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462)
러스트 [RUST]-462
늑대도 표정이 있다니.
김 양과 간호사가 불쌍한 표정으로 마루를 향해 다가서는 커다란 늑대를 보곤 ‘아- 좀- 안타깝네.’ 했다.
[너네 그냥 뒈지고 싶냐?]크릉?
간호사의 통역에 바로 배를 까뒤집는 우두머리 늑대였다.
이건 그러니까 연약한 인간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껍데기만 인간.
절대 부끄러운 게 아니었다.
끼잉-
낑-낑-
간호사의 통역이 없어도 뚜렷하게 느껴지는 복종의 소리. ‘살려주셈요.’
[너 이번에 살려주면 2번 째야. 알지? 저번에도 살려줬던 거.]그러믄입쇼.
저격 포인트에서 내려온 김 양이 배를 까뒤집은 거대한 늑대를 보곤 갸웃했다.
[이거 덩치만 컸지 개네?]크르르르-
개라는 소리에 눈이 희번덕 돌아간 늑대가 김 양을 향해 이를 드러냈다.
[야-]마루의 한마디에 혓바닥으로 코를 핥으며 언제 그랬느냐는 듯 엎어진 자세를 유지하는 순발력. 태세전환이 심상치 않았다.
심지어 어디선가 많이 보던 자세. PT의 향기가 느껴지는 모습에 마루가 피식 웃으며 간호사에게 말했다.
[말귀 어느 정도 알아듣는 거 같으니까. 까마귀 훈련원에 자리 만들어서 같이 교육해. 새끼들도 있으니까 조기교육이 되겠네.]간호사가 우두머리 늑대에게 마루의 말을 전달했다. 간호사가 하는 말을 알아듣는 늑대를 보면 신기하긴 했다.
[까마귀 정찰은 어때?] [근방에 지대공 미사일 발사대는 없었음.] [비행선 오라고 해. 전리품 실어야지.] [이번에는 곰탕임?]진짜 곰탕? 레알 곰탕이네?
김 양의 눈동자가 기대감으로 빛났다.
[야. 변이 괴수 먹는 건 좀 그렇다고 했잖아.] [그랬지만. 저번 코요테탕도 맛만 있었잖음? 바이러스 그런 거 오래 잘 익히면 괜찮다며.]미묘하게 곰탕에 꽂힌 김 양이었다.
[먹을 게 없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곰탕인데? 쓸개도 좋고. 발바닥 요리도 있고. 순대로 곱창을··· 아니, 곱창으로 순대도 만들고···.]김 양의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처음 먹어보는 고기. 곰.
곰. 고기-
곰. 곰. 고기- 곰–
이상한 리듬을 타는 김 양에 마루가 고개를 저었다.
[···그래 먹자. 먹어.] [후으으흐흐- 제대로 부위별로 가겠음.] [잡식에 수컷이라 냄새가 장난이 아닐 텐데.]그런 마루의 걱정을 사뿐히 무시하는 김양이었다.
[곰이랑 개는 친척이라고 했음. 양념만 잘하고 요리만 잘하면 맛있음. 분명. 응.]의기양양 육질을 살피는 김 양이었다.
[오. 싱싱해. 대따. 싱싱해. 육질 튼실해 보임. 레알.]지금 막 잡았으니 당연한 말 아닌가?
덤프트럭만큼 커다란 곰의 뱃속에서 밖으로 나들이 나온 곱창은 성인남성 허리 두께처럼 굵었다. 후끈한 김과 함께 피어오르는 피 냄새에 배를 까고 누운 늑대의 고개가 절로 쏠렸다.
줄줄 침을 흘리면서도 차마 접근하지 못하는 애닮은 모습.
간호사가 딱 서서 곰을 향한 늑대의 시선을 가로막았다.
크르- (비켜)
비키라며 인상을 쓰려던 늑대가 마루의 눈치를 보곤 태세를 전환했다.
혓바닥으로 츄룩- 흘러내리는 침을 훑어내는 늑대.
“말귀 알아듣는 거 알아요. 앞으로 잘 부탁해요.”
슬쩍 무시하는 늑대에게 간호사가 다가섰다.
“들었죠? 열심히 교육받아야 한다는 거.”
크릉- (거기서 좀 비키라고.)
늑대가 그녀를 무시한 것처럼 간호사도 자기 할 말을 했다.
“지능이 약 까마귀보다 떨어지는 건 아니겠죠? 아니라고 믿겠어요.”
크르르릉- (날개 달린 것들이랑은 관계 안 한다.)
“관계하지 않는다는 게 무슨 소린지 모르겠지만, 약 까마귀만도 못하면 좋지 않을 겁니다.”
하품하듯 입을 쩍 벌리고 입맛을 몇 번 다신 늑대가 고개를 돌렸다.
그런 우두머리 늑대에게 간호사가 웅장하게 경고했다.
“제 교육 통과하지 못하거나, 영 미진하다면 직접 정리하신다고 했으니까 알아서 하세요.”
으릉? (정리?)
간호사는 대답 대신 늑대의 시선을 가로막고 섰던 몸을 옆으로 뺐다.
내장을 바닥으로 쏟아낸 채 머리통에 구멍이 뚫린 곰이 우두머리 늑대의 눈동자에 가득 찼다. 간호사가 말한 정리란 그런 것.
어쩐지 침샘이 바싹 말라버린 늑대가 몸을 옆으로 뉘었다.
킁-(교육이 뭔데?)
“우선 말부터 배워야죠. 단어라도 좋으니까 제대로 소통할 수 있어야 해요. 까마귀들은 벌써 다 끝낸 과정이라고요.”
착- 간호가 낱말카드를 꺼내 우두머리 늑대의 눈앞에 펼쳤다.
“에- 그럼- 시작해 볼까요?”
킁-
어쩐지 숙련된 분위기를 풍기는 간호사였다.
[1호기. 간호사가 아니라 조련사 같은 느낌이네.] [어쨌든 잘하고 있으니까 됐지 뭐.]김 양이 저격 포인트에서 확인한 주변 영상을 공유하며 의견을 제시했다.
[이쪽부터 저쪽까지 멀쩡한 건물들이 제법 많았음. 웰랜드 운하 주변 정리 끝났으니까, 친위대 불러서 이쪽 방면까지 정리하는 건 어떰?] [운하 방어가 더 중요해.]친위대 120명 내외로는 운하 거점 지역 방어하기도 벅찼다.
방어를 떠올리자 자연스럽게 이지스함으로 넘어가는 생각. 마루의 미간에 살짝 주름이 잡혔다.
디트로이트 방어에 한 척이면 충분하니 최대 2척으로 협상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캐나다 방면을 장악하려면 토론토 앞에도 한 척이 필요했다.
‘신성 까마귀들을 이쪽에 배치하면···.’
까마귀로 이지스함을 대체할 수 있을까?
신성 까마귀 부대를 전부 이쪽으로 돌리면 4천 마리가 넘었다. 신성 까마귀를 이용해서 신규 까마귀 모집에 들어가면 가능할 것도 같은데.
‘늑대 숫자가 생각보다 너무 적어.’
하늘엔 까마귀, 지상으로는 늑대를 돌리면 넓은 지역이라도 통제할 수 있지 않을까 했다. 그래서 늑대 무리를 휘하에 두려고 했더니 곰이 등판해 늑대 무리를 붕괴시켜 버린 것.
‘7마리는 너무 적어.’
새끼를 돌봐야 하는 늑대를 빼면, 외부활동을 할 수 있는 늑대 숫자는 고작 4~5마리. 그 숫자로 순찰부터 먹이 사냥까지 하는 건 사실상 어렵다고 봐야 했다.
마루가 낱말카드 맞추기 훈련 중인 우두머리 늑대를 불렀다.
[야.]컹! (넵!)
통역이 필요 없을 정도로 깔끔한 반응.
[근처에 늑대들 좀 모아라.]컹? (네?)
간호사의 통역이 없을 때도, 대략적인 느낌을 알 수 있는 마루였기에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늑대들 좀 모아서 숫자 좀 불리라고. 먹이 주고 새끼 키울만한 공간 따로 해줄 테니까 그쪽 걱정은 하지 말고. 알았냐?]크르르릉?
늑대도 대충 마루의 말을 알아챘는지 질문했다.
“저기 곰도 좀 주시는 거냐고 묻는데요?”
[곰?]고개를 돌리자 인디언처럼 빙글빙글 돌며 곰의 육질을 확인하는 김 양이 보였다.
‘곰탕. 곰탕. 진짜 곰탕. 레알 곰탕.’
콧노래를 부르며 기대하고 있는 김 양이 있는지라, 전부 넘기는 건 어려워도 대충 내장 일부와 살코기 정도는 줄 수 있지 싶었다.
[내장이랑 살코기 적당히 준다고 해.]간호사의 말에 늑대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빙글빙글 김 양이 돌고, 그 뒤를 늑대가 따르고.
[고오오오옴 타아아아앙!]하오오오오오오-
어쩐지 늑대와 급속히 친해진 김 양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비행선이 적재함 크레인을 이용해 곰을 들어 올리자 줄줄 흐르는 피.
“거기 피 흘리지 말고 다 담아.”
“이제 다 빠진 거 같은데?”
전기톱을 든 사람들이 해체에 들어갔다.
위이이이잉-
작업용 엑소슈트를 입은 사람들이 달라붙어 도축하려고 했지만,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해체하지 못하겠습니다.”
“전기톱이 벌써 3개나 나갔어요.”
“가죽은 고사하고 내장도 잘리지 않습니다.”
“이걸 먹는다고요? 총알도 들어가지 않게 생겼는데요?”
“무슨 쓸개 크기가 사람 몸통만 한지.”
“염통은 또 어떻고”
“이걸 어떻게 잡았대요?”
“그분이 잡으셨겠지요.”
“배에 칼자국 못 보셨나요?”
“큼- 머리에도 구멍이 뚫렸더라고요.”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결국. 마루가 직접 해체할 수밖에 없었다.
크르르륵-
결국 마루가 이클립스로 도축을 시작했다.
[음파 안 해도 됨?]총을 써서 진동을 일으키지 않아도 자를 수 있겠느냐는 김 양의 말에, 마루는 칼질로 답했다.
[뱃가죽 열린 쪽으로 결타고 들어가려고]묵직하게 들어간 이클립스가 가죽과 살을 분리하기 시작했다.
마치 곰이 털코트를 벗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살과 가죽이 분리되기 시작하는 모습에 다들 경탄했다.
“전기톱으로도 분리되지 않던 건데.”
“저게 저렇게 쉬운 겁니까?”
슥슥-
가죽과 살이 만나는 층을 깔끔하게 분리해 훌러덩 가죽을 벗긴 마루가 바로 토막 치기 시작했다.
툭툭-
쿠득쿠득-
결을 따른다는 게 이런 것이라는 듯, 마루의 칼질은 거침없었고 몇 톤 단위의 곰이 순식간에 정육점 포장육으로 변했다.
[대창이랑 간 절반, 콩팥, 폐 그쪽이랑 선지는 늑대 줄 거니까 따로 빼.]마루의 말에 우두머리 늑대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아오오오오오-
[염통은?] [너 좋아하잖아.]그 말에 김 양도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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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장과 곰고기, 선지를 넉넉하게 공급받은 늑대 무리는 금방 기력을 되찾았다.
곰고기에 영양이 풍부했기도 했지만, 무리를 전멸시킬 뻔한 적을 먹었다는 점이 정신적인 충격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 것 같았다.
[짐승들이 정신적인 충격은 무슨.]김 양이 툴툴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대자연에서는 먹고 먹히는 게 일상 아니던가?
같잖게 정신적인 충격은 무슨.
[똑똑해진 대가지.]한쪽 구석에 죽어있는 새끼 늑대를 본 마루가 말했다. 맹수의 살기를 견디지 못한 새끼 몇 마리가 결국 죽어버린 것.
상상력이 풍부해졌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영향을 받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실제로는 죽지 않았음에도 죽음의 공포를 느끼는 순간 심장마비가 오는 것처럼 말이다.
한 끼 든든하게 먹고 길을 나선 우두머리 늑대와 짝으로 보이는 흰 늑대는 금방 다른 늑대들을 규합해왔다.
확실히 우두머리 늑대가 난 놈은 난 놈이었다. 저번에도 싹 죽고 둘만 남았는데 20마리 넘는 무리를 만들더니, 지금도 마찬가지.
거의 30마리 넘는 늑대 무리를 인솔하고 온 우두머리 늑대가 마루의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복종을 표시하는 모습에 우두머리 늑대만큼 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제법 큰 늑대들 몇 마리가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크르르-
으르르-
아주 낮게 내는 소리에 피식 웃은 마루가 살기를 피어 올렸다.
[일단 좀 맞자.]울컥 피어오르는 진득한 살기.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끔찍한 살기가 늑대들의 전신을 잠식했다.
주먹을 말아쥔 마루가 성큼 다가섬에도 빳빳하게 굳은 늑대들은 꼼짝할 수 없었다. 연약한 인간이 어쩌고, 우두머리가 제정신이 아니라서 저쩌고 으르대던 늑대들은 그저 가랑이 사이로 꼬리를 숨기기 급급할 뿐이었다.
빠각-
둔탁한 충격음과 함께 풀썩 쓰러지는 소리. 주먹질과 발길질을 피하지 못하고 두들겨 맞던 늑대들이 죽는다고 울어댔다.
끼이이잉
끼잉끼잉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우두머리 늑대는 태연하게 입맛을 다셨다.
그러니까 저건 인간이 아니라니까 그러네.
다들 머리가 굵어져서 그런지 꼭 피똥을 싸봐야 안다니까.
쩌업-
죽이지는 않을 것 같은데.
저렇게 맞다가 뼈라도 부러지면 좋지 않았다.
뻐억-
빠악-
병신들이 꼬리를 말았으면서 아직도 자존심?
우두머리 늑대가 편안하게 마루의 옆에서 발라당 배를 보였다.
커다란 늑대가 마루의 옆에서 재롱을 떨자, 피 묻은 주먹으로 우두머리 늑대의 배를 슬슬 쓰다듬으며 마루가 말했다.
“오늘은 그만할 테니까. 네가 얘들 똑바로 기강 잡아라.”
컹!
우두머리 늑대가 자기 체면을 차려줬다고 생각했는지 웃었다.
“웃지 말고 새꺄. 애들 지랄하면 너부터 조질 테니까.”
커엉?
아니. 그건 좀.
“그래서. 불만 있냐? 편하게 말해봐. 편하게. 솔직히.”
빠득-
쥐먹쥔 손에서 들리는 뼛소리.
크흐엉-
늑대들 세계에서 내리갈굼 전통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