었다.
아무리 강한 정신력을 가진 인간이라고 해도, 그 이치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트라우마까지는 아니더라도 마찬가지, 사람이라면 무언가 응어리진 게 있기 마련이었다.
인간으로 산다는 건 응어리가 지고, 응어리진 감정을 묻고 그렇게 살아가는 거니까. 그러니까 그런 부분을 자극하면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젊은이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던지고, 늙은이는 과거를 회상하느라 현재를 소모하는 법. 결국에는 원하는 것을 취하기 위해 현재를 버리기 마련이었다.
그러니까 그 버린 현재.
알뜰하게 사용해주겠다.
그렇게 막 쓰는 몸뚱이.
살뜰하게 써먹어 주마.
조종은 쉬웠다.
특히 알코올과 약에 찌든 것들은 자기들이 무슨 행동을 하는지도 모르고 움직였다.
‘기억나지 않습니다. 정말로요.’
기억이 나는 놈은 그렇게 말했고.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알면서 그냥 모른다는 년도 있었으며.
‘전 책에 나온 내용을 해본 건데요?’
화재로 여럿을 죽인 꼬맹이는 환하게 웃었다. 이렇게 모두가 행복한 시간은 짧았다.
‘버지니아 랭리에서 왔습니다.’
그들을 만난 뒤 모든 것이 변했다.
‘정신계열입니다.’
직원을 지배해 도주를 시작했다.
‘소용없다. 포기해라.’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해 잡혔다. 지배 불가능한 자들이 왔기 때문이었다. 과거가 지워진 자들. 미래도 없는 자들. 대체 어떻게 이런 인간이 있을 수 있지?
연구원들도 신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놈이 정신 지배를 할 수 있다고? 대체 어떤 방식으로 장악하는 거지?’
‘감염자들 가운데 돌연변이가 나오는 경우가 있으니, 그런 케이스 아닐까요?’
‘피츠버그로 보내.’
‘알겠습니다.’
‘또 도망칠지 모르니까 거추장스러운 다리는 치워.’
으어어어어-
‘연구실장님 이게 우리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요?’
‘뭐? 수면제 투약해. 빨리.’
‘듣지 않습니다.’
‘다리를 쏴. 어차피 자를 거야.’
다리를 잃었다.
‘생각해 보니 팔도 필요 없겠군. 팔도 치워.’
팔도 잃었다.
‘능력이 진화했습니다.’
‘눈. 눈이다.’
‘눈을 쳐다보지 마. 환각에 빠진다.’
‘씨발. 저거 지워.’
아아아아으으으-
‘눈 뽑아. 별 거지 같은 게.’
‘시신경 연결은 어떻게 됐어?’
‘가능합니다.’
‘좋아. 들었지 괴물 새끼. 말을 잘 들으면 다시 하늘을 볼 수 있게 해주지.’
CCTV를 통해 다시 본 하늘은 빛이 바래있었다.
‘동시에 여러 곳을 감지하지 못하는데요?’
‘이 새끼가 멍청해서 그래. 멀티태스킹(multitasking)을 해야 할 거 아니야.’
‘뇌는 건드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어차피 MK 울트라에 넣은 놈인데 멀티태스킹 실험은 내 권한으로 가능해.’
한 명을 조종했던 것이 여럿을 동시에 조종할 수 있게 됐다. 전처럼 깊게 욕망을 자극하지 않아도 움직일 수 있게 됐지만, 그것을 숨겼다.
‘이 병신 같은 새끼. 얼마나 지능이 떨어지면 아직도 이대로야?’
‘MK 울트라를 사용할 때 약물 대신 이걸 써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건. 괜찮군.’
사람들의 과거를 지우는 일이 익숙해졌다. 식인귀는 상위 개체의 지배력 때문에 조금 까다로웠지만, 상위 개체까지 지배할 수 있게 되면서 지배력이 폭증했다.
‘이거 잘하면 식인귀도 지배할 수 있는데요?’
‘좋아. 중국놈들을 밀어버릴 수 있겠어.’
시간이 흐르고 흘렀다.
‘아직도 한 마리씩 밖에 못하나?’
‘그렇습니다.’
‘거리는?’
‘1마일까지는 통제 가능한 것 같습니다.’
‘1마일이라. 애매하군.’
‘정신 장악 속도가 조금씩 빨라지는 것 같으니. 이쪽으로 가면 어떨까요?’
감염자들을 치워버린 자리에는 식인귀들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하나씩 하나씩 전부 장악했음에도 아닌 것처럼 계속 숨기는 데 성공했다.
MK 울트라로 세뇌된 것 같지만, 사실은 이미 장악한 식인귀들이 쌓이고 쌓였다. 그러던 어느 날 혹한이 시작됐다.
아침에 영하 10도를 찍었던 기온이 밤에는 20도를 찍고, 새벽에는 30도까지 내려갔다. 기회가 왔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놈이 볼 수 없게 CCTV를 부숴!’
‘소용없습니다. 놈이 속이고 있었습니다!’
‘1급 비상사태다. 본부에 연락해.’
‘통제실? 통제실! 응답하라.’
‘먹통입니다.’
‘식인귀들이 움직입니다!’
‘차단벽 내려. 수동으로 내리라고.’
‘당장 죽여. 죽이라고.’
비상 버튼을 누르려고 하던 연구원이 우뚝 멈췄다. 공포에 질린 얼굴 그대로 고개를 돌린 연구원의 입에서 낯선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날···죽.인.다.고.]그날 피츠버그는 단 한 사람에게 장악됐다. 그 처절한 생존 투쟁을 마루는 간단하게 평가했다.
[그래서 어쩌라고?]마루의 목소리에 공간이 시꺼멓게 무너지며 현실로 돌아왔다.
[어.떻.게?]어눌하고 모자란 말투로 연구원들을 속인 새끼가 다시 마루의 정신에 닿으려고 했지만, 파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혀 짧은소리는 안 통한다.]마루가 놈에게 칼을 겨눴다.
감성팔이는 다 끝났냐? 그게 유언?
정신계 능력을 각성하자마자 한 짓이 범죄였으면서 감성팔이?
마루의 칼날 끝에서 핏방울처럼 진득한 살기가 맺히기 시작했다.
[아- 나는-]눈이 없어도 알 수밖에 없는 필연적이 죽음 앞에 놈은 정신파를 뿜어대며 발악했다. 간질거리다 못해 벌레가 기어가는 감각이 마루의 전신을 핥았지만, 이젠 통하지 않았다.
[너. 너도 실험체인가? 그렇지? 기관에서 키운 암살자 맞지.] [어디에서 나왔나? 군부? 제약회사인가? 그놈들도 버지니아 컴퍼니와 똑같은 놈들이야.] [군산복합체 놈들 돈 먹고 하는 짓이 이딴 짓거리지. 이 정도 규모의 실험은 단독으로 했을까?] [결국. 너도 언젠가는 해부가 될 거다.] [내 꼴을 봐라. 이 꼴을 보라고. 이게 네 미래다.] [하지만 우리 둘이 힘을 합친다면 이 세상은 우리 것이 된다.] [난 권력은 필요 없어. 나에게 좋은 몸만 찾아준다면 난 그걸로 만족해. 그러니까···.]어눌했던 발음이 버터를 바른 듯 매끄럽게 나오기 시작했다.
지랄하네.
손에 쥔 칼이 활에 걸린 화살처럼 뒤로 당겨졌다.
[기다려. 날 죽이면 버지니아 랭리가 움직인다.] [여기 시설에 군부와 대기업도 투자했다고. 봤잖아.] [내가 죽으면 놈들은 너를 찾을 거다.] [너도 나처럼 놈들에게 잡혀서 이 꼴이 될 거라고!] [결국에는 너도 세뇌당해서 놈들의 입맛대로···.]뿌직-
머리통에 쑥 들어간 칼날이 우드득- 비틀어졌다.
-■■■■-■■■-■■■■-■-■■-■-■■■■-■■!!!
강력한 정신파가 휘몰아쳤다.
스걱-
목이 잘렸음에도 끊이지 않는 정신파.
콰득!
머리통을 짓밟아 터트리고 나서야 속이 울렁거릴 정도의 파동이 사라졌다. 이어서 마루를 추격하던 연구원들과 무장 경비대가 정지 버튼이 눌린 장난감 병정처럼 우뚝 멈췄다.
[위에 상황은 어때?] [지하 1층과 2층 식인귀는 전멸했습니다. 3층으로 내려간 식인귀들과 일반인들 가운데 절반은 사망했고, 차단장치 건너편 사람들은 살아있습니다.]VX 가스의 무서운 점은 무색, 무취, 무미라는 것이었다. 가스가 뿜어졌어도 알기 힘들었고 늦게나마 알아챘을 땐, 이미 죽음의 문턱에 닿은 뒤였다.
[식인귀들 정말 무섭네요. 일반인이었다면 진작 죽었을 텐데.]에에에에엥-
[현재 적의 침입으로 독가스가 살포됐습니다.] [1급 비상사태 발생.] [특급 보안 개체 사망 확인.] [1급 비상사태 확인 완료.] [경계 병력 전멸 확인.] [다수 사망자 확인. 실험체 전멸 확인.] [연구소를 재정비합니다.]푸화아아악-
천장에서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후드가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빽 질렀다.
푸화아아아-
아아아-
아-
조르륵-
뚝뚝-
쏟아졌던 물이 발바닥도 채우지 못하고 멎기 시작했다.
[어? 이게.] [기온이 영하 45도 아래로 떨어진 지 벌써 한 달이다. 강이 얼었으니 취수구도 얼어붙었겠지. 상수도든 하수도든 제대로 대비하지 않았으면 전부 얼어붙었을 거고.]신경 쓸 필요 없다고 한 이유를 태연하게 알려준 마루가 주변을 살폈다. 천장에서 물이 쏟아졌음에도 사람들은 제자리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마치 넋이 나간 깡통 같은 모습. 역시 정신계는 위험했다.
[설상차 근처에 접근하는 건 경고 없이 머리를 날려버려.] [알겠음.] [끝난 겁니까?]후드의 말에 마루는 짓밟았던 다리를 들어 올렸다.
으깨진 두개골 조각과 회백질 조직이 흩어진 바닥이 보였다.
찝찝한 느낌이 가시지 않았다.
분명히 뒈졌는데, 찝찝한 기분.
마지막에 지랄했던 정신파 때문일까?
‘혹시?’
문득. 쥴리아 버튼이 죽었을 때가 떠올랐다. 실험에 실험을 거듭해 능력이 가공된 정신계 능력자가 쥴리아 버튼과 비교해 약할까?
아니겠지.
그럼 더 강하다면?
쥴리아 버튼이 마지막에 사이코메트리 에리카 리스본에게 영향을 끼쳤던 게 생각났다.
그쪽도 영 찝찝했었지.
그거 이상이라면 어떨까?
이 몸을 원했다는 것은 사지가 절단된 본인의 몸과 바꿀 자신이 있어서 그랬을 것이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발악하다 실패했다고 놈이 포기했을까? 아니면 끝까지 살아남겠다고 이곳에 있는 누군가에서 들어가 숨었을까?
마루의 눈빛이 흉흉해졌다.
[내가 연락할 때까지 신호 끊도록.] [예? 예.] [알겠음.]정신세계에서 봤던 대로라면 네트워크 연결은 위험했다. 녀석은 CCTV를 이용해서도 능력을 쓸 수 있기 때문. 거기에 옥상에서는 빙의에 가까운 짓으로 식인귀를 지배했었고.
그렇다면···.
마루의 결정은 과감했다.
콰직-
마루의 앞에 우두커니 서 있던 한 연구원의 목이 절단됐다.
콰드드득-
한 번에 세 명의 머리통이 하늘로 떠올랐다.
후두둑- 소리와 함께 바닥에 떨어진 머리통들. 치솟는 핏물.
그리고 갑작스러운 처형에 놀랐는지 슬금슬금 밖으로 도망치려는 움직임에 마루가 반응했다.
‘거기냐?’
도망치던 놈의 가슴에 싱싱한 칼날이 솟아올랐다.
푸칵-
휑하니 열린 동공이, 심장을 꿰뚫은 마루를 향했다.
“ㅇㅓ떻ㄱ···.”
말이 맺기도 전에 목이 잘렸다.
다시 치솟기 시작한 정신파는 처음보다 많이 약해졌다.
이거다.
씰룩 마루의 시선과 함께 움직이는 칼날. 매섭게 빛나는 사신의 칼날이 멍하니 서 있는 연구원들과 무장 경비의 머리를 수확하기 시작했다.
서걱-툭-
우직-투둑- 데구르르
“FUCK! 너 대체 뭐야!”
“왜 나한테 이러는 거야?”
쿠직- 툭-
“죽였으면 됐잖아. 세 번이나 죽였으면 됐잖아.”
“미친 새끼야. 너도 내 꼴이 된다고!”
후다다닥!
필사적으로 몸을 돌려 도망치는 무장 경비원의 등판에 나이프가 깊숙하게 틀어박혔다.
죽을 때마다 치솟았던 정신파가 이제는 흐릿하게 약해졌다. 정신파가 약해질수록 옮겨 다니는 거리가 짧아지는 게 뚜렷하게 보였다.
“제발. 살려주세요.”
“뭐든 시키는 대로 할 테니 제발.”
놈이 마지막으로 선택한 몸은 여자 연구원이었다.
금발에 살짝 백치미까지 보이는 여자 연구원의 동공은 풀려있었다.
“······.”
칼질이 멈추자 여자 연구원의 얼굴에 작은 안도감이 피어오르는 것도 잠시, 마루의 질문이 시작됐다.
“쉽게 옮겨 다닐 수 있었으면서 왜 그러고 있었지?”
몸통만 남은 몸뚱이에 붙어있을 필요 없지 않나?
“이렇게 옮겨 다니면 능력도 줄어들고 기억이 섞여버려서···. 살려주세요.”
지금처럼 급하게 옮겨 다니면 능력에 좋지 않고 옮겨간 육체에 남아있는 잔류 사념에 영향을 받아 문제가 생긴다는 이야기였다.
몸통만 남은 몸이 여러 가지 실험을 거치면서 능력치가 최고였다. 그걸 쉽게 포기하긴 아쉬웠다고 했다. 그래서 최고의 육체가 나올 때까지 옮기지 않고 능력을 최대한 발전시키고 있었다고.
좋은 육체를 찾기 불가능하면 어쩔 수 없겠지만, 그 전까지는 최고의 육체를 만들기 위해 식인귀까지 이용해 실험하고 있었다고 했다.
“······.”
지하 4층 통제실을 이용해 차단벽을 모두 올린 마루는 지상으로 향했다. 문이 썰린 엘리베이터에 타자, 뒤따르던 금발 여자가 재빨리 엘리베이터에 올라 비밀번호를 눌렀다.
[올라갑니다.]위이이이잉-
[띵- 지하 3층입니다.]지하 3층은 사방에 널브러진 시체로 가득했다. 지하 4층으로 내달리다가 떼거리로 죽은 식인귀에서부터 감옥에서 생을 마감한 일반인까지.
“이건···. 신경가스?”
금발 여자의 발걸음이 서서히 느려지더니 풀썩 앞으로 꼬꾸라졌다.
“개새끼가— 너. 너도···.”
리퍼 슈트의 HUD 생체 탐지 화면에 선명하게 찍혔던 붉은 점이 서서히 사그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