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467)
러스트 [RUST]-467
‘어- 그러니까. 크흠. 그게 참 좋은 데 말이지···.’ 라는 소문으로 괴수 사냥 시대가 열리는 듯했으나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흔히 구할 수 있던 라이플도 지금은 구하기 어려웠다. 그 많던 총이 어디로 갔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7.62mm 라이플을 어찌 구해서 쓴다고 해도 일반인들이 할 수 있는 건 지금 상황에서는 그 정도까지가 한계.
“12.7mm가 없으면 최소한 7.62mm라도 있어야지, 빌머네 건 숍(Gun Shop)은 거기도 없데?”
“다 털려서 없데.”
“그럼 어쩐다고 앞으로는 장사 안 한데?”
“뭐로? 달러는 불쏘시개고 금붙이로 구한다고 쳐도 물량을 구할 수 없다는 걸.”
운이 좋아 7.62mm 라이플을 구한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는 탄이 문제. 괴수에게 통할만 한 특수탄을 구하기 어려웠고, 사재로 만든 탄으로 거대 괴수를 잡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Ami 시벌. 뭔 놈의 짐승이 7.62mm 라이플에 맞고 버텨?”
“저렇게 질기니까 몸에도 좋은 거 아니겠어?”
가슴께를 맞은 거대 엘크가 콧김을 내뿜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커다란 사슴이 뿔을 앞세우고 달려들었다.
“쏴!”
“머리. 머리를 노려!”
요란한 총성이 울려 퍼졌지만, 가끔 뿔에 맞아 튕기는 소리가 되돌아올 뿐이었다.
“철갑탄이라며! 왜 안 먹히는 거야!”
“도망쳐!!!”
“What the Fuc···.”
대부분 괴수의 반격에서 살아남기 급급했고, 사냥에 성공했어도 문제였다. 괴수 특유의 재생력과 생명력 때문에 잡는 데 오래 걸렸기 때문이었다.
사냥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건, 예측하지 못한 사고가 일어나기 쉽다는 뜻. 그 의미 그대로 사방에서 문제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피 냄새를 맡은 육식 동물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사상자가 순식간에 폭증했다. 그런 와중에 퍼지는 소문은 사태를 악화시켰다.
“곰탕 먹은 사람들은 상처가 빨리 아물었다는데?”
“그거 육포를 먹은 지인이 있는데 그렇게 좋다더라.”
“꾸준히 먹으면 체력이 몰라보게 좋아진다고 소문이 자자해.”
“잔병치레도 없어진다고 하더라고.”
“꾸준히만 먹으면 진짜 좋아진다는데?”
“그렇지.”
곰탕을 장기 복용한 블라디 아크 타워 거주민들의 체력이 반영구적으로 좋아졌다는 이야기가 돌기 시작하면서 사냥 열풍이 아니라 광풍처럼 변해버렸다.
이상 열풍에 왕국 정부는 골머리를 앓았다.
“다들 돌았나? 아니면 미친 게 맞음.”
대놓고 ‘갈!’ 해버리는 김 양이었다.
미쳐도 단단히 미쳤지 달랑 7.62mm 라이플로 괴수를 잡겠다고 나서는 정신머리는 대체 뭐란 말인가?
그렇게 따진다면 사냥꾼들도 억울하긴 매한가지였다. 7.62mm 라이플로 곰도 잡고 엘크도 잡고 다 잡았었다. 근데 졸지에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혹한기를 거치면서 7.62mm로 잡을 수 없는 짐승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들은 괴수들 밥이 됐으니 당연히 모를 수밖에.
“아이러니하군요. 괴수가 무섭다는 걸 깨닫는 순간 죽어버린다니, 지금까지 확보한 괴수 정보를 풀지요.”
이러니저러니 해도 사냥꾼들은 왕국의 국민이었다. 저렇게 나대다가 헛되이 죽는 건 막아야 하지 않겠나?
마루의 결정에 PD가 의견을 보탰다.
“괴수 정보를 풀면서 12.7mm를 푸는 건 어떻겠습니까?”
“그건 조금 생각을 해봅시다.”
무거운 무게 때문에 기동성이 떨어진다는 건 그렇다고 쳐도. 12.7mm 탄창은 잘해야 10발이 들어갔다. 10발 탄창을 8개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80발이 고작.
5.56mm나 7.62mm로 30발 탄창 8개면 240발과 비교한다면 대인 전투 지속 능력이 너무 떨어졌다. 거기에 지금 정보 공개하는 이유가 뭔가? 나대지 말라고 그러는 것 아닌가?
그런데 12.7mm 풀면 어떻게 될까? 그거 들고 조심할까? 아니면 드디어 대구경 라이플이 생겼으니 ‘가즈아.’ 해버릴까?
“지금까지 하는 짓을 보면 12.7mm 안 줘도 사냥 갈 것 같은데. 그냥 주는 게 어떰?”
“······.”
“매복한 놈들 생각해 보면 각이 나오지 않음? 걔들이 전부 12.7mm에 철갑탄 들고 있었다면 우리 피해도 엄청 컸지 싶은데.”
어차피 민간인들이 싸워야 할 상황이라면 전투 지속능력 이딴 거 신경 쓰기보다 ‘한 방 죽창’ 들려주는 게 효과적이라는 김 양의 의견이었다.
“그러니까 12.7mm 화기 보급하고 장기적으로 12.7mm로 통일하는 게 좋을 것 같지 않음? 여차할 때 적 엑소슈트라도 하나 잡아주면 고마운 거고. 들고 다니다가 사냥 성공하면 그것도 나쁘지 않고.”
“저도 그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오래간만에 김 양과 PD의 의견이 일치했기에 마루도 그쪽으로 가닥을 잡는 걸 허락했다. 그렇게 왕국에 유통되는 주력화기 기본 구경이 12.7mm로 결정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12.7mm 구경을 기본으로 한 정책은 혼란에 빠졌다. 분명히 괴수들을 잡으려면 12.7mm가 필요하다는 정보를 알면서도 7.62mm 수요가 계속 생겼던 것.
왕국에서는 12.7mm로 갈아타려고 준비 중인데 7.62mm 라이플과 탄을 시작으로 다양한 총기 수요가 같이 늘어나 버렸다. 주무장을 12.7mm 라이플로 하더라도 부무장은 자기 취향껏 했기 때문이었다.
부무장을 뭐로 하든, 다양한 총과 총알로 뭔 짓을 하거나 상관없었으면 좋았겠지만, 형편이 그렇지 않았다.
다양한 수요를 충족시킬 만큼의 생산시설이 없었고, 이런 수요를 채우기 위해 제국을 비롯해 왕국과 국경을 접한 주와 밀수 루트가 생겨버렸다.
밀수 루트를 잡은 까마귀 순찰대의 자료를 보며 PD가 고개를 흔들었다.
“일이 이렇게 될 줄은 예상치 못했습니다.”
인공지능들도 이런 상황을 연산하지 못했다.
텍사스를 중심으로 한 남부지역이 연방 탈퇴를 한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놈의 달러 부채에 엮여 나락으로 가는 걸 피하고자 한 것도 분명 있었다.
덴 브라운이 제국을 선포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동부를 중심으로 미합중국의 재건을 노렸지만, 정치적인 문제부터 경제적인 문제까지 사사건건 걸렸는데 통수까지 맞아버렸으니 깔끔하게 리셋을 한 것.
왕국도 마찬가지, 달러에서 벗어나 금, 은을 기본으로 화폐개혁을 하려는 찰나였다. 열심히 금화 은화 동화 찍고 있는 판국인데, 밀수 루트가 열리면서 귀금속 유출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었다.
곰탕으로 쏘아 올린 작은 수육이 사냥 열풍을 거쳐, 밀수까지 이어졌고 급기야 귀금속 유출 사태까지 일으킨 것이었다.
“밀수 시장이 더 커지는 걸 막으려면 화폐유통을 최대한 빨리 시작하고 정상 시장을 여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금, 은, 동을 가공해 화폐로 만드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최대한 넉넉하게 만든 뒤 한 번에 풀어 화폐 경제를 회복시키고자 했던 계획이 흔들렸다.
“일시에 하는 게 좋지만, 어쩔 수 없군요. 거점 지역부터 시작하도록 하죠.”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왕국에서 사용하는 주화는 위조와 손실을 방지하기 위해 여러 가지 최첨단 기술을 도입했다.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기술은 주화의 테두리에 있었다.
주화의 테두리에 탄소 나노 튜브로 띠를 둘러 안정성을 높인 게 그것이었다. 강철의 몇백 배에 가까운 물성으로 띠를 둘렀으니, 깎아낼 수 없었고.
탄소 나노 소자 자체를 생산, 가공할 수 있는 기술을 유지하고 있는 곳 자체가 몇 없었으니 위조도 힘들었다.
어찌 위조한다고 쳐도 금과 은은 함량 검사하는 기계로 검사하면 바로 들통이 났다. 귀금속 화폐니 만큼 가치가 보전되는 것은 기본.
“이거 동전으로 가지고 다니니까 기분이 좀 이상한데?”
“그래도 종이 쪼가리를 돈이라고 하는 것보다는 훨씬 듬직하지. 우리도 장사해 먹기 편하고.”
“하긴 녹여서 은만 빼먹어도 값어치는 하니까. 45구경 할로우 탄으로 100발이면 얼마나 해?”
“2실버 50코퍼.”
“미쳤어? 45구경 할로 100발이 2실버 50코퍼라고?”
“다른 데 가서 살 수 있으면 사보든가. 밀수로 가면 굵직한 금반지로 네다섯 개는 달라고 할걸. 재수 없는 놈에게 걸리면 그 이상 부를 거고.”
“빌어먹을. 내놔.”
카운터 테이블 위에 은화 두 개와 조금 커다란 동화 다섯 개가 거칠게 놓였다. 드륵- 소리를 내며 은화를 기계로 검사한 주인이, 낡은 미소를 지으며 탄약을 건넸다.
“싸게 주는 거라니까. 우리도 물량 떨어지면 밖에서 구해야 한다고.”
중지를 빳빳하게 펴고 매장 밖으로 나가는 손님의 등 뒤로 주인장의 클클-웃음소리가 작게 흩어졌다.
딸랑- 작은 종소리와 함께 들어오는 손님. 돈이 돌기 시작하면서 손님들이 늘어나 기분이 좋아진 주인장이었다.
“여기 물물교환됩니까?”
“당연히 됩니다만 아시죠? 20% 정도 할증된다는 거.”
“젠장. 환전됩니까?”
“물론입죠. 수수료는 10%입니다.”
그렇게 물물교환이 굳어지기 전 화폐유통에 성공하면서 왕국 경제가 점차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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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생필품 보조와 함께 생활 지원금이 지급되면서 시민권 발급 신청도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생필품만 줬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반응이었다.
“역시 돈이 최고임.”
돈 그것도 금화가 지급된다고 하니까 보라. 지저분하게 버티던 작자들도 시민권 발급에 열을 올리는 것을. 테이블 위에 금화를 착착 쌓는 김 양이었다.
“시민권 발급은 순조로운가?”
[발급 조건이 까다롭다는 민원이 계속 들어오고 있습니다.]초기에는 까다로운 검증 절차 없이 발급했던 시민권인지라, 현재 발급 신청하는 사람들이 불공평하다고 민원을 제기하는 등 잡음이 커지고 있었다.
디아나의 보고서를 읽은 마루가 차갑게 웃었다.
“까다롭기는···. 발급 조건을 더 강화하지. 내일부터 3단계로 올리도록.”
[발급 조건 3단계로 상향.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시민권을 발급받는다는 것은 왕국의 법을 인정하고 준수하겠다는 선언이었다. 그리고 세계가 종말을 향해 흔들리는 지금. 왕국의 법은 생존과 안전을 최고 가치로 삼고 있었다.
“그러니까 왜 내 땅에서 공사한다는 겁니까?”
[귀하의 토지는 왕국 국토법에 의거, 방어시설 건설구역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보상금은 해당 관청에서 수용하시면 됩니다.]“아니. 방어시설이고 나발이고 내 땅은 안 팔겠다니까.”
[왕국 국토법에 의거, 모든 토지는 왕국의 소유입니다. 시민권 발급 당시 귀하가 서명한 서류입니다.]“개 씨발. 빨갱이야? 어? 먹고 살려고 시민권이니 그런 거에 서명하고 그런 거지. 그랬다고 날로 먹으려고 들어? 날강도야? 왕국이 날강도냐고! 내 땅이 132골드? 지랄하네. 2천 골드 밑으로는 꿈도 꾸지 마!”
사내와 가족들이 전부 행정 드론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왕국 행정 드론을 총기로 위협. 서약 위반 확인. 왕국 국토법 위반. 마지막으로 경고하겠습니다. 위협을 즉시 멈추고, 왕국 국토법과 시민권 서약에 의거 퇴거해 주시기 바랍니다.]투아앙!
좋은 뜻으로 보급한 12.7mm 라이플과 샷건이 행정 드론과 순찰 까마귀를 위협했다.
“과도기라서 그렇습니다. 왕국이 선포됐다고 하지만, 왕국 선포의 의미를 정말 이해한 사람은 극소수일 겁니다.”
“수도와 거점에서 멀리 떨어진 통신 장애 지역일수록 이런 일이 빈번하게 일어날 가능성이 큽니다.”
PD와 후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듯했지만, 마루의 생각은 달랐다.
시민권 신청 당시 분명히 교육했다. 왕국 법과 의무, 권리 내용을 숙지하고 서명했다. 그래서 생필품과 지원금까지 받아먹고? 결단코 용납할 수 없는 행위였고, 용납해서도 안 됐다.
“방어시설 건설과 관련해 반대하는 자들은 전부 강제추방합니다.”
“몇 개월 지나면 다시 겨울이 옵니다. 그때 수용하면 무리 없이 수용할 수 있습니다.”
“그딴 게 어딨음? 총부리 겨눴으면 책임지고 뒈지든 쫓겨나든 해야지.”
“분명 잘못은 맞습니다. 하지만 토지 수용이나, 왕국이 대지권(토지권)을 갖는다는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잘 모르고 서명한 사람들도 분명히 적은 숫자가 아닐 겁니다.”
PD의 말도 일리가 있었지만, 마루는 단호했다.
“받아먹을 거 다 먹고 범죄를 저지르는 건 그냥 둘 수 없습니다.”
생필품과 생활 지원금을 받은 것을 전부 토해놓게 하는 것을 시작으로. 시민권 즉시 박탈 명령이 떨어졌다.
“행정 드론 공격은 공권력을 향해 총격한 것과 마찬가지 중범죄이니 즉시 체포합니다. 불응, 저항시 사살합니다.”
왕국의 생존과 안전을 위협한다면 그게 무엇이든, 어떤 변명거리가 있든 결단코 타협하지 않으리라 선언하는 마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