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451)
러스트 [RUST]-451
묘하게 간호사를 닮은 느낌의 여자를 풀어 준 뒤, 추적해 뒤치기하자는 계획은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피츠버그도 그렇지만 윌밍턴을 생각해 보면 혼자 가는 게 제일 좋습니다.”
피츠버그야 그렇다 치지만, 윌밍턴은 자폭 준비까지 된 상태였다. 여차하면 모조리 생매장해버리겠다는 악의가 선명했다.
윌밍턴이 그랬다는 건, 다른 실험실이나 센터도 비슷하게 자폭 장치가 있을 게 뻔했다. 심지어 윌밍턴이 털리면서 구축함까지 날아갔으니 독이 단단히 올랐을 텐데, 거길 혼자 가겠다는 다니. PD가 펄쩍 뛰었다.
“위험해서 안 됩니다. 그것도 혼자 가신다니요. 절대 안 됩니다.”
당연히 위험하니까 혼자 후딱 다녀오겠다는 마루와 절대로 혼자 보낼 수 없다며 강경하게 반대하는 PD였다.
“간 김에 처리할지, 그냥 위치만 파악하고 빠질지 판단해서 할 테니 괜찮습니다.”
괜찮기는 뭐가 괜찮다는 건지, PD가 진이 빠진 얼굴로 마루를 바라봤다.
“이제까지 위험하다고 그냥 빠진 적 있으셨습니까?”
퀭한 눈으로 하는 질문에 마루는 할 말이 궁했다.
“······.”
“······.”
그러니까 이런 상황.
왕국 선포하고 며칠이나 됐다고 국왕이 칼 들고 혼자 나간다는 건에 대해.
PD는 이렇게 말했다.
‘대체 왜 그러시는 건지요. 네? 제발 좀.’
김 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왕인데 꼴리는 대로 해야지. 응.’
간호사는 까마귀 끼워 살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혹시 전령과 불침번 역으로 까마귀 필요하지 않으신가요? 애들 요즘 잘합니다. 잘해요.’
사이코메트리는 생각이 없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네요.’ 그녀의 능력은 마루에게 통하지 않았으니까.
어쨌든 PD는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라도 승천해 버리면 신성 아크 왕국은 어떻게 되겠는가? 후계라도 튼튼하든지, 아니면 승천하게 됐을 시 대안이라도 만들어 놓고 가든지.
“적의 위치를 파악하는 일이라면 까마귀나 드론만 써도 가능합니다.”
“저쪽에도 까마귀가 있어서 어렵지요. 최신 드론이라 영하 20~25도까지는 버티겠지만, 영하 30도 이하로 찍으면 배터리 문제가 생길 겁니다. 제일 확실한 건, 제가 직접 가서 확인하는 겁니다.”
마루와 PD의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했지만, 어쩌겠는가? 왕이 가겠다는데.
다만 블라디마루 칼린이 최고 전력이라고 하더라도 혼자 가는 건 정말 아니었다.
“···굳이 직접 가신다고 한다면 원거리 지원과 최종 경호 가능한 인력과 같이 가셔야 합니다.”
“원거리요? 이제 막 경험을 쌓고 있는 친위대를 이번 작전에 데려가는 건 어렵지요.”
김 양과 친위대는 까마귀 재교육 지원과 혹시 모를 약쟁이 까마귀로부터 나나에 보호에 투입된 상황. 그렇다고 근거리 중심의 기사단을 데려가는 건 은밀 기동이 핵심인 상황에서 무리였다.
“다시 말하지만, 혼자 조용히 갔다 오는 게 제일 확실합니다. 다들 만류하다시피, 놈들도 설마 국왕 자리에 앉은 자가 직접 추격하고 다닐 거라고는 생각지 못할 것 아닙니까?”
왕국 선언 초기이기 때문에 오히려 가능성 있다는 마루의 주장에 PD는 고개를 저었다.
“까마귀 때문에 혼자 가시는 건 위험합니다.”
“약 먹은 까마귀가 위험해도 결국 약쟁이일 뿐이니 괜찮습니다.”
인간이 약을 먹어도 약쟁이였고.
처음에는 약쟁이 써는 게 일이었다. 초반에 종류별로 썰어보지 않았던가?
버서커 폴이라든지, 크리스털 같은 신형 약부터 갱과 카르텔, 마피아 같은 범죄조직 정리하면서 전통적인 약을 쓰는 놈들까지.
약쟁이라면 지긋지긋할 정도로 썰어봤던 마루인지라 PD의 걱정이 이제는 슬슬 걸리기 시작했다.
사실 그랬다. 왕이 됐다고 ‘이리 오너라.’, ‘저리 가거라.’ 하면서 왕좌에 앉은 토템으로 지낼 생각 없었기에, PD의 반대와 걱정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
‘후- 어렵겠군.’
표정이 점점 나빠지는 마루를 본 PD가 속으로 말을 삼켰다.
그가 보기에 이분은 약 먹은 까마귀를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계셨다.
인공지능 디아나가 최신 드론과 함께 몰이 사냥을 했음에도 탈출한 놈들이었다.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인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놈들 가운데 약 먹은 천재 까마귀라도 있다면 어떻게 할 건가?
“놈들이 까마귀들에게 제공한 약은 암페타민 계열로 판별됐습니다. 까마귀들에게도 사람이 썼을 때와 비슷한 효과가 있다면 오히려 더 위험합니다.”
차라리 전투 자극제 계열의 버서커 폴이나 크리스털 쪽이었다면 더 나았다. 그쪽은 이성을 잃고 공격성이 강화되는 쪽이니까.
“약 먹은 까마귀라. 알겠습니다.”
그냥 살기로 콱 해버리기 위해서라도 혼자가 편했던지라, 마루는 일단 알았다고 PD를 진정시켰다.
“아무리 위험하다고 한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혼자 움직이는 게 여러모로 더 유리합니다.”
“···신성 아크 왕국의 구심점이시라는 것만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중요한 것은 전하의 안전입니다. 부디 다른 모든 것보다 안전에 유의해 주십시오.”
“약속드리지요. 절대 무리하지 않겠다고.”
PD는 마루의 고집을 막을 수 없었다.
그렇게 마루는 풀어놓은 적과 약쟁이 까마귀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탁-
휘이이이이이익-
탁-
다다닥
부우웅-
탁-
리퍼 슈트의 은신 기능을 사용한 채, 건물과 건물 사이를 점프한 마루가 납작 몸을 숙였다.
까아-?
까마귀 한 마리가 낮게 스쳐 지나갔다. 눈이 쓸린 것을 보곤 확인하러 내려온 것.
‘걸렸나?’
살기로 잡아야 할까? 고민하던 찰나, 주변을 다시 한 번 돌아본 까마귀가 고도를 높였다.
‘어이없군.’
확실히 적에게 까마귀가 있다는 건 까다로웠다.
그간 까마귀들이 정찰하면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었는데, 적의 관점에서 겪어보니 까마귀 정찰은 욕이 나왔다.
‘생체드론이 따로 없네. 그러고 보니 이 새끼들 순찰하라고 했더니 날이 춥다고 설렁설렁한 거였어?’
목숨이 달린 일이라서 그런지, 고작 20마리 남짓한 약쟁이 까마귀들의 경계가 제법 삼엄했다. 친위대와 함께 왔다면 들켰을 듯.
‘저 여자. 생각보다 빠른데?’
간호사 비슷한 느낌인 여자의 움직임이 제법 날랬다. 세뇌 암살자가 그렇듯 저 여자도 육체의 제한이 반쯤 풀린 것처럼 보였다.
한참을 바삐 걸어간 여자가 시내 외곽 쪽에 있는 집에 쏙 들어갔다.
‘설마 저기가 지부 같은 건 아니겠지?’
만약 그렇다면 등잔 밑이 어두웠다는 소리. 마루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하늘을 확인했다. 공중에는 20여 마리의 약 까마귀들이 전부 부산스럽게 날아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약 먹은 까마귀인 만큼, 약 기운이 넘치는 지금이야 쌩쌩 좋다고 움직이겠지만, 약 기운이 떨어질 때쯤 되면 늘어져 버릴 것이 분명했다.
마루는 그늘 속에 자리를 잡고 디아나를 호출했다.
“현재 위치 확인해. 여기 놈들의 안가로 보이는 건물 찾았다.”
[확인했습니다. 진압부대 준비하겠습니다.]디아나는 바로 상황을 알린 뒤, 출동 명령을 전달했다.
“바로 포위하고, 진압 준비해 얼마나 걸리지?”
[현재 표기된 위치까지 도착. 진압 작전에 돌입하기까지 15분 소요예정입니다.]“광학 은신 모듈 장착한 엑소슈트 부대와 조류 포획 장비까지 챙기도록.”
[전달했습니다.]부르르릉-
“잠시만. 엔진 톱 소음 같은 게 난다.”
여자가 들어간 건물에서 엔진 소리가 새 나오기 시작했다.
부-웅- 부르르르-
“이게 무슨 소리지?”
[소형 원동기 엔진음과 유사합니다.]건물 2층 한쪽 벽이 무너지듯 열리며 스노모빌이 울컥 튀어나왔다.
“씨발-”
마루가 그림자에서 벌떡 일어나기가 무섭게
위에에엥-
엔진 소리와 함께 여자가 탄 스노모빌이 쏜살같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마루도 반사적으로 내달렸다.
달리는 스노모빌을 호위하듯 뱅글뱅글 돌면서 주변을 관찰하는 까마귀들. 약 기운이 남았는지 거침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림자에서 그림자로. 빌딩 옆과 골목 어두운 곳을 3차원 입체기동으로 내달리며 스노모빌을 추격하는 마루였다.
[추격조를 편성할까요?]“그렇게 할 거면 내가 오지 않았지. 아직은 들키지 않았어. 스노모빌 이동 경로 예측 시작하고 놈들 안가에 자폭 장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쪽 조심시켜.”
[전달했습니다.]“놈들 도주 경로 확인됐나?”
[현재까지 적들이 이동 가능한 루트는 5곳으로 나왔습니다.]“올려.”
마루의 HUD에 지도가 펼쳐지며 예상 도주로가 나왔다. 2곳은 디트로이트의 서부와 북부로 향하는 루트.
“서부, 북부 제외.”
2개의 루트가 지워지고 3개의 루트만 남았다. 각기 남서, 남남, 남동으로 갈라진 경로. 마루는 루트를 따라 내려간 주요 도시를 확인했다.
어디로 움직이든 반나절 이상 거리를 스노모빌로 가긴 힘들었다. 가장 유력한 곳은 털리도였지만, 털리도는 핵에 맞은 도시였다.
지난번 들렸을 때는 핵폭발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대부분 떠나버린 무법 도시였는데.
‘가만. 방사능 무법 도시면 놈들의 비밀 연구실이 들어설 좋은 조건이 아닐까?’
약쟁이 까마귀들을 그냥 둘 놈들이 아니었다. 조각조각 해부해서 지능이 높아진 까마귀의 비밀을 찾으려고 하겠지.
스노모빌이야 고장만 나지 않는다면 100마일이고 200마일이고 달리겠지만, 까마귀들은 그렇게 오래 날지 못했다. 아무리 약으로 각성시켰다고 한들 물리적 한계를 넘기는 어려웠다.
‘그렇다면. 털리도다.’
털리도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갔다면? 비행선으로 따라가야겠지.
부우우우웅-
마루의 예측대로 약 먹은 까마귀들이 퍼지지 않게 속도를 조절하는 스노모빌이었다.
“좋아. 이대로 가면 털리도 방면이 맞나?”
[85% 확률로 털리도 방면입니다.]힘껏 내달리던 마루가 천천히 속도를 줄였다.
그렇다면 뛰어서 체력을 손실할 필요가 없었다.
“은신 모듈 장비한 설상차 준비해서 이쪽으로 비행선 보내. 신형 드론도 전부 가져오고. 놈들보다 먼저 털리도로 가서 기다린다.
[비행선 출발합니다. 7분 뒤 현장에 도착 예정입니다.]저 멀리 약 먹은 까마귀들이 마루의 시야에서 사라질 무렵, 거대한 비행선이 빌딩 옥상에 잠시 걸렸다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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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선은 약쟁이 까마귀들의 정찰에 걸리지 않기 위해 빙 돌아서 목적지에 도착했다. 은신 모듈이 장착된 설상차는 디아나와 연결되어 있었다.
[제어 시스템 연결완료. 이후 중계기 설치 시작합니다.]“신형 드론 전부 보내.”
비행선에서 원거리 공격 가능한 신형 드론 백여 대가 삼삼오오 편대를 이뤄 사방으로 퍼졌다.
“까마귀들에게 걸리지 않게, 그림자와 사각으로 붙어서 이동시켜.”
[비행선은 어떻게 할까요?]“고도 8km 유지, 공대지 미사일과 벙커 버스터 준비해.”
[확인했습니다.]“위치는 파악됐나?”
여자에게 박아 넣은 위치추적 장치 칩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예측대로 털리도 방면으로 이동 중입니다.]“좋아. 출발한다.”
마루가 탄 설상차가 은신한 상태로 털리도 인근에 자리를 잡았다. 20분 정도 지나자, 하늘 위를 번잡하게 날아다니는 까마귀 무리가 보였다.
약 기운이 떨어진 것들이 생겼는지 하늘을 경계하는 까마귀 숫자는 고작 7마리. 그마저도 2마리는 고도를 높이지 못하고 무겁게 날갯짓하고 있었다.
부우우우웅-
요란한 소리를 내며 멀찌감치 떨어진 눈밭을 가르는 스노모빌. 마루의 설상차가 조심스럽게 꼬리를 잡았다.
빌딩 사이사이에 대기하고 있던 드론들이 스노모빌이 움직이는 방향을 타고 소리 없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잠시 뒤, 큼지막한 빌딩 앞에 정지한 스노모빌에서 여자가 내렸다. 핵폭발 여파로 부서진 빌딩은 불빛 하나 없이 흉물스럽게 서 있었다.
간호사 비슷한 느낌인 여자는, 그 불길한 빌딩을 향해 태연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까아악-
가악—
스노모빌에 매달린 썰매에는 약 기운이 떨어진 까마귀들이 여자를 불렀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여자.
마루도 설상차에서 내려 빌딩 근처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정찰 까마귀들이 내려옵니다.]디아나의 경고에 그 자리에서 정지한 마루.
푸드덕-
본래 조용했어야 할 날갯짓 소리가 거칠었다.
한 마리가 허겁지겁 내려오자, 남은 까마귀 전부 정찰이고 뭐고 다 때려치운다는 듯 아래로 내려앉았다.
까아악-
까악-
스노모빌의 열쇠를 부리로 물어 뽑은 까마귀가 바로 스노모빌 짐칸을 열쇠로 열었다.
부드덕
까악
깍- 까악
죽겠다며 앓고 있던 까마귀들이 날갯짓하며 흥분했다.
조심스럽게 들어 올린 투명한 병 속에 들어있는 하얀 알약.
까마귀 두 마리가 합심해 병뚜껑을 비틀어 여는 순간.
펑- 퍼펑-
퍼버벙-
소리와 함께 포획용 그물이 까마귀들을 덮쳤다.
슥- 눈 속에서 몸을 일으키는 사람들. 전신 방역복을 입은 요원들이 버둥거리는 까마귀를 보며 웃었다.
“이 새끼들 약 때문에 정신이 나갔는데요?”
“정찰은 무슨 정찰. 눈 속에 숨었더니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새대가리지 뭐.”
그물에 잡혔음에도 병에서 떨어진 약을 먹기 위해 발버둥 치는 까마귀들의 모습은 처절하기까지 했다.
“야. 저 새끼들 약 먹기 전에 빼. 저거 실험하려면 그만 먹여야 해.”
“알겠습니다.”
미친 듯 발광하는 까마귀를 한 마리씩 포획하는 요원들이 갑자기 무장을 고쳐맸다.
“씨발. 병신년이 꼬리를 달고 왔다.”
“전투준비!”
그 소리와 동시에 디아나가 마루에게 보고했다.
[위치 추적기가 꺼졌습니다. 발각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