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43)
러스트 [RUST]-43
김 양은 분노했다.
딱 한 모금 마셨는데 속에서 천불이 나는 것 같았다. 이딴 술을 밥 먹기 전, 빈속에 마시다니 저년도 정상은 아니었다.
김 양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홀짝홀짝 독주를 마셔대는 샬롯 사장을 슬쩍 꼬나봤다. 눈이 마주치려는 그 순간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눈이 마주치는 것을 피하고는 모르는 척, 아닌 척했다.
‘아주 눈이 마주치나 봐라.’
밥 먹는 데 얹혀라, 소화불량에 걸려라, 짜증으로 쌈 싸 먹어라. 김 양의 저주와는 달리 그녀는 너무나도 우아하게 잘만 먹었다. 오히려 짜증 스텍이 김 양에게 쌓이기만 했다. 이름하여 욕·구·불·만!
‘이게 뭐니? 간만 보라는 거니?’
음식은 맛있었다. 먹어보지 못했던 프랑스의 맛? 그럼 뭐하나? 풀떼기는 포크 두 번 하면 없고, 죽? 스프? 그런 건 세 숟가락 푸면 없고 심지어 스푼도 작았다. 빵은 깁스한 퉁퉁한 손가락 2개 크기에, 고기라고 하는 건 손바닥 크기의 반절, 생선도 살만 튀겼는지 구웠는지 맛은 있다만 엄지발가락 크기에 장식만 화려한, 전부 이따위였다.
그렇게 접시랑 포크랑 스푼인지 수저인지만 졸라게 쓰고, 먹는 거 구경하다 먹다 만 것 같은 식사가 끝났다.
김 양은 이제 기분 나쁜 살기를 느끼지 못했다. 김 양이 살기를 뿌리고 있었으니까. 자기에 대한 정보를 안다면서 이따위 대접을 했다는 건, 뭐 하자는 건가? 싶었다. 그러니 김 양도 감추고 있던 짜증과 분노를 아낌없이 표출했다.
근데 그걸 어떻게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샬롯 사장은 덤덤한 미소로 받아넘겼다. 관광버스로 쳐도 여럿, 삼도천 관광을 보낸 김 양의 살기를 웃어넘기는 것으로 보아, 확실히 일반인은 아닌 느낌이었다.
“그래서, 저를 왜 보자고 하신 거죠?”
애매하게 먹다 말은 느낌에 짜증이 충만한 김 양이 최대한 좋게 말했다.
“월드에서 퇴사했다고 들었어요. 홍 과장을 아웃시켜버리고 그랬다는 소문이 돌던데, 사실인가요?”
김 양이 미간에 살짝 주름이 잡혔다. 뒷덜미에 겨눠진 사시미가 떠올랐다. 왼쪽 등판에 박힌 사시미, 아작 난 오른팔, 얼굴에 칼이 꽂힌 채 뭔가 말하려고 했던 홍 과장. 그리고 한 발의 총성. 순식간에 지나간 장면들.
“······.”
“그렇군요. 그럼 월드에서 계속 덮고 있는 사건들도 사실이라는 소리군요. 월드 축산 화재를 비롯해 월드 엔터에서 영화 촬영 중이라고 했던 것도 사실은 그쪽 작품이라는 소리겠네요.”
“······.”
김 양은 침묵했다. 회사에서 뒤처리해줬을 때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일들이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그런 김 양의 생각을 이해라도 한 듯,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야기는 그쯤하고, 제안을 하나 하고 싶어서 초대했어요.”
“······.”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죠. 제 직속으로 들어오세요. 다른 사람 말 들을 필요 없이, 제 말만 들으면 됩니다. 모든 편의와 대우는 전에 받던 것보다 2배 더 해드리죠.”
“······.”
김 양은 일단 입을 다물었다. 계속 입을 다물고 있으면 상대방의 끝이 나온다고 배웠다. 그리고 그건 경험이었다. 김 양의 침묵을 뭐라고 해석했는지 이야기가 계속됐다.
“월드에서 추적하니, 그걸 피해 호텔 샬롯으로 온 거 아닌가요? 크리스털 쪽은 월드 때문이라지만 김 양과 악연이 깊고, 다른 일반 호텔들은 정보가 바로 월드로 넘어갈 테니, 샬롯 호텔로 온 거 맞죠? 어때요? 이참에 제 품으로 들어오시는 게. 호텔 샬롯이라면 김 양의 쉴 자리만큼은 만들어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
그래도 김 양이 침묵하자, 샬롯 사장도 같이 침묵했다. 침묵한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뭐. 지금 이 침묵을 거절이라고 생각해도 될까요?”
사장의 말과 함께 사방에서 옥죄어 오는 살기. 김 양이 팔찌형 기폭제어 장치를 찬 손을 살포시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자꾸 이러시면 알라 님, 만세 해버립니다.”
“네?”
사장은 김 양의 말에 순간 벙쪘다. 뜬금없이 ‘알라 만세?’ 이게 무슨 말이지? 도도한 표정이 무너지며 순간 당황했다. 김 양은 어쩐지 뿌듯했다.
“알라후 아크바르 해버린다고요.”
“네?”
이건 갑자기 뭔 소린가 고민하던 사장의 얼굴색이 변했다. 그걸 본 김 양이 ‘이게 바로 그 유명한 그겁니다.’라는 표정으로 팔찌형 기폭신관을 찬 팔을 이것 보라는 듯 쭉 내밀며 말했다. 괜히 무거운 걸 바리바리 싸 들고 다녔겠는가? 다 이럴 때를 위한 애들이었다.
“제가 죽거나, 다치거나, 아프거나, 스트레스받거나, 갑자기 잠들거나 그래서 바이탈이 흔들리면 자동으로 이 호텔과 함께, 우리 모두 통째로 알라 님께 가는 겁니다.”
살려고 찌질하면 뒈지고, 뒈지든지 말든지 까면 산다고. 목숨이 소중하지만. 살고 싶지만. 그러니까 같이 죽자. 쫄리면 손 떼시고. 김 양은 쫄렸다. 그러니까 같이 쫄고 서로 손 떼자.
“······.”
“······.”
사장과 김 양이 서로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옥죄던 살기가 씻은 듯 사라졌다. 살기가 사라진 공간에 당혹, 당황, 불안이 스며들었다.
“이거. 정말 인상적이네요. 다시 부탁드리죠. 제 직속이 되어주지 않겠어요? 저도 요즘 정말 힘들답니다. 친인척들이라고는 뇌와 배에 기름만 껴서 아직도 정신 차리지 못하네요. 요즘엔 피를 보고서라도 제 호텔과 건설을 뺏으려고 하고 있거든요. 어쩌겠어요? 피를 보겠다는데, 그러니 저도 잘 드는 칼이나 잘 나가는 총을 곁에 둬야죠.”
“······.”
김 양은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그 한결같은 침묵을 심은영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겠는가?
“하- 알겠어요. 그럼 그건 거절로 알지요.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체크 아웃 전까지 의뢰 하나만 해도 될까요?”
“무슨 의뢰 말씀이신가요?”
일단 내용을 알아야 하든 말든 하지, 코 꿰이는 건 무조건 피해야 했다. 잘못 엮였다가 백정이 ‘그래? 그럼 날 엿 먹인 거네?’ 하고 칼 뽑는 엔딩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면 피해야 했다. 무조건.
“만에 하나라도 김 양이 체크 아웃 전에 유혈 사태가 발생하면 이쪽 편에 선다는 것, 그 정도 의뢰라면 받아 줄 수 있지 않나요?”
김 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야 뭐, 돕다가 아니다 싶으면 튀면 되는 일이니까. 용병의 양심? 난 용병이 아닌데? 그래도 받은 만큼은 좀 해주면 되는 거니까.
“일단 선수금으로 이만큼···.”
그녀가 손을 들자, 스르륵 문이 열리며 도톰한 서류 가방을 든 사내가 들어와 공손하게 가방을 올려놓고는 인왕상처럼 그녀의 뒤에 섰다.
툭-툭- 잠금장치가 풀리고 가방이 열리자, 엔화 뭉치와 금괴 2개가 들어있었다. 1kg짜리 금괴였다. 합하면 못해도 3억? 아니, 4억?
김 양의 표정이 환해졌다. 김 양의 표정을 본 사장의 얼굴에도 미소가 피어올랐다. 두 여자는 합의에 도달했다.
김 양이 묵직한 가방을 들고 흥흥 객실로 올라간 후, 여자의 뒤에 시립 한 사내가 말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여자가 픽-하고 웃으며 답했다.
“안 괜찮으면요? 여차하면 다 함께 알라 한다잖아요. 지금 상황에서 호텔보다 더 안전한 곳을 찾기도 어려운 일이고 말이죠.”
“······.”
사내라고 뾰족한 수가 없었다. 스치기만 해도 알라 만세 하겠다니. 난생처음 겪어보는 사태에 사내도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뭐- 그래도 김 양이 월드에서 나왔다는 것. 우리가 눈독 들이던 인재들을 쏙쏙 빼가던 홍 과장이 아웃 됐다는 것. 그리고 월드도 예전 같지 않다는 것. 이 세 가지를 알았으니, 오늘 성과는 좋았네요.”
심은영이 독한 술을 홀짝였다. 차가운 술이 목구멍을 넘어가며 식도를 불태웠다. 갑갑한 속을 활활 태운 향기가 날숨과 함께 밖으로 나와 코끝을 간질였다.
“김 양과 같이 묵은 사람들 있죠? 아마 김 양을 서포트하는 사람들일 테니, 그쪽까지 합해서 이벤트에 당첨됐다고 하세요. 3박 4일 무료 숙박 이벤트. 일단 며칠 더 쉬어도 되겠는데? 이런 생각이 들도록 서비스 팍팍 넣어주고 보죠. 위는 어때요?”
“예상하신 대로입니다. 그룹 본사에서 월드 측과 만남이 잦다고 합니다.”
어쩌면 그렇게 생각하는 게 꼭 그런 쪽으로만 돌아가는 건지, 건설까지만 받고 끝내려고 했는데, 이제는 그룹을 분할 하든지, 아니면 그룹을 장악해야 할 상황까지 만들고 있었다. 목숨을 노렸으면 목숨이 날아갈 각오도 했겠지, 친인척이라 최대한 피는 보지 않으려고 했건만···.
“월드랑 붙었다는 건, 우릴 무력으로 처리하겠다는 소리죠?”
“그렇습니다. 월드가 생각보다 빨리 움직이고 있습니다. 제주에서 은밀하게 대기하고 있던 시게미노 마사유키상과 우에노구미 조직원들이 당했습니다.”
손톱으로 테이블을 톡톡 치던 심은영이 전화기를 들고 어딘가 연락했다. 잠시 뒤, 전송된 동영상.
순식간에 제압당한 뒤 무릎과 인대가 박살 나는 모습.
찢어지는 비명
앤드 스탬핑
앤드 사커킥
목이 꺾여 죽은 남자.
그리고 그렇게 죽은 남자를 보며 근성이 없다느니, 소녀 슛이었다느니, 설레발이 치는 김 실장의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었다.
“이 사람이 그 김 실장이라는 사람이군요.”
“그렇습니다.”
하- 심은영이 눈을 감았다. 시게미노 마사유키, 일본에 있는 방계다. 따지자면 방계의 방계 정도 되는 사람이었지만, 어쨌든 자신의 요청에 응해 한국에 들어온 사람이었다. 근데 그런 사람이 저렇게 놀림당하듯 죽다니.
이쪽 세계에서는 체면이라는 게 있었다. 서로 적당히 체면은 차려주는 선에서 정리하는 것. 근데 월드에서는 그딴 거 신경 쓰지 않겠다는 듯 나왔다. 심지어 여유가 있음에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다 죽였다. 그건 생포할 생각 따윈 없다는 의미였다.
샬롯 그룹의 규모를 생각하면 월드가 저렇게 쉽게 죽일 수는 없었다.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저런 식으로 죽이는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죽였다는 것은, 위에서 합의됐다는 말이었다. 결국, 이 영상은 샬롯 본사가 월드랑 붙어먹고 자신을 제거하려고 한다는 증거밖에 되지 않았다.
“저쪽을 우리 단독으로 막을 수 있나요?”
“호텔과 건설의 보안팀을 모두 모으고, 일본에서 피신해 온 구미원들을 동원하면 방어는 가능하겠지만, 그 후가 문제입니다.”
“그렇겠죠?”
방어로 끝나면 계속 깎아 먹힐 뿐이었다. 월드 쪽을 막는다고 해도 이쪽의 피해가 크면 본사에서 득달같이 어부지리를 취하려고 할 게 뻔했다. 새삼 월드를 단독으로 흔든 김 양이 대단해 보였고, 잡지 못해 아쉬워졌다.
“방계의 방계라지만 이쪽 사람인데, 복수는 해줘야겠죠?”
복수도 못 한다면 면이 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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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공장단지, 안쪽으로 들어가자 낮에도 어둑한 공장 창고가 나왔다.
여기저기 녹슨 창고, 텁텁한 붉은 색으로 얼룩진 창고에서는 비릿한 철 냄새가 흘러나왔다.
끼이익!
녹슨 경첩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 깊은 곳에서 소리가 흘러나왔다.
우웨에에에에엑!
끄윽
꺼억
우웨에에에에엑!
피 냄새와 분비물 냄새가 뒤섞인 어둠 저편을 향해 걷는 막내의 발걸음이 무거웠다.
“어. 막내 왔어?”
한 남자의 입에 깔때기를 꽂아 넣은 이 실장이 막내를 보고 손을 들었다.
“야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분위기 파악 못 하고 물에 똥 푸는 새끼, 자기가 좋아하는 똥을 먹여 주겠다는데, 제대로 처먹지도 않네. 이거 똥 먹이기가 왜 이렇게 힘드냐? 인수인계는 잘했고?”
“예. 팀장님.”
이 실장은 다른 직원에게 작업을 계속하라고 고갯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그래 막내야 김 실장 보니 어떻든, 아직도 손부터 먼저 나가든?”
“아닙니다.”
“그래? 김 실장 그놈이 뭔 일이래? 트집 잡지도 않았고?”
“예.”
막내가 즉답하자 이 실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위이이잉
위이이잉
“예 전화 받았습니다. 이기영 실장입니다.”
[나 최 전무야. 분탕질 치는 새끼들 아직도 해결 못 했나?]“지금 좋게 이야기하고 있으니, 금방 끝날 것 같습니다.”
[좋게? 금방? 그게 그렇게 시간 질질 끌 일인가? 후딱 공구리 쳐서 끝내버리고 애들 데리고 부산 내려가.]이 실장은 올라가는 혈압을 간신히 눌렀다.
공구리 치면 빨리 끝나는 걸 누가 모르나? 문제는 요즘 같은 시대 유명한 셀럽 같은 사람을 실종시켜 버리면 의혹이 커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시간을 들여 몸에 공포와 절망을 새겨 넣는 중인데, 다 때려치우고 공구리?
콘크리트 쳤다가 문제가 생기면? 공구리 친 놈 책임이고? 이 실장은 이제 최 전무가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이런 일을 하더라도 ‘적정선’이라는 게 있는 법이었다. 올라오는 것을 꾹 참은 이 실장이 최 전무에게 말했다.
“부산이요? 그 마루라는 사람 찾으라고 하셨던 건 어떻게 합니까?”
[그걸 내가 말해야 알겠나? 부산에 갔다 와서 찾으면 될 거 아닌가?]에이 씨발 진짜.
이름도 거지 같은 새끼를 찾으라고 해 놓고, 김 양을 잡으라고 하더니, 김 양은 됐으니까 김 실장에게 넘기고, 그 새끼를 빨리 찾으라고 했다. 그래서 좆 같아도 찾아야지 하고 있는데, 갑자기 똥을 치우라고 한다. 진짜 씨발 꾹 참고 똥 치우고 있었더니, 이제는 뜬금없이 부산에를 가란다.
아무리 지 좆대로 한다고 하지만 정도가 있지. 인내에 한계가 오고 있었다.
[부산에 있는 샬롯 호텔에 사장 심은영이 있어. 그년의 머리를 가져와. 그러면 바로 과장 자리를 내주지.]“예? 샬롯 호텔 사장의 멱을 따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