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487)
러스트 [RUST]-487
사이코메트리가 안 먹힌다고?
“진. 진짜로요.”
에리카의 혼란스럽다는 듯한 목소리가 잦아들기도 전, 훌쩍- 테이블을 뛰어넘은 마루가 그대로 로아나 블랑에게 달려들었다.
어?
에?
What?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 같은 마루의 움직임에 눈을 깜빡이는 사람들.
정말 눈 깜박할 사이, 갑작스럽게 로아나 블랑의 얼굴을 향해 쭉 뻗은 마루의 손이 그녀의 얼굴을 움켜쥐었다.
!로아나 블랑이 이를 악물지 못하도록 볼 사이로 파고든 마루의 손가락.
아으-
마루의 팔뚝에 설핏 힘줄이 섰다.
덜컥-
!!!
흐에에에-
단숨에 로아나 블랑의 턱관절을 뽑은 마루가, 의무대를 호출했다.
“어금니에 뭔가 있는지 확인하고. 혹시라도 삽입된 칩이나 임플란트 있는지 바로 찾아봐.”
[옛.]갑작스러운 턱관절 뽑기 묘기에 다들 멀뚱멀뚱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러거나 말거나 에리카에게 사이코메트리 결과를 다시 묻는 마루였다.
“그러니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읽지 못하겠다는 소리지?”
‘아니 일단 턱부터 뽑아 놓고 묻는 겁니까?’ 에리카가 당황했다.
“어- 그러니까. 그게···.”
‘눈앞에서 사람 죽는 것도 봤으면서 왜 그렇게 떠는데?’ 그런 마루의 눈빛에 에리카는 침을 꿀꺽 삼켰다.
“···생각이 읽히지 않는 느낌인데.”
따지고 보면 블라디마루 칼린도 생각이 읽히지 않았었다. 쥴리아랑 그거 가지고 이야기했었고.
‘텔레파시가 이상하게 먹히지 않네. 억지로 텔레파시로 뚫으려고 하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진짜 뭔가 느낌이 좋지 않으니까 너도 조심해.’
‘맞아. 잔존사념도 느껴지지 않고 생각도 읽히지 않아서 어떤 사람인지, 믿을 수 있는 사람인지 모르겠으니까 솔직히 좀 무서워.’
그 당시 기억이 떠오르자, 힐끔힐끔 마루를 쳐다보게 되는 에리카였다.
“할 말이 있어 보이는데, 할 말 있으면 말해봐.”
“그래. 뭔가 있어 보이는데.”
마루와 김 양의 다그침에 우물우물 텔레파시 능력자인 쥴리아와 고민했던 이야기를 설명하는 에리카.
“그러니까 내가 정신계 능력에 면역인 것 같다? 그리고 로아나 블랑의 생각도 읽을 수 없었고?”
“느낌이 다르지만, 읽을 수 없는 건 같았어요.”
에리카의 설명을 들은 마루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사이코메트리로 읽을 수 없다는 말과 동시에 로아나의 턱관절을 뽑은 이유가 뭐였나?
읽을 수 없다는 말 자체가 믿을 수 없다는 뜻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정작 정신계 능력자들은 자신을 믿을 수 없고 알 수 없는 사람으로 보고 있었다니, 기분이 묘해지는 마루였다.
‘느낌이 이상해서 자살하지 못하게 턱관절부터 뺀 건데, 너무 민감했었나?’
에리카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신처럼 정신계 면역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
‘아니야. 정신계 면역 능력자라고 생각해도 이상해.’
실수했나 싶어서 다시 꼼꼼하게 생각해 보니 실수가 아니었다. 설령 실수했다고 하더라도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될 일이었고.
“수석 요리사와 로아나 블랑과 처음 접촉한 사람. 그리고···. 그녀가 블라디 아크 타워에 들어올 수 있도록 허락한 사람 전부 데려오도록.”
로아나 블랑 사태는 보안 시스템 점검으로 일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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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지도 않은데 주르륵 흘러내리는 땀방울.
수석 요리사는 손수건으로 식은땀을 훔쳤다.
“긴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그저 묻는 말에 솔직하게 답하시면 되니까요.”
“······.”
국왕이 지켜보는데 어떻게 긴장하지 않겠나?
그냥 유럽 어느 나라 왕가 사람이 그랬으면 콧방귀도 뀌지 않았겠지만,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건 블라디마루 칼린이었다.
이름만 왕인 자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진짜배기 왕. 홀로 블라디 아크 타워를 만들었고 홀리 교도들이 구원의 그분이라고 믿고 있는 존재.
자신과 그의 가족이 안전하고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해준 생명의 구원자가 블라디마루 칼린 폐하였다.
그분이 친히 보고 계시는데 긴장하지 말라니. 장난하나?
“예. 예.”
“로아나 블랑과는 아는 사이입니까?”
수석 요리사에게 질문하는 PD였다.
“직접 얼굴을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뉴투브 댓글이나 SNS를 통해 의견을 주고받았기에···.”
“그렇군요. 그렇게 알고 지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까?”
‘알고 지내는 사람.’이라는 개념이 과거와는 많이 달라진 세상인지라, 그럴 법했다.
“예.”
“누가 먼저 연락했습니까?”
보안실장이 이어서 질문했다.
디트로이트와 인근 권역까지는 전기, 통신, 지역 인터넷을 쓸 수 있었기에 SNS와 뉴투브도 돌아가고 있었다.
“그녀가 디트로이트로 피난 왔다는 이야기를 올려서 부르게 됐습니다.”
나가겠다는 사람들 내보내고 들어오겠다는 피난민들 받았었는데 그때 들어왔다는 소리.
“어째서죠?”
“그녀가 제과 제빵 쪽에 재능있는 요리사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상대적으로 디저트 쪽이 약했기에 그녀를 영입하면 좋으리라 생각해서였습니다.”
수석 요리사는 자부심이 있었다.
단순한 생존자 집단에서 도시를 아우르는 세력이 됐고 종국에는 연방에서 독립 선언하면서 왕국이 됐다. 그러니까 생존 주방에서, 왕실 주방이 된 것.
그렇게 요리사 앞에도 왕실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이제는 뭘 해도 왕실 요리사라는 자부심에 걸맞게 요리하고 있었지만, 디저트가 약한 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디저트 쪽에서 알아주는 젊은 요리사가 디트로이트로 피난 온 것을 알게 됐다. 그걸 어떻게 그냥 두겠나?
수석 요리사의 대답을 듣던 마루가 사이코메트리를 실행 중인 에리카를 바라보자, 그녀가 작게 말했다.
“사실이에요.”
보안실장의 질문을 끝으로 심문이 끝났다.
“이야기하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아닙니다. 수고는요. 괜찮습니다.”
전혀 아니라고 대답한 수석 요리사가 침을 삼켰다.
그가 부른 로아나 블랑이었다. 디저트 파트를 살려보자는 욕심 때문에 불렀는데, 그녀가 끌려가 버렸으니 마음이 불편한 수석 요리사였다.
“혹시···. 그녀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요?”
“아직 조사 중입니다.”
식은땀을 다시 닦은 수석 주방장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후- 그녀는 정말 뛰어난 재능을 가진 요리사입니다. 사태가 터지기 전 뉴투브 구독자와 팔로워 숫자만도 각각 천만이 넘을 정도로 유명한 요리사이기도 하고요. 정말 큰 범죄를 저지른 게 아니라면, 한 번 기회를 주셨으면 합니다.”
마루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수석 요리사를 다독였다.
“문제가 없다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수석 요리사를 내보내고 나자, 회의실이 잠시 적막에 휩싸였다.
그의 증언대로라면 김 양이 수상하다며 독방에 가둔 것도, 마루가 문답무용(問答無用) 턱부터 뽑아 버린 것도 전부 해프닝(Happening)인지라 애매해졌다.
“······.”
“······.”
“저쪽에서 몰래 들어온 게 아니라, 이쪽에서 초청해서 들어왔으니 침입 혐의는 없다고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보안실장이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사이코메트리 능력으로 읽히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지만, 정신계 면역 능력자라면 있을 수 있는 일이라서 그것만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PD도 보안실장의 의견에 동의하는 모양새.
두 남자가 사실상 로아나 블랑의 무혐의를 이야기하자, 김 양이 반대의견을 제시했다.
“피난민이 그렇게 멀쩡하게 디트로이트로 왔다는 게 말이 됨?”
예쁜 여자가 7개월 넘는 혹한을 멀쩡히 견디고, 길바닥에서 사람들과 노숙하면서 피난 생활을 했다는 걸 이해할 수 없다는 주장.
“크흠- 큼- 조금 이해하기 어려우시겠지만, 여자가 정말 예쁘면 비상식적인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미녀 때문에 나라가 망하거나 성문이 열리거나 그런 옛날이야기가 괜히 있는 게 아닙니다. 예쁜 여자에게 전력을 다하는 사람들이 생기니까요.”
보안실장이 김 양의 의구심 가득한 눈을 보며 이야기를 더했다.
“인터넷 방송만 보셔도 그렇지 않습니까? 인기 많은 여자 BJ들은 경호원을 대동하고 움직여야 할 정도였다는 걸 생각해 보시면. 로아나 블랑의 영양 상태와 피부 상태가 좋은 것도, 안전하게 겨울을 난 것도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PD도 마찬가지 의견이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방송국에서 일하다 보면 아이돌을 대하는 팬들을 자주 볼 수 있어서 이해가 됩니다. 혹한기 동안 아이돌과 팬의 관계가 됐다고 가정하면 로아나 블랑이 안전하게 디트로이트로 온 것도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정말 예쁜 여자라면 어떤 남자가 독점하겠다고 하는 순간, 나머지 사람들이 그냥 두지 않았을 테니 오히려 안전할 수 있다는 이야기에 김 양과 후드, 간호사가 동시에 마루를 힐끗 쳐다봤다.
마루도 남자인지라 보안실장과 PD의 의견이 일리 있다 생각했지만, 그렇게 넘어가려고 하면 어쩐지 찝찝함이 가시지 않았기에 섣부르게 판단하지 않았다.
‘뭘까? 뭘 놓치고 있는 거지?’
찜찜하다면 분명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마루는 이런 느낌을 절대 간과하지 않았다.
‘수석 요리사가 불렀다고 하니···.’
?‘잠깐. 수석 요리사가 불렀다? 부른다고 다 들어오나?’
마루가 보안실장을 바라봤다.
수석 요리사가 불렀다고 하더라도, 검증 절차를 밟는 것은 보안실장의 권한이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어떤 보안 절차를 거쳐 로아나 블랑을 들여보냈는지, 그 이야기를 하지 않고 은근슬쩍 넘어가는 것 같은···?
“에리카. 보안실장 사이코메트리 해봐.”
“네? 예.”
삽시간에 공기가 얼어붙었다.
“당장.”
“네. 저. 보안실장님. 손 좀.”
테이블에 올려놓은 보안실장의 손에 에리카의 손바닥이 살짝 닿았다.
“에?”
에리카의 입에서 탄성이 나오는 순간, 마루가 휘두른 칼질에 테이블이 쪼개졌다.
콰지직!
텁-
테이블이 두 쪽으로 찢어진 틈으로 성큼 다가선 마루가 보안실장의 볼을 우악스럽게 움켜잡았다. 턱이 다물어지지 않도록 볼을 깊게 파고든 손가락에 보안실장이 떨었다.
“어? 저. 전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요?” 중얼거리는 에리카에게 마루가 말했다.
“지금 안 읽혔지?”
“예? 네.”
마루의 표정이 살벌하게 변했다.
“저번에는 읽혔었고.”
“어? 네.”
수차례 검증했고 마지막에는 에리카의 사이코메트리로 전향했는지 확인했었다. 살펴본 결과 능력도 나쁘지 않았고 전향도 확실해 보여서, 보안실장을 맡겼더니. 이 새끼가?
“오. 으- 오해···.”
“오해? 오해는 무슨 오해?”
마루가 그대로 힘을 줘 턱관절을 비틀어 뽑으려고 하자, 사내가 필사적으로 팔목에 차고 있던 팔찌를 풀곤 에리카의 손을 붙잡았다. 툭- 바닥에 떨어지는 팔찌.
에리카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엇? 잠시만요.”
에리카가 마루를 말렸다.
“생각이 읽혀요. 어- 그러니까 배신하려는 의도는 없었는데요?”
차갑게 식은 마루의 눈빛이 에리카를 노려봤다.
‘너 문제 있냐? 아니면 너도···?’하는 살벌한 눈빛.
“아니. 진짜요. 정말로요.”
에리카가 붕붕 좌우로 고개를 흔들었다.
“말해봐.”
“로아나 블랑을 검문하면서 그녀가 보안실장에게 팔찌를 선물했어요.”
모두의 시선이 바닥에 떨어진 팔찌를 향했다.
“팔찌? 그러니까 뇌물 먹었다는 소린가?”
“아니요. 그냥 팔찌가 아니라, 어느 정도까지 정신계 능력에 대응할 수 있는 장비라고 했어요.”
능력에 대응하는 장비?
“그···. 보안실장이 정신계 능력에 당하면 보안에 구멍이 뚫리는 거니까. 그런 상황에 대비하는 장비는 귀하잖아요. 그런 장비를 주는 사람을 계속 의심할 수도 없었고, 일반적인 절차로 봐도 문제가 없는 사람이라서.”
“그런 장비를 받았다는 건 왜 보고하지 않았지?”
“지금 도착하자마자 막 회의 시작하셨잖아요. 회의 끝나고 따로 보고하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바로 턱관절 뽑기 해버렸는데, 어느 틈에 보고하겠나? 에리카가 같이 배신한 것이 아니라면 보안실장이 배신했다고 단정하긴 어려웠다.
‘그래도 왜 찜찜함이 가시지 않지?’
“에리카. 여기 있는 전원 사이코메트리 해봐.”
“예? 전부요?”
“그래. 가능하지?”
“네. 예.”
김 양과 후드, 간호사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그럼 누구부터 해야 하나?’
에리카가 바라보자, 다른 사람을 먼저 하라고 강렬한 안광을 뿜어내는 세 여자.
‘그럼 PD님부터?’
PD의 얼굴은 죽상이었다.
어쩐지 자책하는 PD의 모습에 에리카의 시선이 새로 온 여자. 그러니까 팔이 잘린, 외팔이 여자를 향했다.
‘어차피 빵 여자랑 이 사람부터 하라고 했었으니까.’
외팔이 여자의 손을 붙잡은 에리카의 머리 위에 물음표가 떴다.
“어? 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