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428)
러스트 [RUST]-428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시애틀에서 성공적으로 진행 중이던 퀸 메이커(Queen Maker) 프로그램이 실패했다고요?”
중성적인 목소리가 거칠게 일그러졌다.
“정확한 상황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퀸이 사망한 것과 퀸이 문제를 일으켰을 때를 대비한 프린세스까지 죽은 것은 확실합니다.”
“그럴 리 없습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그렇게 끝날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아니란 말입니다!!”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던 박사가 분을 이기지 못했는지 책상을 내려치고 앞에 있던 모니터를 주먹으로 부수더니 벌떡 일어서다가 쓰러졌다.
덜덜덜 사지를 떨던 박사를 본 연구원들이 달라붙어 박사의 목에 주사기를 꽂았다. 치익- 약제가 들어가자 눈을 까뒤집고 의식을 잃는 박사.
“이 사람 본래 이렇습니까?”
“항상 이렇지는 않습니다.”
요즘 계속 성공에 가까웠던 실험들이 실패하고 있었다. 다 성공했는데 마지막 결과만 남겨 놓고 박살 나버리는 프로젝트들만도 벌써 3차례. 응축된 분노가 광기와 발작으로 이어진 건 그 때문이었다.
“자료는 여기 두고 갈 테니, 박사에게 주시면 됩니다.”
“그러지요.”
요원이 실험실 밖으로 나가자, 슬쩍 자료를 확인하는 연구원이었다. 연구 설비와 기자재, 실험자료도 날아갔다는 내용이었다.
“이거 보면 또 발작하겠네.”
그리고 이어진 뒷장.
“응?”
즉석카메라로 뽑은 사진 속에는 쥐가 있었다.
쥐 사진이 왜 여기에?
번지수가 틀린 것 같은데?
연구원이고 요원이고 현장에서 구르는 인력이 계속 줄어드니 이런 문제가 생기지. 그렇지 않아도 발작 예정인 박사가 쥐 사진을 보면 어떻게 반응할지 몰랐다.
연구원은 알아서 쥐 사진을 한쪽에 빼뒀다. 요원이 오면 돌려주면 그만인지라 문제없었다. 여자 연구원이 쥐 사진을 발견하고 쓰레기통에 쳐넣기 전까지는.
박사는 꼬박 이틀을 앓고서야 제정신을 차렸다.
그동안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가 겹쳐 탈이 난 것.
“여왕이 죽었다면 시신은? 시체는 확보했지요? 어디 있나요?”
“없습니다.”
“그럼 프린세스는 그쪽도 시신이 없는 건가요?”
“예.”
“죽었다면서 시체가 없다니 말이 됩니까? 그리고 없으면 찾아야 할 거 아닙니까?”
“시신이 마이크로 칩 전파송신 범위 밖으로 벗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시체가 시애틀 밖으로 나갔다고?
흐흐흐흐흐-
박사가 웃기 시작했다.
놈들이 무엇이든 시신이 값어치 있다는 걸 알고 가져갔다는 소리였다. 그건 연구성과를 알아챘다는 뜻이겠지.
“아- 역시 신세계는 쉽지 않네요. 너무 쉽게, 너무 빨리 구세계가 무너져서 착각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래요. 착각. 이제는 끝났다는 착각. 이제 대세는 결정 났다고 생각한 안일함 말이죠.”
연구를 방해하는 것들이 있다. 시체까지 가져갔다면 확실했다.
연구결과를 파괴하고 훔치는 것들이 있다. 피츠버그도 그렇고 이번 시애틀까지.
한 번은 우연이라지만 두 번이면 계획, 세 번이면 필연이었다.
피츠버그, 퀸, 프린세스 세 번. 최근 가장 좋은 연구결과를 보인 것들이었다.
이게 우연일까? 우연이라는 이름의 필연이고 계획적인 짓거리겠지.
이제는 시간 싸움이었다. 세계가 완벽한 신인류의 통제 아래 번영을 누리게 될 건지, 아니면 구 인류의 발악 아래 혼란 속에 빠져들게 될 건지.
“흐흐흐흐- 모든 연구실에 1급 경계 태세를 내립니다.”
“예? 1급 경계 말입니까?”
“놈들은 옵니다. 어디로 올지 모르겠지만. 옵니다.”
박사가 보기엔 그건 필연이었다. 시애틀 퀸과 프린세스의 시체를 가져가서 연구했다면 반드시. 그 성과를 알아본 놈들이라면 분명히. 온다. 올 것이다.
“그리고 노블레스 프로그램 앞당겨 시작합니다.”
“박사님! 그건 위험합니다.”
“그렇습니다. 아직 안정성이 입증되지 않았습니다.”
“시애틀에서 결과가 나오지 않았는데 바로 다음 단계로 가는 것은 무리입니다.”
“프로젝트에 문제가 생겨 화가 나신 건 알겠지만, 감정적으로 결정할 게 아닙니다.”
“지금 감정적이라고 했나요? 화가 나서 그렇다고요?”
“······.”
“······.”
“그래요. 맞습니다. 화가 났고, 감정적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피츠버그와 시애틀을 공격한 놈들이 다른 연구소를 계속 공격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런.”
“입 다물고 들으세요. 다들 아시다시피 우리 연구소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됐습니다. 피츠버그가 무너지면서 대규모 통제, 지배 연구가 멈췄습니다.”
“······.”
“······.”
“시애틀이 당하면서 식인병의 단점을 보완한 신인류 연구에 제동이 걸렸고요. 남은 샘플은 한정적이고, 성공확률이 높은 샘플은 더욱 부족합니다. 지금 노블레스 프로그램을 시작하지 않고 있다가 문제가 생긴다면. 우리의 꿈은, 평화로운 질서의 세계는 끝나게 되는 겁니다.”
“······.”
“······.”
박사는 버지니아 랭리의 국장, 이제는 회장인 남자와 독대를 하겠다며 병실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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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오진 그룹이 제주도가 아닌, 울릉도로 도피한 이유는 여럿 있었다. 제주도에는 해군 기지가 있을 뿐 아니라 중국 자본이 상당히 많이 침투해 있었다.
7개의 중국으로 쪼개져 자기들끼리 치고받고 하는 중국이지만, 제주도를 오진 그룹이 장악하는 순간 어떻게 나올지 몰랐다.
7개의 덩어리 가운데 하나만 탐을 내 손을 뻗어도 나머지 여섯이 뒤엉키기 시작할 건 불을 보듯 뻔했다.
그래서 선택한 장소가 울릉도.
문제가 되는 부분은 전기였는데, 다행스럽게도 울릉도는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섬인지라 지열 발전을 할 수 있는 조건이 됐다.
시설로 인해 생태계 파괴 문제나 화산을 자극해 위험할 수도 있다는 문제가 있었지만, 그것도 생활이 됐을 때나 의미 있는 이야기.
나주연의 명령 아래, 울릉도에는 대규모 풍력발전시설과 지열 발전 설비가 들어섰다. 10월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을 뚫고 대규모 공사는 2월 중순을 지나 3월까지 이어졌다.
“3월인데도 아직 춥군요.”
“일본은 지금 영하 25도 밑입니다.”
한국도 영하 20~30도 아래인 지역이 대부분이었지만 얼어 죽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지는 않았다.
아파트에 거주하는 문화 때문인지, 두꺼운 단열재를 선호하는 문화, 온돌 난방에 대한 집착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급작스러운 혹한에도 잘 살아남고 있었다.
하지만 일본은 상황이 달랐다. 홋카이도나 혼슈 북부 또는 산간지역을 제외하면 혹한이라고는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맹추위가 6개월 넘게 이어지자, 상황이 심각해졌다.
“그걸 왜 저한테 이야기하시는 거죠?”
“회장님! 지금까지 버틴 수백만 명이 허무하게 죽게 될 겁니다. 부디. 선처를.”
국제사회니 UN(United Nations)이니 그런 건 이미 끝났다. 인터넷이 끊기고 통신이 끊긴 뒤로 국제사회의 어쩌고라고 할 게 없어졌다.
통신이 끊기고 이상 기후로 장거리 항행이 위험해졌다. 거기에 비행기는 이착륙 불가능한 상황. 국제적인 공조니 뭐니 불가능했다.
유엔 산하 기구들이 중국 자본에 잠식되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쟁에 돌입한 순간부터, 유엔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심각한 상황인데, 미국과 중국 사이에 전쟁 터졌다. 심지어 중국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된 핵전쟁이 터졌음에도 유엔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유엔군 파병을 위한 조건, 상임이사국의 만장일치 통과라는 희대의 조항에 중국과 러시아가 찬성할 리 없지 않은가?
핵으로 선제공격한 나라도 규제할 수 없는 국제기구라니, 의미가 있을까? 결국, 전 세계적으로 교통과 통신이 끊긴 지금에 와서는 그냥 개점폐업이나 마찬가지가 유엔이었다.
“난민 문제는 유엔에 가서 할 말이죠.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지금 당장 사람들이 죽어가는 데 유엔이요? 유엔이 어떤 상황인지 알면서 그러십니까? 솔직하게 말씀하시죠. 전쟁을 원하시는 겁니까? 아니면 테러를 원하시는 건가요?”
그냥 생으로 죽느니 한반도가 됐든 울릉도가 됐든 그게 무슨 대수겠는가?
“무슨 그렇게 험악한 소리를···. 여기에 온 건 제가 한국의 경제를 좌지우지한다는 소문 때문에 온 거겠죠?”
“···전쟁입니까?”
나주연 회장이 기어코 그녀를 놀리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흉흉한 눈빛이 고개를 들었다. 휘리리릭- 채찍 같이 휘둘러진 촉수들이 엎드려 있던 여자의 앞을 두들겨댔다.
“······.”
“거기 흥분하지 말고 들어. 사실 이쪽도 엉망이라고.”
여자의 행동을 막은 기순이 나주연을 지긋하게 쳐다보자, 나주연이 작게 한숨을 쉰 후 입을 열었다.
“휴-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한국 경제를 좌지우지했으면 왜 이 조그만 섬으로 들어왔을까요? 서울과 수도권에 있던 기반을 다 정리하고 말이죠.”
“그건···. 그만큼 보안이 중요한 연구를 하기 위해서 아닙니까?”
“회사 직원들 가족들까지 모조리 데려올 정도로 말인가요?”
“식인귀 치료제, 분노조절 장애 치료제만 하더라도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는데 그보다 더한 약이라면 그럴 법도 하지 않겠습니까?”
여자의 말도 일리 있었다. 완벽한 보안을 위해서라면 고립된 섬 같은 곳이 좋았으니까. 거기에 대규모 발전 설비까지 공사하고 있었으니, 뭣 모르는 사람들은 오진이 저곳에서 뭔가 엄청난 걸 하나보다 그리 생각할 수 있었다.
나주연이 쓰게 웃었다.
“안타깝게도 그게 아닙니다.”
“······.”
불신하는 눈빛인 여자에게 나주연이 이야기를 계속했다.
“한국 정부가 미쳤습니다. 본토에 있었다면 전부 뺏길 수도 있고, 저항하면 바로 교전이 벌어질 상황에 몰렸습니다. 그래서 울릉도로 도망친 겁니다.”
“예?”
이해되지 않는다는 목소리로 되묻는 여자에게 김기순이 말했다.
“안타깝지만, 정보가 너무 늦었다고. 아가씨. 분노조절 장애 치료제, 식인병 치료제를 원하는 물량이 갑자기 확 줄어들었어. 레시피를 공개해서 그랬기도 하겠지만, 식인병의 전염력이 약해졌거든. 분노조절 장애도 마찬가지고. 이쪽도 개털이야.”
“그게 본질적인 문제는 아닙니다. 한국 정부도 그렇지만 각국 정부 고위층들이 갑자기 식인귀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게 중요한 문제죠.”
기순의 이야기에 설명을 더하는 나주연의 얼굴은 어두웠다.
“그러니까 식인귀가 되는 게 정치에 유리하다. 권력을 잡기에 유리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그. 무슨?”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엎드려 있는 여자에게 나주연이 명함을 꺼냈다. 국토안보국의 명함과 버지니아 랭리의 명함.
“이걸 보지 못했다면, 그쪽은 테이블에 올라갈 자격이 없다는 겁니다. 죽어간다는 수백만의 목숨도 마찬가지고요.”
“······.”
명함에 무슨 의미가 있기에···.
망연자실했던 여자의 눈에서 다시 독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 독기를 읽었는지 나주연이 쐐기를 박았다.
“전쟁이요? 오진 그룹과 할 건가요? 말했다시피, 상황이 변했습니다. 우리와 전쟁을 해서 이긴다고 해도 수십 수백만을 먹여 살릴 수 없어요.”
믿을 수 없었다. 알기로 오진 제약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5~50%에 이르렀다. 이천만 단위의 사람들을 먹여 살렸으면서 고작 수백만 일본인을 먹여 살릴 수가 없다고?
“시간을 줄 테니, 확인해 봐도 좋습니다.”
“우리에겐 시간이 없습니다.”
“정보를 확인할 시간도 없다면 전부 죽겠네요.”
“······.”
그냥 앉아서 죽음을 기다리느니 전쟁을 하겠다는 건 이해하겠다만, 그것도 정도가 있지.
“한국과 전쟁이요? 지금 육군 병력만 250만이 넘게 뽑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난민 세력을 받아 달라고 요구하면서 아니면 전쟁하겠다? 지금의 한국 정부라면 두 손을 들고 전쟁을 환영할 겁니다.”
도게자 자세로 있던 여자의 몸이 작게 흔들렸다.
나주연과 김기순은 엎드린 여자를 둔 채 회의실 밖으로 나왔다.
“심은영 그 여자가 미국으로 도망치면서 능력 있는 일본인들을 전부 쓸어갔으니, 일본 재건은 물 건너갔네요.”
“오래 걸리겠지, 알맹이만 쏙 빨아먹어 버렸으니까.”
“그래도 아직 수백만이 살아있다니. 대단하군요.”
“수백만이 뭐야 천만 단위는 될걸.”
두런두런 이야기하던 기순이 서류파일을 슥- 내밀었다.
“뭐죠? 이건?”
“······.”
[HMR 투여 0.012] [특이사항 없음.] [···투여량 증가. 0.015] [거부반응 없음.]나주연의 목소리가 차갑게 변했다.
“이거 어디서 났죠?”
“홍 과장 노트북.”
그러거나 말거나, 담담한 목소리로 기순이 답했다.
“그래요? 그래서 그런 거군요.”
“그러기는 뭘 그래. 따로 알아봤는데 아직도 모르겠더라고.”
“그가 알고 있나요?”
“당연하지. 여기 오기 전에 주고 왔어.”
“그리고 지금까지 모르는 척하고 있던 거고요.”
“말했잖아. 알아봤는데 모르겠더라고 그건. 그래서 묻는 거고.”
“왜 지금이죠?”
“지금 아니면 이야기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아까 ‘명함’도 그렇고 ‘테이블’이야기를 하길래. 언제부터였나 싶기도 하고 말이지.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나도 이만큼 굴려 먹었으면 본전은 뽑았잖아. 발전소 공사도 마무리됐고, 중요한 공사는 다 끝났잖아.”
기순의 태연한 대답에 나주연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하아- 그러니까 자리 잡을 때까지는 있었다는 소린가요?”
“왜 그렇게 삐딱한데? 솔직히 자리 잡을 때까지 군소리하지 않고 일했잖아. 그건 사실이지. 그래서. 그건 뭐야? 언제부터 한 거지?”
입을 앙다문 나주연이 고개를 살짝 까딱거렸다.
“애들 있는 거 알고 있으니까. 그러지 말고 말로 하자. 말로. 마루 이야긴데, 나도 들을 자격은 있잖아? 그리고 이대로 틀어지면 너 감당할 수 있겠냐?”
나주연의 시선이 흔들리는 촉수 머리를 잠시 향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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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가 치는 바다.
비행선이 낮게 고도를 낮춘 채, 잠수정을 내렸다. 3m가 넘는 높은 파도에 잠수정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아니. 이건 아니지. 왜 잠수정?]김 양이 출렁이는 목소리로 항의했지만, 가볍게 무시한 마루가 말했다.
[비행선은 즉시 공해로 올라가 최대 고도에서 대기.] [알겠습니다.]마루가 첫 목표로 잡은 곳은 웰밍턴 시, 해군 기지가 있는 노퍽 아래에 있는 항구도시였다.
[잠항한다.]하얗게 휘몰아치는 바닷속으로 작은 잠수정이 몸을 감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