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457)
러스트 [RUST]-457
‘피라냐가 떼로 달려든다?’
좆됐음을 온몸으로 표현하던 기순이 갑자기 미친 듯이 웃었다.
“피라냐가 떼로 달려드는 것처럼?”
큭-큭큭-
크하하하핫!
그렇지 버지니아 랭리와 국토안보국 그리고 7 중국에 러시아까지 달려드는 거면, 떼로 달려드는 게 맞지. 맞아.
중얼거리던 기순이 나주연을 보며 말했다.
“야- 너냐?”
“갑자기 무슨 소리죠?”
“솔직하게 말해봐. 그래야 내가 설명을 해주지.”
“무슨 소린지 영문을 모르겠네요. 오늘따라 왜 그러죠? 김기순 부장님 또 나루에게 차였나요? 밥 한 끼 먹기 힘들다고 하소연하셔서 가끔 자리를 마련해 드렸더니 아무래도 소용이 없나 보네요. 소용없으면 포기할 때도 되지 않았나요? 저한테는 포기하라고 하시면서 나루에게는 참 질기신 분이네요.”
나주연의 빈정거림에도 기순의 웃는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언뜻 광기로 보이는 눈빛, 나를 물로 보느냐는 듯한 입꼬리가 뒤섞인 얼굴.
“나 회장님. 정말 궁금한 게 생겼는데 말입니다.”
“······.”
진지하지 않은 듯 진지한 어투로 꼬기 시작하는 기순이었다.
“피라냐가 떼로 달려들었다면서요. 걔들이 갑자기 돌아서 몰려들었을 리는 없고. 피 냄새가 났으니까 그랬겠죠. 그럼 피라냐를 자극한 피는 누가 뿌린 걸까나요?”
“······.”
기순의 이죽거림이 잔향처럼 길게 늘어졌다.
“그놈의 정신 나간 한국 정부는 한겨울이 지나도록 닥치고 있다가 갑자기 왜 마루네 식구를 내놓으란 답니까? 영문은 이럴 때 모르는 거 아닌가요? 예?”
“······.”
생동감 있게 반응하던 나주연의 표정이 일순 싸늘하게 변했다.
“지금 그게 무슨 소린가요?”
“몰라서 묻습니까? 다시 말해드릴까요? 가만히 있던 피라냐들이 갑자기 떼로 몰려왔다면서요. 그냥 왔겠습니까? 피 냄새가 났으니까 온 거겠죠. 그럼 그 피를 누가 떨궜냐는 겁니다.”
“······.”
“나 회장님. 아니···. 주연아. 정말. 후- 아니길 바라는데. 설마 마루가 왕국 선언한 거 먼저 알고 있었던 거냐? 그래서 한국 정부에 흔적 남긴 거고?”
제정신이 나간 한국 정부라면 비밀이 지켜질 리 없었다.
7 중국 가운데 하나에서만 털었어도 7 중국 전부 풀렸을 거고. 러시아에 가는 건 금방이었을 터. 버지니아 랭리와 국토안보국에 들어가는 것도 마찬가지.
“그래서. 가족 위험하다는 거 알면, 마루가 데리러 올 거 같아서? 가족들 데리러 온 김에 너도 데려가고?”
“······.”
“가족 데려가면서 능력 있는 널, 데려가지 않을 리 없다고 생각한 거냐? 그래서 그런 거냐? 네 예상과는 다르게 울릉도에서 6개월이 지나고 겨울이 다 가도록, 아무 소식이 없으니까 그런 거야?”
“······.”
입을 조개처럼 다문 나주연.
기순이 다시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너. 마루가 널 찾게 한다는 게 이런 의미였냐? 이렇게는 아니었잖아. 미치겠네-. 정말. 마루네 가족 쥐고있어도 이제까지 연락 한 번 없으니까. 이젠 대놓고 그러는 거냐? 위험한 것들 불러서라도 여길 찾아오게 하고 싶었던 거야? 그거 안 통한다고. 그냥 포기하라니까.”
대리석에 금이 가듯, 굳었던 나주연의 얼굴에 균열이 생겼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김기순. 당신은 내 마음 알잖아. 아니야? 따개비 변이 치료 핑계를 대면서 주변을 도는 이유가 뭔데? 나루 때문이잖아! 친구 가족이라 신경 쓴다고? 나루가 없어진 뒤에도 당신이 여기 있을까? 아니잖아. 당신도 방법을 찾겠다고 그러면서 뭐? 포기?”
확 내질렀던 나주연이 호흡을 고르곤 말했다.
“후- 김기순 씨. 당신 그런 쪽으로 머리 잘 굴리잖아요. 그러니까 제 기분이, 제 상황이 어떤지 잘 알지 않나요? 당신도 나루를 포기하지 못하면서.”
기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래 나주연과 김기순은 각자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 둘 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거절당하고 있었고. 빌어먹을 동병상련이면 동병상련이었다.
“나루가 당신을 거부하는 이유. 알겠나요? 아직도 모르죠?”
나주연과 마루야 서로 원수 집안이니까 그렇다고 치지만, 김기순과 하나루는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생긴 게 문제인가? 변이 따개비와 융합해서? 그러면 그렇다고 말을 하든가. 이유를 말해주지 않으니 미치고 환장할 따름이었다.
‘이유가 없다. 그냥 싫다.’ 이렇게라도 말해주면 욕이라도 한 사발 퍼붓고 말겠는데, ‘아는 오빠로 지내는 건 좋다. 사귀는 건 글쎄···.’라는 포지션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밥은 같이 안 먹으면서 술자리는 또 같이한다. 직접 약속을 잡으려고 하면 싫어하는데 나주연을 거쳐 연락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살갑다.
김기순에게 있어 나루는 심장에 뿌리 박힌 기생충처럼 고통스러웠다. 그런 기순의 구겨진 얼굴을 바라보던 주연이 말했다.
“나루를 생각하면 아프고 분하죠? 저도 그렇답니다. 저는 더 그래요. 더.”
사량의 약을 썼음에도 통하지 않았다. 사랑이 증오로 환산되어 그를 반쯤 실험체로 다뤘건만, 그마저도 통하지 않았다.
그녀는 마루에게 다양한 약물을 쏟아 넣었지만, 마루는 그녀가 만든 약물에 내성이라도 있는 것처럼 멀쩡했다.
그리고 그게 그녀의 증오를 다시 불꽃으로 바꿔 버렸다.
‘아- 저 사람은 약으로는 바꿀 수 없는 사람이구나.’
기적에 가까운 약으로도 변하지 않는 사람. 사랑이란 그저 호르몬 작용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했던 것이 무너지는 계기. 물질로 바꿀 수 없는 사랑의 증거가 마루의 존재였다.
‘저 사람만이 나를 나로 볼 수 있는 사람이야.’
‘저 사람만이 사랑을 사랑으로 대할 수 있는 사람.’
그렇게 다시 타오른 사랑의 감정은 깊고 어두운색. 결단코 꺼지지 않을 불꽃이 된 감정이 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을 매일 불태우고 있었다.
기순의 구겨진 얼굴이 알루미늄 캔 소리를 냈다.
“그래서 그런 거냐? 네가 만든 약이라면 마루네 아버지 암 정도는 치료할 수 있으면서, 마루가 오면 치료하려고 그냥 그렇게 둔 거냐?”
“아니요.”
어둡게 타오르던 나주연의 안광이 가라앉았다.
“그럼?”
“원인을 알 수 없지만, 아버님도 제 약이 통하지 않는 체질이었어요.”
지금은 전신에 퍼진 암으로 인한 고통을 덜어주는 것만 가능한 상황이었다. 사실상 언제 목숨이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
“그럼 네가 만든 약에 중독된 아주머닌?”
“제가 만든 약이 비싼 이유가 뭔지 알잖아요. 지독한 의존성과 중독성은 약이 만든 부작용이 아니라는 거. 어머니는 스스로 과거를 선택하신 거죠. 현실보다 가장 행복했던 기억을 원하신 것뿐이랍니다.”
의지만 있다면 언제든 털고 일어날 수 있는 약이었지만, 반대로 의지가 없다면 어떤 방법으로도 자신이 만든 행복한 과거의 상념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기순의 한쪽 눈썹이 일그러졌다.
“나루는? 나루에게도 약을 썼냐? 피아노 대회 우승하고 그러는 환상이라도 심었어?”
“저번에도 말씀드렸잖아요. 제가 환상을 심고 그런 일 없다고. 강화와 관련된 약을 쓰기는 했지만, 그건 전부 나루의 꿈을 위해서 썼을 뿐이랍니다. 피아노를 잘 치는 게 나루의 꿈이었으니까요.”
“······.”
“······.”
쓰기는 썼다는 소리였다.
아마. 그 과정에서 마루와 관련된 데이터를 축적하려고 했겠지. 그녀에게 있어 최종 목표는 마루였을 테니까.
기순은 자기처럼 뒤틀린 나주연을 향해 말했다.
“내가 할 말은 아니다만, 일을 더 키우지 말고 마루는 포기해라. 최소한 지금은 포기해. 나중에 시간이 더 지나면 모를까 지금은 아니야.”
기순의 말에 가라앉았던 어둑한 불꽃이 다시 나주연의 동공에서 타오르는 것 같았다.
“당신도 하지 못하는 걸 저보고 하라고요? 아? 그러고 보니, 당신에게는 아직 방법이 남아있었죠. 나루의 마음을 돌릴 방법이.”
나주연이 책상에서 작은 병을 꺼내 올렸다.
“궁금했죠? 정말 사랑의 약이 있는지 묻고 싶었죠?”
“······.”
나주연이 기순의 눈을 바라보며 테이블 위의 약을 기순의 앞으로 밀었다.
스으으윽-
“이게 그 약이랍니다. 당신의 기약 없는 사랑을 찾아줄지도 모르는.”
“······.”
기순의 시선이 작은 약병을 향했다.
사랑의 약.
마루에게 통하지 않았고, 나주연의 부친이 그녀를 증오하게 만들어버린 약이라는 걸 알면서도 기순은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아시죠? 사랑의 반동은 증오라는 걸. 무관심이 아니랍니다. 어쩌면 저를 찾지 않는 이유도 절 증오하기 때문일까요?”
“······.”
“그래도 이걸 쓰면 셋 중 하나로 결말이 나겠네요. 그 사람처럼 아무런 효과가 나지 않거나, 사랑하게 되거나 아니면 당신을 증오하게 되겠죠. 그래도 결판이 날 테니 어떤가요?”
“왜 지금이지?”
“언제 올지는 모르지만, 곧 몰려올 테니까요.”
“미친···.”
설마설마했더니 정말 기순의 예상이 맞았다.
“마루한테는 인질이 통하지 않아. 가족은 인질이 되지 않는다고! 서울에 있을 때도 말했잖아.”
“그래요. 말했었죠. 그럴 수 있어요.”
나주연의 어둡게 타오르는 눈빛이 기순을 향했다.
“너···. 너. 너.”
“그런데 말이죠. 가족이 통하지 않는다면 친구는 어떨까요?”
“미쳤구나?”
“당신은 멀쩡한 것처럼 말하네요. 그래서 이건 어떻게 할래요? 가져갈 건가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텐데.”
기순은 욕을 삼켰다. 바로 앞에 놓인 사랑의 약.
저게 있다면. 어쩌면.
‘정신 차려 병신아. 저걸 쓴 여자를 봤잖아?’
약이 먹히지 않은 결과 돌아버린 사람이 눈앞에 있었다.
그걸 알면서도 기순은 사랑의 약에서 눈을 돌릴 수 없었다.
지금 중요한 건 저 약이 아니었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 했다.
몰려온다고 했으니, 최소한 2곳 이상이 울릉도를 노리고 올 게 분명했다.
‘잠깐. 마루가 왕국을 선포한 걸 알고 있었다?’
누가 알려줬다는 의미.
‘거리상으로는 중국인데. 중국은 아니야.’
7 중국은 아니었다. 나주연이 아무리 막장이라고 하더라도 7 중국과 손을 잡아 자발적으로 인육 캡슐 공장장에 취임하지는 않을 테니까.
순간적으로 떠오른 기억. 나주연이 가지고 있던 명함 둘, 버지니아 랭리의 명함과 국토안보국의 명함.
“어디냐? 이 쇼는 어디랑 손잡고 하는 거야? 버지니아? 아니면 국토안보국?”
“글쎄요. 어딜까요?”
기순의 머리가 팽팽 돌았다.
“버지니아 랭리군. 정보를 흘리는 것도 거기서 제안한 건가?”
“···글쎄요.”
사람의 약점을 후벼 파는 쪽이라면, 당연히 그쪽이겠지.
“버지니아 랭리는 믿을 만한 놈들이 안 된다는 걸 알면서 왜 그랬냐?”
“세상에 믿을 놈이 있던가요? 안 그래요? 그쪽과는 이야기가 잘 됐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역시 당신도 마찬가지라는 듯한 나주연의 미소에
‘빌어먹을.’
기순은 자기도 모르게 움켜쥔 약병을 바라봤다.
그런 기순을 향해 나주연이 말했다.
“이제 우리 서로 솔직해졌으면 해요. 이제 이렇게 무의미하게 시간을 낭비하긴 싫군요. 저는 당신이 나루를 얻도록 도울 테니, 당신은 제가 마루 씨를 얻도록 돕는 겁니다. 어때요?”
나주연이 명함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렸다.
버지니아 랭리의 명함.
“이곳을 미끼로 향후 걸림돌이 될 세력을 줄여 놓기로 했으니, 우리가 합류하기만 한다면 그쪽에서 우리 지분은 확실합니다.”
제약 전문가와 칼잡이 국왕의 가족이라니. 당연히 몰려들지 않겠나? 그리고 이 좁은 울릉도에 들어온 자들은 다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 섬 자체가 거대한 덫일 테니.
“어떻게 하실 건가요? 저와 함께 꿈을 이룰 건가요? 아니면···.”
며칠 후, 울릉도 항만에서 시작한 총성과 폭발음이 거대한 버섯구름과 함께 지워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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