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432)
러스트 [RUST]-432
“크윽- 크- 1급. ㅂ1ㅋㅂ 비-”
살기에 내성이 없는 걸 보니 식인귀가 아니었다.
마루는 살기를 갈무리했다. 도망치려고 했던 놈들 전부 엎어지고 주저앉아, 공포에 잠식된 표정으로 마루를 보고 있었다.
“크허어어억- 1급. 1급 경계경보가 있었습니다.”
[그래서.]“연구소를 허헉- 공격할 수 있는 세력으로 국토안보국- 연방수사국- 해병대 특수작전부대 흐흐헉- 그리고 블라디마루 칼린이 있다고. 하학- 관련 자료가 있었습니다.”
[자료?]“블라디마루 칼린이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소리. 총소리가 없었으니까요. 뭔가 써는 소리만 있고 총성이 없다는 건, 다른 기관에서는 할 수 없는 방법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저도 봤습니다. 일본에서 전투 기록.”
마루의 눈이 가늘게 변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누가 습격하는지는 몰랐지만, 습격 자체는 확신하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어떻게 그랬을까?
[그 보냈다는 자료는 어디에 있지?]“중앙통제 시스템에 있습니다. 후윽-”
[가져와.]가져오라는 말에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은 사내가 고개를 돌렸다.
그 시선의 끝에 펼쳐진 중앙통제실의 광경. 쏟아진 소화 분말과 할론가스, 스프링클러 액이 뒤섞여 엉망이 된 장비들이 있었다.
“보시다시피 저래서 어렵습니다. 게다가 자동 백업 시스템도 해킹으로 날아갔고, 통제 시스템을 살리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하- 좋아-]뭐 진실인지 아닌지는 끌고 가서 사이코메트리 돌리고, 뇌둥둥 정보추출기로 뽑아보면 알겠지. 마루는 태연하게 받아들였다.
모조리 쳐 죽일 것만 같았던 블라디마루 칼린이 예상과 달리 덤덤하게 이해하자, 사내가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저···지금 당장 이곳에서 탈출해야 합니다.”
[······.]“이상 사태를 위에서 알게 되면 자폭 장치를 가동할 겁니다.”
[어떻게?]통신은 차단됐고, 격발기와 연결된 선도 물리적으로 절단했다.
그런데 자폭이라고? 마루는 계속해보라고 기다렸다.
“세뇌인지, 지배인지 모르겠지만, 위에서 내려온 명령이라면서 자폭 장치를 누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자폭 통제를 위해 지배나 세뇌를 쓰다니, 대단한 윗선이었다.
“어떤 이유인지 폭탄이 터지지는 않았지만 말입니다. 위에서 자폭을 통해 적들을 잡으려는 계획을 세웠다면 복수 이상의 폭파방법을 썼을 겁니다.”
[그래서 화재진압 시스템을 이용한 건가?]혹시라도 자동 폭파 시스템이 작동되지 못하도록? 자동 화재 대응 시스템을 역이용해서?
“예? 예.”
[실험체도 제압하면서 자연스럽게 빠져나가려고 했던 거군.]실험체를 막기 위해 화염방사기를 사용하고, 화염방사기를 통해 실험체를 견제하면서 동시에 통제 시스템에 있을지 모르는 자폭 시스템을 무력화시킨다는 발상이었다.
그렇게 해서 폭파에 휘말리지 않은 것과 실험체를 피해 도망칠 수 있었던 것을 설명할 수 있게 됐다.
[아닌가?]“예. 맞습니다.”
사내는 블라디마루 칼린에 대한 평가를 다시 내렸다. 그냥 괴물 같은 칼잡이가 아니었다. 어떤 상황이고 무엇을 의도했는지 단박에 요점을 파악하고 있었다.
이거. 그냥 뇌둥둥으로 갈아버리는 건 좀 아까운데?
[8 드론으로 지하 2층까지 확인했는데, 전부 열려있음.]김 양이 드론으로 지하 2층까지 확인했다고 전해왔다. 4 드론을 탑재했던 전용 엑소슈트는 6기를 넘어 이제는 8기의 드론을 운용할 수 있었다.
[1층 차단벽 내려간 곳 말고는 전부 확인 완료.] [잘했다.]마루의 말에 흐응- 살짝 콧소리를 내는 김 양이었다.
[출구 막아 버리고 바로 중앙통제실로 와. 이쪽에 비상 탈출구 있다. 거기로 나가게.] [알겠음.]잠시 뒤 쿵-하는 낮은 폭파음이 들렸다. 경쾌하게 울리던 끼융끼융 소리가 실험체 시체를 밟는 소리로 변하더니, 중앙통제실 철문 앞에 선 김 양이 말했다.
[어- 여기 틈이 너무 좁아서 들어갈 수 없는데?]살기에 맞고 시간이 지나서인지, 바닥에 널브러졌던 자들이 엉거주춤 일어섰다. 중간에 간혹 심장마비로 영 가버린 사람이 몇 있었지만, 대부분 비틀거리면서도 몸을 일으켰다.
[문에서 비켜.]부카카칵-
실험체들이 손으로 잡아 뜯었던 철문이 깔끔하게 잘려버렸다. 그 어이없는 모습에 간신히 일어섰던 자들 가운데 몇몇이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다시 주저앉았다.
[오- 저것들은 왜? 식인귀는 전부 죽이기로 했잖음?]질퍽- 끼융- 소리와 함께 안쪽으로 들어온 김 양이 뿌연 가스 건너편에 있는 자들을 보며 물었다.
마루의 대답에 고개를 갸웃한 김 양이 말을 아꼈다.
[정박하고 있던 순양함이 이상합니다.] [전투태세로 전환했는데, 항구 밖으로 나가지는 않고 있습니다.]마루가 반사적으로 대응했다.
[비상 탈출구! 어디야. 빨리!]비척거리던 자들이 일렬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서버실 안쪽에 있는 비상구로 들어가자 깊고 어두운 통로가 이어졌다.
“무슨 일입니까?”
[당신이 말한 위에서 이중삼중으로 준비했더군. 해군이 움직였어.]“예? 해군이요?”
[그래. 항구에 정박하고 있던 순양함을 쓸 모양인 것 같다.]동시에 강력한 충격으로 통로가 흔들렸다. 함대지 미사일이 건물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후드와의 통신은 비상통로로 들어서는 순간 끊겼기에 밖의 상황이 어떨지 몰랐다.
[앞 빨리 가. 빨리-]“다들 빨리 움직여! 어서!”
마루와 사내가 사람들을 재촉했다. 거의 500m는 될 법한 좁은 통로를 거쳐 밖으로 나오자, 반겨주는 것은 얼음덩어리였다.
4m 가깝게 쌓인 얼음에 막힌 천장을 보고 사람들은 망연자실했지만, 여기엔 마루가 있었다. 얼음 따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쿠드드득-
얼음 조각사가 얼음을 조각내듯. 마루는 계단 형식으로 얼음을 파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칼질에 드러나는 속살. 단단한 얼음에서 밀도가 높은 눈으로, 단단하게 뭉친 눈이, 포슬포슬한 눈더미로 바뀌기 시작했다.
밖에서 들리는 폭발음. 끊이지 않고 터지는 소리와 붉은 불꽃이 하얀 눈 건너편에서 울려댔다.
[작정했네.]작정했어.
순양함 한 척이 낼 수 있는 화력이 아니었다. 최소한 5척 이상의 함선이 동시에 미사일을 쏟아부었을 법한 화력이었다.
[드론으로 밖의 상황부터 살펴봐. 중계기 하나 꽂고.] [알겠음.]8기의 드론이 흩어졌다. 김 양이 주변을 정찰하는 동안 마루는 탈출로에 폭탄을 설치했다. 그 모습을 본 사내는 혀로 입술을 축였다.
‘비밀통로를 폭파하려는 건, 혹시라도 이쪽을 통해 들어가 흔적을 찾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인가?’
좋지 않았다.
저렇게 꼼꼼하게 행동한다는 건. 증거를 남기지 않겠다는 뜻이니까. 만에 하나를 따지는 성격인 것 같은데···.
윙-윙-
그런 사내의 눈에 삼삼오오 뭉치는 부하들과 연구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미친 새끼들 전부 뒈질 생각인 건가?’
죽음의 기운을 생생하게 경험해서인지 고분고분하게 따랐던 녀석들이, 바로 근처에서 터진 미사일 폭격에 용기를 얻은 것 같았다.
연구원들은 미사일로 빌딩을 철거하고 있는 게 해군이라는 소리를 듣자, 똥 마려운 고양이처럼 슬금슬금 움직였다. 얼음과 눈을 뚫어 만든 터널 밖으로 나가려는 움직임.
“미쳤냐? 죽을 거면 너희들끼리 죽어. 병신 새끼들.”
“배신입니까?”
배신?
지금 이 마당에 배신?
조그맣게 거슬리는 윙-윙- 소리보다, 눈앞에서 개지랄 떠는 새끼의 주둥이에서 나오는 소리가 더 짜증 났다.
“야. 우리 탈출하지 못했으면 저기서 생매장당했어.”
“이게 전부 자폭하지 못하게 막은 탓 아닙니까?”
“뭐?”
“솔직히 말해서 아닙니까?”
“그러니까 자폭하겠다는 새끼 막지 말고 자폭했어야 한다?”
“자폭하게 두고 무너지는 틈을 타서 탈출했으면 놈들도 잡았을 거고 지금 이렇게 포로가 되지도 않았을 겁니다.”
역시 이 새끼들 이상했다.
완전히 세뇌된 건 아닌 것 같은데, 확증편향 같은 게 자리 잡았거나 최소한 충성심 같은 게 머릿속에 박힌 것 같았다.
‘전부 그런 건가?’
다행스럽게도 전부 상태가 이런 건 아니었다. 문제는 이렇게 좀 이상한 놈들의 행동에 이끌리고 있다는 사실.
불안하고 초조할 때 확신과 용기를 갖고 움직이는 사람은 리더처럼 보일 테니, 충성심 가득한 녀석들의 움직임에 동조하는 건 그렇다고 이해할 수 있었지만···.
생각이라는 게 있으면 이렇게 나오면 안 됐지.
“그래서 지금 밖으로 나가겠다고? 나가서? 공격을 이쪽으로 유도하겠다고? 제정신이냐?”
“신호탄 쏘고 사방으로 흩어지면 될 일입니다.”
“돌았냐?”
“역시 배신이군요.”
윙윙-
아까부터 신경을 거슬리는 작은 소리에 고개를 들자 보이는 손바닥 크기의 드론.
씨발.
[난 신경 쓰지 말고 계속해 보셈. 응. 흥미진진했음.]“······.”
“···들켰다! 뛰···.”
퍽- 퉁-
머리통이 날아가는 것과 낮게 억눌린 총성이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어느새 입구 저쪽에서 총을 겨누고 있는 엑소슈트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눈 터널 옆을 뚫고 나가려고 발버둥 치는 부하들, 연구원들의 모습도.
멈춰-라고 말하기도 전.
이 새끼들아 머리 박아-라는 말이 목구멍에서 나오기도 전.
낮게 깔린 소리가 먼저 들렸다.
퉁-투두두둑- 툭툭-
경고는 없었다.
멈추라는 소리도.
12.7mm 탄은 사선에 있는 모든 것을 박살 내고 불태웠다. 애초에 사람에게 쏘라고 만든 탄환이 아닌 특수탄인지라 스치고 지나가도 사망이 확정적이었다. 얼음과 흰 눈으로 이어진 터널이 삽시간에 붉게 물들었다.
[넌 왜 가만히 있음? 안 도망감?]아쉬운 듯한 김 양의 목소리가 조그만 드론에서 흘러나왔다.
“······.”
사내는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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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을 울리는 둔탁한 총성에 탈출로 안쪽 깊숙한 곳에서 폭탄을 설치하던 마루가 미간을 찌푸렸다.
드론 하나가 중계기 역할을 해서 교신하는 데 문제가 없었기에, 바로 상황을 확인하는 마루였다.
[발각됐나?] [아님. 여기 있던 새끼들이 엉뚱한 짓을 하려고 해서.]제법 머리가 잘 돌아가 보였는데, 밖으로 나갈 기회만 노렸던 건가?
마루는 입맛을 다셨다.
[통제실장인지, 경비대장인지 하는 그 사람도?] [···그 사람은 아니었음.]뭔가 아쉽다는 듯한 김 양의 목소리를 보아하니 그 사내는 쏘지 않은 것 같았다.
포로들이 탈출하려고 했으면 그 틈을 타서 모조리 죽일 줄 알았는데, 확실히 생각하고 쏘고 있었다.
[도망치려고 한 놈들만 죽였다는 거지?] [응.] [어떻게 알았어?] [드론.]따로 말하지 않았는데도 감시를 붙여 놨었나?
[잘했네. 그래서 포로는 몇이나 남았어?] [3명.]김 양과 이야기를 하던 중, 후드의 통신이 들어왔다.
[치이익- 해군이 배에서 내렸습니다. 수색조로 보입니다. 삐익-] [드론에도 잡혔음. 해군 수색대가 인근을 수색 중임.] [치이익- 항구 쪽으로도 병력이 이동 중이라. 잠수해서 피하겠습니다. 삑-] [위치를 정할 테니 그쪽에서 합류한다.]마루는 폭탄 설치를 마치고 입구로 향했다.
[놈들이 여기 비밀통로를 아는 것 같음.]드론 영상 속, 군인들이 넓게 포위해서 접근하고 있었다. 마루는 부비트랩과 폭탄을 연동시키곤 얼음을 파기 시작했다. 3~4분 사이에 푹푹 새로 터널이 만들어졌다.
지도와 드론이 찍은 상황을 고려해 쑥쑥 탈출로를 만들며 나갔다. 사내를 포함한 포로 세 명은 묵묵히 마루의 뒤를 따랐다. 맨 후미에 있는 김 양은 눈과 얼음 터널을 무너뜨리며 갔다.
30~40분 정도 들어갔을까?
수색대가 부비트랩을 건드렸는지, 연속해서 폭음이 터졌다.
쿵- 콰아앙- 쿠아아앙-
[수색대 전멸로 보임.]김 양의 보고에 마루는 열심히 목표한 곳을 향해 터널을 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친위대와 후드가 대기한 접선 장소에 도착했다.
[빨리 출발해야 합니다. 구축함이 주변을 돌기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