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447)
러스트 [RUST]-447
대가리를 박으라는 마루의 명령에, 앞쪽에 있던 까마귀들이 조용해졌다.
잠시 뒤 이어진 반응.
까아아아악?
깍깍깍깍깍.
‘이 뭐 병.’하는 놈부터, ‘머리를···큭- 박으래.’, ‘낄낄낄.’ 웃는 놈까지 다양했다.
앞쪽에는 새로 합류한 까마귀들인지라 마루에 대한 소문만 들었지, 실물을 처음 보는 놈들이 태반이었기에 더 그랬다.
마루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처음 까마귀들이 숙이고 들어왔을 때, 쓸어버리지 않았던 이유는 그들이 진심으로 숙였기 때문이었다.
마루 자신을 경배하는 모습을 보였고, 진심으로 두려워하며 조심스러워했다.
그랬음에도 마루는 까마귀들이 왜 저러나 오랫동안 의심했었고, 수차례 함께 싸운 뒤에야 마음을 열고 받아들였다.
그런데 지금. 이것들이 하는 짓을 보라.
동족을 불러와 세를 불리는 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데려와도 이딴 새끼들을 데리고 와서 간을 봐?
마루는 까마귀들에게 약간의 배신감마저 들었다.
머리가 좋아서 공화국을 추구하든, 시민권을 이야기하든 다 좋았다.
그럼 미리 말을 하든가.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간호사를 통해 충분히 대화할 수 있었다.
그런데 중간 과정 다 건너뛰고 갑자기 공화국이 좋니 어쩌니 그러면서 김 양에게 그래?
만약 김 양에게 접근한 까마귀가 노골적으로 금괴를 노리지 않았다고 가정해 보면 상황은 심각했다. 김 양은 까마귀와 손을 잡고 PD와 신경전을 벌였을 것이다.
그렇게 계속 외부에 있는 까마귀들을 불러 모아 세를 불리고 불려, 신성 공화국을 만들 수 있었을 거다. 까마귀들이 바글거리는 공화국을.
아마도 어쩌면 말이다.
마루의 입꼬리가 삐뚜름해졌다.
이클립스의 손잡이에 마루의 손이 슬쩍 얹어지자
뒷자리에 앉은 참전 까마귀들이 사색이 되는 모습이 보였다.
혹한의 날씨, 까마귀들이 이쪽과 함께하지 않았다면 절반은 얼어 죽었을 거다.
최소한 절반이.
나머지 절반도 마찬가지. 우여곡절 끝에 살아남는다고 하더라도 지금처럼 편하게 꿀 빨면서 지내지는 못했을 거고.
폭격과 정찰로 힘들었다?
웃기는 소리.
대자연에서 생존경쟁했으면 사냥 때마다 늘 목숨을 걸어야 했고, 언제나 정찰해야 했다. 그러니까 이쪽에 합류하면서 어차피 하던 일 하는 대가로 안전한 둥지와 풍부한 먹이를 얻을 수 있었으면서 무슨 죽을 고생을 한 것처럼.
‘배가 부르니까 미친 건가?’
감염자나 일반인, 쥐새끼들이야 날카로운 발톱과 부리로 잡을 수 있겠지만, 애초에 변종이나 변이 괴수의 가죽은 뚫지 못했던 까마귀들이었다.
먹게 해달라고 먹이를 달라고 애원하던 놈들이 머리가 좀 컸다고, 먹물이 들어가자마자 간을 봐?
‘까마귀들을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한 번 다잡아야지요.’
‘지능이 높아졌습니다. 말을 알아듣고 여러 가지를 배우고 있으니, 대화를 해보는 건 어떠십니까?’
‘말을 한다고 대화가 되는 건 아닙니다. 그리고 말이 통하고 안 통하고를 떠나서. 사람이 그 지랄을 했어도 그냥 두지 않았을 겁니다.’
PD의 이야기가 잠시 떠올랐지만, 결정했으면 하는 게 마루였다.
‘어떻게 조져야 잘했다는 소리가 나올까?’
중앙에서 앞쪽에 있는 것들을 보니, 이것들의 생각이 뻔히 느껴졌다.
불신, 의구심, 호기심, 장난, 재미, 따분함, 귀찮음, 출출함 그리고 식욕.
“아니- 하- 씹-”
마루는 너무 어이가 없어, 다시 저쪽 뒤편을 바라봤다.
뒷줄에 앉은 참전 까마귀들이 허둥지둥 날개를 펼치며 뭔가 하고 있지만, 제대로 먹히지 않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나마 중간라인 절반쯤 정도까지는 어떻게 그런대로 뭔가 통하는가 싶은데, 중간에서 앞쪽부터는 말 그대로 개판이었다.
“하- 씨발···.”
목소리를 높이려는 찰나, 바로 머리 위에서 들리는 퍼드덕 소리.
어떤 새끼야?
고개를 드는 것과 동시에 노렸다는 듯.
마루의 이마와 어깨에 물컹한 덩어리가 찍- 떨어졌다.
이어 피어오르는 찡한 냄새.
까아악-
깍까악-
툭-투둑-
마루를 노리고 연이어 투하되는 물컹한 덩어리들.
그걸 본 까마귀들이 요란을 떨었다.
캌—
캌캌캌캌-
깍깍깍깍깍깍깍
[에? 히이이이이에에엣!!!]그 모습을 보고 캌캌대는 까마귀들.
CCTV로 그 장면을 본 간호사의 입에서 깜짝 놀라다 못해 자지러지는 음성이 터졌다. 생생하게 퍼지는 암컷 인간의 비명에 흥분한 까마귀들이 이에 호응하듯 발광했다.
까아아아악?
깍깍깍까악!
퍼드덕거리며 마루의 머리 위를 빙빙 도는 놈부터, 똥을 투척하는 까마귀까지 앞으로 벌어질 일을 예상하지 못했다. 오직, 뒤에서 필사적으로 날갯짓하며 말리는 참전 까마귀들 외에는.
뭉클.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
불길한 무언가가 중앙에 있는 마루에게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깍?
······
가악?
······
인간보다 감각이 예민한 까마귀들이었기 때문에 알 수 있는 위화감.
까마귀 소리와 날갯짓으로 소란스러웠던 공간이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
······
그 차가운 침묵을 깨뜨리듯 흉흉한 살기가 폭발했다.
마루의 머리 위를 빙빙 돌며 장난질 치던 까마귀들이 그대로 떨어졌다.
크르르르르-
짐승이 낮게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며 이클립스가 뽑혀 나왔다.
크지지지직-
추락하는 까마귀들을 믹서기에 갈듯 갈아버리는 이클립스.
후두두두둑-
잘린 조각들이 붉은 냄새를 피워올리고
시큼한 새똥 냄새가 진득한 피 냄새와 뒤섞이기 시작했다.
짙은 죽음의 기운이 물결치듯 출렁거리며
보이지 않은 살기가 찐득하게 원형으로 퍼져나가자.
까마귀들은 그 지독한 살의에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굳어버렸다.
툭.
우두두투-
도미노가 쓰러지듯 앞줄을 시작으로 우수수 앞으로 엎어지는 까마귀들.
마치 머리를 박는 것처럼 앞으로 꼬꾸라지는 모습은 숫제 나무토막이 쓰러지는 것 같았다.
부르르르르- 부르르르륵-
간혹 몇 마리가 전신을 떨어대긴 했지만 그뿐. 확정된 죽음은 피할 수 없었다.
“이것들이···.”
마루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고요한 경기장을 홀로 울렸다.
저벅-
쿠직-
한 걸음 내딛는 발걸음.
그 발걸음 아래 밟혀 으깨지는 소리가 섬뜩하게 울려 퍼졌다.
“죽고 싶냐?”
저벅-
콰직-
피할 수 없는 죽음이 까마귀들 사이로 내려앉았다.
======
======
김 양과 친위대는 만에 하나 실내 경기장에서 탈출하는 까마귀들이 생길 것을 대비해 매복하고 있었다.
‘까마귀 새끼들 은근 집요한 놈들이라.’
체스 둘 때부터 알아본 김 양이었다. 어설프게 잡다가 도망치면 피곤해질 게 분명했다.
공화국 찾고 금괴를 노리며, 인간과 대화까지 가능한 까마귀가 탈출해 사방으로 퍼지는 건 막아야 했다.
김 양의 HUD에는 실내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실시간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하는 짓을 보아하니 좋게 끝나긴 힘들어 보였다.
‘사람 말을 알아들으면서 분위기는 못 읽네.’
그러는데 갑자기 대형사고가 터져버렸다.
[-뿌직- 후두둑-]병신 까마귀들이 뭔 깡인지 모르겠지만, 마루의 얼굴에 똥을 투하한 것.
바로 추억 저편에 묻어둔 작은 백정이 꿈틀거리는 게 느껴졌다.
아-
저건 글렀다.
그런 김 양의 불길함은 현실이 됐다.
[쿠직-] [콰드득-]HUD에 떠오른 영상에 김 양은 혀를 내둘렀다.
‘와 진짜 열 받았네.’
말 그대로 쥐새끼들을 짓밟아 죽였을 때처럼 거침없이 짓밟아 죽이고 있었다.
‘저거. 범위가.’
총잡이였기에 늘 거리를 재던 습관이 그대로 발현됐다.
‘그 기운을 저렇게 넓게 퍼뜨릴 수 있다고?’
자기도 모르게 마루가 뿜어내는 살기의 범위, 사정거리를 체크한 그녀였다.
‘아무리 봐도 범위가 너무 넓은데?’
경기장 면적을 놓고 생각해 보면 미친 범위였다.
[쿠드득-] [뿌득-] [히에에엣- 저··· 이제 말려야 하는 거 아닌가요?]간호사가 다급하게 연락했다.
[말려? 어떻게?] [그래도. 저렇게 두면 전부···. 그건 아니잖아요.]나나에의 울먹이는 목소리에 김 양은 슬며시 짜증이 치솟았다.
질질 즙이나 짤 건가? 그렇게 애처로우면 자기 발로 뛰어들어가서 말리든지.
[까마귀들은 사람처럼 생각하지 못해요. 알아는 들어도 사고하는 방식이 달라요. 오해가 있을 수 있어요.] [오해? 얼굴에 똥 뿌리고 비웃는 것도 오해?]김 양의 눈이 곱게 휘었다.
1호기. 까마귀랑 붙어 다니더니 정신 넋이 빠졌니?
[그 까마귀들만 처벌하면 되잖아요. 가만히 있던 다른 까마귀들까지 죽일 건 없잖아요.]나나에의 항변이 이어졌다.
저건 아니었다. 저렇게 죽는 까마귀들 가운데는 마루의 명령에 따라 실내 경기장으로 들어와 가만히 있던 까마귀들이 더 많았다.
[1호기. 입 다물어.] [······.] [가만히 있긴. 뭘 가만히 있어. 응? 야- 똥 싸지르고 까마귀 새끼들 웃는 걸 그냥 지켜보는 게 가만히 있는 거니? 그걸 보고도 개소리니?] [···안 그런 까마귀들도 있잖아요.]김 양의 고개가 갸우뚱 기울어졌다.
[머리 박으라고 했는데 바로 머리 박은 새끼 있었니? CCTV 영상 돌려보라.] [······.] [야. 1호기. 나설 때 나서라.] [······.]뒈지겠다고 자업자득인 새끼들에게 감정 이입하지 말고.
실내 경기장 상황을 확인하고 있던 것은 김 양과 나나에 뿐만 아니었다. 마이클 뉴먼 PD는 CCTV 화면을 보며 탄식했다.
‘미리 확인했어야 했어.’
공물 쥐를 관리하고 있었기에 알 수 있었다.
쥐들도 파벌이 있고 목적이 달랐다. 그러니까 공물 쥐처럼 공물을 바치고 신앙의 불꽃을 불태우는 쥐들이 있는가 하면, 악마라도 본 것처럼 도망치고 적대하는 쥐들도 있었다.
지능이 높다는 것은 그런 걸 의미했다.
목적이나 의도에 따라 판단이나 행동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
쥐들도 그런데 하물며 쥐보다 지능이 높은 까마귀는 어떨까?
까마귀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당장 죽기 싫어 겉으로만 숙이고 들어온 까마귀도 있을 것이고, 혹한기를 견디기 위해 동족들의 소개로 잠시 들어온 까마귀도 있을 것이다. 복수심을 감추고 기회를 노리던 까마귀도 있었을 테고.
모든 까마귀가 그분을 믿고, 자발적으로 따른다고 생각하다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이었다. 공물 쥐처럼 그분이 신앙의 대상일 것이라 일종의 착시현상에 빠져 까마귀들을 판단한 결과였다.
‘까마귀 가운데 그분을 따라서 전투를 경험한 건 2천이 넘지 않아.’
그렇다는 건. 진심으로 그분을 따르는 까마귀는 전체의 10% 정도에 불과했다는 이야기였다. 나머지는 풍부한 먹이, 편한 생활 환경에 만족해 흉내만 내는 까마귀들이었고.
‘까마귀들에게 더 신경 썼어야 했어.’
PD는 안타까웠다.
그분에게 똥을 싼 것도 까마귀의 지능이 높아서 생긴 일이었다. 자기들 딴에는 장난이라고 할 수도 있었고. 반응을 보려고 한 것일 수도 있었다.
과연 무슨 생각으로 일을 벌였을까? 까마귀들은.
때마침 간호사가 PD에게 도움을 요청해 왔다.
[이대로 가면 전부 죽을 거예요. 가만히 있던 애들까지 전부 죽이는 건 아니잖아요.]“흠- 일이 벌어지기 전, 크게 울렸던 소리 있지요. 까마귀들이 뭐라고 했는지 알려 주실 수 있습니까?”
PD의 말에 간호사가 주저했다.
[···그. 그건.]“사실대로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눈을 질끈 감은 채, 간호사가 까마귀들이 했던 말을 PD에게 이야기했다.
‘설마 죽이기야 하겠어.’
‘날개도 없으면서 어쩔 건데?’
‘어떻게 하나 지켜보자.’
‘뻔하지 뭐.’
‘인간들에게 시민권 준다더라. 이렇게 모이라고 했으니 그 이야기 하겠지?’
‘폭격하려면 우리가 필요하지 않겠어?’
역시. 그런 소리였다.
“하아- 어쩔 수 없군요.”
[그래도 저렇게 말한 건 소수였어요. 소수요. 의인 이야기 있잖아요. 의인이 10마리만 있어도 처벌하지 않는다는 이야기.]PD가 마리와 명을 혼동하는 간호사를 위로했다.
“기도하십시오. 그분께서 저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를.”
[······.]“저들은 그분을 모욕하고 시험한 대가를 목숨으로 치르고 있을 뿐입니다.”
[그렇지만···.]“그렇기 때문입니다.”
PD는 김 양의 의견에 동의했다.
어디까지 할 건지 결정권은 오직 그분에게 달려있었다.
설령, 지금 경기장에 있는 까마귀를 전부 죽인다고 하더라도. 그분이 그렇게 결정했다고 하면 막을 수 없었다. 막아서도 안 됐고.
‘부디. 까마귀들에게 회개의 기회가 주어지기를···.’
======
======
실내 경기장 바닥은 질퍽한 죽음과 잔해, 피로 흥건하게 젖은 깃털로 가득했다.
도망칠 수 없다.
공격할 수 없다.
회피할 수 없다.
···
···
···
그리고
애원할 수도 없었다.
쿠직-
뻔히 보이는 죽음이 다가옴에도
굳어버린 몸.
막혀버린 부리.
얼어붙은 날개.
그저 다가오는 죽음이 만족하고 멈추기만 바랄 뿐.
콰드득-
처음에는 분노였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다음에는 공포였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그리고 지금은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는 까마귀들이었다.
작지만 영민한 머리에 깃든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실. 현상. 죽음.
몇몇 동족들이 저건 인간이 아니라며 조심해야 한다고 했어도 설마 했다.
몇 달을 지켜봤건만 딱히 위험한 것도 없었고, 강압적이지도 않았으니까.
그런데 지금 저 모습을 보라.
저건 인간의 형상을 한 무엇이었다.
호기심이 날아갔고
복수심도 사라졌다.
남은 건 오직 살고 싶다는 본능.
생명을 짓밟아 수확하는 그것 앞에서 까마귀들은 다시금 깨달았다.
‘알 수도 없고 알아서도 안 되는 존재.’
그런 존재를 찔러본 것이었다.
어느 순간 죽음이 걸음을 멈췄다.
숨통을 옥죄던 죽음의 기운이 사라지고 찾아온 침묵.
······
······
그 묵직한 고요함에 딱딱하게 굳었던 몇몇이 균형을 잃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바르작- 깃털 소리라도 날까 모두 숨죽이는 그때.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좌로 굴러.”
살아남은 까마귀들이 조용히 옆으로 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