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435)
러스트 [RUST]-435
‘구축함을 나포하는 참 쉬운 방법.’이라는 제목을 붙였어야 할 영상에 사내는 전율했다.
정말 벼락이라도 맞은 느낌.
정수리부터 항문까지 차가운 전류가 수직으로 관통한 것만 같았다.
저게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인가?
사내는 비밀 연구소에서 연구하던 목록을 떠올렸다.
신인류가 추구하는 궁극적 목표가 블라디마루 칼린과 같은 경지라면, 무조건 해야 하는 연구였다.
근데 신인류의 약점인 욕구 제어 문제를 혈액 흡수로 막는다고 하더라도 저건 규격 외였다. 육체적인 능력이야 비슷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저 폭발적인 움직임도 가능할까?
단숨에 40피트(12m)를 넘나드는 기동성을 흉내 낼 수 있을까?
회의적이었다.
윗선이 원하는 결과는 밤피르(Dhampir) 사실상 뱀파이어(Vampire)였지만, 실험의 결과는 대부분 블러드 서커로 끝났다. 프로그램에 붙인 이름대로 갔다고 할까.
“······.”
“······.”
반반 가면을 쓴 여자를 돌아본 사내가 그녀의 반쪽 얼굴에 드러난 당혹을 알아챘다. 블라디마루 칼린과 같은 편인 여자도 구축함을 나포해 버리는 건 처음이었나 보다.
[구축함 2척이면 지금 오고 있는 1척은 잡을 수 있겠지?]마루의 말에 사내는 울컥했다.
‘잡을 생각하지 말고 나포를 하라고 나포를···. 20분이면 하는 나포를 왜 안 해?’
사내는 자기도 모르게 말할 뻔했다. 그런 그의 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반반 후드가 대답했다.
“지금 돌아오는 구축함도 나포하면 어떨까요?”
[생각해 보겠지만 이대로는 어려워. 그쪽으로 넘어가기도 힘들고, 여차하면 저쪽에서 선제공격할 가능성도 있고 최악으로는 여기에 입항하지 않고 바로 다른 곳으로 넘어갈 가능성도 있어.]나포하려면 최소한 20~30m 가까이 접근해야 하는데, 구축함정도급 배가 이렇게 가까이 붙을 때는 항구에 정박할 때 말고는 없었다.
무엇보다 저쪽이 선제공격할 가능성도 무시하기 어려웠다. 그러니까 이쪽이 나포됐다고 생각하고 저쪽에서 어뢰를 쏴버리면 이쪽은 정박해 있는 터라, 그냥 처맞고 침몰이었다.
“설마 그럴까요?”
[여기 연구소에서 했던 짓 보고도 몰라? 세뇌인지 지배인지 해서 자폭버튼 눌러댄 놈도 있었는데, 선제공격하는 놈이 없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과대망상에 피해망상이야? 구조요청 때문에 와놓고 갑자기 왜 어뢰를 쏴?’라는 생각을 했던 사내가 이어진 마루의 설명에 혹했다.
조금 나간 말이기는 했어도, 실제로 자폭버튼 누르고 발광한 놈이 실제로 있었지 않나? 구축함에 신인류가 있다면, 블라디마루 칼린의 말처럼 먼저 쏠 수 있었다.
“그럼 이쪽에서 선제공격해야겠군요.”
[···교차사격으로 함교를 집중사격하면···.]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사내는 이상한 위화감을 느꼈다.
그러니까 어딘지 미묘한 느낌. 실시간 전투 장면을 보여주는 것도 그렇고, 작전 회의를 하면서 자신이 보게 하는 이유가 뭘까?
‘···좆됐다.’
이렇게 이런저런 이야기 주워들어 놓고 뭉기적거리면 바로 처분이겠지. 여차하면 처분할 생각을 하고 쓸모를 확인하는 중이었던 것이었다.
사내는 바로 전향을 결정했다.
탈출?
칼 한 자루 달랑 들고 뛰어들어가 구축함 나포하는 게 있는데?
충성?
세뇌, 지배로 자폭 명령 내리는 애들한테 충성?
게다가 이쪽이 너무 무서웠다. 칼질 하나만으로도 무서운 놈이 이제는 최소한 구축함 2척을 쥐고 흔들게 됐다. 그냥 구축함도 아니고 구형이라지만 이지스 시스템을 갖춘 알레이 버크급 구축함 2척을. 조금 있다가 3척이 될지도 몰랐다.
지금 전력도 무서운데, 미래는 더 무서웠다.
블라디마루 칼린 쪽에서도 생명공학, 유전공학 연구팀이 있을 터, 분쟁이 격화되거나 정말 위험해지면 대범한 결단을 촉구할 게 분명했다.
‘이대로 가면 우리 전부 죽습니다.’
‘블라디마루 칼린님. 부디 클론 양산을···.’
당연히 머리가 달린 연구원들이라면 클론을 외치겠지. 블라디마루 칼린으로 이뤄진 부대를 생각해 보라.
하나만 있어도 구축함을 백병전으로 나포하는데 저딴 게 부대 단위로 있다면 어떻게 담당하겠나?
들고 있는 게 칼이 아니라 총이라고 해도, 살상능력은 더···.
‘왜 칼을 쓰지? 총이 아니라?’
설마 저 칼에 뭔가 특별한 능력이 있는 건 아닐까?
그 번개 망치라든지, 우주에서 떨어진 큐브처럼.
사내의 눈동자가 흐릿하게 영상 속 젊은 청년으로 향했다.
정확하게는 그가 쥐고 있는 칼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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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드와 의견을 주고받을수록 생각이 많아졌다.
처음에는 2척으로 돌아온 한 척을 묵사발 내면 그만이지 않나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쉬운 게 없군.’
교전에 들어가면 이쪽 구축함도 많이 다칠 각오를 해야 했다. 그럼 2척을 나포한 의미가 없어진다는 게 문제였다.
‘치명적인 파손이 생긴다면 수리할 방법이 없어.’
해군은 2개의 세력으로 갈라졌다.
국토안보국과 연계한 동부 해군, 버지니아 랭리와 손을 잡은 남부 해군.
이 두 세력이 조선소를 비롯해 선거(船渠-dock)를 양분하고 있었다.
어지간한 도크(dock)는 전부 군이 장악했을 테니, 파손된 구축함을 어디로 가져가든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국토안보국이 해군한테 구축함 3척은 블라디마루 칼린의 전리품이라고 해봐야 먹힐 상황이 아닌 게 현실.
다른 것도 아니고 이지스 시스템이 달린 구축함 2~3척이 굴러들어왔는데, 그걸 그냥 넘겨줄 해군도 아니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마루도 자기 것을 노리는 자들을 그냥 둘 생각이 없으니, 해군과 마루가 원수가 되는 건 예정된 일이라고 봐야했다.
‘원수고 나발이고 생각해 보면 이지스 시스템은 무조건 필요해.’
블라디 아크 타워에 레이더와 골키퍼 시스템을 설치했기는 했지만, 빈약한 건 사실이었다. 까마귀 방공체계를 운영한다고 해도 이지스가 필요했다.
[···확실히 이지스 시스템을 확보할 수 있다면, 좋을 겁니다.]두 척은 힘들다고 해도, 최소한 한 척은 멀쩡하게 가져가야 했다. 그러니 교전 계획은 폐기됐다. 후드와 마루는 구조 신호를 받고 돌아오고 있는 구축함 러셀에 숨어들 계획을 세웠다.
“중상을 입은 생존자로 위장해서 들어갈 수는 없을까?”
[중상이라면 데리고 가겠어요? 바로 타고 있는 구축함 의무실로 데려가겠죠.]“함교에서 살아남은 부사관급은? 함교에 있는 생존자라 직접 사정청취 하려고 부를 텐데.”
[그건 그렇겠지만, 칼은 어디에 두고 가시게요?]“증거품이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 나도 총을 못 쏘는 것도 아니고.”
[나쁘지 않네요.]묵묵하게 듣고만 있던 사내가 끼어들었다.
[그 작전은 실패합니다.] [왜 그런가요?] [이곳에 있는 구축함들은 1년 동안 같이 다녔습니다. 부사관들은 서로 뭉쳐서 외박하고 그랬지요. 그런데 낯선 사람이 부사관이라고 나와서는 증거랍시고 칼을 들고 온다면 무슨 생각을 하겠습니까?]“······.”
[······.]부사관들끼리 모여서 놀았을 줄이야.
위장 편법으로 들어가는 작전은 물 건너갔다.
‘그냥 물 위를-’
문득 떠오른 기억. 일본에서 싸웠던 일이 떠올랐다.
모터보드와 제트스키, 고무보트들이 뒤엉켰던 싸움.
적의 보트를 밟고 뛰어올랐던, 그러니까 물에 밟을 것만 있으면···.
[눈보라가 몰아치는 데 가능할까요?] [···예? 물 위를 달린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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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 밖을 순시하던 구축함 러셀의 함교엔 무거운 긴장감이 가득했다.
“DDG-57. 미처함. 응답 없습니다.”
“DDG-58. 라분함. 마찬가지로 반응 없습니다.”
DDG-59. 러셀함 함장은 침음성을 흘렸다. 정찰해역에서 항구까지 오는 데 40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에 항구에 있던 구축함 2척이 모두 침묵이라니.
“견시(見視) 보고는?”
“눈보라가 심해 눈으로는 확인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다른 항구로 돌아가야 하나? 그것도 좋지 않았다.
“순양함에서는?”
“상관할 일이 아니라며 선을 그었습니다.”
하긴 상관할 놈이었다면 진작 구조대를 보냈겠지.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 변이 바이러스 창궐? 신인류로 진화하면서 인격이 변해서? 중국과의 전쟁 여파? 그도 아니라면 급격한 기후변화와 재난 때문일까?
방파제 안쪽 항만에는 구축함 2척이 조용히 정박해 있었다. 발광신호에도 응답 없이, 모든 등이 꺼진 채.
함장은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구조대를 보내야 할까? 아니면 포기해야 할까?
적들이 이미 나포한 뒤, 덫을 놓고 있는 건 아닐까?
자기들 밑으로 들어오라고 부르짖던 놈들이 통수를 친 건 아닐까?
고민이 깊어진 함장에게 긴급 신호가 들어왔다.
[함장님 항만에 구명정이 있습니다.]“구명정이?”
[예. 항만 안쪽에 쫙 깔렸습니다.]“구명정 건질 수 있도록 접근한다. 천천히 들어가 봐. 언제든 후진할 준비하고.”
구명정이 쫙 깔렸다는 말대로. 방파제 안쪽에는 눈보라로 가릴 수 없는 형광 주황색 구명정들이 사방에 널려있었다. 어림짐작으로 봐도 50대는 넘어 보이는 숫자.
[우현. 비어있습니다.] [좌현에 있는 것도 비었습니다.]러셀함 함장은 텅 빈 구명정들이 깔려있다는 보고를 받곤 생각이 복잡해졌다. 구명정을 타고 있어야 할 승조원들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함장님. 2시 방향. 2시 방향에 있는 구명정이 이상합니다.]함장은 쌍안경으로 2시 방향을 직접 확인했다. 눈보라가 잠시 잦아든 사이로 형광 주황색 8각 구명정의 모습이 보였다.
쿨렁- 물속으로 빠졌다가, 부력으로 치솟아 오르는 모습.
“저건?”
‘대체 뭐지?’
이어서 또 하나의 구명정이 쑥- 바닷속으로 들어갔다가 튀어 올랐다.
쿨렁- 출렁- 풀렁-
이유없이 쏙 들어갔다 나오는 구명정을 잠시 넋 놓고 보던 함장에게 부함장이 말했다.
“함장님?”
“흠. 부함장도 봤습니까?”
“예. 소문의 바다 괴수는 아닌 것 같습니다.”
태평양 함대와 대서양 함대 소속 구축함이 마주쳤다는 해양 괴수.
증거자료도 없고 교전 기록도 없이, 그저 승조원 몇 사람이 봤다는 괴수였지만, 저런 기괴한 일을 보면 괴수든 뭐든 그런 이야기부터 떠오르기 마련이었다.
부함장과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도 쌍안경을 놓지 못하던 함장이 중얼거렸다.
“저거 뭔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 같은데?”
“예?”
부함장도 다시 쌍안경을 들었다. 쑥-들어갔다 튀어 오르는 구명정을 일직선으로 이어보니, 러셀함을 향해 그어졌다.
“허? 제가 봐도 그런 것 같습니다.”
“미속 전진.”
“미속 전진.”
함장이 일직선 상에서 비켜나기 위해 속도를 살짝 높였다.
그러자, 선이 옆으로 휘기 시작했다.
구명정 아래. 뭔가가 있는 건가? 그게 러셀함을 따라오고 있고?
“소나! 음파탐지는?”
“물속에 따로 잡히는 건 없습니다.”
러셀함이 앞으로 움직이자, 쑥-들어갔다 튀어나오는 구명정의 몸부림이 점차 빨라졌다.
쌍안경 속으로 흐린 눈보라가 스치며 무언가 보였다.
눈이 달라붙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게 구명정을 박차고 뛰어오르는 것 같은 모습에 함장이 ‘어-어- 저기 저쪽. 저것 좀 봐라.’ 그러기도 전, 그것이 먼저 러셀함 갑판 위에 떨어졌다.
쿠웅-
진득한 살기가 널찍한 갑판 위로 흘러내렸다.
[커윽- 뭐. 뭔가 있다.] [발자국. 큭. 사람이다!]사람? 그게 사람이 한 짓이라고?
[적이다! 은신 장비를 한 적!] [함교. 발자국이 함교를 향하고 있다.!]다들 당황하기 시작했다.
“적이 노리는 건 함교다. 병력 배치해.”
“함교를 방어한다!”
그 말에 대답이라도 하는 것처럼 뼈와 살. 그리고 철판이 썰리는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들렸다.
[막아! 병신들아!] [막으라고!] [쏴!] [안 보입니다!] [은신 장비니까 안 보이지!] [안 보여도 쏘라고!] [복도를 총알로 채운다고 생각하고 막 뿌려!]투두두두두두-
크지지지지직-
[으아아아- 어머니!] [사- 살려···.]까드드드득-
끼에에에에엑-
구축함의 장갑이 찢어지는 날카로운 쇳소리가 비명처럼 울려 퍼졌다.
붉은빛 절규가 러셀함을 맴돌았다.
그렇게 마루는 3척의 구축함을 보유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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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국토안보국 회의실은 고성으로 가득했다.
뉴욕 시를 표시한 지도에는 괴물 쥐들이 장악한 지역이 표시되어 있었다. 항만 지역과 존 F. 케네디 공항과 그 인근 지역이 전부 짙은 붉은 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아직도 영하 20~30도를 넘나드는지라, 괴물 쥐와의 싸움은 소강상태였다. 국토안보국에서는 반격의 시기를 정하기 위해 회의를 시작했건만, 개판이 벌어졌다.
쥐와의 전쟁, 식량과 난방의 위험성,
달러를 사용하기 위해, 연방준비위원회를 뉴욕에서 발족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난무했다.
문제는 지지기반인 뉴욕 시민들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이제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사건들과 혹한의 날씨는 뉴욕 시민들을 삽시간에 병들게 했다.
“석탄 분배는? 잔량은?”
“정량 분배하고 있습니다. 4월까지는 충분합니다.”
덴 브라운 국장의 혜안(慧眼)으로 난방용 석탄과 난로를 넉넉하게 준비한지라, 얼어 죽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여러 기관에서는 뉴욕 시민 절반이 겨울을 넘기지 못 하리라 예측했던 것을 볼 때, 덴 브라운 국장은 사실상 뉴욕을 구했다고 봐야 했다.
[국장님. 뉴욕 앞, 공해 상에서 블라디마루 칼린의 교신이 들어왔습니다.]“바다 확실해? 비행선이 아니고?”
[예. 레이더로 구축함을 판별했습니다.] [DDG- 57 미처함, DDG- 58 라분함, DDG- 59 러셀함입니다.]덴 브라운의 눈썹이 푸들 떨렸다.
‘미친.’
구축함이 3척이라고?
대체 뭘 하고 다닌 거냐?
구축함은 왜 끌고 왔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