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448)
러스트 [RUST]-448
마루는 착하고 평화로운 유격으로 까마귀들의 기강을 잡았다.
까마귀들의 처절한 깍-소리가 곡소리처럼 울려 퍼지기도 반나절. 대충 기강을 잡았다고 생각한 마루가 산뜻하게 마무리를 짓고 리틀시저스 아레나에 밖으로 나왔다.
경기장 주 출입문 밖에는 간호사가 두 손을 모으고 주저주저하고 있었다. 차마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밖에서 기다린 모양.
“왜 그러고 있어? 기다린 거야?”
“···조금 불안해서요.”
불안할 만도 했다. 여차하면 뒤쪽 경력직만 빼고 싹 죽여버릴 생각도 있었으니까.
마루는 대답 대신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계획처럼 아크 타워 하나 달랑 유지하는 일이었다면 이렇게까지 할 필요 없었다.
하지만 이젠 왕국을 선언한 뒤였다. 까마귀들이 사람을 공격한다면 그 책임은 까마귀를 받아들인 자신에게 책임이 있었다.
선택지는 셋.
기강을 잡거나, 추방하거나 아니면 죽이거나.
4월 중순이 넘어갔음에도 영하 20도를 넘나드는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씨, 추방은 죽음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착하고 평화롭게 기강을 잡아보고 기장이 잡히지 않으면 안식을 주는 게 깔끔했다.
“안식을 줘야 할 상황이면 편안하게 줘야지.”
마루의 담담한 대답에 간호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간호사의 심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에게 있어 까마귀들은 아마도 반려동물 같았을 테니.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였다.
“김 양에게 공화국을 언급하고 월급을 금으로 요구할 생각이었으면서, 나나에와 상담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건. 좋게 생각할 수 없어. 아니면 까마귀들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 이야기하지 않은 건가?”
“에? 아니요. 그건 아니에요.”
“그래. 그리고 숫자를 늘린 것도 그래. 까마귀들이 숫자를 늘리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나?”
“······.”
알 수 없었다. 간호사가 주로 관리했던 것은 비행선과 함께 다니는 호위, 폭격부대 까마귀들이었으니까.
“까마귀들이 한 짓을 보면 그래. 공화국을 거들먹거리던 놈들이 왕국을 선포한 나에게 똥을 쌌어. 그게 단순히 새대가리 까마귀의 장난이라고 생각해?”
새 키우는 사람이 가끔 뉴투브에 올리는 영상. 푸드덕 날아오른 새가 주인 어깨에 앉아 똥을 싸고, 주인은 새가 다 그렇지 허허 웃으면서 똥을 닦는 그런 영상.
그걸 보면 까마귀가 똥 한 번 쌌다고 피바다를 만든 게 너무 과하다고 생각할지도 몰랐지만, 마루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뉴투브 영상 속 새와 까마귀가 같은 급인가? 아니었다.
비행선에서도 그렇고 까마귀들이 둥지로 쓰고 있는 빌딩 최상층에서도 그렇고 어느 정도 변을 가리기 시작한 까마귀들이었다.
그러니 마루 자신에게 똥을 싼 건, 똥을 싸겠다고 작심한 행동이라는 뜻.
말뜻을 알아차렸는지 나나에가 자신의 옷자락 끝을 꾹 쥐었다.
“경력직 애들도 그래. 진짜 진지하게 다 죽겠다 싶었으면 그렇게 날갯짓만 하고 있지 않았겠지. 그렇게 간 보다가 단체로 뒈질 수 있다는 걸 한 번쯤 겪었어야 했으니까 그렇게 알아.”
마루는 나름대로 그녀를 위로하고선 몸을 돌렸다.
간호사는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한쪽에 세워둔 응급치료가방을 야무지게 움켜잡은 그녀가 심호흡했다.
‘이대로는 안 돼. 우물쭈물하다가는 살릴 애도 못 살려.’
나나에는 마음을 다잡고 실내 경기장 문을 열었다.
훅- 코끝을 파고드는 냄새.
그것은 분명 죽음의 냄새였다.
조금 전까지 힘냈던 의욕이 꺾여버렸다.
덜덜덜- 떨리는 다리에 힘이 빠져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수십, 수백, 수천이 죽은 공간.
살과 내장으로 다져진 진창은 피와 지방이 엉긴 깃털이 뿌려져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가-아아-
까아아–
드문드문 앓는 소리만이 까마귀들이 몰살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움직여. 움직이라고.’
까마귀들의 처절한 신음은 마치 간호사를 책망하는 것만 같았다.
‘왜 이제 왔느냐고.’
‘어째서 도와주지 않았느냐고.’
응급치료가방을 든 나나에는 필사적으로 진창을 뒤졌다.
머리가 깨진 까마귀, 대가리가 으스러진 까마귀, 두개골이 다져진 까마귀들이 족족 나왔다.
간호사는 까마귀들의 원망 어린 눈빛을 보며 깨달았다.
아- 머리가 똑똑하다는 것은 사람과 비슷해진다는 거로구나.
그녀가 생각했던 반려동물 같은.
그러니까 똑똑하지만, 사람은 아닌 귀여운 까마귀 같은 건 없었다.
구급대원이나 응급의사들이 듣는 소리 가운데 제일 많이 듣는 소리가 뭘까?
‘최선을 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감사의 인사보다. ‘왜 죽였어?’ , ‘당신들이 최선을 다했으면 살릴 수 있었잖아.’ 같은 원망이었다는 것을 떠올리고 말았다.
그렇다. 까마귀들은 어쩌면 보호해줘야 하고 소통하기 위해 노력해줘야 하며, 지켜줘야 할 존재가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응급치료가방을 연 나나에가 어째서인지 날개가 옆으로 꺾인 까마귀에게 진통제를 주사하며 말했다.
“옆에 위급하다 싶은 애 있으면 날개 들어요!”
가아아악-
“조용히 해요. 살았으면 감사해야지. 뭐가 그렇게 불만인가요!”
까아악-
“그럼 나가서 얼어 죽을 건가요?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그래요!”
······
······
“억울하기 뭐가 억울해요! 밖에서 다 봤는데.”
까마귀들의 앓는 소리 속 가운데 간호사의 목소리가 둥실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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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양의 눈초리가 가늘어졌다.
‘착한 유격으로 될까?’
반나절 피와 똥오줌이 새는 유격으로 인성··· 아니, 조성이 바뀌기엔 좀 부족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그녀였다.
‘잊지 않게 한 달에 한 번이나, 두 달에 한 번 정도는 꾸준하게 해야 할 텐데.’
까마귀들 하는 짓을 보니까 경력직 빼고 싹 갈아버리는 게 좋을 듯싶었는데, 백정 모드가 빨리 끝나버렸는지 엄청 많이 살아남았다.
까마귀들이 들으면 자해할 것 같은 생각을 서슴없이 하는 김 양이었다.
[뒤처리는 어떻게?] [간호사가 들어갔으니까 그냥 지켜만 보고 있어.]마루에게 물었더니 쓸데없이 말랑했다.
[살아남은 거 숫자가 꽤 되는데 1호기 혼자 괜찮겠음?] [어. 겸사겸사니까 그냥 지켜만 봐. 아니다. 친위대랑 안에 들어가서 은신으로 지켜봐라. 혹시 위험할 것 같으면 구해주고.]미친 인간도 있는 판국에 미친 까마귀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는 게 마루의 생각이었다.
[그럼 가지 말고 직접 옆에 있는 게 낫지 않겠음?] [나를 무서워하니까 내 앞에서는 조심할 거 아니야.]‘뭐가 그렇게 복잡함?’
역시 너무 많이 살려준 게 문제라고 생각하는 김 양이었다.
2만 5천이었으니까 깔끔하게 1만 5천 치워버리고 딱 1만 정도 남겨서 굴리면 될 것을. 꼴랑 5천 잡고 2만이나 살려두다니.
속으로 구시렁거리면서도 마루가 말한 대로 친위대와 함께 내부로 진입하는 김 양이었다.
[은신 모드 활성화하고 저격 준비.]각기 위치로 친위대를 보낸 김 양이 전체 상황을 확인했다. HUD와 연동된 경기장 CCTV 화면.
간호사가 까마귀들을 치료해주고, 사체를 수습하고 있는 가운데 까마귀 한 마리가 부리로 위협하는 모습이 보였다.
[쏩니까?] [기다려.]친위대가 바로 까마귀를 날려버리느냐고 확인했지만, 일단 지켜보는 김 양이었다.
까아아-
휘릭- 휘리릭-
허우적거리는 까마귀. 몸이 정상이었으면 간호사를 단박에 쪼았을 테지만, 마루의 살기에 맞고 반나절 굴림을 당한지라 힘이 없어 휘적거리기만 할 뿐 실질적인 위협은 되지 않았다.
‘아직 뒈져야 할 게 넘치네.’
김 양의 눈매에 차가움이 더해지려는 찰나, 간호사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뭘 잘했다고 소리를 질러욧!]딱콩-
간호사의 꿀밤이 까마귀의 머리에 작열했다.
이미 한계였던 까마귀가 혀를 빼물고 기절하는 모습.
어? 1호기 겁도 없이.
저래 보여도 저 까마귀들은 장난이 아니었다.
정신계 용병 침입했을 때를 생각해 보라. 파워 로더형 엑소슈트를 입은 적들을 비롯해 방탄복을 입은 적들을 전부 찢어 죽인 게 까마귀들이었다.
아무리 지쳤다고 한들, 까마귀의 부리나 발톱에 걸리면 간호사의 여린 살갗은 삽시간에 찢어질 게 분명했음에도 저렇게 무식하게 대응하다니.
‘까마귀 새끼들 그냥 쏴버려야 할까?’
김 양의 고민을 아는지 모르는지 간호사가 다시 소리를 높였다.
[오늘 전부 죽을 뻔한 건 알고 있는 거에욧!] [다들 회개하세요!]어. 음. 어.
이어지는 설교에 김 양은 조용히 볼륨을 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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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의 주최로 생존 특별 감사 집회 비슷한 무언가가 실내 경기장에서 시작될 무렵, 디아나는 신형 드론을 이용해 명령 불복종 까마귀 공략에 나섰다.
마루의 명령. 명령 불복종 개체의 말살을 수행하기 위해서였다. 연구원들과 기술진이 커다란 모니터 앞에 모여 신형 전투 드론의 작동 모습을 지켜봤다.
[위치 확인. 무소음 모드 실행.]소리를 죽인 드론이 로봇 팔을 이용해 출입구 틈을 벌렸다.
[진입 성공.] [작전 위치로 산개.] [3. 2. 1. 공격합니다.]12.7mm 화약+전력 복합식 코일건을 장착한 공격형 드론의 실전 실험이 시작됐다. 빌딩마다 200~300마리나 되는 불복 까마귀들이 삽시간에 정리되기 시작했다.
[탈출로를 막습니다.] [3시 방향.] [환기구로 도망치는 개체 확인.] [전체 건물 환기구 확인합니다.]지능이 높은 까마귀였지만, 인공지능 디아나의 연산력을 넘어설 수 없었다. 실시간으로 조정되는 드론의 움직임.
무엇보다 원거리 공격력이 없었기에 중무장 전투 드론을 공격할 방법이 없었다. 천 단위나 만 단위였다면 스웜(Swarm) 전술로 밀어붙였겠지만, 건물마다 고작 200~300마리로는 두들겨 맞을 수밖에 없었다.
“드론을 저렇게 쓸 수도 있군요.”
“사람과 인공지능의 차이라.”
“오- 순간 기동성이 나쁘지 않습니다.”
“방향전환도 자연스럽군요.”
연구원들과 기술진의 탄성이 이어졌다.
드론의 성능을 100% 발휘하고 있는 인공지능 디아나에 대한 감탄과 드론의 성능에 대한 만족감에서 오는 감탄이었다.
[어린 개체 없음.] [늙은 개체 없음.] [알 없음.]“하긴. 이런 혹한에 알을 낳았을 리는 없으니까요.”
“늙은 개체가 없다는 게 이상합니다.”
“까마귀들은 늙은 개체도 버리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말이죠.”
두런두런 이야기 속에 디아나가 붉은색 경고음을 냈다.
[수류탄 발견.]쾅!
푸쉬쉬쉬쉭–
[전면 연막탄 확인. 열영상 감지, 동작 감지기 작동합니다.]천장 높이 4m의 공간에서 살아남은 까마귀와 드론의 처절한 숨바꼭질이 시작됐다.
예상외의 반격에 다들 깜짝 놀랐지만, 결과는 디아나의 승리였다.
[둥지에서 수류탄과 연막탄 발견.] [귀금속과 보석류 발견.] [마약류 발견.]까마귀 거주 빌딩에서 생각지도 않은 것들이 나왔다.
이를 보고받은 마루는 혀를 찼다.
“쯧- 계속 소탕해.”
[게릴라 까마귀가 항복한다고 합니다.] [까아아-서르르르랜더르르르(surrender-항복)-]“죽여.”
마루는 단호했다.
[투두두두둑-] [4번가 2구역 빌딩 소탕 완료] [7번가 9구역 빌딩 소탕 완료.]······
······
[까마귀 거주 빌딩 소탕 완료했습니다.]단순히 명령 불복종 까마귀가 아니었다. 숨겨 놓은 폭탄류와 귀금속 마약 관련 용품을 볼 때, 일종의 범죄조직이 있다고 보는 게 맞았다.
‘설마 까마귀 갱단 같은 게 있을 줄이야.’
“간호사는 어때?”
[가끔 발광하는 까마귀가 하나씩 나오는데, 주변의 까마귀들이 진압하고 있음.]마루는 까마귀 둥지 빌딩에서 벌어진 일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귀금속? 까마귀 새끼들이 금을 빼돌리고 있었음?]“그래. 폭탄과 마약류도.”
[같이 일했던 애들 말고 전부 처분하는 건 어떰?]“그건 아니야. 날이 풀리고 나면 위험해 질 수 있어.”
강이 녹으면 이지스함을 끌고 올 거긴 했지만, 까마귀만큼 물량 되면서 정찰, 방어, 공격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일단 조직 까마귀부터 색출해야겠네.”
어쩐지 별 거지 같은 까마귀 새끼들이 있더라.
마루는 사이코메트리 에리카와 함께 간호사의 회개 집회가 한창인 실내 경기장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