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489)
러스트 [RUST]-489
디트로이트 남부와 가까운 도시 털리도.
지하 어느 곳에서 블라디마루 칼린의 신성 왕국을 노린 작전 현황이 보고되고 있었다.
“허니-트랩(Honey-trap 미인계)은 어떻게 됐습니까?”
“블라디마루 칼린과 지휘부가 기거하는 아크 타워 요리실에 성공적으로 침투한 것이 확인됐습니다.”
“흔적은 확실히 지웠지요?”
“수석 요리사와 로아나 블랑이 알고 있던 사이인지라 일이 쉬웠습니다. 그쪽에서 직접 초대한 것으로 됐으니, 다른 흔적이 생길 이유가 없었습니다.”
미인계라고 달랑 미녀, 미남 하나 달랑 던져놓고 끝이 아니었다. 직접 침투 작업하는 사람이 1명이라면, 지원 인력은 거의 7~8명이 필요했다.
“다행이군요.”
“로아나 블랑이 자리를 잡게 되면, 그녀의 뉴투버 관리팀 명목으로 블라디 아크 타워에 들어갈 계획입니다. 왕국 요리실 콘텐츠, 왕실 요리 콘텐츠를 올리면서 녹아 들어갈 계획입니다.”
지금까지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일단 지원팀까지 들어가는 데 성공하면, 내부에서 여론을 만들기 시작한다.
큰 여론이 아니라, ‘누가 누구를 좋아하는 것 같다.’, ‘누가 누구의 방에 들어갔다.’ 같은 는 가벼운 가십(gossip)을 퍼뜨려 주면 분위기를 그쪽으로 조금씩 바꾼다.
그런 상황에서 로아나 블랑과 블라디마루 칼린의 염문설이 돌면 어떻게 될까? 실제로 허니-트랩이 성공해도 좋고, 실패해도 상관없었다.
지금까지 왕국 핵심 인물로 분류된 인물은 다섯.
블라디마루 칼린을 제외하면 김 양. 간호사, 후드, 에리카 그리고 PD까지 다섯.
그 가운데 여자가 넷이었다.
여자들이 연애 이야기를 참는다?
그럴 리가.
그녀들이 블라디마루 칼린에게 어떤 감정을 가졌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만약 감정적 교류가 있었다고 한다면···.
‘어떤 의미로든 난장판이 터지겠지.’
‘감정적인 교류가 없었어도 피할 수 없다.’
분위기를 만들어 감정적 교류를 만들 수만 있다면, 미인계가 통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준비한 것이 신형장비.
“로아나 블랑은 성공했는데, 군부 쪽은 어떻답니까?”
“소식이 없습니다.”
“실패했나 보군요. 성공했으면 군부 놈들 자랑질하느라 정신없었을 테니 말이죠.”
“그렇기는 하죠.”
“그나저나 효과가 있을까요?”
“신형장비 말입니까?”
“실험실에서는 유의미한 결과가 나왔는데, 지켜봐야죠.”
“그보다는 신형 중계기가 문제입니다. 캐나다 방면 마을에 설치한 것들도 문제가 생기더니, 여기서도 그러네요.”
늑대 부대와 신성 까마귀 부대가 합심해 소형 중계기를 찾아다닌다는 것을 몰랐기에 벌어진 일.
“계속 오류가 납니까?”
“오류면 괜찮게요. 그냥 설치하는 족족 없어져 버려서, 통신 쪽은 기존 라인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통째로 사라지는 것도 사라지는 것이지만, 더 큰 문제는 정보가 늦게 전달된다는 것이었다. 몇 시간에서 길면 하루 최악의 경우에는 며칠까지.
몇 시간만 지나더라도 사건이 터지고 향방이 결정될 시간인데, 하루에서 며칠이 지나면 말 그대로 뒷북만 치게 됐다.
정보, 통신의 중요성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뚜렷하게 증명됐기에, 군부와 합작해 새로 만든 신형 중계기를 설치했는데도 바로 없어지고 있었다.
혹시나 싶어, 근처에 요원을 투입했더니. 그 요원도 같이 사라져 버린지라 답답할 따름이었다.
“혹시 괴물 쥐가 아닐까요?”
“쥐는 아닙니다.”
왕국은 이상하게 쥐 문제가 없었다.
“쥐들이 선을 갉아먹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 덕에 일부 구간이나마 유선 통신이 가능하니까요.”
“···피해가 그렇게 적습니까?”
“예. 이번 겨울 지나고부터는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피해 관련 자료 따로 뽑아 주시죠. 다른 지역과 비교, 분석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그러겠습니다.”
[긴급 보고입니다. 허니-트랩이 실패했습니다. 현재 로아나 블랑이 독방에 수감 됐다고 합니다.]“빌어먹을 어쩌다 걸린 건데?”
[블라디 아크 타워에는 다른 끈이 없어,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지금도 수석 주방장이 로아나 블랑의 뉴투버 팀에게 전달해서 알 게 된 정보입니다.]“후- 돌겠군. 허니-트랩 지원대기하고 있던 요원들, 지금 당장 전부 대피시켜. 디트로이트에서 몸을 숨기기 어렵다면 털리도로 퇴각한다.”
“퇴각하면서···. 그 장치를 작동하라고 해. 운이 좋다면 틈이 생기겠지.”
[그 장치 말입니까? 알겠습니다.]허니-트랩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을 때 사용하려고 한 장비였지만, 아끼다 똥 되느니 지금 써보는 게 맞았다.
상황을 정리한 지부장이 우두커니 지켜보고 있던 본부 요원에게 한마디 했다.
“보셨다시피 결과가 틀린 것 같습니다.”
“역시. 또 이렇군요.”
본부 요원의 말에 지부장의 심기가 불편해졌다.
“역시라니요? 또 이렇다? 성급하게 추진한 작전의 성공확률이 낮다는 걸 알면서 하는 말입니까?”
발끈한 지부장의 목소리에 본부 요원이 그게 아니라는 듯 설명했다.
“아-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이상하게도 블라디마루 칼린과 엮이면 결과가 좋지 않아서 말이죠.”
“제가 모르는 일이 또 있었습니까?”
자신이 설명할 사인이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거리는 본부 요원.
“그렇다면 늘 하던 것처럼 하면 되는 일 아닙니까?”
버지니아 컴퍼니와 군부가 잡음을 제거하던 방식대로 하면 되는 일 아닌가? 털리도 지부장도 블라디마루 칼린의 전투력은 알고 있었다.
‘엄살인가?’
지부장은 본사 요원의 침묵을 엄살로 받아들였다. 아무리 강해도, 신인류 특수부대와 능력자 특수부대가 집중적으로 마크한다면 불가능하지 않아 보였다.
본사 요원은 지부장의 생각을 읽고도 말을 아꼈다. 지부장이 생각한 것처럼 블라디마루 칼린을 노린 자들이 없었을까? 정신계 용병을 비롯해 특수부대 인질극까지 전부 실패했었다.
“몇 차례 시도했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습니다. 인공지능도 다른 변수가 생길 때까지 그냥 두랍니다.”
자폭 준비가 된 윌밍턴 지하연구소를 들쑤신 것도 모자라, 이지스함 3척을 단독으로 나포한 게 블라디마루 칼린이라는 게 밝혀진 뒤, 버지니아 컴퍼니 인공지능은 건드리지 말고 관망할 것을 추천했다.
“허어- 그럼 본부에서는 어떻게 할 생각이랍니까?”
“그래서 허니-트랩을 한 거 아니겠습니까.”
근데 방금 그것도 나가리 됐다.
“······.”
“······.”
지부장과 본부 요원 사이에 잠시간 침묵이 흘렀다.
“고고도에서 EMP를 터뜨리고 대대적으로 미사일 타격을 하면 어떻겠습니까?”
“블라디마루 칼린 하나 잡자고요? 그러고도 실패한다면 최악의 암살자가 탄생할 텐데 그런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허니-트랩을 알아챘으니, 놈이 우리 남부연맹을 공격할 겁니다. 다소 피해가 있다고 하더라도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블라디마루 칼린을 정리해야 합니다.”
제일 처음 블라디마루 칼린의 공격을 받을 곳은 인접한 털리도였다. 그래서 그런지 지부장이 계속 공격을 주장했다.
“본사와 군부에서는 허니-트랩 외의 작업은 하지 않는다고 결정했습니다.”
남부연맹의 주적은 되다만 왕국이 아닌, 제국이었다.
최근 들어온 정보에 따르면 제국과 신성 왕국은 적극적인 군사동맹 관계가 아니었다.
더구나 제국이 아메리카 대륙을 전부 정복하는 데 성공하면, 신성 왕국도 순순히 제국에 편입된다는 상식에서 벗어난 이야기가 오갔다는 정보까지 있었다.
왕국의 힘을 빼는 것은 좋지만, 왕국을 직접 공격하거나 그래서 왕국과 제국이 붙어먹게 되는 것은 피하자는 게 남부연맹의 결정이었다.
그렇지만 이번 허니-트랩은 단순한 허니-트랩이 아니었다.
“다양한 신형장비를 동원했으니, 일단 지켜보도록 하지요. 조금 전에도 지부장님께서도 신형장비를 작동하고 퇴각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
허니-트랩의 성공을 위해서는 블라디 아크 타워에 있는 사이코메트리에 걸리지 말아야 했다. 그래서 지급한 장비가 정신계 능력에 방호력이 있는 장신구였다.
“장비에 다른 기능이 있었군요.”
“아시다시피 보안 사항이니까요.”
지부장이라고 하더라도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었다.
지부에 주저리주저리 기밀사항을 풀면 그게 무슨 기밀사항이고 보안 사항이겠나?
지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허니-트랩 작전의 지휘권을 받으면서 받았던 신형장비들이 떠올랐다. 단순히 틈을 만들기 위한 장치가 아니었던 건가?
하긴. 정신계 능력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면 세뇌와 약물로도 충분히 가능했을 텐데, 굳이 장신구라니 이상하긴 했다.
“그러다가 블라디마루 칼린과 본격적으로 싸우게 되는 거 아닙니까?”
“블라디마루 칼린도 남부연맹을 대상으로 전쟁하지는 못할 겁니다. 한다고 하면 우리나 군부를 노릴 텐데···.”
‘의미가 있겠습니까?’하는 본사 요원의 눈빛.
블라디마루 칼린이 분노해 추적한다고 해도 마지막에 연결된 실험실이나 지부 하나 날아갈 뿐이었다.
괜히 점조직으로 운영하고, 심심해서 허니-트랩 작전 지휘권을 털리도 지부에 넘겼을까. 그러니 블라디마루 칼린이 날뛰면 털리도 지부가 날아가겠지.
“······.”
“······.”
입을 다문 털리도 지부장에게 본사 요원이 ‘다 알면서 왜 그러십니까?’ 하는 표정을 지었다.
“기다려 보지요. 기대되네요. 블라디마루 칼린이 이번에도 피할 수 있을지.”
“······.”
“걱정하지 마시죠. 죽을 일이 생기면 저도 여기서 죽습니다. 하핫-”
“······.”
본사 요원의 눈이 번들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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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 느낌이?”
마루가 미약한 살기를 뿌렸다.
아무리 미약하다고 하더라도 근거리에서 뿌렸기에 사람이 감당하기 힘든 살기. 특히 몸집이 작은 개체는 더욱 그랬다.
까으으악-
살기를 뿌리고 몇 초 지나지 않아, 간호사의 어깨에 앉아있던 까마귀가 그대로 꼬꾸라졌다. 그런데 세 여자는 머리 위에 물음표를 동동 띄운 채 기절하지 않고 있었다.
‘살기가 정신계 능력이었나?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살기를 단순하게 정신계 능력이라고 보긴 어려웠다.
정신계 능력이었다면 텔레파시 쥴리아나 사이코메트리 에리카가 살기에 잘 버텼을 텐데 아니었다. 무엇보다 환영 능력으로 분탕질 친 새끼를 쉽게 잡지 못했을 거고.
문제는 원인이 아니라 결과였다. 원인은 모르겠지만, 장신구를 한 세 여자 모두 살기에 무너지지 않고 있다는 결과.
‘조금만 더 세게 해볼까?’
살기를 조금만 더 강하게 해보면 어떨까?
까으-
부스럭-
부스럭 소리에 마루가 고개를 살짝 숙이자, 테이블에 떨어져 바들바들 몸이 굳어가는 까마귀의 모습이 보였다.
쯧-
살기를 푼 마루가 말했다.
“뭔가 이상한가?”
순간 멍하니 있던 김 양이 당혹스러운 목소리를 숨기듯 헛기침을 했다.
“어- 음- 큼. 큼.”
“에-에-에-”
‘또.’ 없는 ‘에’를 3연속으로 반복한 간호사가 마루를 힐끗힐끗 쳐다보기 시작했다.
“······.”
후드는 어째선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마루의 눈빛을 피하는 모양새. 셋 모두 살짝 달아오른 얼굴에 마루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한 명이면 모를까 셋이 동시에 이렇다고?
그러고 보니, 조금 전에도 이상했다.
로아나 블랑, 에릴린 뉴먼이 있을 때부터, 김 양의 행동이 이상했다. 후드도 그렇고.
두 사람 모두 로아나와 에릴린을 처분하고자 했다. 이유야 있었고 논리도 있었지만, 김 양이 그랬다는 게 문제.
‘맛있는 걸 좋아하는 김 양이 실력이 뛰어난 요리사를 처분하자고 해? 목줄 채워서 개같이 부려 먹자고 하지 않고?’
후드도 마찬가지였다. 해킹하고 코드 잡다가 당 떨어지면 달콤한 고급 디저트 퍼먹기 바쁜 후드가 김 양의 의견에 선선히 동의하다니 이상했다.
무엇보다 웅장한 간호사의 행동도 마찬가지.
그 웅혼함으로 에릴린 뉴먼과 로아나 블랑을 품어주지 않는다니. 심지어 에릴린 뉴먼은 외팔이었다. 장애 속성을 가진 사람인데도 침묵해서 처리하자는 데 동의한다고?
이렇게 따지고 보니, 셋 모두 이상했다.
‘에리카는 멀쩡하고, PD는 친인척 때문에 조금 그런 거니까 정상 범주고.’
세 여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마루가 까마귀에게 말했다.
“거기 까마귀. 까마귀는 나가.”
까아악- (감사합니다.)
비틀비틀 일어난 까마귀가 후드득- 창문 밖으로 날아갔다.
“에리카도 수고했어, PD님은 에릴린 뉴먼과 이야기 좀 해보세요.”
둘 다 나가라는 소리에, 에리카와 PD가 회의실 밖으로 향했다.
“장신구 빼.”
서늘한 마루의 목소리에 세 여자가 바르르 떨었다.
“지금 당장.”
마루의 예상대로였다.
정신계 능력에 대비한 장비가 있다는 말은,
정신계 능력을 발산하는 장비가 있을 수 있다는 의미였다.
정신계 능력자는 정신계 능력에 어느 정도 저항성을 가진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정신계 방어 장비는 정신계 능력을 발산하는 장비일 가능성도 있었다.
그리고 미인계를 위한 장신구라면, 그런 쪽과 관련된 것이겠지.
장비를 벗은 세 여자를 향해, 마루가 친히 살기를 뿜어줬다.
“갈!(喝-꾸짖을 갈)”
“에?-”
“어?-”
“흑-!”
세 여자의 머릿속에 자리를 잡으려던 마구니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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