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449)
러스트 [RUST]-449
벌컥-
회개의 눈물과 꺽꺽거리는 울음소리로 가득했던 실내 경기장이 마루의 등장으로 일순 침묵에 빠졌다.
태연하게 중앙으로 간 마루가 말했다.
“수류탄 빼돌린 놈, 약 챙긴 놈 나와.”
“에? 약이요?”
간호사가 약이라는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둥지에 까마귀 갱이 있더라고.”
“에에엣? 까마귀가 갱이요?”
사이코메트리 에리카는 간호사를 보자마자 그쪽으로 쪼르르 갔다. 그러더니 간호사의 팔 한쪽을 들고는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어머어머어머머머 손이랑 팔뚝에 상처 이거 뭐에요???”
“괜찮아. 스친 거야.”
에리카가 붙들고 늘어진 손을 슬그머니 빼려고 한 간호사였지만, 두 손을 꼭 쥔 사이코메트리의 팔을 뿌리치는 데 실패한 간호사였다.
확실히 그녀의 팔에는 까마귀 부리와 발톱에 스친듯한 상처들이 선명했다. 제대로 헤집었다면 살이 뭉텅이로 떨어져 나갔겠지만, 까마귀들도 거기까지는 하지 않은 것 같았다.
살짝 미간을 찌푸린 마루가 주변을 둘러보자, 머리를 바닥에 처박고 모르쇠. ‘나는 건드리지 않았음.’을 전신으로 표출하는 까마귀들이었다.
“이 새끼들이. 하-”
너무 많이 살렸나? 2만 5천 가운데 2만 정도 살려줬더니 이런 건가? 어차피 갱단 까마귀랑 엮인 까마귀들 정리하면 확 줄어들 테니 넘어가기로 한 마루였다.
“상처에 바르고 남은 건 넣어둬.”
미군이 개발한 급속 지혈치료제.
동그란 통에 들은 연고를 간호사에게 건네준 마루가 까마귀들을 보며 말했다.
“수류탄, 연막탄 등 폭탄 종류 빼돌린 놈. 흰색 가루 챙긴 놈 나와.”
마약이라는 단어를 모를지 몰라 흰색 가루라고 말을 바꿨더니, 몇 마리가 쭈뼛쭈뼛 톡톡 나왔다. 조류 특유의 낮은 점프 비슷한 움직임으로 나온 까마귀들.
“에리카. 얘들 확인 좀 해봐.”
“저번에도 말씀드렸지만, 까마귀는 종이 달라서 사이코메트리가 통하지 않는 데요?”
“번역하듯이 생각 읽으라는 게 아니야. 쟤들이 어디를 갔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정도는 사진처럼 알 수 있잖아. 그리고 쟤들 인간 언어를 할 줄 알기 때문에 건질 수 있을지도 몰라. 한 번 해봐.”
그게 될까?
현장에 남은 잔류 사념이면 모를까. 사람도 아니고.
긴가민가하던 에리카가 일단 앞으로 나온 까마귀의 날개를 잡고 능력을 발현했다.
사이코메트리가 까마귀를 확인하는 동안, 마루는 동물 관련 지식이 풍부했던 연구원을 떠올렸다. 기강을 잡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길고 오래가려면 까마귀를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디아나. 저번에 동물지식 풍부했던 연구원 있었지? 그 사람 좀 연결해봐.”
[연결 중입니다.]잠시 뒤 연구원이 전화를 받았다.
[아- 예. 말씀하십시오.]“까마귀에 대해서 궁금한 점이 있어서 연락했습니다.”
마루는 바로 상황을 요약해서 전달했다.
까마귀 가운데 명령을 듣지 않는 집단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무기와 귀금속을 빼돌린 것도 모자라 약에까지 손을 댔다는 이야기에 연구원이 탄식했다.
[우선 까마귀에 대해 오해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어떤 오해 말입니까?”
“그게 오해와 무슨 상관인가요.”
동물인데 똑똑하다 이런 의미가 아니라는 설명.
[인간이 아니더라도 인격이 있다는 말입니다. 자아가 있고, 환경과 자신, 집단을 구별해 인식할 수 있고 나아가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인지능력, 문제해결능력 그리고 공감능력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단순히 머리가 좋다. 체스를 둔다. 이런 것을 넘어서 여타의 다른 동물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차이가 있다는 뜻으로 비인간 인격체를 쓴다고 말하는 연구원이었다.
[사람들이 친한 사람들끼리 교우 관계를 맺고 또래 집단을 만드는 것처럼 까마귀도 그렇다는 이야기지요. 당연히 명령에 따르는 그룹이 있는가 하면 따르지 않는 쪽, 아예 신경도 쓰지 않는 쪽으로 나뉜다는 겁니다. 으레 사람들이 그렇듯 말이죠.]대통령이나 시장이 이럽시다, 저럽시다 한들 국민이나 시민이 그대로 따르지 않는 것과 유사하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국가적인 문제가 닥쳤을 때는 합심해서 일을 해결하기도 하는 것처럼 까마귀들도 그렇다는 이야기.
“그러면 이제까지 제 명령에 따른 것은 어떻게 된 겁니까?”
[···공포나 두려움, 생존 때문이 아닐까요? 사람들도 밥을 주는 독재자의 명령에 따릅니다. 조금 더 간다면 공물을 바친 쥐들처럼 신앙적인 존재로 생각했을 수도 있겠군요.]마루는 쓴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밥 주는 독재자 정도로 생각했다는 말인가? 일부는 먹이 주는 신적 존재로 봤다는 거고?
“공포 독재와 신앙이라니. 참 그렇네요.”
[예. 거기에 생존에 유리하다고 판단했다고 보입니다.]처음 까마귀들과 접했던 것은 새떼들과 싸우고 나서였다.
그 뒤 까마귀들이 묘하게 따라붙었었고 나중에는 어디를 가든 머리 위를 배회하면서 거리를 좁혔었고.
당시 까마귀들이 한 행동을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공포 독재와 버무려진 신앙이라고 해도 틀린 건 아니었다.
[까마귀는 머리가 좋습니다. 공포만으로는 이렇게까지 모이지 않았을 겁니다. 신앙적인 효과도 있었을 테고 무엇보다 생존에 효과적이었기 때문에 공생을 선택했다고 보입니다.]“공생을 선택하고 수그렸지만, 무리 규모가 커지고 덩치가 좀 생겼다 싶어지니, 간을 본 거라는 이야기입니까?”
[하핫-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겠네요. 어떻게 보면 그럴지도 모릅니다. 다만 까마귀들이 사람처럼 행동한다고 하더라도 사람은 아니라는 점입니다.]“그런가요? 까마귀들이 말을 했는데도 말입니까?”
[구관조(앵무새) 계열은 말을 합니다. 그게 의사소통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특정 상황에 대입해 마치 말을 하는 것처럼 보인 사례가 있었지만···.]“흉내 내기가 아니었습니다. 공화국을 원한다고 이야기하더군요.”
[예? 공화국이요?]연구원도 놀랐는지 목소리가 샜다.
“공화국 정치체계를 지원해준다면서 대가로 월급과 권리를 요구했습니다. 그것도 금으로요.”
[맙소사. 공화국이라는 말의 뜻을 이해했다는 겁니까? 그렇다면 화폐도··· 아-]뭔가 떠올랐는지 연구원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하- 그런 연구가 있었습니다. 까마귀가 자판기를 사용할 수 있는가 하는 실험이었지요.]길거리에 있는 쓰레기를 넣으면 먹이가 나오는 자판기를 설치한 실험이었다.
다른 새들은 쓰레기를 넣으면 먹이가 나오는 메커니즘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까마귀들은 그것을 이해한 뒤 본격적으로 쓰레기를 주워 넣어 자판기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쓰레기를 화폐처럼 사용하는 녀석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반짝이는 것과 쓰레기를 교환하는 까마귀들이 생긴 것.
경쟁적으로 쓰레기를 찾아 먹이와 교환하다 보니, 주변의 쓰레기가 없어졌다. 까마귀들은 쓰레기를 찾기 위해 더 먼 거리를 이동해야 했다.
거기서 까마귀들은 생각했다. 이거 꼭 쓰레기로만 해야 하는 건가? 쓰레기의 무게에 따라 먹이의 양이 다르네? 그럼 무거운 걸 넣으면 어떻게 될까?
결과는 쓰레기를 찾아 헤매지 않고 주위에 있는 돌이나, 나뭇가지를 넣고 먹이를 빼먹기 시작했다는 이야기.
[···까마귀들은 쓰레기가 아닌, 근처에 널려있는 돌을 넣고 먹이를 빼갔지요. 실험은 그렇게 끝났습니다. 그렇다고 까마귀가 나쁘다거나 범죄를 저질렀다고 할 수 있을까요?]과연. 수류탄과 연막탄을 빼돌린 것을 잘못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이야기.
“까마귀에게는 잘못이라는 개념이 없을 수 있다는 소리군요.”
[그렇습니다.]“마약도 이게 범죄인지 나쁜 건지 따질 이유가 없으니 마찬가지로 다뤘을 거라는 뜻이겠군요.”
[예.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애매하네요. 어쨌든 알겠습니다.”
연구원의 설명으로 많은 것이 설명됐지만, 그래도 그게 면죄부는 될 수 없었다.
거의 10%에 육박하는 까마귀 새끼들이 말을 듣지 않았다는 건. 공포도 먹히지 않고 믿음의 대상으로 보지도 않았으며, 이쪽과 공생 선택을 하지 않은 놈들이 최소 그만큼 있다는 뜻이었다.
‘실내 경기장에서 지랄했던 놈들까지 따지자면 더 많고 말이지.’
까마귀가 비인간 인격체인지 뭔지 하는 건 나중 문제였다. 감추고 있던 부리와 발톱을 드러냈다는 것만으로도 조질 이유는 충분했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PD의 통신에 마루는 흔들림 없이 대답했다.
“법을 모른다? 그럼 법규를 알려주면 되는 겁니다.”
[바로 도망칠지도 모릅니다.]연구원 말대로라면 도망치는 까마귀들이 생길 게 분명했다.
“얼어 죽고 싶으면 가라고 하죠. 아마 날아서 가진 못할 겁니다.”
괜히 착한 유격으로 굴렸을까. 근육통을 넘어서 살았다고 울고불고 회개 기도하는 판국에 날아서 도망치는 건 불가능했다.
“그리고 사이코메트리 결과를 봐야 알겠지만, 까마귀를 노리는 놈이 있는 것 같네요.”
[아- 그렇군요. 확실히 폭탄이나 귀금속은 그렇지만 약은···.]PD의 머리에 떠오른 기관. 버지니아 랭리. 이쪽이 마약 조직과 연관됐다는 소문은 많이 있었다. 남미를 비롯해 여러 곳에서 마약과 무기 거래를 이용한 일들을 한다는 소문.
“약물로 세뇌하는 걸 잘하는 놈들이 있으니까요.”
약이 발견됐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버지니아 랭리가 떠오른 마루였다.
[시민권 사업을 최대한 빨리 마무리 짓겠습니다.]“그렇게 하세요. 최소한 디트로이트와 주변은 완벽히 통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무리하면 바로. 등급에 따라 출입과 이동을 제한하겠습니다.]늘 시민권을 소지하고 외출하도록 하고 시민권의 등급에 따라 출입, 이동을 통제하면, 간첩들의 활동을 즉시 제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까마귀들 말입니다···.”
영 내키지는 않았지만, 까마귀들을 제어할 방법이 필요했다. 까마귀가 비인간 인격체니 뭐니 그런 거라면 기강을 잡는 것만으로 관리하긴 어려운 게 사실.
지금이야 혹한이라 어디로 도망치지 못하고 꼼짝없이 굴려지겠지만, 날이 풀리자마자 도망치면? 버지니아 랭리에서 까마귀와 접촉했을지 몰랐기에 수단 방법을 가릴 때가 아니었다.
[예.]“공물 쥐처럼 까마귀들도 완전히 자리 잡게 할 방법이 없을까요?”
마루의 말에 PD는 조금 머쓱했다. 공물 쥐에게 전투 자극제와 HOLLY 경전 그리고 폭탄으로 신앙을 심었기 때문이었다.
[···공물 쥐와 까마귀는 많이 달라서. 확답해드리기는 어렵습니다.]마루와 PD가 까마귀 문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에리카가 사이코메트리로 무언가를 읽어내는 데 성공했다.
“읏- 사람?”
깍-
악으로 깡으로 깍으로를 반복했던 까마귀가 반사적으로 깍-소리를 냈다. 군기가 바짝 든 모습.
마루의 시선이 까마귀를 향하자, 바로 머리를 땅에 박듯 자세를 잡는 까마귀.
“사람?”
“네. 약과 관련된 인간이 있어요.”
에리카의 대답에 마루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예측이 현실이었다.
“그리고?”
“어- 까마귀들에게 약과 먹이 새로운 보금자리를 준다고 했어요.”
까마귀들을 스카우트하려고 했다는 말. 그리고 명령을 듣지 않고 둥지에 남아있던 갱단 까마귀들은 그쪽에 붙을 생각이었던 거고.
잠자고 이야기를 듣고 있던 김 양이 의견을 제시했다.
[경력직 빼고 싹 쓸어 버리는 건 어떰? 통수 생각하면 싹 정리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2천 마리 남짓한 경력직 까마귀를 제외하고 싹 죽여버리자는 이야기.
“그건 아니에요. 벌 받아야 할 까마귀들은 전부 죽었잖아요. 그리고 여기 있는 애들은 명령대로 했잖아요. 여기서 진짜 어려운 훈련도 받았고. 회개도 하고 그랬는데···.”
[감정적으로 생각할 때가 아니라고 하지 않았음? 통수 맞으면? 비행선은 어떡하고? 녀석들이 저쪽에 붙어서 여길 폭격하면?]“그렇지 않아요. 다들 회개하고 신실해졌어요.”
[그걸 어떻게 장담함?]김 양과 간호사의 목소리에 조금씩 감정이 실리기 시작했다.
“그만.”
[······.]“······.”
단호한 마루의 목소리에 두 사람이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주변을 봐.”
“······.”
[······.]까마귀들이 이쪽을 보고 있었다.
통신기로 한 김 양의 말은 듣지 못했지만, 분위기상 간호사가 자기들을 보호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아챈 눈빛이었다.
공포, 긴장, 불안이 뒤섞인 눈빛.
간호사에 대한 신뢰와 마루에 대한 경외와 믿음까지.
까마귀들의 눈빛은 여러 가지 감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마루가 간호사에게 말했다.
“기회를 주지. 까마귀들 숙소는 당분간 이곳으로 해. 경력직 제외하고 외출 금지. 제대로 교육해봐.”
“에.- 엣- 감사합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겉으로는 잘 따라도, 속으로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으니 사이코메트리를 붙여줬다.
“에리카는 나나에 도와주고.”
“네.”
고개를 작게 끄덕여 감사하는 간호사.
“김 양과 친위대는 그대로 호위.”
[···알겠음.]마루는 일단 기회를 줬다.
그걸 까마귀들도 알아챘는지 낮게 가라앉았던 분위기가 살짝 풀어졌다.
“다들 들으셨죠?”
간호사의 말에
깍!
깍!
한목소리로 대답하는 까마귀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