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474)
러스트 [RUST]-474
비행선 내부는 조용했다.
‘그거 전술 카메라 영상 봤잖음?’
‘멀리서 쏘기만 하는 영상만으로는 현장 분위기를 확인하기 어렵잖아.’
‘밥 먹고 하면 안 됨?’
‘밥 먹은 지 얼마나 됐다고. 아니면 같이 가면서 이야기할까?’
같이 국경 돌자는 마루의 제안에 김 양은 맹렬하게 고개를 도리도리했다. 밥 이야기가 쏙 들어간 채, 필사적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는 그녀였다.
김 양과의 대화를 떠올린 마루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생존과 안전을 위해서 왕국을 세웠는데 신경 쓸 게 너무 많았다.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겠지.’
달랑 빌딩 하나 지키는 것도 만만치 않았는데, 사이즈가 커지고 보니 역시 여기저기 옆구리 터지는 곳이 많았다.
신형 자율 방어시스템에 중계센터까지 포함한 소형 요새. 이동식 트레일러를 포함한 벙커라고 해야 할까?
20~40mm 기관포와 12.7mm 중기관총으로 무장한 거점. 늑대와 까마귀 그리고 소수의 병력이 상주한 시설을 건설하는 건 금방이었다.
척-
비행선에서 마루가 내리자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이 경례했다.
“모두 몇 명이지?”
“65명입니다.”
친위대 10명, 시민권 발급 조건으로 모병한 훈련병 40명에 의무2, 행정3, 취사5, 기술5. 합해서 육십오.
친위대를 제외한 병력은 모두 신병이나 다름없었다. 그나마 취사와 기술은 자격증이 있는 관련 업계 종사자를 넣었다지만, 나머지는 굴러가며 경험을 쌓아야 할 상황.
‘앞으로도 이런 시설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건데.’
최소 60명에서 최대 200명이 상주하는 거점 요새를 만드는 계획을 잡았지만, 현장을 살펴보니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할 상황이었다.
소형 요새를 만드는 건 좋았다. 자율 방어시스템은 훌륭하게 작동하고 있었고, 고출력 중계센터도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다.
문제는 자원. 괴수와 인간을 모두 막기 위해서는 단단한 방어시설이 필요했고, 보급도 필요했다. 이런 시설을 1,000개를 건설한다고 치면 최소 6만 명이 필요하다고 봐야 했다.
사태 직전 캐나다군의 숫자가 7만 명이었던 걸 생각해 보면, 일부 거점 관리에 6만이 필요하다는 건 미친 상황이었다.
이마저도 캐나다 접경지역만 따져서 그렇지 미시간 남부 국경까지 방어선을 만든다고 가정하면 바로 최소 2배의 병력이 필요했다.
‘미쳤네. 20만을 뽑아도 기본 방어에만 14~15만이 있어야 한다니.’
보급 계획, 방어 작전 계획 등을 현지에서 확인한 마루는 직접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류와 영상으로만 봤을 땐 충분히 가능하겠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현실에서는 굉장히 위험한 시도였던 것.
“어떻게 생각해?”
“인공지능을 활용한 자율 방어시스템을 전적으로 확대하지 않는다면 사실상 거점 방어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후드도 이 정도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는지 인상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후드의 대답을 들은 마루가 옆에서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사내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다.
윌밍턴 흡혈귀 실험실에서 데려온 사내였다. 그간 시간을 두고 살펴봤지만, 배신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기에 이번에 데려왔다.
“중대 규모의 적은 거뜬하게 막을 수 있고 대대 규모 적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을 끌 수 있어 보입니다.”
말을 아끼는 사내에게 마루가 채근하자 이야기를 계속했다.
“적의 무장상태와 목표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지기 때문에 그 이상 답하기는 어렵습니다만, 65명 이상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밀수꾼만 생각해도 그랬다. 거점 방어시설에서 멀리 떨어진 산지나 계곡을 타고 돌아갈 수 있었으니까.
까마귀와 늑대의 수색 능력이 있다지만, 65명은 요새를 수비할 정도의 숫자일 뿐, 인근 지역을 수색하고 대응할 정도의 숫자는 아니라는 의견.
“그래서?”
“병력이 최소한 두 배는 있어야 합니다. 제대로 방어하려면 세 배 이상 필요합니다.”
“신형 드론과 자율 방어시스템이 있어도?”
“예. 기계를 중심으로 방어 전략을 짜는 건 위험합니다. 대응 기술이 있다고 해도 완벽하게 막을 수 있다고 장담하기 어려운 시대가 됐기 때문입니다.”
버지니아 컴퍼니의 핵심 시설을 방어했던 사내가 고개를 들어 마루를 살짝 바라봤다. 자신이 보안 책임자로 있던 연구 시설도 힘없이 뚫리지 않았던가?
‘어쩔 수 없겠네.’
거점 요새로 접경지역을 통제하는 건 무리.
‘거점 방어를 민간위탁하는 수밖에.’
“이 근처에 밀수 거점으로 의심되는 마을이 또 있나?”
[옛.]마루는 바로 마을로 향했다.
스르륵-
파릇한 풀이 옆으로 누웠다가 일어서는 모습. 아무런 소리도 기척도 없이 흔들리는 풀밭.
[비행선 인근 상공에 대기 중입니다.] [신성 까마귀 폭격부대 대기 완료.]4세대로 개량된 리퍼 슈트는 여러 방면에서 성능이 향상됐다.
방탄, 방염, 방한, 방진 성능이 대폭 강화됐고, 개량된 배터리와 반도체는 은신 모듈 성능과 사용시간을 대폭 증가시켰다.
들판을 거쳐, 좁은 길과 길게 뻗은 침엽수림이 무성한 숲을 지나자 활짝 펼쳐진 공터가 나왔다.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서인지, 땔감이나 목책을 만들기 위해서인지 벌목한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공터 중앙에 자리한 마을.
마루는 은신 모듈을 최대치로 활성화한 채 마을에 접근했다. 두꺼운 목책과 석축으로 둘러싸인 마을엔 인기척이 없었다.
스륵-
찝찝함에 살짝 내딛던 발걸음을 되돌린 마루가 바닥을 다시 살폈다.
길게 자란 풀 속에 숨겨진 올무.
‘이거 참.’
조심스럽게 접근하지 않았다면 올무에 걸릴 뻔했다.
‘아주 죽자고 깔아놨군.’
올무를 시작으로 덫과 바닥 함정이 사방에 펼쳐져 있었다.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을 괴롭혔던 발목 절단 함정까지 있는 것으로 보아, 함정 전문가가 마을에 있다고 생각하는 게 맞았다.
마을 주변을 돌던 까마귀가 살짝 접근해 영상을 보내왔다. 텅 빈 마을이 까마귀 정찰 카메라에 찍혀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있었는데···.’
순식간에 어디론가 사라진 사람들을 보니 살짝 껄끄러운 느낌이 들었다.
별다른 신호도 없이 저렇게 통제가 잘 된다고? 사이렌 소리도 없었는데?
[정찰 그대로 계속해. 너무 가까이 접근하지 말고.]까악!
마루가 뒤로 멀찌감치 물러섰다.
한참을 물러서자, 삼삼오오 모습을 드러내는 마을 사람들. 개미처럼 일사불란하게 목책에 오른 사람들이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저 사람이 우두머린가?’
정찰 영상 속에 찍힌 특이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보였다. 마을 사람들을 지휘하는 듯한 모습.
그가 지목하는 방향은 마루가 있는 방향이었다.
‘방향을··· 읽었다고?’
문득 누군가가 떠오른 마루였다.
그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저 통제력은 수상했다.
‘목소리를 크게 내지 않으면서 저게 가능하다고?’
아무리 봐도 저놈을 중심으로 마을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판단과 동시에 마루가 움직였다.
크르르르르-
이클립스의 소리가 절삭음으로 변했다.
콰각-
콰직-
쿠드드드드드–
한 번, 두 번, 세 번에 걸친 칼질 소리에 2~3명이 둘러야 감쌀 정도로 큰 나무가 마을 방향으로 쓰러졌다.
둔중한 충격음.
피어오른 먼지.
그리고 쓰러진 나무 위를 내달리는 마루.
촤자자작!
앞을 가로막은 나뭇가지들이 길을 여는 소리가 발걸음을 뒤따랐다. 거의 50~60m 높이가 될 법한 나무를 밟고 뛰는 데 걸린 시간은 3초 어림.
HUD 영상에는 목책 위의 모습이 보였다.
마루가 있던 방향을 지목했던 놈이 다급하게 마을 사람들에게 뭐라고 외치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쓰러진 나무가 있는 방향을 향해 총을 겨누는 것보다 마루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다다닥! 타악!
점프와 함께 까마귀가 공중에서 바라보는 영상과 마루가 보는 시선이 하나로 합쳐졌다.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는지 놈이 발사 명령을 내렸다.
“발사!!!”
타다다다당!
곰사냥용 라이플과 대물 저격총이 어우러진 집중 사격이 쓰러진 나무를 향해 쏟아졌다.
파바바박! 팍!
놈이 팔을 들어 사격을 멈췄다.
피어오른 먼지. 쪼개진 나뭇가지. 그 안으로 파고든 총탄.
분명 이쪽이 맞는데?
뭔가 반응이 있어야 하는 데···.
순간적으로 드는 섬뜩한 느낌.
가슴을 옥죄는 것 같은 죽음의 공포.
전방을 노려보던 놈이 삐걱삐걱 고개를 들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텅 빈 하늘. 하지만 알 수 있었다.
“위— 위-쪼-!”
굳어가는 혀로 필사적으로 외쳤지만, 그뿐.
목책 위에 있던 마을 사람들은 석화의 저주라도 받은 것처럼 굳어버린 뒤였다.
‘쏴! 하늘로 쏘라고!’
필사적인 몸부림도 허무하게 검은 실선이 벼락처럼 떨어졌다.
뜨겁고도 차가운 느낌이 그의 정수리부터 사타구니를 훑고 지나가더니, 어느새 목을 스쳤다.
!?
그건 이상했다.
하늘을 바라보던 시선이 둘로 분할되는 경험.
어쩐지 허무함이 그의 가슴을 채우기 시작했다.
‘아-’
시야가 둘로 쪼개지는 것을 끝으로 파란 하늘이 어둡게 변하기 시작했다. 신경을 전기로 지지는 것 같은 통증도 잠시, 그것으로 끝이었다.
툭-
후두둑-
쪼개지고 잘리고 쏟아지는 소리.
이어 비릿하게 피어나는 녹슨 냄새.
마을 사람들은 도망칠 수 없었다.
다리가 돌로 변해버린 것 같았다.
간신히 눈동자를 비틀자 보이는 광경.
갑작스럽게 토막 난 시체 곁에는 무언가 있었다.
일렁이는 그 무언가가 내려앉은 곳 주변 사람들이 선 채로 파랗게 질리기 시작하는 모습.
선 채로 죽어감에도 아무런 소리도 발버둥도 없었다.
그저 폐가 공기를 거부했고 심장은 박동을 포기하기 시작할 뿐.
불가해의 공포. 그리고 확정된 죽음.
피할 수 없는 결말 앞에 마을 사람들의 머릿속이 깨끗하게 지워지기 시작했다.
‘죽는다.’
‘살고 싶어.’
‘제발.’
다른 생각은 없었다.
오직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고 싶은 처절한 생의 갈망뿐.
일렁-
공간이 일그러지며 드러나는 무언가의 모습.
영화나 소설, 군사 잡지에서 보던 은신 슈트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삶의 갈망은 모든 것을 뒤틀었다. 그렇게 그들의 뇌리에 박힌 건 과학 기술 따위가 아니라. 죽음의 현현이었다.
그렇게 마을 하나가 마루를 영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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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처리는 신속하게 진행됐다.
친위대의 통제를 얌전히 따르는 마을 사람들.
“검사지에 침을 뱉는다. 실시.”
“검사가 끝난 사람들은 이쪽에 와서 설문지를 작성한다.”
“설문이 끝난 자는 통제에 따라 이사 준비를 하도록.”
길게 늘어선 줄. 반항도 없고 불만도 없었다.
오직 살았다는 살아남았다는 떨림만 가득했다.
“거기. 검사 끝났으면 빨리 움직여.”
“예? 예.”
마루는 은신을 풀지 않고 주변을 살폈다.
‘쯧- 머리통을 온전하게 건졌어야 하나.’
자신의 위치를 미묘하게 알아챈 것을 보면 식인귀가 아니라 능력자일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놈이 손으로 방향을 잡는 것과 동시에 마루의 뇌리에 떠오른 것은 정신계 능력이었다.
‘쥴리아. 그 여자와 비슷한 느낌이었어.’
뉴욕에서 죽은 쥴리아 스핀. 그녀가 정신파로 위치를 찾던 일이 떠올라 바로 손을 쓴 마루였다.
‘생포했어야 하나?’
생각해 보니 조금은 아쉬웠다. 고개를 흔들어 아쉬움을 털어낸 마루가 다시 마을 사람들을 관찰했다.
‘연구원들이 좋아하겠군.’
그래도 깔끔하게 두 쪽으로 쪼갰으니, 연구 샘플로 쓰기엔 충분하지 싶었다.
‘응? 저건?’
그런 마루의 눈에 이상한 놈들이 보였다.
가죽옷을 입고 있는 자들.
가죽옷이야 다른 사람들도 여럿 입고 있었기에 이상한 건 아니었지만, 소재가 문제였다. 일반적인 가죽 느낌이 아니라 괴수 특유의 질감이 느껴지는 옷. 여러 차례 괴수를 해체해 본 마루는 그 차이를 알 수 있었다.
괴수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이라면 마을에서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일 터, 그런 자들이 식인귀 검사 줄 맨 뒤에 모여있다고?
마루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 놈들이 행동을 시작했다.
“지금이다. 눌러!”
품에 감추고 있던 격발기를 누르려는 순간 목이 떨어지는 한 놈. 그리고 일렁이는 공간.
“으아아아악! 도망–”
콰직-
후두둑-
말을 끝내기도 전, 둔탁하게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상/하체로 분리된 놈이 발광을 떨었다.
그 모습을 본 마루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썰렸음에도 버둥거리는 질긴 생명력.
역시 있었네.
이 새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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