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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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스트 [RUST]-429
높은 파도와 영하 20도에 달하는 추위도 물속에서는 상관없었다.
“잠수정을 이렇게 쓰네.”
김 양이 주억거렸다. 라이저 제약 애들이 쓰던 잠수정을 챙겼더니, 다 쓸 데가 있었다.
“근데 비행선으로 들어가지 왜 이렇게 먼 곳에서 잠수정으로 들어감?”
“해군 함정이 정박해 있다고 하니까 조심해야지.”
눈보라와 전파장애 때문에 레이더가 제 성능을 내지 못하겠지만, 방심은 금물이었다.
까마귀들이 제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환경이라면 모를까. 추위와 눈보라 속에서 함대공 미사일을 놓치기라고 한다면 비행선은 한 방 컷이지 않겠나.
“그럼 왜 굳이 여길? 여기 말고 다른 곳도 있었잖음?”
“항구도시를 공격해야 누가 공격했는지 모르지.”
뉴욕 국토안보국에서 비밀 실험실을 공격했다고 해서, 당장 뉴욕과 전면전을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같은 날씨에 전쟁을 시작하면 승패를 떠나서 피해가 막심할 테니.
“일으키면?”
“어쩔 수 없지 뭐.”
어쩌라고?
마루는 당당했다.
이게 다 혼자만 잘되자고 하는 짓인가?
아니잖아.
다 같이 살아보자고 하는 건데, 공격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그래서 식인귀들이 흡혈귀로 업그레이드하면? 그게 더 엿 같아지는 거 아니겠는가?
“뉴욕과 텍사스가 전쟁하는 동안, 놈들의 비밀 실험실만 날려도 뉴욕이 유리해져.”
시애틀에서 뽑아낸 정보에 의하면 놈들의 실험은 거의 완성 단계였다. 그러니 뭐든 해야지.
“식인귀도 그렇고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음.”
놈들의 목적은 지배종으로 올라서는 것이었다. 단순하게 지배종으로 오르는 게 목적이었다면 식인병이 창궐했을 때 식인귀가 됐을 것.
그러지 않고 계속 관련 연구를 하고 있었다는 건, 식인귀가 가진 단점을 없앤 더 완벽한 지배종이 되고 싶다는 욕구 때문이겠지.
[도착했습니다.]“좋아. 까마귀부터 보내.”
까아아악!
잠수정 해치가 열리고 까마귀 몇 마리가 날아올랐다.
눈보라 때문에 정찰 카메라 영상 품질이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대략적인 경계 태세는 확인할 수 있었다.
“이쪽이 텅텅 비었음.”
너무 비어서 함정이지 않을까 싶을 지경. 군함이 정박 중이니 해군을 믿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일단 텅 비어있었다. CCTV도 4m 넘게 쌓인 눈과 휘몰아치는 눈보라로 먹통으로 보였다.
김 양이 개꿀이라는 표정으로 엑소슈트를 장비했다.
[이거 금방 끝나겠음.]“좋아. 목표는 8번가 표시된 빌딩이다. 눈보라가 그치기 전 작전을 완료한다.”
위험을 무릅쓰고 이런 날씨를 왜 기다렸겠는가? 이걸 노렸기 때문이었다.
“출입구 1개만 남기고 나머지는 전부 폭파한다. 침투와 폭파를 우선으로 해.”
[알겠음.]같이 이동하면 마루가 전위 김 양이 뒤에서 원거리 저격으로 합이 좋았지만, 마루가 자유자재로 살기를 쓸 수 없다는 단점이 생겼다.
“살기를 써야 할지도 모르니까 따로 가자.”
마루의 전투력을 최대로 활용하려면 따로 움직여야 했다. 마루 단독, 김 양 단독, 친위대 5명 1팀으로 2개 팀이 백업으로 지원. 총원 12명이 항구도시 한쪽으로 스며들었다.
까아아악!
까마귀들이 숙련된 정찰비행을 시작했다. 저공비행, 근접비행을 해가며 최대한 외부 상황을 카메라로 연동했을 뿐 아니라, 중간중간 중계기를 박아 통신망을 구축했다.
[잘했어.]까악-
까아아악-
마루도 칭찬할 정도로 완벽한 일 처리, 사람이 했다고 해도 될 만큼 까마귀들은 밥값을 했다.
눈보라 때문에 은신이 약간 불안정했지만, 반대로 눈보라 때문에 발자국이 금방 지워져, 벽 타고 건물 타지 않아도 됐다.
[도착했음. 그런데 2층이랑 3층에도 경비가 많음.]김 양이 먼저 도착해 보고했다.
1층과 2층 절반 정도 눈에 묻혔는데, 경비원이 많다? 이건 이상했다.
[걸린 거 아님?] [걸렸으면 사이렌 울리고 그랬겠지.]마루는 일단 빌딩을 타고 경비원이 적은 4층으로 올라갔다.
스그그극- 한쪽 구석을 뚫고 들어가자, 4층을 경계하는 경비원들이 보였다.
2~3층보다 숫자는 적었지만, 4층도 경비원이 상시 경비하고 있다는 건 확실히 이상했다. 각층 마다 이렇다는 건, 일반적이지 않았다.
‘정보가 샜나?’
작전 전후로 사이코메트리를 이용한 보안을 강화했다. 그러니 정보가 샜을 리는 없는데···. 4층으로 유인한 뒤 김 양이 2층으로 진입해 지하로 내려가면?
이대로 강행한다고 생각하니 느낌이 좋지 않았다. 마루는 이런 느낌을 무시하지 않았다.
시설의 방어 시스템을 모르니, 성공을 확신하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이대로 퇴각하는 것도 아니었고.
쯧-
마루는 즉석에서 계획을 바꿨다. 바로 사무실 안쪽으로 진입해 인터넷 케이블을 확인했다.
칙-
‘선이 살아있군.’
선이 살아있다는 건, 망을 쓰고 있다는 이야기. 빌딩에서 인트라넷을 돌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방법이 있었다. 해킹 장비를 망에 꽂은 마루가 뚫고 들어간 흔적을 지우고 밖으로 나왔다.
[인트라넷에 해킹 장비를 설치했으니 확인.] [확인했습니다.]잠수정에 있는 후드가 해킹을 시작했다.
[건물 내부 CCTV 확보했습니다.] [건물 예상 도면 올립니다.] [지하실험실 평면도 확인했습니다.]실시간으로 전해지는 정보가 HUD에 쌓였다.
[자폭 장치 발견했습니다. 이건···.]후드가 말을 줄였다. 건물에 폭탄이 설치되어 있었다.
실험실을 폐쇄하는 자폭 설비 외에 폭탄이 추가로 설치된 것.
[함정입니다.] [아니. 함정이 아니다.] [추가 폭탄이 있는데 말입니까?] [지하 CCTV 화면을 봐. 연구실은 정상적으로 운영 중이야.]단순한 함정이었다면 비밀 연구실은 비어있었겠지.
‘공격받을 것을 알고 있었다?’
최악은 사이코메트리에도 걸리지 않는 끄나풀이 있다는 것이고 그런 끄나풀이 없다고 하더라도 문제였다. 놈들이 이쪽의 행동을 예측하고 대비했다는 뜻이니까.
[자폭 장치를 이쪽에서 터트릴 수 있나?]그게 된다면 들어갈 필요 없이 바로 날려버리면 그만이었다.
[독립 회선으로 작동하는 것이라 어렵습니다.] [경비 병력을 전부 옥상으로 모으는 것은?] [가능합니다만, 그 경우 해킹이 발각됩니다.] [일단, 자폭 장치와 연결된 독립 회선 위치를 알려줘]마루는 자폭 장치와 연결된 회선을 끊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무장 경비대를 전부 옥상으로 집결시킨 뒤, 엘리베이터를 멈춰버려. 차단벽도 내려서 경비대를 옥상에 고립시킨다.] [알겠습니다.]마루와 후드의 대화를 듣고 있던 김 양이 말했다.
후드의 해킹을 이용하는 것으로 작전을 변경한 마루가 지시했다.
[해킹으로 무장 경비대를 봉쇄할 테니까, 너는 바로 지하실험실로 내려가서 자리 잡고 입구 1개만 남기고 전부 봉쇄해.] [알겠음.]후드가 해킹으로 무장 경비대 전원을 옥상으로 호출했다. 100명에 육박하는 병력이 건물 옥상으로 향했다.
“비상사태. 옥상으로 집합.”
“적이 옥상으로 온답니까?”
“닥치고 옥상으로 올라가!”
경비대가 옥상에 오르자마자, 엘리베이터가 정지되고 차단벽이 내려갔다. 완벽하게 옥상에 갇혀버린 꼴. 후드가 통신을 제어했기 때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마루와 김 양은 그 틈을 타, 지하 연구소로 침투했다.
[자폭 회선은 어느 쪽에 있지?] [안내 시작합니다.]마루의 HUD에 평면도와 화살표가 표시됐다. 마루가 자폭 회선을 끊으러 들어가는 동안, 김 양은 통로를 정리했다. 한 곳을 제외한 통로에 전부 폭탄을 설치한 김 양이 확인했다.
[폭탄 설치 완료.] [자폭 회선 끊으면 바로 통로 폭파해.] [알겠음.]쿠지지직-
자폭 회선이 지나가는 벽면을 절단한 마루가 외쳤다.
[지금.]3. 2. 1.
[폭파.]쾅. 쾅. 콰아아앙!
폭발로 1곳을 제외한 외부 출입구가 모조리 막혔다. 하나 남은 출입구 앞에 자리 잡은 김 양이 은신 장치로 몸을 숨긴 채 대기했다.
“폭발이다!”
“경보는? 경보가 왜 안 울리고 있어?”
“이쪽 통로가 막혔어!”
“무슨 일이야?”
요란한 폭음에 우왕좌왕 복도를 헤매던 연구원들의 머리통이 폭죽처럼 터지기 시작했다.
투투둑-
철컥-
투투두두둑-
철컥
12.7mm 총탄이 무자비하게 복도를 휩쓸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비밀 연구소 중앙통제실은 벌집을 쑤신 것처럼 난리 났다.
“경비대는 어디 있어?”
“옥상에 있습니다.”
“거기서 뭘 하는 거야! 지금 연구실이 공격받고 있는데!”
“통신이 안 됩니다. 재밍(Jamming)입니다.”
“지랄하지 말고. 다시 확인해. CCTV는?”
“먹통입니다.”
“CCTV가 먹통이라고? 야! 이 병신 새끼야! 그럼 해킹이잖아!”
“인트라넷인데 무슨 해킹입니까?”
중앙통제실장과 경비과장이 충돌했다.
“지금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위에서 내려온 지침대로 자폭해야 합니다.”
“씨발. 그래 해군! 항구에 정박한 군함 있잖아. 거기 긴급 지원 요청해!”
“통신이 안 된다니까요. 지금 경비대와도 연결이 안 되고 있습니다.”
“비상 회선으로 돌려. 사이렌. 외부 사이렌이라도 울리고 사람 보내라고!”
“안 먹힙니다.”
“비상 탈출 신호는? 수동으로 돌리면 되잖아. 탈출 경보 울려.”
중앙통제실. 경비과장과 통제실 요원들이 팝콘 튀듯 튀는 동안, 한 남자가 기폭장치를 꺼내 들었다.
“야. 너 왜 그래? 그거 내려놔.”
“이미 늦었습니다. 놈들이 시스템을 해킹했다면 자료가 빠져나갈 겁니다.”
“야. 죽고 싶어? 그거 터지면 우리 다 생매장이야.”
“적들도 생매장이겠죠. 명령입니다.”
“명령? 누가 명령을 해. 긴급 탈출 신호 울렸으니까 사람들 나갈 때까지 기다려야 할 거 아니야?”
“이미 늦었습니다. 놈들을 잡으려면 지금 터뜨려야 합니다.”
무기질적으로 대답한 사내가 크릭- 기폭장치를 눌렀다.
“이 개새끼야!”
“······?”
“······.”
폭탄이 터지지 않았다. 유선 기폭장치라서 오류가 뜰 리 없는데?
크릭- 크릭-
다시 눌러봐도 터지지 않는 폭탄.
“저 새끼 잡아!”
“이미 늦었습니다. 놈들을 잡으려면 지금 터뜨려야 합니다.”
주변에 있던 직원들이 남자를 찍어 눌렀다.
“미친 새끼!”
“어? 어! 이 새끼 이상한데?”
“이미 늦었습니다. 놈들을 잡으려면 지금 터뜨려야 합니다.”
“야-! 너-?”
“이미 늦었습니다. 놈들을 잡으려면 지금 터뜨려야 합니다.”
그 모습을 본 누군가 중얼거렸다.
“···강제지배?”
“세뇌···?”
중앙통제실에 있던 요원들이 일순간 조용해졌다.
시애틀과 피츠버그에서 연구한다던 실험체의 반응과 너무 똑같았다.
중앙통제실 요원을 강제지배했다고?
혹시 여기 있는 다른 누군가도 이미 실험체가 된 건 아닐까?
“빌어먹을.”
“이미 늦었습니다. 놈들을 잡으려면 지금 터뜨려야 합니다.”
“블러드 서커(Blood Sucker) 프로그램 실험체 전부 풀어. 명령어는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침입한 적들의 말살.”
“실험체 사용은 상부의 허가가 필요합니다.”
“아직 통제가 확실하지 않습니다.”
“상부는 얼어 죽을···. 통신이 끊겼잖아. 일단 풀어.”
“위험합니다.”
“지금 폭탄 터지고 있는 판국에 뭐가 더 위험해? 실험체에 행동 목표만 지정하고 풀라고. 자폭하라고 강제지배도 했는데, 누가 또 미친 짓 할지 어떻게 알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있는 게 더 위험해.”
“······.”
“······.”
“지금은 비상사태라고! 실험체 투입해! 너도 강제지배 당했냐? 세뇌됐어? 판단이 안 서?”
“아닙니다. 실험체 투입합니다.”
1급 경계령을 내리더니, 강제지배로 자폭 준비를 시켜?
위에서는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블러드 서커 실험체 2기 구속제어 풀었습니다. 명령어는 수단 방법 무시하고 침입자 말살.”
경보음과 함께 실험체, 블러드 서커 프로그램이 풀려났다.
“으아아아- 여기! 이쪽이다!
“열렸다. 열렸어!”
“4번 통로가 열려있어.”
“도망쳐!”
모든 출입구가 무너지고 단 한 곳 열려있는 통로를 향해 모여드는 연구원들을 향해 12.7mm 철갑탄이 쏟아졌다.
투두두두둑-
퍽- 퍼퍼퍼퍽-
머리통이 날아가고 팔다리가 뜯겨나가는 모습.
일직선 통로인지라 사선에 겹쳐진 자들이 순식간에 고깃덩이로 변함에도 연구원들은 불나방처럼 통로를 향했다. 마치 무언가에 쫓기듯이.
‘뭐임?’
김 양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 순간 느껴지는 불길함. 마루와 단련했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미묘한 감각에 따라 그녀는 미리 방아쇠를 당겼다.
투두두두둑-
퍼퍼퍼퍼퍽!-
마치 백정 같은 움직임.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듯한 무언가가 김 양의 HUD에 잡힌 것은 총을 쏘고 난 뒤였다.
홀딱 벗은 남자와 여자가 도망치는 연구원들의 목과 팔을 물어뜯는 것과 동시에 김 양의 쏜 총탄이 그 일대를 휩쓸었다.
12.7mm 철갑탄이 헤집고 지나간 자리.
털썩-
철푸덕-
여기저기 뜯기고 찢긴 고깃덩이가 쓰러졌다.
꿈틀–
■▬■▬
‘응?’
가늘어진 김 양의 눈초리에 보인 작은 움직임.
피바다가 된 복도에서 기괴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꾸르르륵-
꾸지지직-
바닥을 흥건하게 적신 피가 어디론가 빨려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