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424)
러스트 [RUST]-424
3월의 마지막, 이제 곧 4월.
푸르게 새싹이 돋았어야 할 대지는 하얗게 얼어붙어 있었다. 멍하니 창문 밖을 바라보던 사이코메트리 에리카가 작게 중얼거렸다.
“꼭 죽이러 가야 하는 건가요?”
식인귀를 죽이러 멀리 시애틀까지 가야 하느냐는 질문에 이클립스를 닦던 마루가 대답했다.
“식인귀는 단순히 식인종이 아니니까.”
식인귀들이 주변 사람들 잡아먹고 동네 사람들 사육하고 끝이라면 굳이 가지 않았겠지만, 그게 아니었다.
“식인귀들이 범죄조직을 넘어서 세력을 형성했는데 그냥 두면 위험해.”
인간의 탐욕이 끝이 없듯, 식인귀의 탐욕도 끝이 없었다.
세력을 형성한 식인귀를 그냥 두면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뉴욕과 라이트 패터슨 공군 기지에 있던 식인귀들이 한 짓을 알잖아. 그게 지역 단위, 국가 단위로 확대된다고 생각해봐라. 그리고 뉴욕의 식인귀 가운데 바퀴벌레를 조종할 수 있는 놈이 생겼지. 그런 식인귀를 그냥 둔다면 어떻게 될까?”
“···전 찾기만 하면 되는 건가요?”
“그래. 다른 건 상관없어. 우두머리. 상위 개체만 찾아. 그리고 여력이 있거든 특이한 개체를 찾아주면 좋고.”
“알겠어요.”
에리카 리스본이 선선히 대답했다.
암살 사건을 겪은 뒤 많이 성숙해진 모습이었다.
“근데. 시애틀, 샌프란시스코 식인귀 정리해 주면 심 회장만 좋은 거 아님?”
“어제도 말했지만, 심 회장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고 제대로 자리를 잡아야 안전해져.”
동부와 남부의 눈초리를 분산하려면 심 회장이 자리 잡는 게 유리했다. 물론 공짜로 도와줄 생각은 아니었다. 특히 샌프란시스코의 경우에는 더욱.
“쥐 떼는 계속 PD가 통제하도록 하게? 2호기는 어쩌고?”
현재 쥐 떼를 관리하는 건 PD였다. 약물과 네이팜 폭탄을 사용해 쥐들을 간접적으로 통제하고 있었다.
“명령체계가 나뉘면 위험해서 안 돼.”
해커 성향이 강한 후드가 중간에 끼어들면 어떤 결과가 생길지 예측하기 어렵지. 정보를 다루는 쥐들이 생겨 폭발신앙에 문제가 생기거나, 변질이 생긴다면 감당하기 난감했다.
“쥐를 정보원으로 쓰고 싶다면, 다른 쥐 부족을 영입해서 별도로 운용하라고 해.”
김 양이 생각하기에도 그게 맞았다.
명령체계가 복잡해지면 문제가 생기기 마련, 사람 사이도 그런데 쥐는 어떨까? 최대한 단순한 체계가 좋았다.
“그럼. 쥐들이랑은 계속 갈 생각임?”
앞으로도 계속 쥐와 공생할 거냐는 말에 마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쥐는 쥐로 막아야 제일 효과적이야. 그리고 앞으로는 쥐가 생태계의 중심이 될 가능성이 크고.”
“?”
연구원들이 추측하기에는 쥐를 바탕으로 먹이사슬이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압도적인 번식력을 바탕으로 물량이 끝없이 나올 텐데, 그걸 막을 건 같은 쥐가 최고였다.
폭증한 쥐 떼를 막았다고 끝이 아니었다.
쥐가 늘어나면 쥐를 잡아먹는 중대형 동물들도 늘어날 것이고, 이는 전반적인 생태계 변화를 의미했다. 아마도 인간에게 불리한 변화일 가능성이 컸다.
“변이 괴수야 대구경 특수탄을 쓴다면 잡을 수 있겠지만···.”
이미 늦어 버렸다.
날이 풀리기 시작하면 쥐들이 본격적으로 번식할 터, 마찬가지로 쥐를 먹이로 하는 변이 괴수들도 숫자를 불리기 시작할 거다.
그 급작스러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마을이나 도시는 멸망할 것이다. 먹이사슬은 요동쳤고, 변이 괴수의 증가는 확정적이었다.
[30분 뒤 시애틀에 도착합니다. 바로 시애틀로 갈까요?]“10분 거리를 두고 멈춰.”
김 양과 사이코메트리 그리고 친위대가 먼저 시애틀에 잠입, 상위 개체의 위치를 확인하고 정보를 마루에게 전달하기로 했다.
“식인귀가 장악한 도시라, 들어가자마자 걸리지 않겠음?”
“걸려도 사이코메트리로 놈들 위치 파악은 가능하고, 놈들이 나오면 내가 뒤치기 가능하니까 걱정하지 말고 버티기만 해.”
시애틀에 들어가자마자 걸리지 않을까 했는데, 날씨가 도와줬다.
휘유우우우우우—–
갑작스럽게 추워진 날씨에 바다에서 올라오는 수분이 얼어붙어 안개처럼 퍼지기 시작했다. 이 틈을 타 김 양과 에리카, 친위대가 시애틀에 잠입에 성공했다.
“감도 최대로. 주파수 고정.”
[삐이이익- 확인.]“상위 개체 찾았나?”
[삐익- 삑- 군대- 치이익– 장악해서— 삐이익- 위험.]까마귀 정찰로는 알 수 없던 정보들이 사이코메트리 능력 한 번으로 우수수 쏟아졌다.
식인귀가 도시를 장악한 건 알고 있었지만, 군대까지 손에 넣었다니. 날이 풀리기 전 오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마루였다.
“상위 개체 위치 찾았으면, 바로 퇴각해.”
[삐이익- 알겠- 치익]안개처럼 피어오른 이상 현상이 그치기 전 퇴각을 종용하는 마루였다.
1시간이 넘게 지난 뒤에야 김 양과 에리카가 돌아왔다.
속에 든 걸 게워냈는지 초췌해진 에리카를 대신해, 김 양이 사이코메트리로 파악한 상황을 이야기했다.
“시애틀하고 벤쿠버 처음 왔을 때. 그 일 있었잖음.”
“따개비 사건?”
고개를 끄덕인 김 양이 납작한 튜브에 담긴 연고제를 테이블에 올렸다.
“그거로 미군이 급속 지혈제 만들었던 거.”
“알지. 일 끝나면 싹 뜯어 가야겠네.”
생산 시설 가운데 한 곳이 시애틀에 있다는 이야기.
“시애틀에 있는 연구실을 식인귀들이 장악해서 계속 생체실험 들어가고 있다고 함.”
“저렇게 늘어진 것도 그것 때문이고?”
“응. 노리고 들어간 곳이 제약회사라서 예상보다 잔류 사념이 많이 있었나 봄.”
“다른 놈들은 없었고?”
“날씨 때문인지, 전력 문제 때문인지 텅텅 비어있었음.”
“상위 개체는 위치는?”
김 양이 지도에 몇 군데를 표시했다.
잔류 사념으로 파악한 장소는 모두 3곳. 지하 1곳과 지상 2곳이었다.
본래대로라면 동시 작전을 해야겠지만, 김 양을 제외하면 믿고 맡길 사람이 없었다.
“쯧- 두 곳을 찍어야겠네.”
“시청은 친위대랑 내가 하겠음.”
아케이드와 지하상가가 어우러진 복합 공간으로는 마루가 가기로 했다.
“나머지 1곳은?”
“먼저 정리하는 쪽이 처리하기로 하고. 저항이 크면 굳이 어렵게 뚫으려고 하지 마. 내가 가든지, 정 힘들면 폭탄으로 날려버리면 되니까.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해.”
늘어져 있던 사이코메트리가 손을 들며 말했다.
“저도 같이 가요.”
“괜찮겠음?”
“예. 쉬어서 2~3번 정도는 더 쓸 수 있어요.”
‘이거 괜찮을까?’ 싶은 표정을 지은 김 양이 마루를 돌아봤다.
“그냥 가지 말고 파워 로더형 엑소슈트를 입고 가라.”
알아서 간다는데 말릴 이유 없었다.
마루도 리퍼 슈트를 입고 시애틀로 향했다.
영하 20도까지 배터리 성능의 80%를 보장한다고 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엑소슈트 쪽은 아슬아슬하겠는데.’
여분 배터리를 넉넉하게 챙겨갔다고 해도 교전이 시작되면 어쩔지 몰랐다.
[작전 개시.]마루가 그림자 속으로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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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주형 엑소슈트들이 순식간에 자리를 잡았다.
2인 1조로 움직여 이곳저곳을 확인한 친위대가 김 양에게 보고했다.
[오른쪽 클리어.] [왼쪽 클리어.] [중앙통제실 전원 나갔습니다.] [비상 발전기. 연료 없습니다.]‘이거 꽝 아니야?’
김 양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난방은 고사하고, 전기도 없다고?’
시애틀을 장악한 상위 개체는 젊은 여자라고 했다. 여왕벌 스타일인 년이 계단을 오르내리고 그럴까? 가마 타고 오르락내리락하는 게 아니라면, 여기 있을 확률은 없었다.
[이쪽 사이코메트리로 확인 바람.] [잠시만요.]파워로더형 엑소슈트가 한쪽에 무릎 꿇고 앉아, 장갑을 벗고 바닥에 손을 댔다.
[여기서 자리를 옮겼어요. 전기가 없어서. 우윽-] [왜?]잔류 사념을 읽던 에리카가 헛구역질을 시작했다.
[사. 사람을 개조해서 전기를 뽑겠다고···.] [지하 연구실로 갔음?]에리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김 양은 HUD에 지도를 띄워 확인했다. 지하 실험실과 연결된 곳은 마루가 가기로 한 아케이드, 지하상가 복합 센터였다.
김 양은 바로 마루에게 상황을 전달했다.
[그쪽과 연결된 지하 연구실로 갔음. 사람을 개조해서 전기를 만들려고 한다고 함.] [치이이익- 거기 놓치지 말고 자세히 확인해. 삐익.] [사이코메트리가 있으니까 꼬박꼬박 다 뒤질 필요는 없잖음?] [삐이이익- 어떡하든지 놓치지만 마. 칙-] [알겠음. 여기 확인하고 바로 다음으로 넘어가겠음.] [삐치지지지-]마루의 대답이 이어지지 못하고 툭- 끊겼다.
‘중계기를 박았는데 끊겨?’
[적이다.]김 양이 바로 반응했다.
[중계기 확인하고 다시 박아!]친위대가 바로 반응했다.
[없습니다.] [중계기 파손된 부품 발견.] [발자국 확인!] [발자국이 중간에 끊겼습니다.]깜깜한 빌딩 1층 로비 이곳저곳을 엑소슈트의 전술 라이트가 밝혔다.
‘사이코메트리가 알아채지 못했다? 어째서?’
문득 조금 전 능력을 쓰는 에리카의 모습이 겹쳐졌다. 무릎을 꿇고 장갑을 벗은 뒤, 맨손으로 바닥을 확인하는 모습.
‘바닥?’
반사적으로 고개를 든 김 양이 외쳤다.
[환풍구? 천장이다. 쏴!]투두두두두둑-
“아악- 걸렸다!”
“내려가!”
번쩍- 쿠우우웅!
적들이 던진 섬광 폭음탄이 엑소슈트의 센서를 교란했다.
묵직한 총성과 불꽃이 1층 어둑한 공간을 채우기 시작하자, 김 양이 외쳤다.
[가스!]휙-
작은 V의 x가 연막 속으로 사라졌다.
휙-
마루는 눈에 발자국을 남기지 않기 위해 빌딩과 건물 사이를 넘나들었다. HUD 화면에 김 양과의 통신이 끊겼다는 표시가 떴다.
‘전파장애를 고려해서 중계기를 쓰기로 했는데.’
피츠버그, 그 지하 실험실에서도 중계기를 쓰면 문제없었다. 그런데 통신이 끊겼다고?
‘적이군.’
김 양이 교전을 시작했으면, 적들의 신경이 그쪽으로 쏠릴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그가 해야 할 일은 상위 개체를 잡는 일이었다.
마루는 김 양을 믿고 아케이드 지하 쇼핑센터로 들어갔다.
여기저기 사람들의 흔적이 가득한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텅 빈 텐트와 여기저기 흩어진 종이상자, 옷들이 널브러져 있는 모습.
텐트와 옷은 지금 같은 혹한에 필수일 터, 사람들이 버릴 이유가 없었다.
‘다른 곳으로 끌고 갔나?’
지하 쇼핑센터에는 비상구 표시에 불이 들어와 있었다. 지하다. 지하 연구실과 지하 쪽에는 전기가 통하고 있었다.
전기가 공급되고 있다는 건 CCTV가 돌아가고 있다는 걸 의미했다. 광학 은신 장치가 있다고 하더라도 문이 열리고 닫히는 건 걸릴 수밖에 없었다.
후- 호흡을 고른 마루가 비상구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콰직-
잠금장치가 박살 나는 순간, 문짝을 걷어찬 마루가 내달리기 시작했다. 요란하게 울리는 사이렌 소리와 함께 차단벽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콰득-
내려오다 말고 썰리는 차단벽- 닫히기도 전에 쪼개지는 비상문- 그 무엇도 마루를 막을 수 없었다.
날카롭게 벼려진 마루는 중앙통제실로 향했다.
거기서 상위 개체가 어디 있는지 파악한 뒤 잡으면 끝. 상위 개체가 죽으면 하위 개체들은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고 폭주했다. 그걸 이용하면 일거에 쓸어 버릴 수 있었다.
부아아악-
차단벽을 뚫고 몸을 들이미는 찰나 느껴지는 찝찝함에 반사적으로 칼을 휘두르는 마루. 보지도 않고 휘두른 칼질에 가져다 댄 것처럼 숭덩숭덩 썰린 것들이 바닥에 떨어져 펄떡거렸다.
마루의 칼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머리통에 촉수가 붙은 것들이 달려들었다.
촉수를 자르고 지나간 칼날이 빙글 반원을 그리며, 놈들에게 향했다.
스-극-
칼날이 들어가는 순간, 조금 단단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갑각류를 절단하는 것 같은 손맛에 마루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씨발.’
생체 실험했다더니. 이런 거였어?
서거거거걱
토막들 사이로 흐르는 핏물이 복도를 채웠다. 앞을 가로막은 실험체들이 조각조각 바닥에 흩어졌음에도 찝찝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길게 늘어지는 시공간 끄트머리에 맨들맨들한 몸뚱이가 설핏 보였다. 훌떡 벗은 알몸이 이쪽을 보고 있었다.
저건 뭔.
순간 떠오르는 김 양의 말.
‘사람을 개조해서 전기를 만들려고 한다고 함.’
에라이-
팍- 마루가 바닥을 딛는 것과 동시에 파지지지직- 퍼런 전기가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리퍼 슈트의 광학 은신 장치가 버티지 못하고 기능을 상실했다.
슈팟- 치직- 잔여 전류가 스파크를 일으키며 마루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