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471)
러스트 [RUST]-471
후르르륵-
뜨끈한 곰탕이 김 양의 속을 달래주었다.
아삭한 김치와 수육이 없었다면 저 밑바닥 아래 분노의 응어리가 생겼겠지만, 먹는 거 하나는 끝장나게 챙겨주는 마루였다.
그래도 이건 아니지.
수육이랑 곰탕을 넉넉하게 보내준 건 좋고.
진짜 보급도 짱짱하니 괜찮은데.
그렇다고 앞뒤 없이 흑마부터 들이미는 건 반칙이지. 응. 반칙.
히이이이이잉—-
“닥쳐 새끼야. 밥 먹고 있잖음. 말탕 만들어버릴라.”
히히히히히힝—-
“웃음? 웃은 거? 이게 웃김?”
잇몸을 드러내는 흑마 웃는 게 분명했다.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이러는지. 까마귀가 약을 빨고 늑대는 개새끼가 되더니, 이제는 말이 비웃어?
인간의 위상이여.
어디까지 떨어질 건가?
김 양은 진지한 얼굴로 척- 김치로 돌돌 말은 수육을 입에 넣었다.
아삭거리는 식감 속에 야들야들한 수육이 혓바닥과 입천장을 유영하기 시작했다.
씹을수록 촉촉 부들부들 수육의 고소함 김치의 시원 칼칼 아삭함과 어우러지기 시작했다.
그렇지.
이 맛이야.
김 양의 마음이 한없이 너그러워졌다.
그래. 종말이 가까웠다고 한들 인간은 위대했다.
짐승 새끼들이 아무리 머리가 좋아졌니 어쩌니 지랄해도 위대한 인간의 아름다운 음식 문화는 흉내 내지 못할 것이다.
후르르륵-
뜨거운 곰탕이 굳었던 몸을 뜨끈하게 풀어주기 시작했다.
뭔가 깨달음을 얻은 듯한 김 양을 향해 친위대 부관이 보고했다.
“알파팀은 전원 병원으로 후송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
“브라보와 찰리에서 각 2명씩 부상자가 있습니다. 거점 방어는 가능하지만, 이동은 조금.”
“걔들도 같이 후송 보내. 이번에 장거리 뛸 거 같으니까 다른 애들 가운데도 부상자 있으면 보내고.”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일단 정비고 뒷정리고 먹고 하라고 해. 애들 밥부터 먹이고 하라고.”
“옛.”
밥부터 먹이라는 말에 흑마가 반응했다.
히이이이잉. 히잉.
푸르르륵!
“이젠 개나 말이나 다 알아듣네. 넌 뭐한 게 있다고 지랄이니. 닥치라우!”
처 웃기나 하는 말 새끼 굶어봐라. 김 양이 흑마를 째릿 노려봤다.
흑마 역시 그녀를 마주 보곤 푸르르 잇몸을 드러냈다.
김 양의 가슴을 한 번 보고 푸르르르릌-
그리곤 어떤 보잉의 바운스를 떠올리는 듯한 아련한 눈빛.
차가운 현실을 깨달았다는 듯 다시 그녀의 가슴을 한 번 보곤 한숨을 쉬듯
푸로로로로릌-
흑마의 생생한 표정에 김 양이 먹던 곰탕 그릇을 탁- 내려놨다.
“그래 오늘 함 끝까지 가보자. 말 새꺄.”
식사를 던진 그녀가 단독으로 추격을 개시했다.
곰탕과 수육 버프를 받은 김 양의 스테미너는 흑마도 질릴 정도.
지치지 않고 굴리고 또 굴리고 편자가 빠질 정도로 쉼없는 추격이 계속됐다.
‘이게 아니었는데.’
흑마 새끼 기강을 좀 잡으려고 했지, 이렇게까지 하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머리에 피가 올라서 어쩔 수 없었다.
‘이걸 노리고 흑마를 보낸 건가?’
거대한 마루의 그림자가 왕국을 뒤덮은 환상이 펼쳐지는 것 같았다.
‘자- 김 양아. 흑마를 타고. 가라!’
식인귀 색출을 귀신같이 하는 흑마를 보낸 건.
구르라는 소리겠지.
계획은 이게 아니었는데.
한 곳 깔끔하게 정리하고, 편히 쉬는 일상의 여유를 계획했건만.
‘이건 다 그 식인귀 새끼 때문이야.’
신성 까마귀 폭격 맞고 그 애새끼가 뒈졌으면 깔끔하게 끝나는 일이었다.
폭격에서 살았어도 나대나 한 방에 그냥 뒈졌으면 이런 일 터지지 않았을 거다.
다이너마이트로 지랄하는 병신 마을이 없었다면, 여기 올 일도 없었을 거고.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김 양의 어두운 감정.
그녀를 태운 흑마가 발작했다.
‘하라는 대로 하고 있는데 또 왜?’
[달려. 계속.]푸히히히힝-
[달리다 뒈지면 더 좋지. 달려라.]한 시간 넘게 전속력으로 달린 흑마가 기어코 퍼져버렸다.
그 대가인지는 몰라도 도망친 식인귀 새끼를 찾을 수 있었으니 그러면 된 거 아닌가?
김 양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12.7mm 총구가 다람쥐처럼 도망치는 식인귀의 등판을 향했다.
투캉- 묵직한 소리와 동시에 놈이 옆으로 몸을 비틀었다.
어쭈?
뒤에 눈이 달린 것도 아닌데 피해?
심지어 굵직한 침엽수림을 타고 이리저리 3차원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탁- 위이익- 탁- 타다다닥-
맹수가 먹잇감을 노리듯 김 양을 조여오는 움직임.
자신을 노리는 추격자가 그녀 혼자인 것을 보곤 생각을 바꾼 것.
하지만 그 입체적인 움직임이라는 게 김 양의 눈에는 영 어설퍼 보였다.
‘10정? 그보다는 높은데? 15정? 아니고. 한···. 18정 언저리 정도?’
마루의 해체 기동을 여러 차례 지켜본 그녀에게 있어 작은 식인귀의 움직임은 한눈에 들어오는 수준이었다.
애새끼가 유인하는 움직임에 걸린 것처럼 슬쩍 다리를 한쪽으로 빼면서 총구를 돌리는 김 양. 노렸다는 듯 짐승 발톱 쪼가리를 든 식인귀가 나무를 박차며 바닥으로 향했다.
팍-!
‘이제 자세를 낮추고 수평으로 달려들겠지.’
마루가 초창기에 저런 방식으로 애들 여럿 잡았었지.
김 양의 시선이 식인귀의 동선을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작은 식인귀도 그녀의 예측과 비슷하게 움직였다.
자세를 낮춰 피탄면적을 줄이곤 바닥에 깔리듯 내달리는 모습.
탄에 맞을 수 있는 면적을 최소화한 것을 보면 이거로 재미를 좀 본 것 같았다.
다다닥-
짧은 보폭으로 다람쥐처럼 달려오는 식인귀.
김 양은 놈이 원하는 대로 총구를 어설프게 아래로 향했다.
걸렸다는 듯, 속도를 폭발적으로 높인 놈이 그녀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엑소슈트와 헬멧의 이음새인 목 부분을 노리는 것처럼 한 것은 페이크.
진짜는 엑소슈트의 발목 관절이었다.
갈고리처럼 휘어진 발톱이 김 양의 엑소슈트 발목을 파고들려는 순간, 뜨거운 화염이 폭발했다.
퍼어어엉! 펑- 화르르륵!
아흑?!
예전 바퀴벌레와 쥐를 단숨에 통구이로 만들었던 근접 폭발 화염. 김 양 전용 엑소슈트에만 장착된 근접 화염 분사가 폭발했다.
푸화아아아악!
근거리에서 직격으로 뒤집어쓴 네이팜 불길에 작은 식인귀가 몸부림쳤다.
끄아아아악!
버둥거리는 식인귀를 보면서 김 양은 방심하지 않았다.
전신에 불이 붙어 몸부림치면서도 발톱을 쥐고 있잖니?
투탕- 발톱을 쥔 팔이 떨어져 나가자, 버둥거리기를 멈추고 허겁지겁 도망치려는 놈.
그러거나 말거나 김 양은 녀석의 다리를 노리고 있었다.
투앙- 무릎 아래가 뜯어지며 앞으로 꼬꾸라지는 식인귀.
한쪽 팔과 한쪽 다리가 날아간 채, 허우적허우적 허연 김을 피워올리는 녀석.
김 양은 태연하게 방아쇠를 당겼다. 그렇게 두 번의 총성이 더해졌다.
끄으윽- 끅-
순식간에 오체가 가벼워진 애새끼가 울음과 신음을 터뜨렸다.
푸르르륵-
퍼져있던 흑마가 식인귀의 소리를 듣곤 버스럭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말 새끼 성질머리 보소.’
체력방전 된 게 뻔히 보이는데도 악착같이 식인귀를 죽이겠다는 일념은 인정해줘야 했다.
[야- 거기 스톱. 이거 머리통 가져가야 하니까. 팔다리나 밟으면서 스트레스 풀어.]푸르르르륵!
김 양이 던져준 팔다리를 앞발로 으깨는 흑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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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흔들.
하얀 목마 위.
손잡이를 양손으로 꼭 붙들고 있는 유 이사 마크2의 눈빛이 어쩐지 멍했다.
어쩐지 하얀색은 낯설었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건 검은색. 그래 검은색이었다.
말. 검은 말.
말에 타고 뭘 했었지?
흑마에 대한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그 자리를 차지한 건 저번에 본 년.
아직도 젖비린내 나는 년이 손가락으로 날 찔러?
개 짓거리하지 말고 얌전히 옆에서 기저귀나 제때 갈지.
하녀 년이 조금 컸다고 개겨?
‘그러고 보니 그년 이름이 뭐였지?’
‘아- 맞다- 씨발련이었지.’
이름이 무슨 상관이던가?
그런 건 그냥 씨발련이면 됐다.
유 이사 마크2가 다시 몸을 앞뒤로 흔들었다.
하얀 목마가 끄덕끄덕 흔들렸다.
“우리 공주님 승마를 정말 잘하시네요.”
“꼬져- 저리갸-”
“아이유- 왜 이렇게 심통이 나셨어요. 친구가 없어서 그런가요?”
“꼬져라. 갸라그-”
유 이사가 정말 싫다는 표정을 버둥거렸지만 소용없었다. 유 이사 마크 2를 훌쩍 들어 올린 연구원이 훌렁 기저귀를 벗겼다.
“그러셨구나. 응가가 찝찝해서 기분이 나쁘셨던 거였어요? 이야기하시라니까.”
“기져기나 가라-”
“아- 그러고 보니 이제 곧 동생이 생기네요.”
“됴새?”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동생이 있었나? 잘게 끊긴 기억들.
멍하니 눈빛이 죽은 유 이사 마크 2를 바라보는 연구원 뒤로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 툭- 내뱉었다.
“저것도 클론이고 그것도 클론이잖아. 동생? 차라리 쌍둥이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쌍둥이는 아니지, 배가 다르잖아.”
“임산부가 중요한가? 유전자로 보면 둘이 똑같은데?”
“일란성 쌍둥이라고 해도 발현되는 유전자가 다를 수 있다는 건 다들 알고 있잖아.”
“애가 듣는데 말조심해.”
“크로?”
멍한 유 이사 마크 2의 목소리를 못 들은 척 연구원은 물티슈로 엉덩이를 싹 닦아내곤 베이비 파우더를 탁탁 발랐다.
“이챠- 다 갈았네요. 어때요. 기저귀 가니까 기분 좋죠?”
“도새? 크로?”
연구원이 그녀를 풀쩍 들어 하얀 목마 위에 다시 앉히곤 흔들었다.
흔들흔들 흔들리는 목마,
흔들리는 기억, 흔들리는 흑마, 흔들리는 목소리.
‘복수 그런 거 생각하지 마시고···.’
얼굴이 기억나지 않았다.
아니. 뭔가 이상했다. 생각할수록 이치에 맞지 않았다.
앞뒤가 전부 잘리고 이리저리 뇌를 짜깁기한 것 같은 위화감이 커지기 시작했다.
어째서?
이 궁금증을 풀어줄 사람이 누굴까?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해줄 사람.
그녀의 머릿속엔 오직 한 사람이 떠올랐다.
“시바려- 어디써?”
“데려아- 시바려-”
유 이사 마크 2는 생전 처음으로 생떼를 피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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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선이 부상병을 태우고 디트로이트로 돌아왔다.
“갑주형 엑소슈트로 무장했는데도 심각한 부상자가 여럿 생겼다니. 역시 질적 차이가 있다고 해도 위험하네요.”
후드가 병상에 실려 들어가는 친위대원들을 보며 말했다.
“에– 그래도 즉사한 사람은 없으니까 다행인 거죠. 살아서 도착했으니까 충분히 낫게 할 수 있어요.”
아크 타워의 의료진과 장비에 자부심이 있는 간호사가 자세를 바로 했다.
그저 허리를 똑바로 쭉 폈을 뿐인데. 어쩐지 당당함이 느껴지는 모습.
뭔가 이야기를 더 하려고 했던 후드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이어 김 양이 포장해서 보낸 식인귀 몸통이 실려 왔다. 김 양이 당연하다는 듯 입마개를 해서 보내 시끄럽지 않아 좋았다.
“정보추출기는?”
“대기하고 있습니다.”
시끄러운 것은 입마개 한 식인귀가 아니라 뇌둥둥 박사였다.
[뽀규뽀규뽀규르르르르-]거품도 하다 보니 늘었는지, 뇌둥둥 박사가 요란을 떨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바로 시작하죠.”
마루는 즉시 뇌둥둥 정보추출기를 사용했다. 촉수 같은 정보추출기를 본 어린 식인귀가 필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며 몸부림쳤지만 소용없었다.
뿌각-
단단한 두개골을 뚫고 정보추출기가 자리 잡았다.
깜박깜박-
단말기에 달린 모니터에서 영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을의 시작과 관련된 영상.
“좋지 않군요.”
“다른 곳도 이럴 가능성이 있겠어요.”
영상 속 마을은 식인귀와 공생을 선택하고 있었다.
역시 김 양과 흑마를 붙여 놓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마루였다. 어쨌든 외곽지역, 요충지를 비워 놓을 수는 없었으니.
“정리한 마을에는 자율 방어 시스템을 세우는 쪽으로 하지요.”
뇌둥둥 단말기에서 거품이 올라왔다. 조용한 거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