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464)
러스트 [RUST]-464
식당에는 진한 곰국 냄새가 가득했다.
어떻게 처리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특유의 누린내가 아닌 고소함 가득한 냄새. 도도도독- 조리실로 달려가는 김 양의 발걸음이 통통 튀었다.
“다들 식사하려고 같이 내려왔는데 성공임? 성공했음?”
블라디마루 칼린 전하를 필두로 간부진 전부 내려왔다는 말에 조리실이 분주해졌다.
“아이고 그러면 미리 말씀을 해주시죠.”
“응? 그런가? 근데 나도 옆자린데?”
그러니까 그녀 혼자 내려왔어도 초집중하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김 양의 말에 요리사들이 흐뭇하게 웃었다.
“암요. 그러믄입죠.”
“그래도 미리 귀띔해주시지.”
“다들 내려오시는 줄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요.”
“혹시 입맛에 맞지 않아 다른 걸 찾으시는 분이 계시는지, 미리 다른 메뉴도 준비할 수 있고 그럴 수 있지 않았을까요?”
요리사들의 말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고개를 살짝 끄덕인 김 양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다들 좋다고 할 것 같은데? 냄새만 해도 대박의 향기잖음.”
“냄새가 확실히 진하긴 하더군요.”
리얼 곰국이라 약간 걱정했던 것이 싹 날아가는 냄새였다. 연육 절차를 거친 고기를 압력솥으로 12시간 고아서 나온 결과물.
김 양이 먼저 시식해 보겠다고 했으나, 살살 달래 조리실 밖으로 내보내는 요리사들이었다.
“냄새는 괜찮네.”
마루의 한마디에 어쩐지 김 양이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저번 코요테탕보다는 확실히 그럼.”
코요테육개장도 맛있었는데.
그 뒤로는 변이 괴수를 잡아도 까마귀들 급여용 육포로 만들었지, 다시 먹지는 못했다.
그런고로 이번 순수 곰탕과 수육에 기대가 큰 김 양이었다. 오래간만에 직접 사냥해서 먹는 거 아니던가?
심지어 곰탕 곰은 정말 강했다. 마루가 아니었으면 탱크나 공격헬기 정도는 동원해야 잡을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강함과 맛이 비례한다면 이번 곰탕과 수육은 최상급이리라.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돌솥밥에 곰탕을 시작으로 수육, 보쌈김치, 겉절이, 상추와 깻잎, 마늘과 고추에 쌈장까지. 거기에 밑반찬이 테이블 위를 수놓았다.
“뭐. 뭐임?”
전문 한식당에서나 볼 법한 깔끔한 상차림에 김 양이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런 그녀를 보곤 헛헛- 직접 서빙하러 나온 요리사들이 삼촌 미소를 지었다.
“한식을 좋아하신다는 소문이 있어서 다들 한 번 해봤습니다.”
인터넷이 끊긴 지 오래지만, 자체 서버에 저장된 영상 자료는 충분히 방대했다. 한식을 아는 요리사를 중심으로 여러 한식 레시피를 연습한 그들이 거하게 한 상을 차린 것.
행복한 얼굴로 식사를 시작하는 김 양, 세상 모든 근심 걱정을 다 내려놓은 듯한 표정이었다.
“-이건 속이 뜨뜻해지는 느낌이군요. 맛은 고소하고 순한데 이렇게 진한 느낌이라니.”
“확실히 뭔가 채워지는 느낌이네요. 그냥 단순히 고기 넣고 끓인 스튜라고 생각했었는데···.”
PD와 후드도 묵직한 국물을 맛보곤 감탄했다.
까아악-
“조금 있다가 수육 줄 테니까 기다리세요.”
꼭 달라붙은 까마귀를 달랜 간호사가 사이코메트리를 챙겼다.
“에또- 이거 국물은 뜨거우니까 천천히 조심해서 먹어야 해요. 그러니까 수육부터 먹죠. 네. 그게 수육이라고 해요. 그렇게 그냥 고기만 먹지 말고 여기 빨간 거랑 함께 먹으면 좋아요.”
“여기 빨간 샐러드요? 이거 알아요. 김치잖아요.”
“매울 수 있으니까 고기랑 같이···.”
“···이상하게 맛있네요. 물에 삶은 고긴데 뻣뻣하지도 않고.”
미국인에게 한식 먹는 법을 알려주는 일본인이라.
간호사와 사이코메트리가 하는 짓이 미묘하게 흥미진진해서 구경하던 마루도 천천히 식사를 시작했다.
‘어-? 무슨 맛이 이래.’
눅진하게 입안을 채우는 국물.
괴물 같은 곰 그 자체를 응축한 것만 같았다.
그 강렬한 풍미.
맛을 넘어서 무언가 채워지는 느낌.
‘혹시 이거.’
설마 하면서도 살짝 손끝을 딴 마루가 손가락을 노려봤다.
상처를 낸 손가락 그대로인 모습.
‘그러면 그렇지. 곰탕 한 수저 먹었다고 바로 그럴 리 없겠지···.’
“어떰? 진짜 막 힘이 불끈 솟는 거 같지 않음?”
김 양이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말했다.
PD와 후드를 시작으로 간호사와 사이코메트리까지 전부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땀을 뻘뻘 흘리며 먹는 사람들.
빨갛게 흥분한 보쌈김치가 뽀얀 수육을 덮치기 시작했다.
아삭하고 부드럽게 뒤엉키는 소리 사이로 조그맣게 새어 나온 캬-하는 탄성에 마루의 눈동자가 위치를 추적했다.
세상 시름없는 표정으로 쌈을 싸 먹은 김 양이 얼음을 동동 띄운 잔을 살짝 기울이곤 감탄사를 내뱉는 모습.
캬아-
살짝 부르르 떠는 김 양을 포착한 마루의 눈꼬리가 날카롭게 변했다.
아니 이것이?
먹고 회의하자니까 술?
어쩐지 음울한 기운이 스멀스멀 퍼지기 시작했다.
키아아–?
왠지 느낌이 싸해진 김 양이 들고 있던 술잔을 살짝 내려놓고서 주변을 살폈다. 그 모습을 빤히 지켜보고 있던 마루의 시선과 딱 마주친 김 양의 눈동자.
딸꾹-
그렇게 식사 시간이 회식자리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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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이어진 회의 결과는 간단했다.
제국과의 거래를 최대한 빨리 마무리 지을 것.
제국이 원하지 않는다면 굳이 매달릴 필요는 없지만, 이지스함 1척과 잠수함 3~4척을 교환하는 건 충분히 좋은 거래였다.
적의 보급을 차단할 것.
인공지능의 예측대로라면 적들은 비행선을 이용해 보급하고 있었다. 이지스함을 최대한 빨리 가져와 배치하면 해결될 문제였다.
“근데. 놈들이 노리고 있을 텐데?”
반들반들 뽀얗게 변한 피부로 김 양이 지도위에 위치를 짚었다.
“나라면 여기랑 여기. 그리고 저기에 매복하거나 기뢰, 수상 드론 같은 거 대기 시켜 놓겠음.”
세인트로렌스 강을 타고 올라오는 이지스함을 노릴 것이라는 김 양의 의견에 PD와 후드도 동의했다.
‘매복이라.’
일교차가 이렇게 큰데, 장시간 매복한다는 건 확실히 일반인은 아니었다. 마루가 생각을 정리했다.
“아무래도 매복하고 있다면 식인귀일 가능성이 크겠죠?”
“그렇습니다. 통신이 아니라 상위 개체가 하위 개체를 통제하는 방식이라고 본다면 적들의 움직임을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동의해요. 적들이 전부 식인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통신기 역할을 하는 개체가 적들 사이에 있는 건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마루가 바라보자, 바로 대답하는 간호사.
“까마귀들이 정찰하는데 25일에서 30일 정도 걸려요. 매복이라서요. 적들이 꼭꼭 숨어있다고 생각하면 더 걸릴 수 있고요.”
한 달? 그건 너무 오래 걸렸다.
숨어있는 식인귀를 잡는 게 관건이었다. 일단 한 마리라도 잡는 데 성공하면 뇌둥둥 단말기를 이용해 정보를 추출하거나 사이코메트리로 나머지를 찾을 수 있었다.
‘꼭꼭 숨은 식인귀 놈들을 잡으려면···.’
마루의 뇌리에 번뜩 떠오른 놈이 있었다.
“디아나. 흑마 상태는 어때?”
[살이 올랐습니다.]모니터에 떠오른 흑마는 살이 토실토실 올라있었다.
“늑대들도 전부 준비시켜. 바로 수색한다.”
[전달하겠습니다.]캐나다 거점 지역 식인귀 색출 작전이 시작됐다.
히이이이이이잉!
히잉!!
흑마가 거칠게 투레질하며 우두머리 늑대를 노려봤다. 투실투실하게 오른 살이 사실은 근육이라는 것처럼 우둘투둘한 데피니션(definition)이 드러났다.
“얘 왜 이럼?”
어쩌다 근육 돼지가 된 거? 전체적으로 크고 두껍게 변한 흑마를 본 김 양이 중얼거렸다.
“잘됐네. 지금이라면 엑소슈트 입은 채로 타도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크르르르르-
우두머리 늑대가 낮게 경고음을 흘렸지만, 할 테면 해보라는 듯 흑마가 거칠게 앞발을 굴러대기 시작했다.
“야- 그만해라-.”
마루의 한 마디에 우두머리 늑대가 바로 꼬리를 내리고 옆으로 비켜섰다. 그걸 보고 푸릉거리며 비웃는 흑마.
푸르르르르-
이 셋키가?
“다들 좀 나가 있어라.”
낮게 가라앉은 마루의 목소리에도 의기양양하던 흑마가 제발 살려달라는 목쉰 소리를 내기까지는 순식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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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인귀를 귀신같이 찾아내던 흑마의 후각은 여전했다.
푸르르릉-
식인귀의 냄새를 맡았는지 전신에서 투기를 뿜어대기 시작하는 흑마. 그 투기에 영향을 받았는지 늑대들도 낮게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흑마는 일직선으로 내달렸다. 바로 옆에 서른 마리 넘는 늑대 무리가 있음에도 결코 주눅 들지 않는 흑마였다.
‘나긴 난 놈이네.’
살려달라고 해놓고서는 등에 태우는 건 김 양이나 간호사같이 여자들만 태우려고 몸을 배배 꼬아댔다.
이런 쪽으로는 한결같다고 할까?
어쨌든 김 양이 엑소슈트를 입은 채 탈 수 있을 정도로 덩치와 힘이 좋아진 놈이었다.
[이 새끼가 자꾸 간호사를 힐끗거리는데 때려도 됨?] [엑소슈트 입고 타니까 더 이러는 거 같은데?] [아니. 이 새낀 왜 자꾸 이럼?]열 받은 김 양이 기어코 흑마의 갈기를 쥐어 잡았다.
푸히! 히이이잉!
사람이 ‘악! 내 머리칼. 내 머리카락!’ 하는 것처럼 소리를 냈지만, 그것도 잠시 꿋꿋하게 간호사를 대놓고 훔쳐보는 흑마였다.
[늑대들은 어때? 따로 냄새 맡은 건 없다고 해?] [네. 화약 냄새도 그렇고 주변에 잡냄새가 많아서 매복한 사람 찾기가 어렵다고 해요.]늑대들도 갈피를 못 잡았는데 흑마는 그렇지 않았다.
뚜렷하게 목표를 잡았는지 일직선으로 곧장 내달리기 시작하는 녀석. 두두두두- 거친 말발굽 소리와 함께 김 양을 태운 흑마가 앞으로 쏜살같이 튀어 나갔다.
[야- 놓치는 건 아니겠지?]마루가 우두머리 늑대의 옆구리를 톡 건드리자, 우두머리 늑대가 크게 울부짖었다.
하우우우우우!
마치 ‘돌겨어어어억!’이라는 느낌.
카우우우우우!
하우우우우우!
서른 마리 넘는 늑대들을 시작으로 여기저기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늑대들이 호응을 시작했다.
이지스함이 들어오는 것을 기다리며 매복하고 있던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소란에 경계를 강화했다.
“늑대?”
멀리서 들리는 하울링이 릴레이라도 하는 것처럼 사방으로 퍼졌다.
“먹잇감을 찾아 떼거리로 이동하는 것 같습니다.”
“늑대들이 이쪽으로 올 확률은 없나?”
“후추 스프레이를 주변에 넉넉하게 뿌려놔서 괜찮을 겁니다.”
맹수를 쫓으려고 독한 스프레이를 곳곳에 뿌려뒀다. 그 흉악한 회색곰도 스프레이 냄새면 꽁지가 빠지게 자리를 피했으니, 늑대들이라고 다를 게 없었다.
쌍안경에 비친 세인트로렌스 강은 여전했다. 얼음이 녹으면서 수심이 깊어졌으니, 이지스함이 들어오기 좋은 조건이었다.
“수상 드론은?”
“조립 끝나서 대기 중입니다.”
155mm 자주포와 전차 그리고 어뢰를 대신할 수상 드론까지. 이렇게 완벽하게 준비한 매복 포인트가 이곳 말고도 여섯 곳이나 더 있었다.
“집중공격 후 즉시 이탈한다. 여기서 잡지 않아도 잡을 기회는 많아.”
“예.”
지휘관으로 보이는 사내가 갑자기 미간을 찌푸렸다.
뇌리를 흔드는 강렬한 사념. 새로 진화 과정을 거쳐서 생긴 특유의 사념이 쏟아져 들어왔다.
“흣- 수색대가 당했다. 전원 전투준비.”
“전원 전투준비.”
“빨리빨리 자리 잡아!”
무언가 공격했는데 그게 뭔지 확실하지 않았다.
말발굽 소리에 이어진 강력한 충격. 그것으로 끝이었다.
“매복이 걸린 겁니까?”
“확실하지 않다. 자주포는 그대로 강을 향하고 전차를 이쪽으로 이동시켜.”
“알겠습니다.”
명령을 내리기가 무섭게 도로에서 흑마가 튀어나왔다.
시속 80~90km는 거뜬할 정도의 속도로 내달리는 미친 말.
“어- 말?”
“웬 말?”
그러거나 말거나 말은 지휘관을 향해 달려들었다.
미친.
사람이 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쌩 말이 갑자기 달려들다 보니, 사람들의 반응이 늦었다. 대부분이 민병대였기 때문이었다.
콰드드득!
아아아아악!
어?
지금 뭐지?
말이 사람을 물어?
머리통이 물어뜯기는 걸 피했지만, 대신 오른쪽 어깨가 으스러진 식인귀가 비명을 질렀다.
“쏴!”
“미쳤어? 지금 저렇게 물고 흔드는데 빗나가면 어쩌려고?”
흑마는 영악하게도 어깨를 물고 좌우로 탈탈 흔들어댔다. 그렇게 모든 시선이 앞으로 쏟아진 순간. 코에 마스크를 붙인 늑대 무리가 소리 없이 매복지를 덮쳤다.
크아아아앙!
“늑대?”
“늑대다!”
“뒤에 느— 아아아악!”
중기관총의 방향을 바꾼 자들이 늑대와 뒤엉킨 사람들을 향해 외쳤다.
“옆으로 비켜!”
“씨발 비키라—!”
투아앙-
퍽-
기관총 사수의 머리통이 산산이 부서졌다.
투앙-
어?
부사수가 얼굴에 튄 피를 채 닦기도 전, 그의 머리도 조각으로 변했다.
“자주포! 자주포랑 탱크는 뭘! 하—”
바닥에 바짝 엎드린 남자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무한궤도가 잘려 빙빙 헛돌다 멈춰버린 전차였다.
미친- 저게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